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재앙이야”…트럼프 제재에 화웨이가 내놓은 대답은
입력 2024.12.03 (14:19)
수정 2024.12.0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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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리를 염탐합니다. 저는 그들의 장비가 미국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화웨이는 재앙입니다… 저는 그들을 '스파이웨이(spyway)'라고 부릅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2020년 8월 17일 FOX 인터뷰) |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재임 당시 '재앙'이라고 불렀던 중국 첨단기업 화웨이.
2019년 시작된 미국의 수출 통제 조치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최근 부활 조짐이 뚜렷합니다. 제재가 풀리지 않았는데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매출 성장을 기록 중입니다.
■"미국 안보에 위협"…2019년 트럼프가 전면 제재
미국 관료들은 화웨이가 중국의 스파이 행위를 돕고 있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중국과의 기술 주도권 싸움에서 화웨이를 첫 번째 전쟁터로 여겼다. ─크리스 밀러, <칩 워> |
1987년 인민해방군 출신 런정페이가 소형 통신장비를 팔며 시작한 화웨이는 2001년 미국 지사를 설립한 이래 끊임없이 미국 정부 및 기업과 부딪혔습니다. 미국은 화웨이가 기술을 빼앗고 데이터를 빼돌린다고 경계했습니다.
불편한 만남. (2017년 트럼프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시)
2010년대부터는 의회와 정부가 본격적으로 경고합니다. 2012년 미 하원은 화웨이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2018년 FBI와 CIA 수장은 중국이 해킹할 위험이 크다며 화웨이 장비를 써선 안 된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럼에도 주로 말뿐이던 경고를 제재로 바꿔 실행한 사람은,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었습니다.
넌 재앙이었어.
2019년 5월 미국은 화웨이와 계열사 70곳을 수출제한 목록에 올렸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특별 허가 없이는 화웨이에 수출할 수 없게 됐습니다. 화웨이는 구글 기능(플레이스토어와 G메일 등)을 빼고 스마트폰을 출시해야 했습니다. 인텔과 퀄컴은 노트북과 서버, 스마트폰용 반도체 공급을 끊었습니다.
다음 해에는 외국에서 생산된 반도체라도 미국 기술을 쓴 제품이라면 화웨이와 거래가 금지됐습니다. 곧바로 타이완 TSMC가 칩 공급을 중단했습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화웨이 5G 장비를 퇴출하기로 하고 우방국에도 같은 조치를 하자고 요구했습니다.
이미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고 있던 일본과 호주에 더해, 영국·프랑스 등이 동참했습니다. (한국은 민간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특정 기업에 대한, 이례적으로 강력한 조치였습니다.
5년 전의 내가 아냐 - 지난달 26일 베이징 번화가 왕푸징의 화웨이 매장.
■제재에도 실적 회복세…자체기술 스마트폰에 애국소비 열풍
화웨이의 매출은 2020년 정체되다 2021년 급감했습니다. 우선 스마트폰 매출이 반토막 났습니다. 갑작스레 닥쳐온 제재라는 파도는 그동안 화웨이가 쌓아온 방파제를 전부 무너뜨리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2023년, 매출은 회복세로 돌아섰습니다. 순이익이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과 같은 전자기기 매출이 전년 대비 17.3% 올랐습니다.
계속되는 제재에 반발한 중국인들의 애국 소비 열풍도 있었습니다만, 화웨이의 자체 칩을 탑재한 5G 스마트폰 '메이트 60' 시리즈가 좋은 성적을 낸 덕이었습니다. 메이트 60에는 화웨이 자회사가 자체 설계한 7나노 반도체가 사용된 거로 알려졌습니다.
화웨이 최신형 스마트폰 ‘메이트70 pro’ [출처 : 화웨이]
지난달 출시한 후속작 '메이트 70' 시리즈에는 6나노 반도체가 들어간 거로 알려졌습니다. 비록 미국 기술을 쓴 고급 반도체보다는 성능이 떨어질지라도 짧은 시간에 제재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자체 운영체제(훙멍)를 탑재해, 이젠 안드로이드 앱은 아예 설치되지 않습니다.
