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달려라, 아비’ 김애란 작가 “엉뚱한 상상과 농담으로 만든 인물의 품위”

입력 2021.08.29 (21:39) 수정 2021.08.2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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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 소설가

'달려라 아비'란?

이 소설은 한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인데요. 특별히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해서 큰 결핍을 느끼지 않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리가 바뀌어있지만, 그 안에서 그 빈 자리를 농담과 건강함, 씩씩함으로 채우면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가 담겨있고요. 이 책(단편집 '달려라 아비') 전체적으로도 제 소설의 출발이자 씨앗인 모티브들이 많이 들어있는데요, 그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달려라 아비'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자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궁금해 하는 인물들을 제가 많이 썼는데요. 그게 결국 '자기 기원' 쓰기 혹은 '자기 신화' 다시 쓰기의 주제를 제가 반복해왔었어요. 그래서 여기서도 없는 대상에 대해 그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야기 주도권을 누가 갖고 있는가'라는 것에 대한 기쁨 혹은 실감을 가지고 썼던 단편들입니다.

Q. 주인공의 '상상'과 '연민하지 않는 법'이란?

단순히 현실이 아닌 곳으로 붕 떠올랐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다른 서사를 갖기 위해, 잠시 좀 먼 곳으로 갔다가 결국엔 땅에 현실에 다시 착지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상은 힘이 없는 상상이 아니라 조금은 슬픈 상상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또 동시에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만든 환상이라 힘이 있는 상상이라고도 생각해요.

때때로는 그 인물들이 덜 다치라고, 바로 중력 때문에 바로 현실로 낙하하거나 추락하면 아프니까요. 그럴 때 조금 덜 다치라고, 제가 바닥에 깔아줬던 쿠션이 농담이나 환상이기도 했어요.

'자기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 중요한 키워드로 나오는데요. 그렇게 쓰고 싶었고 그런 인물이길 바랐지만 사실은 어려운 일 같아요. 그리고 저도, 또 다른 분들도 어떤 대상이나 사람을 볼 때 지레 판단하거나 판정하거나 동정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제가 대단히 신선한 작품을 쓰지는 못해도 좀 그렇게 타성으로 바라보는 시선 혹은 묘사는 피하고 싶다고 노력하고요. 그럴 때 제가 쓸 수 있는 방식이 이런 인물들의 시선, 태도의 고유함 혹은 개성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단편 속 인물의 개성 중 하나가 바로 말씀해주신 자기를 연민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작가가 뽑은 '달려라 아비'의 한 문장

"나는 내가 얼굴 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이 소설 속 화자의 태도를 압축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혹은 이 화자가 대상을 사랑하는 방식, 혹은 단순한 사랑을 넘어 품위를 부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이 문장을 뽑았습니다.

Q. 21세기의 풍속화가…'김애란 소설'의 매력

윤지관 / 덕성여대 영문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젊은 세대들의 삶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어요. 본인도 경험했고...그런 현실을 그려내면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공감대도 넓었고. 그런 점에서 저는 김애란 작가는 2000년대 우리 삶의 풍속화랄까 그런 것을 그려낸 작가다.

풍속화로 치면 김홍도의 풍속화 같은 그런 느낌도 좀 주고 또 작가로 친다면 김유정 같은, 물론 다루는 대상은 다르지만 그런 어떤 유머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삶에 대한 애환을 통찰해내는, 또 아이러니를 집어내는 그런 역량을 갖춘 그런 작가가 아닌가 이렇게 평가합니다.

Q. 22살에 등단…20주년을 앞둔 '젊은 작가'의 미래는?

여러 작품들을 쓰면서 인물들과 더불어 저도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도 들고, 때때로 같이 성장했다는 느낌도 드는데요.

글이라는 게 결국 그 사람 몸을 통과해서 나오는 거니까요. 그 몸이 어떤 몸이냐에 따라서 같은 소재같은 주제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 쓸 작품에 대한 기대가 만약 있다면, 내가 달라진 나의 몸으로 또 어떤 판본의 이야기들이 생길까 라는 기대가 좀 있고요. 젊은 시절에 글은 그 글대로의 어떤 싱싱함과 집중력 또, 탄력이 있었다면 여러 시간 긴 시간, 물론 제가 나이를 많이 먹은 건 아닌데요.

여러 개의 이야기들이 썰물 밀물처럼 제 몸을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약간 이렇게 청바지물 예쁘게 빠지듯이 적당히 자의식이 빠진 느낌도 들어요. 그게 줄 수 있는 소설의 미덕도 있을 거라 생각하고 창작자로서 걱정되는 부분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런 몸에 대한 기대, 변주에 대한 궁금함을 갖고 있습니다.

