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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우리가 넘지 못한 경계들…전성태 소설집 ‘늑대’
입력 2021.09.05 (21:31) 수정 2021.09.05 (21:31) 취재K
전성태가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할 당시 한국문학의 주류는 키치(kitsch)와 자본주의 도시 감수성으로 무장한 이른바 신세대문학이었다. 그러나 전성태는 '세계화'의 물결을 거슬러 사투리와 농촌의 세계로 달려갔다. 그는 확실히 거꾸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읽으며 식민지시대 김유정이나 채만식, 70년대 이문구의 유전자를 발견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동서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전 지구가 자본주의 단일시장으로 변모하는 중이었기에 전성태의 농촌은 식민치하나 산업화 시대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일 수 없었다. 이문구의 시대만 하더라도 농촌은 산업사회의 그늘인 동시에 그럼에도 끝내 소진될 수 없는 민중적 생명력의 저수지였지만 전성태의 소설에서 그러한 농촌의 육체성은 훨씬 왜소하게 감각된다. 그 육체성의 공백을 대신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사라져가는 농촌 공동체문화에 대한 짙은 향수일 것이다.

가령 첫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단편 「매향」(1997)의 주인공이 폐광촌 여인숙을 지키는 “할멈”이고 그가 기구했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놓을 수 있도록 이끈 것이 상여소리 하는 "우서리 영감"이라는 사실은 이 작품의 회고지향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그럼에도 소설집 『매향』에 묶인 단편들은 끝내 감상적 퇴행이나 낭만적 복고주의로 완전히 넘어가지 않았다. 이 소설집에 나타나는 회고지향은 한편으로는 역설적이기까지 한데 그것은 되돌아가기 위해서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소설집 『국경을 넘는 일』을 지나 세 번째 소설집 『늑대』(2009) 쯤에 이르면 왜 전성태의 소설을 읽으며 지구화나 자본주의 세계체제 같은 거시적 맥락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지가 한층 명확해진다. 이미 작품의 주요 무대가 개혁·개방 이후의 몽골이다. 사실 한국문학에서 본격적인 몽골 탐사로는 아마 『늑대』 (2009)가 처음일 듯한데, 뒤에 실린 「작가의 말」이 그 이유에 대해 간결한 설명을 제공한다. "몽골은 내게 특별한 고통과 영감을 주었다. 시원의 이미지를 간직한 광활한 대지에서 맞닥뜨린 고독감은 세계 바깥을 보고 온 듯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더 흥미로웠던 것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한 몽골사회였고, 기이하게도 그것은 우리 사회를 되비춰주는 거울이 되곤 했다." 몽골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던가.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는 사이 우리는 두 개의 중대사건을 경험했다. 단연 IMF 외환위기가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6·15남북공동선언일 것이다. 전자가 한국자본주의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강제 편입시켜 경계 없는 무한개방, 무한경쟁으로 견인했다면 후자는 탈냉전의 마지막 관문인 한반도 분단체제 또는 적어도 남한 시민들의 심성에 자리 잡고 있던 분단인식을 크게 흔들어놓았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바야흐로 모든 경계가 사라져가는 중이었다. "우리 사회를 되비춰주는 거울"로서 방현석의 베트남과 유재현의 캄보디아가 그랬듯이 전성태의 몽골에도 그 두 가지 사건의 흔적과 후행 효과가 짙게 남아 있다. 소설집의 첫번째 수록작인 「목란식당」은 대표적이다.