판매량은 목표치에 미달한다는 분석도 있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 자력으로 재기하겠다는 확실한 신호였습니다.
미국 견제에도 '본업'인 통신장비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31%)를 차지하는 상황도 화웨이의 믿을 구석입니다. (2위 에릭슨, 3위 노키아) 지난해에만 중국에서 310만 개의 5G 기지국을 설치했고, 중남미와 아프리카·동남아에서 선호도가 높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부문도 전년 대비 20% 넘게 성장했습니다.
화웨이의 올해 실적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3분기까지 매출액은 전년 동기대비 30% 올랐습니다.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적지만(630억 7천만 위안) 4분기 실적에 기대를 거는 눈치입니다.
■회복력 비결은 "연구개발"…제재 영향엔 침묵
화웨이의 역사는 지저분하고 그들 스스로도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화웨이는 최근 몇 년간 모방꾼에서 혁신가로 진화에 성공했다. ─야성 황, <중국 필패> |
회복력의 비결 가운데 하나는 압도적인 연구개발이었습니다.
한국 외교부 출입기자단은 지난주 상하이에 있는 화웨이 연구센터를 방문했습니다. 한중 관계가 회복되며 5년 만에 재개된 한중 언론인 교류 일정이었습니다. (상하이시는 화웨이 센터와 니오 전기차 등 첨단기업들을 주로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화웨이 관계자들은 미국 제재에 대한 언급은 극도로 꺼렸습니다. 특히 미국의 추가 제재를 유발할 수 있는 최신 반도체 설계와 제조 정보에는 함구했습니다. (화웨이는 최신형 스마트폰에 들어간 칩을 실제로 어디에서 설계하고 생산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반도체 문제는, 화웨이 사업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상하이 푸둥시 화웨이 연구개발센터 전경. 내부 촬영은 금지였습니다. (지난달 29일/외교부공동취재단)
대신 이들은 화웨이의 연구개발 역량을 크게 강조했습니다. 과장으로 들리진 않았습니다.
화웨이가 지난해 연구개발에 쓴 돈은 약 31조 원으로 매출의 23.4%였습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연구개발비가 23조 원으로 매출의 10.9%였는데, 매출 대비 비중으로는 화웨이가 2배 이상입니다.
취재진이 방문한 상해 연구센터에는 2만 명이 근무 중인데, 내년 초 상하이 서부 칭푸(青浦)에 짓는 새 연구센터로 이전한 이후에는 연구 인력을 3만 명으로 늘린다고 했습니다. 화웨이는 이런 연구센터를 서방을 비롯한 세계 80여 곳에 짓고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화웨이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제재를 받아 어려운 상황을 겪었지만 이후 수년간 "할 수 있는 일을 해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트럼프의 추가 제재 가능성에는 즉답하지 않는 대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거의 20년간 거액을 들여 기초 이론을 연구하는 과학자와, 노하우를 갖춘 전문가를 양성했다. 그들은 계속 과학의 '히말라야산'을 오르고 있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2023년 2월 기자간담회) |
화웨이는 이제 첨단 반도체 개발에도 본격 도전하는 단계입니다. 고성능 칩 제조에 반드시 필요한 첨단 노광장비 수입이 불가하니, 구형 레이저를 여러 번 쏘는 방식으로 비슷한 결과물을 내보겠다는 전략입니다. SCMP 보도에 따르면, 화웨이가 올 하반기 자사 AI칩(어센드 910C)을 중국 테크기업들에 샘플로 제공하면서 "엔비디아 주력 칩인 H100과 유사한 성능을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술력이나 생산 능력은 떨어지더라도, 중국 업체들이 미국 제재를 계기로 나름의 제조 공정 노하우를 쌓아가는 상황인 셈입니다.
