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항쟁 주체의 언어로 살아나는 인간 존엄의 서사 - 한강 ‘소년이 온다’

입력 2021.10.31 (21:33) 수정 2024.10.10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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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열흘간 벌어진 학살과 항쟁의 기록을 담고 있다. 두루 알다시피, 우리의 공동체적 기억 속에서 ‘5월 광주’는 국가라는 괴물의 파국, 인간 잔혹성의 극점, 양심이라는 보석의 빛을 동시에 보여준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3․1운동과 4․19혁명을 정신사적 측면에서 이은 반(反)폭력 시민민주주의 저항운동이었다. 한강은 이 소설에서 끔찍하게 죽어간 망자들을 불러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가장 절박하고 내밀한 언어를 부여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뚜렷한 증언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5월 광주’를 겪은 이들이 단순 희생자가 아니라 가장 위대했던 항쟁의 주체였음을 은은하고도 당당하게 알려준다. 수많은 실록과 증언이 축적된 터에 한강은 항쟁의 주체들이 남긴 이러한 인간 존엄의 서사를 가장 고통스러운 언어, 어쩌면 고통마저 넘어선 언어로 들려주고 있다.


밀도와 침잠과 여백의 문장들

이러한 굵고 선명한 서사는 한강의 아름다운 문장에 실려 특유의 예술성을 생성한다. 한강의 문장은 독백이든, 대화든, 묘사나 서술이든, 그녀의 손가락과 심장에서 솟아 나온 물샐 틈 없는 목소리를 통해 촘촘하고 완벽하게 구축된다. 그 안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오고, 역사 현장과 그 너머의 소리가 동시에 울려오며, 고통과 위안과 울음과 회한이 함께 발견된다. 한강은 그들의 영혼에 부여한 목소리를 통해 이때를 가장 참혹하고 아름다운 날들로 재현한다. 한강의 언어를 통해 ‘5월 광주’는 양심이라는 보석이 불멸의 광휘를 만들어낸 눈부시고 눈물겨운 역사 현장으로 기록된 것이다.

한강의 문장은 종종 ‘시’에 근접해간다. 기록과 증언을 수행하다가도 나머지는 여백으로 돌리는 언어 방식은 한강 특유의 서사적 침잠을 낳는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시를 먼저 썼다. 학창시절 그녀는 언제나 잔잔하고 아름다운 필체로 원고지를 채워가던 예비시인이었다. 졸업을 하고 1993년 문학과 사회에 시가 당선되었고, 소설로는 그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었다. 그러니 습작 시절로 보나 등단 순서로 보나 ‘시인 한강’이 ‘소설가 한강’보다 먼저인 셈이다. 등단 20년 만에 펴낸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문학과지성사, 2013)는, 비록 자신의 무게중심을 소설 쪽에 내주었을지라도, ‘시인 한강’이 그녀의 존재론에 여전히 흐르고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그녀를 올려놓은 연작 채식주의자를 연상하게 해주는 시 「저녁 잎사귀」는 한강 언어의 이면에 ‘웅크림’과 ‘깊어짐’ 그리고 ‘캄캄함’과 ‘잠김’이 완강하게 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 캄캄한 침전(沈澱)과 응시의 힘으로 한강은 ‘아침’과 ‘볕 속’의 ‘다른 빛’으로 걸어갔다. 그 연장 선상에서 소년이 온다는 ‘다른 빛[光]’을 찾아 인간의 위대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마을[州]을 구축해낸 진정한 한강 문학의 개화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녀의 밀도와 침잠과 여백의 문장들이 낳은 성취일 것이다.


