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발열 없이 아팠던 전염병 시국 속 여성들 - 최은미 ‘여기 우리 마주’

입력 2021.09.12 (21:33) 수정 2021.09.1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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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여기 우리 마주>는 십대 딸을 키우는 자영업자 기혼 여성의 시선으로 'COVID-19'의 유행과 'N번 방'의 충격으로 공황 상태에 빠진 2020년의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묘파하는 작품이다.

소설의 화자 '나'는 비누와 캔들을 만드는 홈 공방을 시작한 지 9년 만에 막 가게를 차려 독립한 참이다. '나'는 그간 가사와 공방 업무가 분리되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며 무엇 하나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분열 감각에 시달려왔다. 집이 오직 휴식의 공간일 수 있는 남편은 "집에 와도 쉬는 기분이 안 들어"라며 불평불만을 표하고, 전문성 있는 강사로 인정받으려면 "깨끗하고 멀쩡하게, 주부로서의 노동만을 선별해서 지워" 버려야 했기에 개업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그러나 전염병이 대유행하면서 공방 경영은 곧바로 위기를 맞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열세 살 딸의 일상이 전부 엄마의 책임으로 전가되며 '나'는 또다시 수렁에 빠지게 된다.


전염병과 N번방의 공포 속 안전을 희구하고자 하는 지당한 욕구는 그러나 더더욱 '나'를 옥죄어 온다. 어려운 상황에서 모두 힘을 합쳐 성실하고 모범적인 방역, 안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이미 성역할이 염연히 분할되어 있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책망의 화살은 여성만을 향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가정 학습 계획은 오직 학모의 휴대폰으로만 전송되어 오고,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들은 번화가를 배회하며 그 애에겐 "엄마도 포기한 아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했던 딸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며 점차 다 통제할 수 없는 사생활과 내면을 만들어 가는데, N번방이 버젓이 운영되는 세상에서 '나'는 CCTV로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허락 없인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불가능한 주문을 다그치며 하게 된다.

남편은 딸의 표정이 좋지 않은 날이면 모녀 갈등을 다룬 소설을 사오고 주방에 선풍기를 끌어다 주는 것으로 육아와 살림의 소임을 다하며 자신이 "굶기는 것도" 아니니 "다른 여자들처럼 그냥 좀 편하게 살면 안 돼?"냐며 '나'의 사기를 수시로 꺾는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차린 가게마저도 유지가 어려워진 상황, 일하는 엄마로서 내면화된 '나'의 만성화된 죄책감과 우울은 이 시국을 통과하며 서서히 임계점에 다다른다.

한 소설의 다른 한 축에는 친구 수미와 그의 딸 서하가 있다. '나'의 '워킹 맘' 동지인 수미는 운전과 승하차 지도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로 환영받는 학원의 여자 기사로 과중한 업무와 메마른 남편과의 관계에 지쳐 있는 또 한 명의 여성이다. 술에 취하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사는 건 어떤 기분이"냐며, "나처럼 엉망인 여자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거냐"며 묻는 수미는 아이들을 싣고 나르며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늘 선캡을 쓰고 다니는데, 그것은 자기주장이 강한 그의 딸 서하가 늘 과민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양순한 딸을 연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치 '나'가 강사가 되기 위해 주부 정체성을 삭제하고, 엄마가 되기 위해 노동자 정체성을 덜어내며 '나'의 딸 은채가 온라인 비디오 커뮤니티 프로필에 '주의할테니 자신을 욕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듯 나이를 막론하고 이 여성들은 '조심'과 '죄송'을 제2의 천성으로 여기며 '나'로 살기 위해 '나'를 지우는 모순적 상황에 스스로를 몰아세우게 된다.

그래도,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공방 운영을 포기하지 않고자 했다. '나'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안전하고 편안한 공방을 만들고자 했다. '나'는 여자친구의 선물을 만든다는 핑계로 자주 공방을 찾는 게이 커플이 위협을 느끼지 않고 다정한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는 것,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이 어딘가에서 아이와 격리되어 있지 않고 모임을 만들어 "숨쉴 곳을 찾아 어디라도 나와 있다는 것", 그곳이 바로 '나'의 공방이라는 사실에 안도감과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나'가 애써 가꿔 온 안전 공간 속 친밀감 나누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강력한 거리 두기 정책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동선 공개는 "살짝만 당겨도 죽는 집단과 제대로 당겨도 죽지 않는 집단"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공방에 모여 앉은 엄마들 사이 수미가 말한다. "우리가 취미질을 하던 여기가 확산의 진원지가 된다면, (……) 우린 아마 총살을 당할걸?"

