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해진 작가 “서로에게 빛이 되는 순간들 찾아가고파”

입력 2021.12.05 (21:30) 수정 2021.12.05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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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소설가

Q. 탈북인에 관한 기사에서 소재를 얻으셨다고?

제가 2009년 가을부터 2010년 여름 정도까지 폴란드에서 한국어 강사를 했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 폴란드에 체류하면서 주변 국가 여행이나 이런 걸 하고 싶어서 검색하다가 그 기사를 우연히 발견하게 됐고. 저도 폴란드라는 나라에서 이방인이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합법적인 신분증이 있고 돌아갈 나라가 있는데 그 기사 속 탈북인, 난민 지위를 받고 싶어 하는 그 탈북인에게는 신분증도 없고, 돌아갈 조국도 없고, 또 최소한의 어떤 의사 소통할 수 있는 어떤 언어적인, 언어적으로 의사 소통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되고. 그런 절박한 조건의 이방인을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저와는 차원이 다른 이방인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좀 기사로만 접한 사람인데도 애틋한 마음이 생기면서 좀 더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기자, 기사를 쓰신 분한테 이메일을 쓰고 무작정 찾아갔던 기억이 나요.

Q. '로기완'이란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이름은 이제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이름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실 뭐 특별한 계기 없이 지었어요. (작가님이 직접?) 네.

Q. 주인공이 로기완을 바로 찾아가지 않은 이유는?

아마 로기완을 만나기까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소설의 화자인) 김 작가에게는 로기완이 처음에는 이니셜 L에 불과했지만, 기사 속의 한 사람. 그렇지만 그가 남긴 일기를 보고 그를 추적해 가면서 그에게서 자신을 보기도 하고, 또 자신의 어떤 자신의 잘못일 수도 있고 실수일 수도 있는 어떤 행동으로 누군가를 또 아프게 한 적이 있잖아요. 이런 사람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 느끼기도 하고. 어떤 복합적인 의미로 다가왔고 무엇보다 조금씩 조금씩 살아있는 사람으로 더 구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살아 있는, 정말 생동하는 그런 한 사람으로 다가왔을 거예요. 그래서 아마 그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 안에서, 로기완의 삶과 자신의 삶에서 비슷했던 어떤 지점들을 확인하고, 그리고 또 한 구체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로기완을 느끼고, 좀 과정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Q. 작가님께 이 소설은 어떤 작품?

저에게도 이 소설이 저한테 세 번째 소설이거든요. 비교적 등단 초기에, 아주 초기는 아니지만. 그 전에 습작 시절도 그렇고 등단 직후도 그렇고 좀 폐쇄적인 인물을 많이 썼고 절망하면서 끝나는 소설이 좀 많았어요. 저는 그 당시에는 그것이 문학적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근데 저도 이 소설을 쓰면서 저에게도 변화가 있었죠. 하나의 기점 같은 작품이에요.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빛으로 나아가는 그런 과정, 어쩌면 그 시작일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을 물론 읽으시는 분들도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라는 걸 아시겠지만, 쓰는 사람도 쓰면서 배우고 공부하고 그러면서 더 알게 되거든요. 소설을 쓰면서 1990년대 중후반에 북한에서 있었던 고난의 행군이랄지, 당시 한국에는 그렇게 이슈가 안 됐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아주 큰 이슈였던 난민 문제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되었다든지. 저도 소설을 쓰면서 알게 된 게 많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좀 세상을 넓게 보는 하나의 계기가 됐던 작품이었어요.

Q. 상처를 낫게 하는 힘은 뭘까?

이 소설을 쓸 때 저에게 가장 큰 화두 중의 하나가 연민이 무엇일까였어요. 타인을 향한 연민, 그런데 그게 단순하게 안 됐다 불쌍하다 이런 연민이 아니라 정말 진심 어린,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나의 삶에도, 나의 삶에도 침투되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진심의, 아주 아주 진심인 순도 높은 연민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했었고 그런 고민이 많이 투사된 작품이에요. 상처의 고유함을 믿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특권이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 상처 때문에 우리가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또 어떤 삶을 또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의 낭독>

그러나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타인의 고통이란 실체를 모르기에 짐작만 할 수 있는, 늘 결핍된 대상이다. 누군가 나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나는 무력했고 아무것도 몰랐으며 항상 너무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의 고통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느 지점에서 고조되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삶 속으로 유입되어 그들의 깨어 있는 시간을 아프게 점령하는 것인지, 나는 영원히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누구의 위로나 체온도 없이 가까스로 그 시간이 지나온 후에야 조금은 지친 모습으로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러므로 나는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로가 인터뷰 도중에 기자에게 한 말이었다.

Q. 어떤 이야기에 끌리나?

저는 <로기완을 만났다>를 쓴 이후에 좀 바뀌었어요. <로기완을 만났다>를 쓴 이후부터는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 그것이 그 사람을 완벽하게 아는 것이 실패할지라도 그 알아가는 그 과정, 그리고 그 사람과 또 다른 어떤 사람 사이에 역동하는 거리, 그런 걸 더 쓰게 되었고, 그런 공감과 알아가려는 그 애씀, 이것을 통해서 결국 저는 서로에게 빛이 되는 그런 순간들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결국 우리를 살게 한다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고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네.