"왠지 기업이 국가를 능가하는 이념체계로 바뀌고 있다는 인상, 글로벌 경영이라는 개념이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자본이 의지에 의해 낡은 구조를 깨고 있다는 확신이" 드는 신자유주의의 "어떤 종교적 분위기" 가운데 주인공은 몽골연수 가이드로 살아가는 중이다. 그는 화가인 삼촌과 종종 목란식당에 들르곤 하는데 그곳은 북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북한음식점이다. 이곳에 "경력30년의 공훈랭면료리사 드디어 몽골상륙"이라는 광고가 나붙고 남쪽 출신의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여들지만 실은 어떤 사정으로 예의 "상륙"은 무산되었고 숨겨져 있던 그 사실이 밝혀지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는 게 대강의 줄거리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관계의 긴장을 의식해 "교민사회 일부에서 북한식당 이용을 금하자는 의견이" 나도는 마당이었으니 "우리가 음식을 먹고 내는 달러가 당신네 장군님한테 가느냐"고 묻던 선교회 목사 일행과 "식당은 식당"일 뿐 "정치적으로 휘둘려선" 안 된다고 말하는 교민 사장의 대립이 첨예하다. "시국이 어수선하니 냉면 한 그릇 먹기도" 고된 이 웃지 못할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정작 그리고자 한 것은 인물들 저마다의 난감한 표정들, 그 생생한 현재였을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경계 넘기의 환상에 취했지만 사실 우리가 정직하게 마주한 것은 너무나도 건재한 경계 그 자체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늑대』는 경계를 넘는 이야기가 아니라 경계의 여전한 완강함 때문에 일어나는 소요와 갈등을 생생하게 다룬 소설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때로 표제작 「늑대」에서처럼 계급과 젠더라는 경계로 나타나기도 하고 「이미테이션」에서처럼 진짜와 가짜 또는 제국과 식민의 심리적 길항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몽골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전직 미술 교사 이야기 「남방식물」에도 똑같은 목란식당이 등장하거니와 그곳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명화의 편지를 탈북에 관한 것으로 오인해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실패의 감각에 깊이 침윤된 주인공에게조차 북한식당의 종업원 여성이나 한국취업을 원하는 몽골 청년은 외면하고만 싶은 불편하고 낯선 타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밖에도 소설가인 주인공이 한 몽골 여성과 함께 어느 북한 출신 여인의 삶과 죽음을 찾아 나선다는 「두번째 왈츠」 등 몽골과 한반도 남북이라는 삼각 구도는 소설집 『늑대』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다.

이 소설집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과제들로 남아 있다. 아마도 그것이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이 소설집을 살아있는 현재의 이야기로 만들어주는 근거일 것이다. 『늑대』는 여전히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넘지 못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질문하고 해답을 탐색하는 소설집이며 그런 의미에서 가장 21세기적인 소설집이기도 하다.

강경석/문학평론가
  • [비평] 우리가 넘지 못한 경계들…전성태 소설집 ‘늑대’
    • 입력 2021-09-05 21:31:10
    • 수정2021-09-05 21:31:24
    취재K
전성태가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할 당시 한국문학의 주류는 키치(kitsch)와 자본주의 도시 감수성으로 무장한 이른바 신세대문학이었다. 그러나 전성태는 '세계화'의 물결을 거슬러 사투리와 농촌의 세계로 달려갔다. 그는 확실히 거꾸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읽으며 식민지시대 김유정이나 채만식, 70년대 이문구의 유전자를 발견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동서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전 지구가 자본주의 단일시장으로 변모하는 중이었기에 전성태의 농촌은 식민치하나 산업화 시대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일 수 없었다. 이문구의 시대만 하더라도 농촌은 산업사회의 그늘인 동시에 그럼에도 끝내 소진될 수 없는 민중적 생명력의 저수지였지만 전성태의 소설에서 그러한 농촌의 육체성은 훨씬 왜소하게 감각된다. 그 육체성의 공백을 대신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사라져가는 농촌 공동체문화에 대한 짙은 향수일 것이다.