그리고 수미의 예상은 불행히도 적중한다. 거리 두기 완화 정책이 시행될 기미를 보이던 5월의 황금 연휴,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카네이션 캔들 문의가 쇄도하며 공방이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을 무렵, 아이들의 등교 계획이 차례로 수립되며 학모들의 숨통이 트여갈 무렵, 가정의 다복한 안녕을 훼방 놓는다는 이들이 모인 이태원 클럽 발 대유행과 수미의 확진으로 소설은 갈등의 절정에 이른다. 맘 카페는 퀴어 커뮤니티를 욕하는 글들로 도배가 되고, '나'는 남성 커플에게 없는 여자친구의 안부를 물으며 그들이 만지고 간 비누에 소독약을 뿌린다. 정을 붙여온 엄마들의 사교 모임은 와해 된다.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다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수미는 결국 딸 앞에서 정신을 놓고 난동을 부리고, 온라인 수업 중 카메라를 켜지 않아 자주 꾸중을 듣곤 했던 그의 딸 서하는 오랜만에 카메라와 오디오를 켜 구조를 요청해온다. 이미 취약했던 공간은 더 취약한 상태에 빠진다. 같은 건물에 위치한 노래 주점과 건전 마사지숍과 대화 카페가 아니라 '나'의 공방이, 수미의 남편이 회식을 하는 B룸사롱이 아닌 수미의 딸 서하가 갇혀 지내고 있는 집이 피해를 입는다. 여성들, 퀴어들,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안전한 장소라 믿었던 공간들이 그렇게 결딴난다.


소설 중간에 서술된 '나'의 악몽 같은 삽화는 성차별 사회의 억압과 증오가 발현되는 매커니즘을 잘 보여준다. "물줄기가 터져 나오려는 호스의 입구를 한 손으로 틀어막고 한 여자가 서 있다. 다른 한 손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여자는 휘청거린다. 호스에 장전된 것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호스가 튕겨져나가버릴 테니까. 물줄기가 요동을 치면서 가장 가까운 곳을, 가장 약한 것을, 가장 사랑하는 것을 찌를 테니까. 머리 위에 찬물을 끼얹고 자신의 뺨을 내리치면서라도 이 분노를, 이것을, 정확한 곳으로 겨냥하려고, 제대로 가누려고, 겨누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어느 날은 그냥 호스를 놓쳐버린다"

엄마들과 엄마들, 엄마들과 딸들, 엄마들과 퀴어들 간의 적대. 그리고 어디에서도 '나' 자신으로서 온전히 존중하고 존대 받을 수 없어 "허공처럼 외로워"진 마음들. 소설은 결국 약자들이 서로를 겨누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성의 분할 통치는 분열을 초래하고, 안전을 추구한다는 구실로 정당화되는 분리주의 정책은 혐오를 재생산한다는 사실을 통렬히 보여준다. "발열 없이 계속 아팠"던 그해 봄의 여성들, 여기, 마주 앉은 자리에서도 고립되어갔던 우리들의 모습은 더이상은 지탱될 수 없는 가부장제의 당착을 맹렬히 증언하고 있다.

오은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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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12 21:33:13
    • 수정2021-09-13 09:43:57
    취재K
소설 <여기 우리 마주>는 십대 딸을 키우는 자영업자 기혼 여성의 시선으로 'COVID-19'의 유행과 'N번 방'의 충격으로 공황 상태에 빠진 2020년의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묘파하는 작품이다.

소설의 화자 '나'는 비누와 캔들을 만드는 홈 공방을 시작한 지 9년 만에 막 가게를 차려 독립한 참이다. '나'는 그간 가사와 공방 업무가 분리되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며 무엇 하나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분열 감각에 시달려왔다. 집이 오직 휴식의 공간일 수 있는 남편은 "집에 와도 쉬는 기분이 안 들어"라며 불평불만을 표하고, 전문성 있는 강사로 인정받으려면 "깨끗하고 멀쩡하게, 주부로서의 노동만을 선별해서 지워" 버려야 했기에 개업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그러나 전염병이 대유행하면서 공방 경영은 곧바로 위기를 맞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열세 살 딸의 일상이 전부 엄마의 책임으로 전가되며 '나'는 또다시 수렁에 빠지게 된다.


전염병과 N번방의 공포 속 안전을 희구하고자 하는 지당한 욕구는 그러나 더더욱 '나'를 옥죄어 온다. 어려운 상황에서 모두 힘을 합쳐 성실하고 모범적인 방역, 안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이미 성역할이 염연히 분할되어 있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책망의 화살은 여성만을 향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가정 학습 계획은 오직 학모의 휴대폰으로만 전송되어 오고,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들은 번화가를 배회하며 그 애에겐 "엄마도 포기한 아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했던 딸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며 점차 다 통제할 수 없는 사생활과 내면을 만들어 가는데, N번방이 버젓이 운영되는 세상에서 '나'는 CCTV로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허락 없인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불가능한 주문을 다그치며 하게 된다.

남편은 딸의 표정이 좋지 않은 날이면 모녀 갈등을 다룬 소설을 사오고 주방에 선풍기를 끌어다 주는 것으로 육아와 살림의 소임을 다하며 자신이 "굶기는 것도" 아니니 "다른 여자들처럼 그냥 좀 편하게 살면 안 돼?"냐며 '나'의 사기를 수시로 꺾는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차린 가게마저도 유지가 어려워진 상황, 일하는 엄마로서 내면화된 '나'의 만성화된 죄책감과 우울은 이 시국을 통과하며 서서히 임계점에 다다른다.

