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비평] 살아가며 찾는 이곳 너머의 ‘실재의 조각’들
입력 2021.10.10 (21:30) 수정 2021.10.10 (21:31) 취재K
살아가며 찾는 이곳 너머의 ‘실재의 조각’들
– <에세이스트의 책상>에 붙여

이 책은 화자가 M과의 만남을 정점으로 하여 그 앞뒤의 삶의 여정을 적어나간 기록이다. 따라가며 읽고 의미를 새기다 보면, 모호한 의미로 인해 개념화할 수는 없어 희미하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사랑하도록 추동하는 어떤 쉼 없는 사유와 만난다. 이 작품에서 이것은 언제나 음악을 매개로 표상된다.

단지 리스트를 작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기를 원할 때의 문법으로 ‘더 많은 음악’이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일까. 더욱더 음악적인 어떠한 것이나 (현재 음악을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해서 느끼는 더욱 깊은 갈증이나 단지 음악, 이라고 표현되는 단어가 내포하고 연상시키는 모든 의미들의 더한 증폭이나 명확히 경계 짓지 못하는 저 먼 지평선의 영역의 모호함까지도 포괄하는 것일까. 더 많은 음악, 그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 목소리에서 두 개의 베토벤 협주곡의 차이를 연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반적인 생각대로라면 음악을 내게 더 많이, 라고 말하는 편이 적절할지도 몰랐다. 더 많은 죽음이거나 더 많은 알몸(나체의 개체 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더 많은 (단 한 명인) 최초의 인간, 더 많은 우주, 더 많은 음악의 영혼, 더 많은 유일한 것, 더 많은 더 멀리 그쪽으로, 더 많은 멘델스존, 저 많은 M, 그리고 더 많은 그 겨울. (10쪽)

음악은 언어로 인해 ‘죽어간’ 혹은 억압된 특유의 차원을 표현한다. 책과 언어가 말의 한계와 기만성을 인지하도록 해 준다면, 음악은 ‘더 많이’, ‘더 깊이’ 말하며, ‘접근할 수 없는 정신이자 종교이고 영혼 그 자체’(8쪽)의 영역이다. 따라서 그것은 언어가 다가가지 못한 저 너머의 세계 혹은 인간의 편협한 문명화 과정에서 억압된 인간과 세계의 전존재론적 위상의 발견과 관계된다. “비에 젖은,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무거운 공기가, 바람에 따라 너울거리는 공기가, 그늘에 감긴 듯한 저녁의 침울한 색이, 흙과 물과 공기와 색이, 제각기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는 그들, 각자 다른 언어를 가진 그들 사이에서”(11쪽) 음악가가 어떤 화음을 발견하듯이 세계를 제어하는 계몽적 가치나 이데올로기라는 누빔점을 내던졌을 때, 즉 그 시스템의 상투성에서 벗어날 때, 우리가 조우하는 것은 ‘무한한’ 그러나 ‘불안한’ 자유의 영역. 나름의 언어로 분망히 떠도는 개별적인 표상들의 영역이다.


이런 벗어남과 만남이야말로 이 작품의 전체를 통어하는 주제이다. 상블랑의 세계, 그 사회적 의례와 규범과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났을 때 우리는 ‘세계의 밤’의 이름 없는 의미와 표상들의 영역, 무질서하지만 그리하여 이름 없이 던져져 있으나 순수한 표상들의 세계와 만난다. 공동체의 의미망에서 벗어나는 삶이란 불안과 사회적 죽음의 공포에 언제나 접해 있어 “나는 때때로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깊은 감정이란 우리 인생에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17쪽)고 하지만,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탐사하여 참을만한 것으로 인지하는 생활, 이것이 삶을 오히려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지 않는가. 그리하여 ‘순수한 자기’로 출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탈구되어’ 벗어나야 했고 ‘독일들’로 가야 했다. “천오백 킬로미터 이상을 기차를 타고 여행했으나, 정작 원했던 것은 기껏해야 자신으로부터 달아나는 정도였”(27쪽)다거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무거운 짐을 지고 더 무거움 마음을 안고 밤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났으나 결국은 자신에게서조차 벗어나지도 못했”(28쪽)다는 고백은 이러한 고투의 흔적이다. 혼자 살아가는 어두운 세계에 나름의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 음식, 책, 산책,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주체의 사유, 그 철학적 주제가 이 작품에서 감각적 언어로 그 형상을 얻게 된 것은 값진 일이다. 그리하여 불안하지만 아름답다.