편집: 김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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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조해진 작가 “서로에게 빛이 되는 순간들 찾아가고파”
    • 입력 2021-12-05 21:30:10
    • 수정2021-12-05 22: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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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소설가

Q. 탈북인에 관한 기사에서 소재를 얻으셨다고?

제가 2009년 가을부터 2010년 여름 정도까지 폴란드에서 한국어 강사를 했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 폴란드에 체류하면서 주변 국가 여행이나 이런 걸 하고 싶어서 검색하다가 그 기사를 우연히 발견하게 됐고. 저도 폴란드라는 나라에서 이방인이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합법적인 신분증이 있고 돌아갈 나라가 있는데 그 기사 속 탈북인, 난민 지위를 받고 싶어 하는 그 탈북인에게는 신분증도 없고, 돌아갈 조국도 없고, 또 최소한의 어떤 의사 소통할 수 있는 어떤 언어적인, 언어적으로 의사 소통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되고. 그런 절박한 조건의 이방인을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저와는 차원이 다른 이방인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좀 기사로만 접한 사람인데도 애틋한 마음이 생기면서 좀 더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기자, 기사를 쓰신 분한테 이메일을 쓰고 무작정 찾아갔던 기억이 나요.

Q. '로기완'이란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이름은 이제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이름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실 뭐 특별한 계기 없이 지었어요. (작가님이 직접?) 네.

Q. 주인공이 로기완을 바로 찾아가지 않은 이유는?

아마 로기완을 만나기까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소설의 화자인) 김 작가에게는 로기완이 처음에는 이니셜 L에 불과했지만, 기사 속의 한 사람. 그렇지만 그가 남긴 일기를 보고 그를 추적해 가면서 그에게서 자신을 보기도 하고, 또 자신의 어떤 자신의 잘못일 수도 있고 실수일 수도 있는 어떤 행동으로 누군가를 또 아프게 한 적이 있잖아요. 이런 사람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 느끼기도 하고. 어떤 복합적인 의미로 다가왔고 무엇보다 조금씩 조금씩 살아있는 사람으로 더 구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살아 있는, 정말 생동하는 그런 한 사람으로 다가왔을 거예요. 그래서 아마 그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 안에서, 로기완의 삶과 자신의 삶에서 비슷했던 어떤 지점들을 확인하고, 그리고 또 한 구체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로기완을 느끼고, 좀 과정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Q. 작가님께 이 소설은 어떤 작품?

저에게도 이 소설이 저한테 세 번째 소설이거든요. 비교적 등단 초기에, 아주 초기는 아니지만. 그 전에 습작 시절도 그렇고 등단 직후도 그렇고 좀 폐쇄적인 인물을 많이 썼고 절망하면서 끝나는 소설이 좀 많았어요. 저는 그 당시에는 그것이 문학적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근데 저도 이 소설을 쓰면서 저에게도 변화가 있었죠. 하나의 기점 같은 작품이에요.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빛으로 나아가는 그런 과정, 어쩌면 그 시작일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을 물론 읽으시는 분들도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라는 걸 아시겠지만, 쓰는 사람도 쓰면서 배우고 공부하고 그러면서 더 알게 되거든요. 소설을 쓰면서 1990년대 중후반에 북한에서 있었던 고난의 행군이랄지, 당시 한국에는 그렇게 이슈가 안 됐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아주 큰 이슈였던 난민 문제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되었다든지. 저도 소설을 쓰면서 알게 된 게 많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좀 세상을 넓게 보는 하나의 계기가 됐던 작품이었어요.

Q. 상처를 낫게 하는 힘은 뭘까?

이 소설을 쓸 때 저에게 가장 큰 화두 중의 하나가 연민이 무엇일까였어요. 타인을 향한 연민, 그런데 그게 단순하게 안 됐다 불쌍하다 이런 연민이 아니라 정말 진심 어린,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나의 삶에도, 나의 삶에도 침투되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진심의, 아주 아주 진심인 순도 높은 연민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했었고 그런 고민이 많이 투사된 작품이에요. 상처의 고유함을 믿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특권이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 상처 때문에 우리가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또 어떤 삶을 또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의 낭독>

그러나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타인의 고통이란 실체를 모르기에 짐작만 할 수 있는, 늘 결핍된 대상이다. 누군가 나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나는 무력했고 아무것도 몰랐으며 항상 너무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의 고통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느 지점에서 고조되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삶 속으로 유입되어 그들의 깨어 있는 시간을 아프게 점령하는 것인지, 나는 영원히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누구의 위로나 체온도 없이 가까스로 그 시간이 지나온 후에야 조금은 지친 모습으로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러므로 나는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로가 인터뷰 도중에 기자에게 한 말이었다.

Q. 어떤 이야기에 끌리나?

저는 <로기완을 만났다>를 쓴 이후에 좀 바뀌었어요. <로기완을 만났다>를 쓴 이후부터는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 그것이 그 사람을 완벽하게 아는 것이 실패할지라도 그 알아가는 그 과정, 그리고 그 사람과 또 다른 어떤 사람 사이에 역동하는 거리, 그런 걸 더 쓰게 되었고, 그런 공감과 알아가려는 그 애씀, 이것을 통해서 결국 저는 서로에게 빛이 되는 그런 순간들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결국 우리를 살게 한다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고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네.

편집: 김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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