‘과학의 히말라야산’, 그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나. [사진 : 브리태니커]
■"어떤 정책이 나오든, 중국은 반격할 것"…진짜 반격은 기술 자립?
중국 정부 관계자 역시 미국발 견제 조치의 '돌파구'를 찾겠다고 밝혔습니다.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 상무부 산하 국책 연구기관 간부는 트럼프의 선거 공약이 취임 이후 다소 조정돼 왔다며 일단 조치가 나온 후에 대응을 고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정책이 나오든 (중국은) 미국에 대응해 반격할 것입니다. 무역 전쟁에는 승자가 없습니다. ─취웨이시,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경제합작연구원 부원장(지난달 25일) |
'반격'은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중국 입장에선 미국산 수입보다 미국으로의 수출이 더 많기에 무역 보복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쩌면 '기술 자립'이야말로 미국에 대한 진짜 보복이 될 수 있습니다.
취웨이시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경제합작연구원 부원장. (지난달 25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 5년간 화웨이에 50억 달러(약 7조 원)를 지원했습니다. 화웨이 전체 연구개발비의 3%였습니다. 중국 공공기관은 조달 제도를 활용해 화웨이 제품을 다량 구매했습니다. 그 덕에 화웨이는 미국 제재에도 자금줄이 크게 마르지도 인재를 빼앗기지도 않았습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이 불공정 행위라는 미국을 향해, 취 부원장은 "미국이 자국 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중국보다 그 액수가 훨씬 크다"며 "자기들은 하면서 중국을 욕하는 이중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중국의 지원은 앞으로 더 늘어날 예정입니다. 화웨이 제재가 시작된 2019년 중국은 2기 반도체 투자 기금으로 5년간 8,166억 위안(약 153조 원)을 투자했고, 올해 시작된 3기 기금은 5년간 1조 5,000억 위안(약 281조 원)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중장기 투자로 첨단공정과 장비, 재료 분야에서 서구와의 기술 격차를 어떻게든 줄여보겠다는 목표입니다. 화웨이는 대표적인 수혜 기업이 될 전망입니다.
2019년 5월 트럼프 행정부가 제재를 발표하자, 화웨이 창립자 런정페이는 미국 시장을 단념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죽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의지한다…화웨이는 죽지 않는다. 결국 승리는 우리가 갖게 될 것이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립자(2019년 5월 미 제재 직후 중국 CCTV와의 인터뷰) |
우린 안 죽는다니까. - 런정페이 화웨이 창립자 [사진출처 : 화웨이]
제재는 분명 중국의 기술발전을 늦췄고 미국을 비롯한 한국도 이득을 봤습니다. 반면 제재는 또한 중국에 '깨달음의 순간'이 되었고, 중국의 기술 자립에 속도를 붙인 것도 사실입니다.
트럼프가 돌아오면 제재는 더 매서워질 거로 보입니다. 중국산 장비를 더 많이 뜯어내고, 수출 통제를 강화하며, 아시아와 유럽 우방국에 이전보다 강력한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시에 화웨이도 중국도 '학습효과'를 확실하게 얻은 상태입니다.
서로를 '재앙'으로 여기는 트럼프와 화웨이, 체급이 올라간 2차전의 결과를 세계는 주시하고 있습니다.
[외교부 공동취재단]
■참고자료
Miller, C. (2023). 칩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노정태, 번역). 부키.
황, 야성. (2024). 중국필패 (박누리, 번역). 생각의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김현수. (2024, 3월 29일). 미중 무역분쟁 이후 화웨이의 변화와 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오종혁. (2024, 7월 3일). 중국 제3기 반도체 투자기금의 특징 및 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왕휘. (2023, 12월 15일). 미국 대중 반도체 제재는 얼마나 효과적인가?.
