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은어낚시통신’ 윤대녕 작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씁니다”

입력 2021.06.20 (21:30) 수정 2021.06.21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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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소설가

Q. 작가님께 90년대는 어떤 시기?

말하자면 80년대는 거대 담론의 시대였거든요. 민중 문학, 그리고 노동 문학. 근데 87년에 세계사적 변혁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베를린 장벽 붕괴되고 동부권 개방되고, 또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이데올로기의 종언, 이런 말들이 말들이 막 떠다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세계사적 변혁의 시대,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그런 말들이 떠도는 시대를 지나서 90년대로 접어드는 그 기점에 제가 소설가로 입문을 했어요. 1990년에 등단을 했는데 무엇을 써야 될 것인가, 새삼스럽게. 그 화두를 떠안고 너무 오랜 시간을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Q.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래서 어떤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걸 인식을 했고, 의식·무의식적으로. 그래서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 집단의 어떤 정체성을 회복해야 된다, 그러려면 어떤 모티브가 필요한데, 저는 은어나 연어의 모천 회귀 모티브, 치어가 바다로 나가서 성장한 다음에 다시 모천으로 돌아와서 알을 낳고 죽잖아요. 새로운 세대로 순환되는 그런 과정인 거죠.

우리가 한 번쯤 뒤를 돌아볼 필요도 있고 원래 존재의 순수한 어떤 정체성을 회복할 그런 어떤 지점에 와 있는 게 아닌가, 90년대라는 게.

Q. 당시엔 상당한 모험이었을텐데...

제가 처음에 <은어>라는 작품을 《현대문학》에 발표를 하면서 너무 너무 긴장했었어요.

비난을. 지금 여전히 민중, 민주, 노동의 문제, 우리 현실적인 문제가 눈앞에 가로놓여있는데,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현실도피적 뉘앙스가 있을 수 있는 모천 회귀라든가 존재의 시원으로 돌아간다든가 이런 것이 지금 과연 합당한 것이냐.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비난 당할 각오를 해야만 했었던 거죠.

그러니까 작가로서는 하나의 모험일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Q. 소설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는데?

세상에 많은 작가들이 있잖아요. 각자 자기의 목소리를 내면서 작품을 통해서, 텍스트를 통해서 서로 담론을 형성하고, 그리고 다음 삶에 대한 지속 가능성을 탐구하고 이게 문학이 할 일이거든요.

그리고 당대에 우리가 어떤 삶의 현장에 처해 있는가를 포함해서. 그래서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지금도 행운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당시에 환호해 준 독자층, 그분들 지금 저랑 같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데 그분들께 깊은 감사를 느껴요.

작가로서 제가 어떤 일념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준 분들은 결국은 독자분들이었다고 생각을 하니까요. 그게 사실이고.

Q. 나에게 <은어낚시통신>이란?

평범한 삶이 더 많은 어떤 안정과 평범한 행복을 줄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요. 예술가들은, 작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야 되기 때문에 갔던 가장 첫 어떤 기호, 기표가 되는 상징적인 책이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들이 첫 책에 대한 그런 어떤 감회가 남다를 거라고 생각을 해요. 애틋함도 있죠.

그리고 계속 독자분들은 첫 책으로 기억을 하는 그런 것도 있고요. 그게 이제 이미지나 기호 상징이 되니까. 그래서 외면하고 잊어버리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그게 저의 정체성을, 최초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책이기 때문에 남다른 감정이 아무래도 있는 거죠.

그 이후에 낸 책들에 비해서. 그렇습니다.

Q. <은어낚시통신>의 문제의식, 지금도 유효?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떤 선택도 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러니까 우선은 사회도 마찬가지고 개인도 마찬가지고 일단 정체성을 확보하고 회복하는 것, 그게 늘 시대가 달라져도 그 시대에는 그게 선행되어야 된다는 게 제 어떤 소설관이기도 하고, 삶에 대한 어떤 인식이기도 해요. 끊임없이 자기를 확인해야 되는 거죠.

내가 누군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그것을 알아야만 다음 선택을 할 수가 있거든요. 계속 살아갈 수가 있는 거고. 어떤 신념을 가지고,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안 그러면 혼란 속에서 방황하게 되는 거죠.

그게 아마 삶의 원리이자 생태계의 원리 같아요.

Q. 지금 이 시대, 소설의 가치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이야기를 통해서 서로 소통하고 또 삶이 존속되는 거거든요, 사실은. 그래서 작가들이 진지한 사유 끝에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오랜 사유 끝에 한 편씩 한 편씩 작품이 나오는 거거든요.

삶에 대한 통찰도 거기에 담겨 있고, 삶에 대한 질문도 담겨 있고, 많은 자기 자신과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바탕을 제공한다, 그러니까 멍석 같은 거죠.

한 편의 소설은 자기 자신과, 본연의 자기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어떤 멍석을 이렇게 깔아준다, 마루를 제공한다, 마루. 포럼, 스퀘어까지는 아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게 문학의 기능이고.

