‘여성주의’ 신호탄 쏘아 올린 화제작…공지영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입력 2021.08.15 (21:23) 수정 2021.08.15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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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 오늘(15일)은 공지영의 장편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만나보겠습니다.

90년대 여성들이 살면서 겪는 억압과 차별을 세 여성의 삶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작품, 당시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는데요.

​동시대 여성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며​ 본격적인 여성주의 문학 시대를 열었다는 평을 받아왔습니다.

정연욱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1992년, 30대 초반에 접어든 세 친구.

맞벌이를 고집하다가 출근길에 사고로 아이를 잃은 뒤 이혼하고, 부유하고 화려하게 살지만 남편의 외도에 속앓이하고, 자신의 꿈도 포기한 채 남편을 뒷바라지해왔는데도, 오히려 자신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남편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모두 행복한 결혼 생활에 실패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지영/소설가 : "그 셋 중 하나의 고통에 들어가지 않는 여자가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런 것들이 한 번도 공식적으로 표명되지 않았을 정도로 닫힌 사회였던 거죠."]

세 친구는 대학 시절 '여성해방'에 투신하자고 결의했을 만큼 주체적인 삶을 자신했지만, 졸업 뒤에 맞닥뜨린 가부장적 질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예상보다 훨씬 교묘하고 강고했습니다.

[공지영/소설가 : "(남편과 달리) 저는 남자 쪽 식구들을 아버님, 어머님, 도련님, 아가씨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왜 나는 동등하게 결혼을 한 사람인데 왜 나에게 이런 용어를 쓰게 하는지..."]

엄마들은 딸들에게 자신과 다르게 살라고 가르치면서도, 아들에게는 반대로 아버지처럼 살라고 가르치던 세상.

1980년대 초반 운동권 학생으로서 학습한 지식들, 민주화 투쟁의 경험조차 여성으로서 일상을 살아가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됐습니다.

[공지영/소설가 : "'집 안에 있는 아내와 남편 하나 해석할 수 없다니' 하는 당혹감이 저를 엄청난 혼란에 빠뜨렸죠. 그래서 작가로서는 그것을 쓰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었어요."]

소설 속에서 남성들이 거침없이 쏟아내는 폭력적인 언사들은 여성 독자들의 열렬한 공감을 이끌었지만, 현실을 과장했다는 비판도 함께 받았습니다.

[공지영/소설가 : "절망이니까 희망적으로 그려라가 정답이 아니라 절망을 정확히 드러내면 그 속에 분명히 희망이 생기거든요."]

'누군가와 함께 행복하려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불행 경쟁을 벌이는 듯한 세 친구의 삶에 불경의 한 구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행복의 주체는 반드시 '내'가 돼야 한다는 동시대 여성들을 향한 응원과 격려였습니다.

[공지영/소설가 : "누군가가 다가와서 나의 행복을 해결해주기를 원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을 해결하고 갈 때 연대도 가능한 거죠. 사실 연대란 것이 누구에게 의존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등단한 뒤에도 한동안 무명에 가까웠던 공지영은 1993년 이 작품을 발표하며 일약 스타 작가로 떠올랐고, 90년대 문단을 휩쓴 여성주의 문학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심진경/문학평론가 : "본격적으로 결혼 이후에 사회적 욕망, 주체로서의 욕망을 갖고 있는 여성이 여전히 전업 주부를 요구하는 사회와의 갈등을 드러내고, 그것을 3명의 여성, 서로 다른 3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해서 안정적으로 구성을 했고."]

이번 소설, 어떻게 보셨습니까.

찬성과 반대, 공감과 거부, 그야말로 다양한 반응이 엇갈리겠죠.

세상에 나온 지 30년 가까이 지난 소설이 우리 사회에 던졌던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박세준 박장빈/그래픽: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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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주의’ 신호탄 쏘아 올린 화제작…공지영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입력 2021-08-15 21:23:07
    • 수정2021-08-15 21: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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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 오늘(15일)은 공지영의 장편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만나보겠습니다.

90년대 여성들이 살면서 겪는 억압과 차별을 세 여성의 삶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작품, 당시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는데요.

​동시대 여성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며​ 본격적인 여성주의 문학 시대를 열었다는 평을 받아왔습니다.

정연욱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1992년, 30대 초반에 접어든 세 친구.

맞벌이를 고집하다가 출근길에 사고로 아이를 잃은 뒤 이혼하고, 부유하고 화려하게 살지만 남편의 외도에 속앓이하고, 자신의 꿈도 포기한 채 남편을 뒷바라지해왔는데도, 오히려 자신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남편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모두 행복한 결혼 생활에 실패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지영/소설가 : "그 셋 중 하나의 고통에 들어가지 않는 여자가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런 것들이 한 번도 공식적으로 표명되지 않았을 정도로 닫힌 사회였던 거죠."]

세 친구는 대학 시절 '여성해방'에 투신하자고 결의했을 만큼 주체적인 삶을 자신했지만, 졸업 뒤에 맞닥뜨린 가부장적 질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예상보다 훨씬 교묘하고 강고했습니다.

[공지영/소설가 : "(남편과 달리) 저는 남자 쪽 식구들을 아버님, 어머님, 도련님, 아가씨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왜 나는 동등하게 결혼을 한 사람인데 왜 나에게 이런 용어를 쓰게 하는지..."]

엄마들은 딸들에게 자신과 다르게 살라고 가르치면서도, 아들에게는 반대로 아버지처럼 살라고 가르치던 세상.

1980년대 초반 운동권 학생으로서 학습한 지식들, 민주화 투쟁의 경험조차 여성으로서 일상을 살아가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됐습니다.

[공지영/소설가 : "'집 안에 있는 아내와 남편 하나 해석할 수 없다니' 하는 당혹감이 저를 엄청난 혼란에 빠뜨렸죠. 그래서 작가로서는 그것을 쓰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었어요."]

소설 속에서 남성들이 거침없이 쏟아내는 폭력적인 언사들은 여성 독자들의 열렬한 공감을 이끌었지만, 현실을 과장했다는 비판도 함께 받았습니다.

[공지영/소설가 : "절망이니까 희망적으로 그려라가 정답이 아니라 절망을 정확히 드러내면 그 속에 분명히 희망이 생기거든요."]

'누군가와 함께 행복하려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불행 경쟁을 벌이는 듯한 세 친구의 삶에 불경의 한 구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행복의 주체는 반드시 '내'가 돼야 한다는 동시대 여성들을 향한 응원과 격려였습니다.

[공지영/소설가 : "누군가가 다가와서 나의 행복을 해결해주기를 원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을 해결하고 갈 때 연대도 가능한 거죠. 사실 연대란 것이 누구에게 의존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등단한 뒤에도 한동안 무명에 가까웠던 공지영은 1993년 이 작품을 발표하며 일약 스타 작가로 떠올랐고, 90년대 문단을 휩쓴 여성주의 문학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심진경/문학평론가 : "본격적으로 결혼 이후에 사회적 욕망, 주체로서의 욕망을 갖고 있는 여성이 여전히 전업 주부를 요구하는 사회와의 갈등을 드러내고, 그것을 3명의 여성, 서로 다른 3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해서 안정적으로 구성을 했고."]

이번 소설, 어떻게 보셨습니까.

찬성과 반대, 공감과 거부, 그야말로 다양한 반응이 엇갈리겠죠.

세상에 나온 지 30년 가까이 지난 소설이 우리 사회에 던졌던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박세준 박장빈/그래픽: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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