김봉기. (2024, 3월 29일). 화웨이, 계속된 美견제에도 여전히 '세계 통신장비 1위'.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economy/industry-company/2024/03/29/2E5WIGP26ZBF3CXW7OW6LNK764/
Lin, L., & Huang, R. (2024, August 13). Huawei Readies New Chip to Challenge Nvidia, Surmounting U.S. Sanctions. Wall Street Journal. https://www.wsj.com/tech/ai/huawei-readies-new-chip-to-challenge-nvidia-surmounting-u-s-sanctions-e108187a
Lin, L., Woo, S., & Huang, R. (2024, July 29). The U.S. Wanted to Knock Down Huawei. It’s Only Getting Stronger. Wall Street Journal. https://www.wsj.com/business/telecom/huawei-china-technology-us-sanctions-76462031
Huawei. (2019, May 27). Huawei is not going to be dead: Victory must be ours – Ren Zhengfei (Yash Mishra, Author). https://www.huaweicentral.com/huawei-is-not-going-to-be-dead-victory-must-be-ours-ren-zhengf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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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재앙이야”…트럼프 제재에 화웨이가 내놓은 대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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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12-03 14:19:33
- 수정2024-12-03 14:24:49
그들은 우리를 염탐합니다. 저는 그들의 장비가 미국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화웨이는 재앙입니다… 저는 그들을 '스파이웨이(spyway)'라고 부릅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2020년 8월 17일 FOX 인터뷰) |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재임 당시 '재앙'이라고 불렀던 중국 첨단기업 화웨이.
2019년 시작된 미국의 수출 통제 조치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최근 부활 조짐이 뚜렷합니다. 제재가 풀리지 않았는데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매출 성장을 기록 중입니다.
■"미국 안보에 위협"…2019년 트럼프가 전면 제재
미국 관료들은 화웨이가 중국의 스파이 행위를 돕고 있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중국과의 기술 주도권 싸움에서 화웨이를 첫 번째 전쟁터로 여겼다. ─크리스 밀러, <칩 워> |
1987년 인민해방군 출신 런정페이가 소형 통신장비를 팔며 시작한 화웨이는 2001년 미국 지사를 설립한 이래 끊임없이 미국 정부 및 기업과 부딪혔습니다. 미국은 화웨이가 기술을 빼앗고 데이터를 빼돌린다고 경계했습니다.
2010년대부터는 의회와 정부가 본격적으로 경고합니다. 2012년 미 하원은 화웨이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2018년 FBI와 CIA 수장은 중국이 해킹할 위험이 크다며 화웨이 장비를 써선 안 된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럼에도 주로 말뿐이던 경고를 제재로 바꿔 실행한 사람은,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었습니다.
2019년 5월 미국은 화웨이와 계열사 70곳을 수출제한 목록에 올렸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특별 허가 없이는 화웨이에 수출할 수 없게 됐습니다. 화웨이는 구글 기능(플레이스토어와 G메일 등)을 빼고 스마트폰을 출시해야 했습니다. 인텔과 퀄컴은 노트북과 서버, 스마트폰용 반도체 공급을 끊었습니다.
다음 해에는 외국에서 생산된 반도체라도 미국 기술을 쓴 제품이라면 화웨이와 거래가 금지됐습니다. 곧바로 타이완 TSMC가 칩 공급을 중단했습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화웨이 5G 장비를 퇴출하기로 하고 우방국에도 같은 조치를 하자고 요구했습니다.
이미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고 있던 일본과 호주에 더해, 영국·프랑스 등이 동참했습니다. (한국은 민간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특정 기업에 대한, 이례적으로 강력한 조치였습니다.
■제재에도 실적 회복세…자체기술 스마트폰에 애국소비 열풍
화웨이의 매출은 2020년 정체되다 2021년 급감했습니다. 우선 스마트폰 매출이 반토막 났습니다. 갑작스레 닥쳐온 제재라는 파도는 그동안 화웨이가 쌓아온 방파제를 전부 무너뜨리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2023년, 매출은 회복세로 돌아섰습니다. 순이익이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과 같은 전자기기 매출이 전년 대비 17.3% 올랐습니다.