“한 문장을 읽은 다음에 창밖을 바라보고 음악을 듣다가 턱을 괴고 식은 커피를 버리고 다시 커피를 만들고 새로운 것이 없는 냉장고 안을 살펴보고 다시 한 문장을 읽은 다음에 창밖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3악장이 시작된다.” (117쪽) 주인공의 일상적 삶의 가장 전형적인 묘사이다. 정서적 뿌리 뽑힘, 순수한 발화 주체. 세계의 밤을 떠도는, 아프리오리한 인식의 틀을 벗어버린, 자유로운 그러나 공포에 빠진 존재. 상징적 질서인 ‘큰 타자’ 속에서 삶의 지탱물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로 그것에서 벗어나 정신증적 격리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 혼돈 속에서 하나의 보편적 진리를 캐내려는 그 노력은 M과의 만남으로 결실을 맺는다. “나는 사람들과 대화에 끼어들기는 무리였으므로 가능하면 자연스럽게 말없이 있기 위해서 식탁 가장자리를 맴돌고 있었고 M은 그런 나를 혼자 두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는 주방의 희미한 불빛 아래 문득 서로의 팔을 잡고 서 있었다. 그때 나는 M을 만나게 된 것이, 나에게 M이 이 세상의 그 누구와도 다르다는 것이, M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희열의 순간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 그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벅차올라서 M의 손등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M이 다른 손으로 내 손을 강하게 잡았다. 내 얼굴이 붉어지고 갑자기 미래의 시간이 강하게 떠올랐다. 나는 아마도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가게 되리라.” (135쪽) 세상과의 이 작은 연결이 감동을 준다. 이것이 사랑의 시작이지만 혼돈 속에서 새롭게 찾은 보편적 가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M과 이별한다. 환영처럼 조우했던 M, 마치 ‘그림이 전혀 없는 책과 같은’ M과의 금빛 만남은 이제 다시 경험하지 못할 저 너머의 지평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그의 끊임없는 사유와 행보의 동력이 된다. “혹은 내가 그해 겨울 어느 장소에서 이 글의 일부분을 쓰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M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M에게 무엇인가를 쓸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내 책상은 그것이 어디에 있든 지상에서 가장 빛나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의 의미도 이제 이해되고 에세이스트의 ‘책상’의 의미도 알 것 같다.

서경석/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 [비평] 살아가며 찾는 이곳 너머의 ‘실재의 조각’들
    • 입력 2021-10-10 21:30:51
    • 수정2021-10-10 21:31:38
    취재K
살아가며 찾는 이곳 너머의 ‘실재의 조각’들
– <에세이스트의 책상>에 붙여

이 책은 화자가 M과의 만남을 정점으로 하여 그 앞뒤의 삶의 여정을 적어나간 기록이다. 따라가며 읽고 의미를 새기다 보면, 모호한 의미로 인해 개념화할 수는 없어 희미하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사랑하도록 추동하는 어떤 쉼 없는 사유와 만난다. 이 작품에서 이것은 언제나 음악을 매개로 표상된다.

단지 리스트를 작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기를 원할 때의 문법으로 ‘더 많은 음악’이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일까. 더욱더 음악적인 어떠한 것이나 (현재 음악을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해서 느끼는 더욱 깊은 갈증이나 단지 음악, 이라고 표현되는 단어가 내포하고 연상시키는 모든 의미들의 더한 증폭이나 명확히 경계 짓지 못하는 저 먼 지평선의 영역의 모호함까지도 포괄하는 것일까. 더 많은 음악, 그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 목소리에서 두 개의 베토벤 협주곡의 차이를 연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반적인 생각대로라면 음악을 내게 더 많이, 라고 말하는 편이 적절할지도 몰랐다. 더 많은 죽음이거나 더 많은 알몸(나체의 개체 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더 많은 (단 한 명인) 최초의 인간, 더 많은 우주, 더 많은 음악의 영혼, 더 많은 유일한 것, 더 많은 더 멀리 그쪽으로, 더 많은 멘델스존, 저 많은 M, 그리고 더 많은 그 겨울. (10쪽)

