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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나코는 없다’ 최윤 작가 “무엇이 ‘관계’의 진정성을 훼손하는가”
입력 2022.01.09 (21:30) 수정 2022.01.09 (21:33) 영상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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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소설가

Q. <하나코는 없다>는 여성주의 소설인가?

여성 작가의 소설인 것은 확실하고요. 그리고 여성주의의 어떤 부분이 있죠. 이것은 사실은 어느 분이 말씀하셨듯이 어떤 사각지대, 삶의 사각지대, 우리가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보지 못 하는 부분, 관계에 대한 문제에요. 어쩌다가 작품 속에서 '하나코'라는 여성과 그리고 그 주변의 남성 친구들과의 관계로 보니까 그것을 페미니즘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것보다는 타자라는 미로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보는 것이 제게는 더 맞는 것 같습니다.

Q. 소설의 무대는 왜 베니스인가?

저는 사실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베니스를 안 가봤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끝나고 탈고할 때 짧게 갔었어요. 그 다음에는 한 번 길게 갔는데. 베니스라는 도시 자체의 미로라는 개념, 그다음에 물, 안개. '타자'라는 접근 불가능한 대상을 형상화하기에는 베니스가 좋았던 것 같아요.

Q. 제목이 <하나코는 없다>인 이유는?

하나코는 없는 이유가 누구나 대부분 제가 볼 때 남성들의 속에는 그런 판타지가 있는 것 같아요, 나의 삶은 있지만, 언젠가 가서 내 속 이야기도 하고, 그리고 위로도 받고 싶고, 그렇지만 공식적인 삶의 현장에는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그런 여성, 그런 환상의 여성은 없다는 의미로 하나코는 없는 것이죠.

여성의 우정과 남성의 우정을 제가 대립시켜서 보고 싶었던 게 있어요. 여성의 우정은 그냥 통째로이거든요. 거의 모든 것을 다 공유하는, 그래서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남성들의 우정의 세계는 좀 다른 것 같더라고요. 우리가 친구라는 환상도 있지만, 그런 차이들. 반면에 하나코는 사실은 진지한 여성이에요. 그들과 전혀 다르게 생각한 것이죠. 비록 그들이 환상적 도피처로 자신을 삼았다 할지라도 그녀는 그렇게 그런 부분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들을 그걸 알고서도 친구로 맞은 케이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에게 관행이 된 관계, 더 깊게 나가는 것을 저해하는 그런 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한 번 드러내 보자,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하나코는 없다>입니다.

Q. '그'는 왜 결국 하나코와 만나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아주 우스꽝스런 사건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들의 어찌 보면 무의식적인 장난기일 수도 있겠고 내면에 있었던 숨겨진 폭력적 성향일 수도 있겠는데. 그것이 나오고 난 다음에 이들은 완전히 헤어진 것이죠. 이들이 왜 그랬을까. 저는 하나코가 진지했기 때문에 첫 번째는 그랬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들의 어찌 보면 빈자리, 그들의 허점, 이것을 드러내 주는 진지함, 불편한 것이죠. 그리고 두 번째로는 하나코가 구체적인 삶이 있으리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성공한 디자이너였지만, 실제적인 삶이 있고 전화 속에서 소리도 들리고, 그런 적나라한 현실이 있는 하나의 존재라고는 생각을 안 했다가 그것이 각인되는 순간 자기의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어찌 보면 자정적 역할을 자기도 모르게 하나코가 친구 남성들한테 해주지 않았을까, 라고 저도 추정합니다.

김문주/문학평론가

하나코는 실상은 남성 주체의 모습들. 당시에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주체죠. 남성 주체들의 모습을 반영해주고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나를 그렇게 몰라?'라고 하는 내용이 있는데. 나를 그렇게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 소설의 주제가 관계성과 소외의 문제인데, 한쪽 측면을 본다면 그것이 남성 주체들 속에 배제돼 있는, 억압돼 있는, 혹은 왜곡된 여성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선구적인 측면도 있고요. 한편으로 본다면 이것을 남녀의 문제로 보지 않고 하나의 자아나 개인의 탐색이라는 측면으로 본다면, 최윤 작가가 통상 추구해왔던 존재론, 혹은 자아 탐색의 여정들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2,30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대화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많이 분석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무엇에 막히는가. 우리의 추상성일 수도 있고 피상적일 수도 있고. 어찌 보면 공적인 자아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인데. 이번에 <동행>에서 여러 편이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에게서 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거든요. 그래서 여전히 잠깐 동안은 그 주제에 많이 천착할 것 같은데, 어느새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은 예외인들이 생긴 거예요. 대화할 수 없는. 제가 그것을 strangerhood라고 말씀드렸는데. neighborhood가 아니라 진짜 strangerhood인거죠. 뭐라고 번역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런 개인들을 그러면 방치하고 둘 것인가.

더 사려 깊고 그런 젊음이 형성되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거든요. 그들에게는 책임이 있어요. 누린 자에겐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사회가 만들어낸 strangerhood에 대해서 말 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 부분으로 제가 요청을 감히 하는 거죠.