계속되는 제재에 반발한 중국인들의 애국 소비 열풍도 있었습니다만, 화웨이의 자체 칩을 탑재한 5G 스마트폰 '메이트 60' 시리즈가 좋은 성적을 낸 덕이었습니다. 메이트 60에는 화웨이 자회사가 자체 설계한 7나노 반도체가 사용된 거로 알려졌습니다.
지난달 출시한 후속작 '메이트 70' 시리즈에는 6나노 반도체가 들어간 거로 알려졌습니다. 비록 미국 기술을 쓴 고급 반도체보다는 성능이 떨어질지라도 짧은 시간에 제재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자체 운영체제(훙멍)를 탑재해, 이젠 안드로이드 앱은 아예 설치되지 않습니다.
판매량은 목표치에 미달한다는 분석도 있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 자력으로 재기하겠다는 확실한 신호였습니다.
미국 견제에도 '본업'인 통신장비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31%)를 차지하는 상황도 화웨이의 믿을 구석입니다. (2위 에릭슨, 3위 노키아) 지난해에만 중국에서 310만 개의 5G 기지국을 설치했고, 중남미와 아프리카·동남아에서 선호도가 높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부문도 전년 대비 20% 넘게 성장했습니다.
화웨이의 올해 실적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3분기까지 매출액은 전년 동기대비 30% 올랐습니다.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적지만(630억 7천만 위안) 4분기 실적에 기대를 거는 눈치입니다.
■회복력 비결은 "연구개발"…제재 영향엔 침묵
화웨이의 역사는 지저분하고 그들 스스로도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화웨이는 최근 몇 년간 모방꾼에서 혁신가로 진화에 성공했다. ─야성 황, <중국 필패> |
회복력의 비결 가운데 하나는 압도적인 연구개발이었습니다.
한국 외교부 출입기자단은 지난주 상하이에 있는 화웨이 연구센터를 방문했습니다. 한중 관계가 회복되며 5년 만에 재개된 한중 언론인 교류 일정이었습니다. (상하이시는 화웨이 센터와 니오 전기차 등 첨단기업들을 주로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화웨이 관계자들은 미국 제재에 대한 언급은 극도로 꺼렸습니다. 특히 미국의 추가 제재를 유발할 수 있는 최신 반도체 설계와 제조 정보에는 함구했습니다. (화웨이는 최신형 스마트폰에 들어간 칩을 실제로 어디에서 설계하고 생산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반도체 문제는, 화웨이 사업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이들은 화웨이의 연구개발 역량을 크게 강조했습니다. 과장으로 들리진 않았습니다.
화웨이가 지난해 연구개발에 쓴 돈은 약 31조 원으로 매출의 23.4%였습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연구개발비가 23조 원으로 매출의 10.9%였는데, 매출 대비 비중으로는 화웨이가 2배 이상입니다.
취재진이 방문한 상해 연구센터에는 2만 명이 근무 중인데, 내년 초 상하이 서부 칭푸(青浦)에 짓는 새 연구센터로 이전한 이후에는 연구 인력을 3만 명으로 늘린다고 했습니다. 화웨이는 이런 연구센터를 서방을 비롯한 세계 80여 곳에 짓고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화웨이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제재를 받아 어려운 상황을 겪었지만 이후 수년간 "할 수 있는 일을 해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트럼프의 추가 제재 가능성에는 즉답하지 않는 대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거의 20년간 거액을 들여 기초 이론을 연구하는 과학자와, 노하우를 갖춘 전문가를 양성했다. 그들은 계속 과학의 '히말라야산'을 오르고 있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2023년 2월 기자간담회) |
화웨이는 이제 첨단 반도체 개발에도 본격 도전하는 단계입니다. 고성능 칩 제조에 반드시 필요한 첨단 노광장비 수입이 불가하니, 구형 레이저를 여러 번 쏘는 방식으로 비슷한 결과물을 내보겠다는 전략입니다. SCMP 보도에 따르면, 화웨이가 올 하반기 자사 AI칩(어센드 910C)을 중국 테크기업들에 샘플로 제공하면서 "엔비디아 주력 칩인 H100과 유사한 성능을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술력이나 생산 능력은 떨어지더라도, 중국 업체들이 미국 제재를 계기로 나름의 제조 공정 노하우를 쌓아가는 상황인 셈입니다.
