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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바보 교향악…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입력 2021.10.17 (21:31) 수정 2021.10.17 (21:31) 취재K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독자들은 이야기에 빨려든다. 소설가 성석제는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소설은 소리의 교향악이다. 시집을 두 권이나 펴낸 시인이기도 한 그가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라는 책으로 소설가로 변신을 시작했을 때, 그의 작품이 소설인지 수필인지 아니면 그냥 엉뚱한 한담인지 어리둥절한 독자들이 많았다. 성석제의 소설은 한국 현대소설에서 오래 굳어진 관습이었던 글쓰기의 묵계를 깨고 소설을 말하기로 돌려세웠다. 글쓰기가 객관성과 정확성을 목표로 삼았다면 말하기는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이 우선이다. 삶의 현장에서 주고 받는 다양한 소리들이 적절하게 조율되고 연주된다.

성석제의 대표작이자 한국소설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꼽히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바보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에 바보 이야기는 많다. 바보 이야기가 많은 것은 세상에 바보가 많아서라기보다 사람들이 바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서다. 사람들은 바보를 발견하고 그를 우스갯감으로 삼아 놀리면서 즐거워한다. 그 즐거움은 자신이 그 바보보다 낫다는 우월감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놀리는 바보가 사실은 바보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보 이야기는 흔히 알고 보니 바보는 바보가 아니었다는 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바보들은 변변한 직업이라고 할만한 게 없어 대개는 빈둥거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황만근은 보기 드물게 바쁘다. 그는 동네의 온갖 더러운 일, 힘든 일을 도맡아 한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동네 사람들에게 사람 대접을 제대로 받지도 못한다. 심지어 식구들에게서도 바보 취급을 당한다. 사계절 내내 방 밖에서 웅크려 잠자고 자신의 늙은 홀어머니와 엄마 없이 자라는 외아들에게 날마다 밥을 해 먹이지만 자신은 밥상에 앉지도 못하고 막걸리로 끼니를 때운다.


이 소설의 무대인 신대리 사람들이 모두 황만근을 바보라 여기지만 도시에서 살다가 귀촌한 민 씨가 보기에 황만근은 전혀 바보가 아니다. 아무런 재산도 없는 데다가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면서 오로지 노동력으로만 살고 있기 때문에 멸시를 받지만, 농사꾼으로서의 그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빚을 내서 비싼 농기구를 사도 황만근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농사꾼이 빚을 내서 농사를 지어선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그는 대자연의 순환에 따라 정직하게 농사짓고 사는 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그를 신대리 마을 사람들이나 심지어 자신의 아들까지도 무시한다. 마을 사람 어느 누구도 몰 수 없는 오래된 경운기를 고쳐가며 몰 수 있는 건 황만근뿐이다. 그는 경운기를 고치는 기술도 있고, 동네 백정 일도 도맡아 하며, 요리 솜씨도 능숙하다. 게다가 동네 사람들이 꺼리는 시체 염습까지 한다. 동네의 일이나 남의 일, 궂은일에 모두 황만근 없이는 되는 일이 없다. 그는 동네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에게 감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 같은 바보는 인정 없는 읍내 같은 대처에서라면 진작에 굶어 죽었을 거라고 하면서 고마워하라고 윽박지른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 황만근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은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다. 젊어서 홀로 된 뒤 아들 황만근에게 밥을 받아먹으며 무위도식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황당하다. 이 황당함을 수습하는 소설 속 장치는 술이다. 황만근을 바보로 만드는 것도 술이고 황만근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도 술이다. 소설에서 “힘의 근원이자 낙천의 뼈였다”고 한 것은 반쯤은 농담이고 반쯤은 진실이다. 한국전쟁 후에 흘러온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서 만든 마을이기 때문에 이름이 신대리가 되었다는 소설의 무대 설정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황만근만 빼고는 어쩌면 이렇게까지 제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만 모였나 싶은 이 마을은 현재 우리 사회와 많이 닮아 있다.

