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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에서 걸어온 소년의 이야기…한강 ‘소년이 온다’
입력 2021.10.31 (21:26) 수정 2021.10.31 (22:02)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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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매주 이 시간 전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소설입니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함께 선정한 소설 50편을 차례로 만나고 있습니다.

오늘(31일)은 소설가 한강 씨의 장편 '소년이 온다'를 소개합니다.

광주민주화항쟁에서 희생된 소년의 이야기를 담담한 문체로 담아낸 소설입니다.

정연욱 기자가 작가 한강 씨를 만나고 왔습니다.

[리포트]

교련복을 입은 채 웅크린 듯 쓰러진 두 소년.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에서 17살 나이로 숨진 故 문재학 열사를 극화한 인물입니다.

소설가의 상상력마저 압도한 역사의 비극이었습니다.

[한강/소설가 :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고통'이었던 것 같아요. 압도적인 고통.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울었어요."]

항쟁 초반, 동호는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뒤 시민들의 시신이 안치된 도청 상무관으로 옵니다.

여고생 은숙, 충장로 미싱사 선주와 한 조가 된 동호는 상무관에서, 매일 늘어나는 참혹한 시신들을 직접 흰 천으로 덮고 촛불을 밝힙니다.

계엄군의 잔혹한 학살, 그와 대비되는 시민들의 아름다운 희생을 통해, 소설은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한강/소설가 : "사진첩에서 봤던 참혹한 시신들의 사진, 그리고 총상자들을 위해서 헌혈을 하려고 병원 앞에서 줄을 끝없이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 이 2개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졌어요)."]

항쟁이 진압된 직후, 살아남은 여고생 은숙은 바로 그 도청 앞에서 다시 가동된 분수를 목격하고, 이 분수를 꺼 달라며 도청 민원실에 울부짖습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재개된 일상은 역설적으로 동호의 죽음, 처절했던 학살의 기억을 소환합니다.

[한강/소설가 : "도청에 남기로 결심해서 죽게된 동호가 우리에게 오는 소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80년 5월에서부터 5년 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천천히 이렇게 넋으로 걸어오는 걸음걸이를 상상했고 그래서 제목도 <소년이 온다>가 됐어요."]

여섯 살 무렵, 엄마 손 붙잡고 햇빛이 있는 밝은 쪽, 꽃이 피어 있는 쪽으로 끊임없이 가고자 했던 동호.

결국, 가장 컴컴한 곳에서 공포에 떨다 희생됐지만, 소설은 그래도 비극을 끝내 딛고 일어나자는 '희망'을 호소합니다.

40년 넘게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생존자들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한강/소설가 : "사실상 그 소설에서 마지막으로 쓴 문장이 그거에요. 죽지말아요 라는 문장인데, 그 말을 쓰고 싶었어요. 또다른 생존자의 목소리로 죽지 말아요 라고, 마지막으로 꼭 말을 하게 하고 싶었어요."]

5·18을 다룬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소년이 온다'는 항쟁의 기억과 정서에 주목한, 그래서 가장 슬픈 이야기로 각인됐습니다.

[유성호/문학평론가 : "이 소설은 망자들을 불러서 초혼제의를 치르고 그분들께 언어를 돌려줌으로써 절절한 증언이 되게 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또 5·18이냐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소설은 이렇게 선명한 슬픔을 보여줍니다.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조현관 박세준/그래픽:김지훈 정지인
  • 80년 5월에서 걸어온 소년의 이야기…한강 ‘소년이 온다’
    • 입력 2021-10-31 21:26:18
    • 수정2021-10-31 22:02:32
    뉴스 9
[앵커]

매주 이 시간 전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소설입니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함께 선정한 소설 50편을 차례로 만나고 있습니다.

오늘(31일)은 소설가 한강 씨의 장편 '소년이 온다'를 소개합니다.

광주민주화항쟁에서 희생된 소년의 이야기를 담담한 문체로 담아낸 소설입니다.

정연욱 기자가 작가 한강 씨를 만나고 왔습니다.

[리포트]

교련복을 입은 채 웅크린 듯 쓰러진 두 소년.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에서 17살 나이로 숨진 故 문재학 열사를 극화한 인물입니다.

소설가의 상상력마저 압도한 역사의 비극이었습니다.

[한강/소설가 :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고통'이었던 것 같아요. 압도적인 고통.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울었어요."]

항쟁 초반, 동호는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뒤 시민들의 시신이 안치된 도청 상무관으로 옵니다.

여고생 은숙, 충장로 미싱사 선주와 한 조가 된 동호는 상무관에서, 매일 늘어나는 참혹한 시신들을 직접 흰 천으로 덮고 촛불을 밝힙니다.

계엄군의 잔혹한 학살, 그와 대비되는 시민들의 아름다운 희생을 통해, 소설은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한강/소설가 : "사진첩에서 봤던 참혹한 시신들의 사진, 그리고 총상자들을 위해서 헌혈을 하려고 병원 앞에서 줄을 끝없이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 이 2개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졌어요)."]

항쟁이 진압된 직후, 살아남은 여고생 은숙은 바로 그 도청 앞에서 다시 가동된 분수를 목격하고, 이 분수를 꺼 달라며 도청 민원실에 울부짖습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재개된 일상은 역설적으로 동호의 죽음, 처절했던 학살의 기억을 소환합니다.

[한강/소설가 : "도청에 남기로 결심해서 죽게된 동호가 우리에게 오는 소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80년 5월에서부터 5년 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천천히 이렇게 넋으로 걸어오는 걸음걸이를 상상했고 그래서 제목도 <소년이 온다>가 됐어요."]

여섯 살 무렵, 엄마 손 붙잡고 햇빛이 있는 밝은 쪽, 꽃이 피어 있는 쪽으로 끊임없이 가고자 했던 동호.

결국, 가장 컴컴한 곳에서 공포에 떨다 희생됐지만, 소설은 그래도 비극을 끝내 딛고 일어나자는 '희망'을 호소합니다.

40년 넘게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생존자들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한강/소설가 : "사실상 그 소설에서 마지막으로 쓴 문장이 그거에요. 죽지말아요 라는 문장인데, 그 말을 쓰고 싶었어요. 또다른 생존자의 목소리로 죽지 말아요 라고, 마지막으로 꼭 말을 하게 하고 싶었어요."]

5·18을 다룬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소년이 온다'는 항쟁의 기억과 정서에 주목한, 그래서 가장 슬픈 이야기로 각인됐습니다.

[유성호/문학평론가 : "이 소설은 망자들을 불러서 초혼제의를 치르고 그분들께 언어를 돌려줌으로써 절절한 증언이 되게 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또 5·18이냐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소설은 이렇게 선명한 슬픔을 보여줍니다.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조현관 박세준/그래픽:김지훈 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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