가령 첫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단편 「매향」(1997)의 주인공이 폐광촌 여인숙을 지키는 “할멈”이고 그가 기구했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놓을 수 있도록 이끈 것이 상여소리 하는 "우서리 영감"이라는 사실은 이 작품의 회고지향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그럼에도 소설집 『매향』에 묶인 단편들은 끝내 감상적 퇴행이나 낭만적 복고주의로 완전히 넘어가지 않았다. 이 소설집에 나타나는 회고지향은 한편으로는 역설적이기까지 한데 그것은 되돌아가기 위해서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소설집 『국경을 넘는 일』을 지나 세 번째 소설집 『늑대』(2009) 쯤에 이르면 왜 전성태의 소설을 읽으며 지구화나 자본주의 세계체제 같은 거시적 맥락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지가 한층 명확해진다. 이미 작품의 주요 무대가 개혁·개방 이후의 몽골이다. 사실 한국문학에서 본격적인 몽골 탐사로는 아마 『늑대』 (2009)가 처음일 듯한데, 뒤에 실린 「작가의 말」이 그 이유에 대해 간결한 설명을 제공한다. "몽골은 내게 특별한 고통과 영감을 주었다. 시원의 이미지를 간직한 광활한 대지에서 맞닥뜨린 고독감은 세계 바깥을 보고 온 듯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더 흥미로웠던 것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한 몽골사회였고, 기이하게도 그것은 우리 사회를 되비춰주는 거울이 되곤 했다." 몽골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던가.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는 사이 우리는 두 개의 중대사건을 경험했다. 단연 IMF 외환위기가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6·15남북공동선언일 것이다. 전자가 한국자본주의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강제 편입시켜 경계 없는 무한개방, 무한경쟁으로 견인했다면 후자는 탈냉전의 마지막 관문인 한반도 분단체제 또는 적어도 남한 시민들의 심성에 자리 잡고 있던 분단인식을 크게 흔들어놓았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바야흐로 모든 경계가 사라져가는 중이었다. "우리 사회를 되비춰주는 거울"로서 방현석의 베트남과 유재현의 캄보디아가 그랬듯이 전성태의 몽골에도 그 두 가지 사건의 흔적과 후행 효과가 짙게 남아 있다. 소설집의 첫번째 수록작인 「목란식당」은 대표적이다.

"왠지 기업이 국가를 능가하는 이념체계로 바뀌고 있다는 인상, 글로벌 경영이라는 개념이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자본이 의지에 의해 낡은 구조를 깨고 있다는 확신이" 드는 신자유주의의 "어떤 종교적 분위기" 가운데 주인공은 몽골연수 가이드로 살아가는 중이다. 그는 화가인 삼촌과 종종 목란식당에 들르곤 하는데 그곳은 북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북한음식점이다. 이곳에 "경력30년의 공훈랭면료리사 드디어 몽골상륙"이라는 광고가 나붙고 남쪽 출신의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여들지만 실은 어떤 사정으로 예의 "상륙"은 무산되었고 숨겨져 있던 그 사실이 밝혀지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는 게 대강의 줄거리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관계의 긴장을 의식해 "교민사회 일부에서 북한식당 이용을 금하자는 의견이" 나도는 마당이었으니 "우리가 음식을 먹고 내는 달러가 당신네 장군님한테 가느냐"고 묻던 선교회 목사 일행과 "식당은 식당"일 뿐 "정치적으로 휘둘려선" 안 된다고 말하는 교민 사장의 대립이 첨예하다. "시국이 어수선하니 냉면 한 그릇 먹기도" 고된 이 웃지 못할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정작 그리고자 한 것은 인물들 저마다의 난감한 표정들, 그 생생한 현재였을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경계 넘기의 환상에 취했지만 사실 우리가 정직하게 마주한 것은 너무나도 건재한 경계 그 자체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늑대』는 경계를 넘는 이야기가 아니라 경계의 여전한 완강함 때문에 일어나는 소요와 갈등을 생생하게 다룬 소설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때로 표제작 「늑대」에서처럼 계급과 젠더라는 경계로 나타나기도 하고 「이미테이션」에서처럼 진짜와 가짜 또는 제국과 식민의 심리적 길항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몽골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전직 미술 교사 이야기 「남방식물」에도 똑같은 목란식당이 등장하거니와 그곳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명화의 편지를 탈북에 관한 것으로 오인해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실패의 감각에 깊이 침윤된 주인공에게조차 북한식당의 종업원 여성이나 한국취업을 원하는 몽골 청년은 외면하고만 싶은 불편하고 낯선 타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밖에도 소설가인 주인공이 한 몽골 여성과 함께 어느 북한 출신 여인의 삶과 죽음을 찾아 나선다는 「두번째 왈츠」 등 몽골과 한반도 남북이라는 삼각 구도는 소설집 『늑대』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다.

이 소설집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과제들로 남아 있다. 아마도 그것이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이 소설집을 살아있는 현재의 이야기로 만들어주는 근거일 것이다. 『늑대』는 여전히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넘지 못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질문하고 해답을 탐색하는 소설집이며 그런 의미에서 가장 21세기적인 소설집이기도 하다.

강경석/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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