Q. 새 작품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은?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것, 그 이야기에.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 그러면 또 그들도 다 알아요,

바로. 당연히. 세상에 좋은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크게 욕심을 내서도 안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자기도 납득할 수 있는 혼신의 힘을 다한, 자기 나이에 맞는 작품을 써내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평가는 독자들이 하는 거지만,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다인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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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소설가

Q. 작가님께 90년대는 어떤 시기?

말하자면 80년대는 거대 담론의 시대였거든요. 민중 문학, 그리고 노동 문학. 근데 87년에 세계사적 변혁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베를린 장벽 붕괴되고 동부권 개방되고, 또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이데올로기의 종언, 이런 말들이 말들이 막 떠다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세계사적 변혁의 시대,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그런 말들이 떠도는 시대를 지나서 90년대로 접어드는 그 기점에 제가 소설가로 입문을 했어요. 1990년에 등단을 했는데 무엇을 써야 될 것인가, 새삼스럽게. 그 화두를 떠안고 너무 오랜 시간을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Q.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래서 어떤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걸 인식을 했고, 의식·무의식적으로. 그래서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 집단의 어떤 정체성을 회복해야 된다, 그러려면 어떤 모티브가 필요한데, 저는 은어나 연어의 모천 회귀 모티브, 치어가 바다로 나가서 성장한 다음에 다시 모천으로 돌아와서 알을 낳고 죽잖아요. 새로운 세대로 순환되는 그런 과정인 거죠.

우리가 한 번쯤 뒤를 돌아볼 필요도 있고 원래 존재의 순수한 어떤 정체성을 회복할 그런 어떤 지점에 와 있는 게 아닌가, 90년대라는 게.

Q. 당시엔 상당한 모험이었을텐데...

제가 처음에 <은어>라는 작품을 《현대문학》에 발표를 하면서 너무 너무 긴장했었어요.

비난을. 지금 여전히 민중, 민주, 노동의 문제, 우리 현실적인 문제가 눈앞에 가로놓여있는데,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현실도피적 뉘앙스가 있을 수 있는 모천 회귀라든가 존재의 시원으로 돌아간다든가 이런 것이 지금 과연 합당한 것이냐.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비난 당할 각오를 해야만 했었던 거죠.

그러니까 작가로서는 하나의 모험일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Q. 소설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는데?

세상에 많은 작가들이 있잖아요. 각자 자기의 목소리를 내면서 작품을 통해서, 텍스트를 통해서 서로 담론을 형성하고, 그리고 다음 삶에 대한 지속 가능성을 탐구하고 이게 문학이 할 일이거든요.

그리고 당대에 우리가 어떤 삶의 현장에 처해 있는가를 포함해서. 그래서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지금도 행운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당시에 환호해 준 독자층, 그분들 지금 저랑 같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데 그분들께 깊은 감사를 느껴요.

작가로서 제가 어떤 일념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준 분들은 결국은 독자분들이었다고 생각을 하니까요. 그게 사실이고.

Q. 나에게 <은어낚시통신>이란?

평범한 삶이 더 많은 어떤 안정과 평범한 행복을 줄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요. 예술가들은, 작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야 되기 때문에 갔던 가장 첫 어떤 기호, 기표가 되는 상징적인 책이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들이 첫 책에 대한 그런 어떤 감회가 남다를 거라고 생각을 해요. 애틋함도 있죠.

그리고 계속 독자분들은 첫 책으로 기억을 하는 그런 것도 있고요. 그게 이제 이미지나 기호 상징이 되니까. 그래서 외면하고 잊어버리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그게 저의 정체성을, 최초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책이기 때문에 남다른 감정이 아무래도 있는 거죠.

그 이후에 낸 책들에 비해서. 그렇습니다.

Q. <은어낚시통신>의 문제의식, 지금도 유효?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떤 선택도 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러니까 우선은 사회도 마찬가지고 개인도 마찬가지고 일단 정체성을 확보하고 회복하는 것, 그게 늘 시대가 달라져도 그 시대에는 그게 선행되어야 된다는 게 제 어떤 소설관이기도 하고, 삶에 대한 어떤 인식이기도 해요. 끊임없이 자기를 확인해야 되는 거죠.

내가 누군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그것을 알아야만 다음 선택을 할 수가 있거든요. 계속 살아갈 수가 있는 거고. 어떤 신념을 가지고,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안 그러면 혼란 속에서 방황하게 되는 거죠.

그게 아마 삶의 원리이자 생태계의 원리 같아요.

Q. 지금 이 시대, 소설의 가치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이야기를 통해서 서로 소통하고 또 삶이 존속되는 거거든요, 사실은. 그래서 작가들이 진지한 사유 끝에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오랜 사유 끝에 한 편씩 한 편씩 작품이 나오는 거거든요.

삶에 대한 통찰도 거기에 담겨 있고, 삶에 대한 질문도 담겨 있고, 많은 자기 자신과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바탕을 제공한다, 그러니까 멍석 같은 거죠.

한 편의 소설은 자기 자신과, 본연의 자기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어떤 멍석을 이렇게 깔아준다, 마루를 제공한다, 마루. 포럼, 스퀘어까지는 아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게 문학의 기능이고.

Q. 새 작품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은?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것, 그 이야기에.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 그러면 또 그들도 다 알아요,

바로. 당연히. 세상에 좋은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크게 욕심을 내서도 안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자기도 납득할 수 있는 혼신의 힘을 다한, 자기 나이에 맞는 작품을 써내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평가는 독자들이 하는 거지만,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다인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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