편집: 이주은 이도연
  • [인터뷰] ‘하나코는 없다’ 최윤 작가 “무엇이 ‘관계’의 진정성을 훼손하는가”
    • 입력 2022-01-09 21:30:30
    • 수정2022-01-09 21: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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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소설가

Q. <하나코는 없다>는 여성주의 소설인가?

여성 작가의 소설인 것은 확실하고요. 그리고 여성주의의 어떤 부분이 있죠. 이것은 사실은 어느 분이 말씀하셨듯이 어떤 사각지대, 삶의 사각지대, 우리가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보지 못 하는 부분, 관계에 대한 문제에요. 어쩌다가 작품 속에서 '하나코'라는 여성과 그리고 그 주변의 남성 친구들과의 관계로 보니까 그것을 페미니즘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것보다는 타자라는 미로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보는 것이 제게는 더 맞는 것 같습니다.

Q. 소설의 무대는 왜 베니스인가?

저는 사실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베니스를 안 가봤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끝나고 탈고할 때 짧게 갔었어요. 그 다음에는 한 번 길게 갔는데. 베니스라는 도시 자체의 미로라는 개념, 그다음에 물, 안개. '타자'라는 접근 불가능한 대상을 형상화하기에는 베니스가 좋았던 것 같아요.

Q. 제목이 <하나코는 없다>인 이유는?

하나코는 없는 이유가 누구나 대부분 제가 볼 때 남성들의 속에는 그런 판타지가 있는 것 같아요, 나의 삶은 있지만, 언젠가 가서 내 속 이야기도 하고, 그리고 위로도 받고 싶고, 그렇지만 공식적인 삶의 현장에는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그런 여성, 그런 환상의 여성은 없다는 의미로 하나코는 없는 것이죠.

여성의 우정과 남성의 우정을 제가 대립시켜서 보고 싶었던 게 있어요. 여성의 우정은 그냥 통째로이거든요. 거의 모든 것을 다 공유하는, 그래서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남성들의 우정의 세계는 좀 다른 것 같더라고요. 우리가 친구라는 환상도 있지만, 그런 차이들. 반면에 하나코는 사실은 진지한 여성이에요. 그들과 전혀 다르게 생각한 것이죠. 비록 그들이 환상적 도피처로 자신을 삼았다 할지라도 그녀는 그렇게 그런 부분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들을 그걸 알고서도 친구로 맞은 케이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에게 관행이 된 관계, 더 깊게 나가는 것을 저해하는 그런 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한 번 드러내 보자,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하나코는 없다>입니다.

Q. '그'는 왜 결국 하나코와 만나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아주 우스꽝스런 사건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들의 어찌 보면 무의식적인 장난기일 수도 있겠고 내면에 있었던 숨겨진 폭력적 성향일 수도 있겠는데. 그것이 나오고 난 다음에 이들은 완전히 헤어진 것이죠. 이들이 왜 그랬을까. 저는 하나코가 진지했기 때문에 첫 번째는 그랬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들의 어찌 보면 빈자리, 그들의 허점, 이것을 드러내 주는 진지함, 불편한 것이죠. 그리고 두 번째로는 하나코가 구체적인 삶이 있으리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성공한 디자이너였지만, 실제적인 삶이 있고 전화 속에서 소리도 들리고, 그런 적나라한 현실이 있는 하나의 존재라고는 생각을 안 했다가 그것이 각인되는 순간 자기의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어찌 보면 자정적 역할을 자기도 모르게 하나코가 친구 남성들한테 해주지 않았을까, 라고 저도 추정합니다.

김문주/문학평론가

하나코는 실상은 남성 주체의 모습들. 당시에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주체죠. 남성 주체들의 모습을 반영해주고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나를 그렇게 몰라?'라고 하는 내용이 있는데. 나를 그렇게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 소설의 주제가 관계성과 소외의 문제인데, 한쪽 측면을 본다면 그것이 남성 주체들 속에 배제돼 있는, 억압돼 있는, 혹은 왜곡된 여성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선구적인 측면도 있고요. 한편으로 본다면 이것을 남녀의 문제로 보지 않고 하나의 자아나 개인의 탐색이라는 측면으로 본다면, 최윤 작가가 통상 추구해왔던 존재론, 혹은 자아 탐색의 여정들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2,30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대화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많이 분석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무엇에 막히는가. 우리의 추상성일 수도 있고 피상적일 수도 있고. 어찌 보면 공적인 자아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인데. 이번에 <동행>에서 여러 편이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에게서 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거든요. 그래서 여전히 잠깐 동안은 그 주제에 많이 천착할 것 같은데, 어느새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은 예외인들이 생긴 거예요. 대화할 수 없는. 제가 그것을 strangerhood라고 말씀드렸는데. neighborhood가 아니라 진짜 strangerhood인거죠. 뭐라고 번역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런 개인들을 그러면 방치하고 둘 것인가.

더 사려 깊고 그런 젊음이 형성되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거든요. 그들에게는 책임이 있어요. 누린 자에겐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사회가 만들어낸 strangerhood에 대해서 말 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 부분으로 제가 요청을 감히 하는 거죠.

편집: 이주은 이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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