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소녀가 본 ‘시대의 모순’…은희경 ‘새의 선물’

입력 2021.07.18 (21:22) 수정 2021.07.1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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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시대의 소설. 매주 이 시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선정한 50편의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18일)은 1995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는 은희경의 장편소설 '새의 선물'입니다.

10대 소녀의 시선으로 포착된 우리네 삶은 어떤 모습인가.

정연욱 기자가 소설가 은희경 씨를 만나고 왔습니다.

[리포트]

[“내가 왜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969년 전북 고창,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12살 진희는 자신이 더는 성장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조숙한 소녀입니다.

<새의 선물>은 주인공 진희를 둘러싼 가족과 이웃들, 그 다양한 인간군상이 살아가는 과정을 마치 연속극처럼 실감 나게 그려냅니다.

[은희경/소설가 : “자기는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어린아이인 경계선, (그런 것을 12살로) 표현하기가 적당할 것 같았어요.”]

관심은 오로지 연애와 결혼 뿐인데다 장래희망도 현모양처라는, 진희보다 더 철이 없는 21살 이모가 첫 데이트를 하는 읍성.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허세를 부리지만, 알고 보면 병역기피자에 폭력 남편인 양장점 아저씨의 단골 주점이 있는 터미널.

그런 남편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아내의 욕망이 교차하는 군청 앞 정류장.

진희가 사는 1969년의 고창은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와 그로 인한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적 질서가 얽혀 있는 어른들의 일상이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공간입니다.

[은희경/소설가 : “경쟁의 시대에 저는 그것이 만들어 낸 허세와 권위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비판하고 싶었죠.”]

저마다 슬픔은 있어도 큰 탈 없이 흘러가던 일상이었지만, 어느 날 마을 공장에서 큰불이 나면서 그 일상도 비극을 피해가진 못합니다.

그 누구의 삶도 그 삶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차갑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은희경/소설가 : “그런 사회가 결국 지금 현재 우리의 이중성, 허위의식, 권위의식의 모태가 됐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자아를 나눠 삶과 거리를 유지해왔던 진희는 문득 화재로 세상을 떠난 선생님이 자주 했던, “삶은 농담이다”란 말을 떠올립니다.

마냥 아름답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고통스럽지만도 않은 세상사의 이치를 덤덤하게 깨달으며 애초의 결심과 달리 한 뼘 더 성장합니다.

37살, 늦깎이로 등단하자마자 발표한 첫 장편은 아름다움에서 탈피하려는 독특한 감수성으로 당시 평단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서영채/문학평론가 : “환상의 사라짐, 환상 너머에 사람들이 추악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 법한 그런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이죠.”]

어느덧 100쇄를 눈앞에 둘 만큼 꾸준히 사랑받아온 작품.

작가는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은희경/소설가 : “이 소설을 일종의 개인의 선언 같은 것으로 봐요. 어떤 경쟁 속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누가 정했냐는 거죠.”]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배정철 조승연 유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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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살 소녀가 본 ‘시대의 모순’…은희경 ‘새의 선물’
    • 입력 2021-07-18 21:22:48
    • 수정2021-07-18 21:43:35
    뉴스 9
[앵커]

우리시대의 소설. 매주 이 시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선정한 50편의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18일)은 1995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는 은희경의 장편소설 '새의 선물'입니다.

10대 소녀의 시선으로 포착된 우리네 삶은 어떤 모습인가.

정연욱 기자가 소설가 은희경 씨를 만나고 왔습니다.

[리포트]

[“내가 왜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969년 전북 고창,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12살 진희는 자신이 더는 성장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조숙한 소녀입니다.

<새의 선물>은 주인공 진희를 둘러싼 가족과 이웃들, 그 다양한 인간군상이 살아가는 과정을 마치 연속극처럼 실감 나게 그려냅니다.

[은희경/소설가 : “자기는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어린아이인 경계선, (그런 것을 12살로) 표현하기가 적당할 것 같았어요.”]

관심은 오로지 연애와 결혼 뿐인데다 장래희망도 현모양처라는, 진희보다 더 철이 없는 21살 이모가 첫 데이트를 하는 읍성.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허세를 부리지만, 알고 보면 병역기피자에 폭력 남편인 양장점 아저씨의 단골 주점이 있는 터미널.

그런 남편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아내의 욕망이 교차하는 군청 앞 정류장.

진희가 사는 1969년의 고창은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와 그로 인한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적 질서가 얽혀 있는 어른들의 일상이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공간입니다.

[은희경/소설가 : “경쟁의 시대에 저는 그것이 만들어 낸 허세와 권위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비판하고 싶었죠.”]

저마다 슬픔은 있어도 큰 탈 없이 흘러가던 일상이었지만, 어느 날 마을 공장에서 큰불이 나면서 그 일상도 비극을 피해가진 못합니다.

그 누구의 삶도 그 삶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차갑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은희경/소설가 : “그런 사회가 결국 지금 현재 우리의 이중성, 허위의식, 권위의식의 모태가 됐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자아를 나눠 삶과 거리를 유지해왔던 진희는 문득 화재로 세상을 떠난 선생님이 자주 했던, “삶은 농담이다”란 말을 떠올립니다.

마냥 아름답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고통스럽지만도 않은 세상사의 이치를 덤덤하게 깨달으며 애초의 결심과 달리 한 뼘 더 성장합니다.

37살, 늦깎이로 등단하자마자 발표한 첫 장편은 아름다움에서 탈피하려는 독특한 감수성으로 당시 평단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서영채/문학평론가 : “환상의 사라짐, 환상 너머에 사람들이 추악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 법한 그런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이죠.”]

어느덧 100쇄를 눈앞에 둘 만큼 꾸준히 사랑받아온 작품.

작가는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은희경/소설가 : “이 소설을 일종의 개인의 선언 같은 것으로 봐요. 어떤 경쟁 속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누가 정했냐는 거죠.”]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배정철 조승연 유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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