한 소설의 다른 한 축에는 친구 수미와 그의 딸 서하가 있다. '나'의 '워킹 맘' 동지인 수미는 운전과 승하차 지도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로 환영받는 학원의 여자 기사로 과중한 업무와 메마른 남편과의 관계에 지쳐 있는 또 한 명의 여성이다. 술에 취하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사는 건 어떤 기분이"냐며, "나처럼 엉망인 여자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거냐"며 묻는 수미는 아이들을 싣고 나르며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늘 선캡을 쓰고 다니는데, 그것은 자기주장이 강한 그의 딸 서하가 늘 과민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양순한 딸을 연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치 '나'가 강사가 되기 위해 주부 정체성을 삭제하고, 엄마가 되기 위해 노동자 정체성을 덜어내며 '나'의 딸 은채가 온라인 비디오 커뮤니티 프로필에 '주의할테니 자신을 욕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듯 나이를 막론하고 이 여성들은 '조심'과 '죄송'을 제2의 천성으로 여기며 '나'로 살기 위해 '나'를 지우는 모순적 상황에 스스로를 몰아세우게 된다.

그래도,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공방 운영을 포기하지 않고자 했다. '나'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안전하고 편안한 공방을 만들고자 했다. '나'는 여자친구의 선물을 만든다는 핑계로 자주 공방을 찾는 게이 커플이 위협을 느끼지 않고 다정한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는 것,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이 어딘가에서 아이와 격리되어 있지 않고 모임을 만들어 "숨쉴 곳을 찾아 어디라도 나와 있다는 것", 그곳이 바로 '나'의 공방이라는 사실에 안도감과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나'가 애써 가꿔 온 안전 공간 속 친밀감 나누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강력한 거리 두기 정책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동선 공개는 "살짝만 당겨도 죽는 집단과 제대로 당겨도 죽지 않는 집단"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공방에 모여 앉은 엄마들 사이 수미가 말한다. "우리가 취미질을 하던 여기가 확산의 진원지가 된다면, (……) 우린 아마 총살을 당할걸?"

그리고 수미의 예상은 불행히도 적중한다. 거리 두기 완화 정책이 시행될 기미를 보이던 5월의 황금 연휴,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카네이션 캔들 문의가 쇄도하며 공방이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을 무렵, 아이들의 등교 계획이 차례로 수립되며 학모들의 숨통이 트여갈 무렵, 가정의 다복한 안녕을 훼방 놓는다는 이들이 모인 이태원 클럽 발 대유행과 수미의 확진으로 소설은 갈등의 절정에 이른다. 맘 카페는 퀴어 커뮤니티를 욕하는 글들로 도배가 되고, '나'는 남성 커플에게 없는 여자친구의 안부를 물으며 그들이 만지고 간 비누에 소독약을 뿌린다. 정을 붙여온 엄마들의 사교 모임은 와해 된다.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다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수미는 결국 딸 앞에서 정신을 놓고 난동을 부리고, 온라인 수업 중 카메라를 켜지 않아 자주 꾸중을 듣곤 했던 그의 딸 서하는 오랜만에 카메라와 오디오를 켜 구조를 요청해온다. 이미 취약했던 공간은 더 취약한 상태에 빠진다. 같은 건물에 위치한 노래 주점과 건전 마사지숍과 대화 카페가 아니라 '나'의 공방이, 수미의 남편이 회식을 하는 B룸사롱이 아닌 수미의 딸 서하가 갇혀 지내고 있는 집이 피해를 입는다. 여성들, 퀴어들,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안전한 장소라 믿었던 공간들이 그렇게 결딴난다.


소설 중간에 서술된 '나'의 악몽 같은 삽화는 성차별 사회의 억압과 증오가 발현되는 매커니즘을 잘 보여준다. "물줄기가 터져 나오려는 호스의 입구를 한 손으로 틀어막고 한 여자가 서 있다. 다른 한 손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여자는 휘청거린다. 호스에 장전된 것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호스가 튕겨져나가버릴 테니까. 물줄기가 요동을 치면서 가장 가까운 곳을, 가장 약한 것을, 가장 사랑하는 것을 찌를 테니까. 머리 위에 찬물을 끼얹고 자신의 뺨을 내리치면서라도 이 분노를, 이것을, 정확한 곳으로 겨냥하려고, 제대로 가누려고, 겨누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어느 날은 그냥 호스를 놓쳐버린다"

엄마들과 엄마들, 엄마들과 딸들, 엄마들과 퀴어들 간의 적대. 그리고 어디에서도 '나' 자신으로서 온전히 존중하고 존대 받을 수 없어 "허공처럼 외로워"진 마음들. 소설은 결국 약자들이 서로를 겨누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성의 분할 통치는 분열을 초래하고, 안전을 추구한다는 구실로 정당화되는 분리주의 정책은 혐오를 재생산한다는 사실을 통렬히 보여준다. "발열 없이 계속 아팠"던 그해 봄의 여성들, 여기, 마주 앉은 자리에서도 고립되어갔던 우리들의 모습은 더이상은 지탱될 수 없는 가부장제의 당착을 맹렬히 증언하고 있다.

오은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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