음악은 언어로 인해 ‘죽어간’ 혹은 억압된 특유의 차원을 표현한다. 책과 언어가 말의 한계와 기만성을 인지하도록 해 준다면, 음악은 ‘더 많이’, ‘더 깊이’ 말하며, ‘접근할 수 없는 정신이자 종교이고 영혼 그 자체’(8쪽)의 영역이다. 따라서 그것은 언어가 다가가지 못한 저 너머의 세계 혹은 인간의 편협한 문명화 과정에서 억압된 인간과 세계의 전존재론적 위상의 발견과 관계된다. “비에 젖은,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무거운 공기가, 바람에 따라 너울거리는 공기가, 그늘에 감긴 듯한 저녁의 침울한 색이, 흙과 물과 공기와 색이, 제각기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는 그들, 각자 다른 언어를 가진 그들 사이에서”(11쪽) 음악가가 어떤 화음을 발견하듯이 세계를 제어하는 계몽적 가치나 이데올로기라는 누빔점을 내던졌을 때, 즉 그 시스템의 상투성에서 벗어날 때, 우리가 조우하는 것은 ‘무한한’ 그러나 ‘불안한’ 자유의 영역. 나름의 언어로 분망히 떠도는 개별적인 표상들의 영역이다.


이런 벗어남과 만남이야말로 이 작품의 전체를 통어하는 주제이다. 상블랑의 세계, 그 사회적 의례와 규범과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났을 때 우리는 ‘세계의 밤’의 이름 없는 의미와 표상들의 영역, 무질서하지만 그리하여 이름 없이 던져져 있으나 순수한 표상들의 세계와 만난다. 공동체의 의미망에서 벗어나는 삶이란 불안과 사회적 죽음의 공포에 언제나 접해 있어 “나는 때때로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깊은 감정이란 우리 인생에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17쪽)고 하지만,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탐사하여 참을만한 것으로 인지하는 생활, 이것이 삶을 오히려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지 않는가. 그리하여 ‘순수한 자기’로 출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탈구되어’ 벗어나야 했고 ‘독일들’로 가야 했다. “천오백 킬로미터 이상을 기차를 타고 여행했으나, 정작 원했던 것은 기껏해야 자신으로부터 달아나는 정도였”(27쪽)다거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무거운 짐을 지고 더 무거움 마음을 안고 밤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났으나 결국은 자신에게서조차 벗어나지도 못했”(28쪽)다는 고백은 이러한 고투의 흔적이다. 혼자 살아가는 어두운 세계에 나름의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 음식, 책, 산책,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주체의 사유, 그 철학적 주제가 이 작품에서 감각적 언어로 그 형상을 얻게 된 것은 값진 일이다. 그리하여 불안하지만 아름답다.

“한 문장을 읽은 다음에 창밖을 바라보고 음악을 듣다가 턱을 괴고 식은 커피를 버리고 다시 커피를 만들고 새로운 것이 없는 냉장고 안을 살펴보고 다시 한 문장을 읽은 다음에 창밖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3악장이 시작된다.” (117쪽) 주인공의 일상적 삶의 가장 전형적인 묘사이다. 정서적 뿌리 뽑힘, 순수한 발화 주체. 세계의 밤을 떠도는, 아프리오리한 인식의 틀을 벗어버린, 자유로운 그러나 공포에 빠진 존재. 상징적 질서인 ‘큰 타자’ 속에서 삶의 지탱물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로 그것에서 벗어나 정신증적 격리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 혼돈 속에서 하나의 보편적 진리를 캐내려는 그 노력은 M과의 만남으로 결실을 맺는다. “나는 사람들과 대화에 끼어들기는 무리였으므로 가능하면 자연스럽게 말없이 있기 위해서 식탁 가장자리를 맴돌고 있었고 M은 그런 나를 혼자 두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는 주방의 희미한 불빛 아래 문득 서로의 팔을 잡고 서 있었다. 그때 나는 M을 만나게 된 것이, 나에게 M이 이 세상의 그 누구와도 다르다는 것이, M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희열의 순간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 그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벅차올라서 M의 손등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M이 다른 손으로 내 손을 강하게 잡았다. 내 얼굴이 붉어지고 갑자기 미래의 시간이 강하게 떠올랐다. 나는 아마도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가게 되리라.” (135쪽) 세상과의 이 작은 연결이 감동을 준다. 이것이 사랑의 시작이지만 혼돈 속에서 새롭게 찾은 보편적 가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M과 이별한다. 환영처럼 조우했던 M, 마치 ‘그림이 전혀 없는 책과 같은’ M과의 금빛 만남은 이제 다시 경험하지 못할 저 너머의 지평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그의 끊임없는 사유와 행보의 동력이 된다. “혹은 내가 그해 겨울 어느 장소에서 이 글의 일부분을 쓰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M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M에게 무엇인가를 쓸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내 책상은 그것이 어디에 있든 지상에서 가장 빛나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의 의미도 이제 이해되고 에세이스트의 ‘책상’의 의미도 알 것 같다.

서경석/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