해학적인 문체로 그려진 황만근의 삶이 찬 비 맞고 얼어 죽는 객사로 끝나는 것은 슬프다. 희극이 비극으로 끝날 때 우리는 그 돌연한 변화에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을 갈무리하는 마지막 악장은 묘비명이다. 이 묘비명의 문투는 고풍창연하다. 옛날의 선비들이나 쓸법한 한자어의 어투는 한편으로는 무겁기 그지없다. 하지만 황만근이 살았던 신대리 사람들이 들었더라면 배를 잡고 웃었을지도 모를만큼 과장이 심하고 익살스럽다. 가령 황만근의 최후를 그리는 문장을 보자. “선생은 경운기에 실려 있는 땅의 젖에 취하여 경운기 옆에 앉아 경운기를 지켰다. 그러나 경운기는 선생을 지켜주지 않았다”는 문장이 그러하다. 바보 같고 아기 같은 황만근이 밥은 먹지 않고 항용 막걸리를 마시는데 색깔도 희뿌옇고 하니 ‘젖’이라고 부를만하다. 하지만 “경운기는 선생을 지켜주지 않았다”는 문장은 웃음을 유발하면서 돌연한 관점 변화를 가져온다. 황만근은 신대리 사람들이나 가족을 위해 온갖 더럽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정작 그가 힘들 때 그의 옆에 아무도 같이 있어 주지 않았다. 어쩌면 옆에 있었더라도 경운기처럼, 지켜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인류사에서 위대한 인물들은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바보들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호되게 뺨을 맞고 나서 다른 쪽 뺨도 때려달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미쳤다거나 바보라고 놀림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 왕자의 지위마저 버리고 수도승이 된 석가의 행위도 세상 사람들은 바보짓이라고 할 만하다. 전태일도 자신을 바보라 부르고 바보회를 만들었다. 이 소설에서 신대리 사람들은 황만근을 모두 바보라 불렀지만, 독자들은 오히려 신대리 사람들이야말로 바보라는 걸 소설 마지막에 가서 알게 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똑똑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지만, 사실은 바보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말을 하기 위해 작가는 그토록 무거운 묘비명을 써놓은 것이 아닐까.

이영준 문학평론가·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비평] 바보 교향악…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입력 2021-10-17 21:31:22
    • 수정2021-10-17 21:31:50
    취재K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독자들은 이야기에 빨려든다. 소설가 성석제는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소설은 소리의 교향악이다. 시집을 두 권이나 펴낸 시인이기도 한 그가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라는 책으로 소설가로 변신을 시작했을 때, 그의 작품이 소설인지 수필인지 아니면 그냥 엉뚱한 한담인지 어리둥절한 독자들이 많았다. 성석제의 소설은 한국 현대소설에서 오래 굳어진 관습이었던 글쓰기의 묵계를 깨고 소설을 말하기로 돌려세웠다. 글쓰기가 객관성과 정확성을 목표로 삼았다면 말하기는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이 우선이다. 삶의 현장에서 주고 받는 다양한 소리들이 적절하게 조율되고 연주된다.

성석제의 대표작이자 한국소설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꼽히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바보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에 바보 이야기는 많다. 바보 이야기가 많은 것은 세상에 바보가 많아서라기보다 사람들이 바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서다. 사람들은 바보를 발견하고 그를 우스갯감으로 삼아 놀리면서 즐거워한다. 그 즐거움은 자신이 그 바보보다 낫다는 우월감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놀리는 바보가 사실은 바보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보 이야기는 흔히 알고 보니 바보는 바보가 아니었다는 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바보들은 변변한 직업이라고 할만한 게 없어 대개는 빈둥거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황만근은 보기 드물게 바쁘다. 그는 동네의 온갖 더러운 일, 힘든 일을 도맡아 한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동네 사람들에게 사람 대접을 제대로 받지도 못한다. 심지어 식구들에게서도 바보 취급을 당한다. 사계절 내내 방 밖에서 웅크려 잠자고 자신의 늙은 홀어머니와 엄마 없이 자라는 외아들에게 날마다 밥을 해 먹이지만 자신은 밥상에 앉지도 못하고 막걸리로 끼니를 때운다.


