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외면하지 않을 용기…김숨 ‘한 명’

입력 2021.07.25 (21:33) 수정 2021.07.25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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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한 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해도 가공의 방식을 거칠 수밖에 없는 것이 문학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작가 김숨은 말 그대로 역사를 똑바로 응시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각종 자료집이나 방송 등에서 공개된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 여성들의 증언으로 소설의 뼈대를 삼고 있다는 점이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피해자 등록도 거부한 채 자신의 과거를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가 경험했던 고통과 상처들은 개인의 기억 안에 머물지 않게 된다. 소설 속에 빼곡하게 인용된 희생자들의 목소리는 고통스러운 과거의 일들을 되살리고 반복하면서 지금 우리의 현실로 그려낸다.

독자들로서는 <한 명>을 읽어가는 동안 필연적으로 여러 궁금증을 떨쳐낼 수 없게 된다. 직접적인 증언과 작가가 만들어 낸 이야기들이 어째서 구별 없이 하나로 되어 있는지, 그래서 어디까지를 소설로 봐야 하며 또 실제의 역사와는 또 어떻게 다른지……. 사전적 의미에서 소설과 같은 서사 양식은 실제 작가와 분리되어 있는 서술구조를 가지고 있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거나 또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작품을 읽을 때조차 앞선 질문과 같이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소설의 범주를 넘는 사고로 확장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명>을 통해 우리가 품게 되는 궁금증들은 소설의 가치를 묻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소설은 외부의 다른 존재나 가치들과 교류하는 대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내용적인 완결 여부와 상관없이 언제나 외부를 향해 열려 있는 구조를 말한다. 따라서 독백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은 작가의 서사 안으로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주체의 사유를 중심으로 해왔던 현대철학에 타자(他者)를 끌어들인 철학자 레비나스는 이처럼 타자와 만나고, 타자와 더불어 사고하면서, 나와 다른 타자의 질문에 응답할 의무를 느껴야만 하는 상황을 ‘윤리’라고 부른다. 이를 활용해서 말해보자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필연적으로 포함하게 되는 소설이야말로 ‘윤리적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에 인용한, 위안부 피해자 증언의 출처가 표기된 각주. 소설에는 이런 각주가 모두 316번 등장한다.작품에 인용한, 위안부 피해자 증언의 출처가 표기된 각주. 소설에는 이런 각주가 모두 316번 등장한다.
김숨의 <한 명>을 읽으면서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질문들이 결국 우리 내면의 윤리적 감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각주가 달린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소설 뒤편으로 돌아가 그 문장을 증언한 희생자들의 이름을 확인하게 되는 316번의 행위들이나, “고향 마을 강에서 다슬기를 잡”(27쪽)다가 난데없이 끌려간 주인공이 70년도 더 지난 세월 동안 여전히 손 안에서 생생하게 느끼고 있는 ‘다슬기’의 감각을 고스란히 건네받는 등 <한 명>을 읽는 모든 순간들은 우리에게 윤리적 질문을 촉발시킨다.