■"어떤 정책이 나오든, 중국은 반격할 것"…진짜 반격은 기술 자립?
중국 정부 관계자 역시 미국발 견제 조치의 '돌파구'를 찾겠다고 밝혔습니다.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 상무부 산하 국책 연구기관 간부는 트럼프의 선거 공약이 취임 이후 다소 조정돼 왔다며 일단 조치가 나온 후에 대응을 고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정책이 나오든 (중국은) 미국에 대응해 반격할 것입니다. 무역 전쟁에는 승자가 없습니다. ─취웨이시,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경제합작연구원 부원장(지난달 25일) |
'반격'은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중국 입장에선 미국산 수입보다 미국으로의 수출이 더 많기에 무역 보복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쩌면 '기술 자립'이야말로 미국에 대한 진짜 보복이 될 수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 5년간 화웨이에 50억 달러(약 7조 원)를 지원했습니다. 화웨이 전체 연구개발비의 3%였습니다. 중국 공공기관은 조달 제도를 활용해 화웨이 제품을 다량 구매했습니다. 그 덕에 화웨이는 미국 제재에도 자금줄이 크게 마르지도 인재를 빼앗기지도 않았습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이 불공정 행위라는 미국을 향해, 취 부원장은 "미국이 자국 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중국보다 그 액수가 훨씬 크다"며 "자기들은 하면서 중국을 욕하는 이중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중국의 지원은 앞으로 더 늘어날 예정입니다. 화웨이 제재가 시작된 2019년 중국은 2기 반도체 투자 기금으로 5년간 8,166억 위안(약 153조 원)을 투자했고, 올해 시작된 3기 기금은 5년간 1조 5,000억 위안(약 281조 원)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중장기 투자로 첨단공정과 장비, 재료 분야에서 서구와의 기술 격차를 어떻게든 줄여보겠다는 목표입니다. 화웨이는 대표적인 수혜 기업이 될 전망입니다.
2019년 5월 트럼프 행정부가 제재를 발표하자, 화웨이 창립자 런정페이는 미국 시장을 단념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죽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의지한다…화웨이는 죽지 않는다. 결국 승리는 우리가 갖게 될 것이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립자(2019년 5월 미 제재 직후 중국 CCTV와의 인터뷰) |
제재는 분명 중국의 기술발전을 늦췄고 미국을 비롯한 한국도 이득을 봤습니다. 반면 제재는 또한 중국에 '깨달음의 순간'이 되었고, 중국의 기술 자립에 속도를 붙인 것도 사실입니다.
트럼프가 돌아오면 제재는 더 매서워질 거로 보입니다. 중국산 장비를 더 많이 뜯어내고, 수출 통제를 강화하며, 아시아와 유럽 우방국에 이전보다 강력한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시에 화웨이도 중국도 '학습효과'를 확실하게 얻은 상태입니다.
서로를 '재앙'으로 여기는 트럼프와 화웨이, 체급이 올라간 2차전의 결과를 세계는 주시하고 있습니다.
[외교부 공동취재단]
■참고자료
Miller, C. (2023). 칩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노정태, 번역). 부키.
황, 야성. (2024). 중국필패 (박누리, 번역). 생각의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김현수. (2024, 3월 29일). 미중 무역분쟁 이후 화웨이의 변화와 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오종혁. (2024, 7월 3일). 중국 제3기 반도체 투자기금의 특징 및 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왕휘. (2023, 12월 15일). 미국 대중 반도체 제재는 얼마나 효과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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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 기자 ne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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