이 소설의 무대인 신대리 사람들이 모두 황만근을 바보라 여기지만 도시에서 살다가 귀촌한 민 씨가 보기에 황만근은 전혀 바보가 아니다. 아무런 재산도 없는 데다가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면서 오로지 노동력으로만 살고 있기 때문에 멸시를 받지만, 농사꾼으로서의 그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빚을 내서 비싼 농기구를 사도 황만근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농사꾼이 빚을 내서 농사를 지어선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그는 대자연의 순환에 따라 정직하게 농사짓고 사는 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그를 신대리 마을 사람들이나 심지어 자신의 아들까지도 무시한다. 마을 사람 어느 누구도 몰 수 없는 오래된 경운기를 고쳐가며 몰 수 있는 건 황만근뿐이다. 그는 경운기를 고치는 기술도 있고, 동네 백정 일도 도맡아 하며, 요리 솜씨도 능숙하다. 게다가 동네 사람들이 꺼리는 시체 염습까지 한다. 동네의 일이나 남의 일, 궂은일에 모두 황만근 없이는 되는 일이 없다. 그는 동네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에게 감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 같은 바보는 인정 없는 읍내 같은 대처에서라면 진작에 굶어 죽었을 거라고 하면서 고마워하라고 윽박지른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 황만근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은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다. 젊어서 홀로 된 뒤 아들 황만근에게 밥을 받아먹으며 무위도식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황당하다. 이 황당함을 수습하는 소설 속 장치는 술이다. 황만근을 바보로 만드는 것도 술이고 황만근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도 술이다. 소설에서 “힘의 근원이자 낙천의 뼈였다”고 한 것은 반쯤은 농담이고 반쯤은 진실이다. 한국전쟁 후에 흘러온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서 만든 마을이기 때문에 이름이 신대리가 되었다는 소설의 무대 설정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황만근만 빼고는 어쩌면 이렇게까지 제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만 모였나 싶은 이 마을은 현재 우리 사회와 많이 닮아 있다.

해학적인 문체로 그려진 황만근의 삶이 찬 비 맞고 얼어 죽는 객사로 끝나는 것은 슬프다. 희극이 비극으로 끝날 때 우리는 그 돌연한 변화에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을 갈무리하는 마지막 악장은 묘비명이다. 이 묘비명의 문투는 고풍창연하다. 옛날의 선비들이나 쓸법한 한자어의 어투는 한편으로는 무겁기 그지없다. 하지만 황만근이 살았던 신대리 사람들이 들었더라면 배를 잡고 웃었을지도 모를만큼 과장이 심하고 익살스럽다. 가령 황만근의 최후를 그리는 문장을 보자. “선생은 경운기에 실려 있는 땅의 젖에 취하여 경운기 옆에 앉아 경운기를 지켰다. 그러나 경운기는 선생을 지켜주지 않았다”는 문장이 그러하다. 바보 같고 아기 같은 황만근이 밥은 먹지 않고 항용 막걸리를 마시는데 색깔도 희뿌옇고 하니 ‘젖’이라고 부를만하다. 하지만 “경운기는 선생을 지켜주지 않았다”는 문장은 웃음을 유발하면서 돌연한 관점 변화를 가져온다. 황만근은 신대리 사람들이나 가족을 위해 온갖 더럽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정작 그가 힘들 때 그의 옆에 아무도 같이 있어 주지 않았다. 어쩌면 옆에 있었더라도 경운기처럼, 지켜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인류사에서 위대한 인물들은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바보들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호되게 뺨을 맞고 나서 다른 쪽 뺨도 때려달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미쳤다거나 바보라고 놀림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 왕자의 지위마저 버리고 수도승이 된 석가의 행위도 세상 사람들은 바보짓이라고 할 만하다. 전태일도 자신을 바보라 부르고 바보회를 만들었다. 이 소설에서 신대리 사람들은 황만근을 모두 바보라 불렀지만, 독자들은 오히려 신대리 사람들이야말로 바보라는 걸 소설 마지막에 가서 알게 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똑똑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지만, 사실은 바보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말을 하기 위해 작가는 그토록 무거운 묘비명을 써놓은 것이 아닐까.

이영준 문학평론가·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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