놀라운 것은 “혹여나 신이 볼까봐 남의 집 마당에 떨어진 모과 한 알 몰래 줍지 않”고 “신이 들을까봐 속말로라도 다른 이에게 저주를 퍼붓지 않는”(56쪽) 주인공의 모습이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로 시간적 배경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 회상 속 과거의 시간 속에서 주인공은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폭력 앞에 노출된 존재이다. 그 고통의 기억을 생생하게 마주하고 있는 주인공은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이웃의 강아지나 동네를 떠도는 주인 없는 고양이, 심지어는 재개발을 앞두고 아무도 살지 않는 동네의 빈집에 이르기까지 작고 연약한 것들에 언제나 시선을 집중한다. 당시에는 물론이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책임과 보상은 차치하고서라도 윤리적 고려의 대상조차 되어보지 못했던 주인공-희생자는 이같은 행동을 통해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회복한다.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 여성들이 과거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는 동안 우리는 어째서 그렇게나 무감각할 수 있었던 것일까. 최대한의 이윤을 예측하고 또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경제적 행위 속에서 과거의 시간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도래할 이익을 위해서라면 역사적 사건조차 얼마든지 대차대조표 속의 항목으로 처리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사실 희생자들의 고통을 외면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양파망에 넣어지는 순간 새끼 고양이는 늙은이의 것이 되었다.
밭 매다가, 목화 따다가, 물동이 이고 동네 우물가에 물 길러 갔다가, 냇가에서 빨래해 오다가, 학교에 가다가 집에서 아버지 병간호 하다가 억지로 끌려온 소녀들이 하하나 옥상이나 오바상이나 오토상이라고 부르던 일본인 업주의 것이 되었듯.
맨 처음에 인간은 땅도 그런 식으로 차지했을까? 밤나무나 감나무 같은 나무들도? 개나 염소나 돼지 같은 가축도?”(<한 명>77~78쪽. 실제 작품에는 이 인용된 단락 안에 6개의 각주가 달려있다.)

인용된 소설의 한 부분은 작가의 문제의식이 가장 날카롭게 담겨 있는 부분이다. 윤리적 질문과 더불어 <한 명>은 전쟁과 위안부 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소녀들”의 일상이 한 순간에 파괴된 이유는 이익을 추구하고자 했던 “일본인 업주”의 계산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식민의 경험과 이후 한‧일간의 역사적 전개 속에서 위안부 문제 역시 이와 같은 ‘계산’으로만 다루어져 왔다는, 감추고 싶었던 진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한 명’은 어떤 방식의 계산으로도 처리되는 것이 불가능한 윤리적 가능성의 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목이 왔다’(258쪽)는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작가에게 ‘한 명’은 이 작품을 쓰게 만든 필연적인 계기이다. 우리가 윤리적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한 명’이 된다면 위안부 희생자들의 고통과 기억을 이어받아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남승원/ 문학평론가·서울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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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평] 외면하지 않을 용기…김숨 ‘한 명’
    • 입력 2021-07-25 21:33:47
    • 수정2021-07-25 21:34:08
    취재K

김숨의 <한 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해도 가공의 방식을 거칠 수밖에 없는 것이 문학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작가 김숨은 말 그대로 역사를 똑바로 응시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각종 자료집이나 방송 등에서 공개된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 여성들의 증언으로 소설의 뼈대를 삼고 있다는 점이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피해자 등록도 거부한 채 자신의 과거를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가 경험했던 고통과 상처들은 개인의 기억 안에 머물지 않게 된다. 소설 속에 빼곡하게 인용된 희생자들의 목소리는 고통스러운 과거의 일들을 되살리고 반복하면서 지금 우리의 현실로 그려낸다.

독자들로서는 <한 명>을 읽어가는 동안 필연적으로 여러 궁금증을 떨쳐낼 수 없게 된다. 직접적인 증언과 작가가 만들어 낸 이야기들이 어째서 구별 없이 하나로 되어 있는지, 그래서 어디까지를 소설로 봐야 하며 또 실제의 역사와는 또 어떻게 다른지……. 사전적 의미에서 소설과 같은 서사 양식은 실제 작가와 분리되어 있는 서술구조를 가지고 있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거나 또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작품을 읽을 때조차 앞선 질문과 같이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소설의 범주를 넘는 사고로 확장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명>을 통해 우리가 품게 되는 궁금증들은 소설의 가치를 묻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소설은 외부의 다른 존재나 가치들과 교류하는 대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내용적인 완결 여부와 상관없이 언제나 외부를 향해 열려 있는 구조를 말한다. 따라서 독백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은 작가의 서사 안으로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주체의 사유를 중심으로 해왔던 현대철학에 타자(他者)를 끌어들인 철학자 레비나스는 이처럼 타자와 만나고, 타자와 더불어 사고하면서, 나와 다른 타자의 질문에 응답할 의무를 느껴야만 하는 상황을 ‘윤리’라고 부른다. 이를 활용해서 말해보자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필연적으로 포함하게 되는 소설이야말로 ‘윤리적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에 인용한, 위안부 피해자 증언의 출처가 표기된 각주. 소설에는 이런 각주가 모두 316번 등장한다.김숨의 <한 명>을 읽으면서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질문들이 결국 우리 내면의 윤리적 감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각주가 달린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소설 뒤편으로 돌아가 그 문장을 증언한 희생자들의 이름을 확인하게 되는 316번의 행위들이나, “고향 마을 강에서 다슬기를 잡”(27쪽)다가 난데없이 끌려간 주인공이 70년도 더 지난 세월 동안 여전히 손 안에서 생생하게 느끼고 있는 ‘다슬기’의 감각을 고스란히 건네받는 등 <한 명>을 읽는 모든 순간들은 우리에게 윤리적 질문을 촉발시킨다.