편집 : 김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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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달려라, 아비’ 김애란 작가 “엉뚱한 상상과 농담으로 만든 인물의 품위”
    • 입력 2021-08-29 21:39:05
    • 수정2021-08-29 21: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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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 소설가

'달려라 아비'란?

이 소설은 한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인데요. 특별히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해서 큰 결핍을 느끼지 않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리가 바뀌어있지만, 그 안에서 그 빈 자리를 농담과 건강함, 씩씩함으로 채우면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가 담겨있고요. 이 책(단편집 '달려라 아비') 전체적으로도 제 소설의 출발이자 씨앗인 모티브들이 많이 들어있는데요, 그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달려라 아비'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자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궁금해 하는 인물들을 제가 많이 썼는데요. 그게 결국 '자기 기원' 쓰기 혹은 '자기 신화' 다시 쓰기의 주제를 제가 반복해왔었어요. 그래서 여기서도 없는 대상에 대해 그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야기 주도권을 누가 갖고 있는가'라는 것에 대한 기쁨 혹은 실감을 가지고 썼던 단편들입니다.

Q. 주인공의 '상상'과 '연민하지 않는 법'이란?

단순히 현실이 아닌 곳으로 붕 떠올랐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다른 서사를 갖기 위해, 잠시 좀 먼 곳으로 갔다가 결국엔 땅에 현실에 다시 착지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상은 힘이 없는 상상이 아니라 조금은 슬픈 상상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또 동시에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만든 환상이라 힘이 있는 상상이라고도 생각해요.

때때로는 그 인물들이 덜 다치라고, 바로 중력 때문에 바로 현실로 낙하하거나 추락하면 아프니까요. 그럴 때 조금 덜 다치라고, 제가 바닥에 깔아줬던 쿠션이 농담이나 환상이기도 했어요.

'자기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 중요한 키워드로 나오는데요. 그렇게 쓰고 싶었고 그런 인물이길 바랐지만 사실은 어려운 일 같아요. 그리고 저도, 또 다른 분들도 어떤 대상이나 사람을 볼 때 지레 판단하거나 판정하거나 동정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제가 대단히 신선한 작품을 쓰지는 못해도 좀 그렇게 타성으로 바라보는 시선 혹은 묘사는 피하고 싶다고 노력하고요. 그럴 때 제가 쓸 수 있는 방식이 이런 인물들의 시선, 태도의 고유함 혹은 개성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단편 속 인물의 개성 중 하나가 바로 말씀해주신 자기를 연민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작가가 뽑은 '달려라 아비'의 한 문장

"나는 내가 얼굴 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이 소설 속 화자의 태도를 압축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혹은 이 화자가 대상을 사랑하는 방식, 혹은 단순한 사랑을 넘어 품위를 부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이 문장을 뽑았습니다.

Q. 21세기의 풍속화가…'김애란 소설'의 매력

윤지관 / 덕성여대 영문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젊은 세대들의 삶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어요. 본인도 경험했고...그런 현실을 그려내면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공감대도 넓었고. 그런 점에서 저는 김애란 작가는 2000년대 우리 삶의 풍속화랄까 그런 것을 그려낸 작가다.

풍속화로 치면 김홍도의 풍속화 같은 그런 느낌도 좀 주고 또 작가로 친다면 김유정 같은, 물론 다루는 대상은 다르지만 그런 어떤 유머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삶에 대한 애환을 통찰해내는, 또 아이러니를 집어내는 그런 역량을 갖춘 그런 작가가 아닌가 이렇게 평가합니다.

Q. 22살에 등단…20주년을 앞둔 '젊은 작가'의 미래는?

여러 작품들을 쓰면서 인물들과 더불어 저도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도 들고, 때때로 같이 성장했다는 느낌도 드는데요.

글이라는 게 결국 그 사람 몸을 통과해서 나오는 거니까요. 그 몸이 어떤 몸이냐에 따라서 같은 소재같은 주제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 쓸 작품에 대한 기대가 만약 있다면, 내가 달라진 나의 몸으로 또 어떤 판본의 이야기들이 생길까 라는 기대가 좀 있고요. 젊은 시절에 글은 그 글대로의 어떤 싱싱함과 집중력 또, 탄력이 있었다면 여러 시간 긴 시간, 물론 제가 나이를 많이 먹은 건 아닌데요.

여러 개의 이야기들이 썰물 밀물처럼 제 몸을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약간 이렇게 청바지물 예쁘게 빠지듯이 적당히 자의식이 빠진 느낌도 들어요. 그게 줄 수 있는 소설의 미덕도 있을 거라 생각하고 창작자로서 걱정되는 부분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런 몸에 대한 기대, 변주에 대한 궁금함을 갖고 있습니다.

편집 : 김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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