인간 존엄의 서사로 확장해가는 소설

그녀의 소설은 편재하는 폭력에 대한 증언과 그 대안적 사유로 충일하다. 여수의 사랑에서 채식주의자에 이르는 일상적 내면적 어둠으로부터, 검은 사슴에서 최근 출간한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는 공공 기억의 폭력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취재와 고증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소년이 온다는 그 가운데 우리의 공적 기억을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증언한 한강 문학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의 역사성을 살리면서도 작가는 폭력에 맞선 깨끗한 양심들이 이날을 ‘사태’가 아니라 학살에 맞선 ‘항쟁’의 날로 기억하게끔 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한강이 형상화한 기억의 윤리학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느끼게 되지 않는가. 작가는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었던 한낮의 잔인성을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으로 천천히 그러나 절박하게 복원해간 것이다.

야만의 시대가 남긴 끔찍하고 잔혹한 폭력성은 오래도록 사람들 뇌리에 혈흔처럼 남았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많은 이들의 내면에는 가장 어둑한 충격과 가장 빛나는 저항의 역사가 동시에 아로새겨지게 되었다. 광주항쟁 40주년을 넘어서고 있는 이즈음, 사건 장본인에게 국가장이라는 예우를 다 하는 배반의 계절을 처연하게 지나면서, 우리는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5월 광주’를 가장 빛나는 사회적, 윤리적 사건으로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이 인간 존엄의 보편적 서사로 확장해가는 순간을 목도하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소년이 온다는 폭력에 맞서 싸우다 패배했지만 굴하지 않았던 ‘인간 존엄의 서사’로 몸을 바꾸어간다. 동호가 목격하고 함께한 죽음들, 새 한 마리의 비상처럼 혼으로 떠나가는 사람들, 잔인성의 극점을 보여준 사람들, 그리고 그날 이후의 숱한 고통들을 울음 속으로 전하는 서사는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선 보편성으로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5월 광주’는 인간의 잔혹함과 위대함을 엇갈리게 보여주면서, 한강의 언어처럼, 우리를 더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그 숱한 죽음과 헌신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지금도 힘겨운 민주주의의 길을 가고 있다. 소년은, 저기 그렇게, 지금도 우리에게 오고 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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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평] 항쟁 주체의 언어로 살아나는 인간 존엄의 서사 - 한강 ‘소년이 온다’
    • 입력 2021-10-31 21:33:46
    • 수정2024-10-10 20:56:28
    취재K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열흘간 벌어진 학살과 항쟁의 기록을 담고 있다. 두루 알다시피, 우리의 공동체적 기억 속에서 ‘5월 광주’는 국가라는 괴물의 파국, 인간 잔혹성의 극점, 양심이라는 보석의 빛을 동시에 보여준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3․1운동과 4․19혁명을 정신사적 측면에서 이은 반(反)폭력 시민민주주의 저항운동이었다. 한강은 이 소설에서 끔찍하게 죽어간 망자들을 불러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가장 절박하고 내밀한 언어를 부여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뚜렷한 증언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5월 광주’를 겪은 이들이 단순 희생자가 아니라 가장 위대했던 항쟁의 주체였음을 은은하고도 당당하게 알려준다. 수많은 실록과 증언이 축적된 터에 한강은 항쟁의 주체들이 남긴 이러한 인간 존엄의 서사를 가장 고통스러운 언어, 어쩌면 고통마저 넘어선 언어로 들려주고 있다.


밀도와 침잠과 여백의 문장들

이러한 굵고 선명한 서사는 한강의 아름다운 문장에 실려 특유의 예술성을 생성한다. 한강의 문장은 독백이든, 대화든, 묘사나 서술이든, 그녀의 손가락과 심장에서 솟아 나온 물샐 틈 없는 목소리를 통해 촘촘하고 완벽하게 구축된다. 그 안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오고, 역사 현장과 그 너머의 소리가 동시에 울려오며, 고통과 위안과 울음과 회한이 함께 발견된다. 한강은 그들의 영혼에 부여한 목소리를 통해 이때를 가장 참혹하고 아름다운 날들로 재현한다. 한강의 언어를 통해 ‘5월 광주’는 양심이라는 보석이 불멸의 광휘를 만들어낸 눈부시고 눈물겨운 역사 현장으로 기록된 것이다.