놀라운 것은 “혹여나 신이 볼까봐 남의 집 마당에 떨어진 모과 한 알 몰래 줍지 않”고 “신이 들을까봐 속말로라도 다른 이에게 저주를 퍼붓지 않는”(56쪽) 주인공의 모습이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로 시간적 배경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 회상 속 과거의 시간 속에서 주인공은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폭력 앞에 노출된 존재이다. 그 고통의 기억을 생생하게 마주하고 있는 주인공은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이웃의 강아지나 동네를 떠도는 주인 없는 고양이, 심지어는 재개발을 앞두고 아무도 살지 않는 동네의 빈집에 이르기까지 작고 연약한 것들에 언제나 시선을 집중한다. 당시에는 물론이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책임과 보상은 차치하고서라도 윤리적 고려의 대상조차 되어보지 못했던 주인공-희생자는 이같은 행동을 통해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회복한다.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 여성들이 과거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는 동안 우리는 어째서 그렇게나 무감각할 수 있었던 것일까. 최대한의 이윤을 예측하고 또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경제적 행위 속에서 과거의 시간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도래할 이익을 위해서라면 역사적 사건조차 얼마든지 대차대조표 속의 항목으로 처리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사실 희생자들의 고통을 외면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양파망에 넣어지는 순간 새끼 고양이는 늙은이의 것이 되었다.
밭 매다가, 목화 따다가, 물동이 이고 동네 우물가에 물 길러 갔다가, 냇가에서 빨래해 오다가, 학교에 가다가 집에서 아버지 병간호 하다가 억지로 끌려온 소녀들이 하하나 옥상이나 오바상이나 오토상이라고 부르던 일본인 업주의 것이 되었듯.
맨 처음에 인간은 땅도 그런 식으로 차지했을까? 밤나무나 감나무 같은 나무들도? 개나 염소나 돼지 같은 가축도?”(<한 명>77~78쪽. 실제 작품에는 이 인용된 단락 안에 6개의 각주가 달려있다.)

인용된 소설의 한 부분은 작가의 문제의식이 가장 날카롭게 담겨 있는 부분이다. 윤리적 질문과 더불어 <한 명>은 전쟁과 위안부 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소녀들”의 일상이 한 순간에 파괴된 이유는 이익을 추구하고자 했던 “일본인 업주”의 계산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식민의 경험과 이후 한‧일간의 역사적 전개 속에서 위안부 문제 역시 이와 같은 ‘계산’으로만 다루어져 왔다는, 감추고 싶었던 진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한 명’은 어떤 방식의 계산으로도 처리되는 것이 불가능한 윤리적 가능성의 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목이 왔다’(258쪽)는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작가에게 ‘한 명’은 이 작품을 쓰게 만든 필연적인 계기이다. 우리가 윤리적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한 명’이 된다면 위안부 희생자들의 고통과 기억을 이어받아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남승원/ 문학평론가·서울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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