한강의 문장은 종종 ‘시’에 근접해간다. 기록과 증언을 수행하다가도 나머지는 여백으로 돌리는 언어 방식은 한강 특유의 서사적 침잠을 낳는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시를 먼저 썼다. 학창시절 그녀는 언제나 잔잔하고 아름다운 필체로 원고지를 채워가던 예비시인이었다. 졸업을 하고 1993년 문학과 사회에 시가 당선되었고, 소설로는 그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었다. 그러니 습작 시절로 보나 등단 순서로 보나 ‘시인 한강’이 ‘소설가 한강’보다 먼저인 셈이다. 등단 20년 만에 펴낸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문학과지성사, 2013)는, 비록 자신의 무게중심을 소설 쪽에 내주었을지라도, ‘시인 한강’이 그녀의 존재론에 여전히 흐르고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그녀를 올려놓은 연작 채식주의자를 연상하게 해주는 시 「저녁 잎사귀」는 한강 언어의 이면에 ‘웅크림’과 ‘깊어짐’ 그리고 ‘캄캄함’과 ‘잠김’이 완강하게 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 캄캄한 침전(沈澱)과 응시의 힘으로 한강은 ‘아침’과 ‘볕 속’의 ‘다른 빛’으로 걸어갔다. 그 연장 선상에서 소년이 온다는 ‘다른 빛[光]’을 찾아 인간의 위대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마을[州]을 구축해낸 진정한 한강 문학의 개화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녀의 밀도와 침잠과 여백의 문장들이 낳은 성취일 것이다.


인간 존엄의 서사로 확장해가는 소설

그녀의 소설은 편재하는 폭력에 대한 증언과 그 대안적 사유로 충일하다. 여수의 사랑에서 채식주의자에 이르는 일상적 내면적 어둠으로부터, 검은 사슴에서 최근 출간한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는 공공 기억의 폭력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취재와 고증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소년이 온다는 그 가운데 우리의 공적 기억을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증언한 한강 문학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의 역사성을 살리면서도 작가는 폭력에 맞선 깨끗한 양심들이 이날을 ‘사태’가 아니라 학살에 맞선 ‘항쟁’의 날로 기억하게끔 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한강이 형상화한 기억의 윤리학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느끼게 되지 않는가. 작가는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었던 한낮의 잔인성을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으로 천천히 그러나 절박하게 복원해간 것이다.

야만의 시대가 남긴 끔찍하고 잔혹한 폭력성은 오래도록 사람들 뇌리에 혈흔처럼 남았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많은 이들의 내면에는 가장 어둑한 충격과 가장 빛나는 저항의 역사가 동시에 아로새겨지게 되었다. 광주항쟁 40주년을 넘어서고 있는 이즈음, 사건 장본인에게 국가장이라는 예우를 다 하는 배반의 계절을 처연하게 지나면서, 우리는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5월 광주’를 가장 빛나는 사회적, 윤리적 사건으로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이 인간 존엄의 보편적 서사로 확장해가는 순간을 목도하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소년이 온다는 폭력에 맞서 싸우다 패배했지만 굴하지 않았던 ‘인간 존엄의 서사’로 몸을 바꾸어간다. 동호가 목격하고 함께한 죽음들, 새 한 마리의 비상처럼 혼으로 떠나가는 사람들, 잔인성의 극점을 보여준 사람들, 그리고 그날 이후의 숱한 고통들을 울음 속으로 전하는 서사는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선 보편성으로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5월 광주’는 인간의 잔혹함과 위대함을 엇갈리게 보여주면서, 한강의 언어처럼, 우리를 더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그 숱한 죽음과 헌신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지금도 힘겨운 민주주의의 길을 가고 있다. 소년은, 저기 그렇게, 지금도 우리에게 오고 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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