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납치당했어”…美 유학 간 딸의 전화는 보이스피싱

입력 2024.03.19 (08:18) 수정 2024.03.1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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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게티이미지

제주에 '한 달 살기'를 하러 온 박 모 씨·정 모 씨 부부. 평화롭게 흘러가던 제주에서의 일상은 주말을 앞둔 어느 금요일 밤, 악몽으로 뒤바뀌는 듯 했습니다.

지난 15일 밤 9시 5분쯤, 아내 정 씨의 휴대전화로 '보이스톡'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 중인 딸의 전화였습니다.

"엄마, 나 납치당했어. 감금됐어." 딸의 목소리였습니다.

곧이어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전화를 건네받은 이 남성은 "현금 천만 원 이상을 보내지 않으면 딸을 해치겠다"며 정 씨를 협박했습니다.

협박범은 이 같은 통화 내용을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 박 씨의 휴대전화 전원도 끄라고 지시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박 씨는 휴대전화 전원을 끄기 전, 다급히 경찰에 신고한 뒤였습니다.

■ "딸아이 납치" 112신고 후 꺼진 전화기…경찰, '피싱 범죄' 직감

'미국에서 유학 중인 딸이 납치됐다'는 협박을 받았다는 중년 부부의 신고가 112상황실에 들어오자 경찰은 곧바로 '코드0(매뉴얼 중 위급사항 최고 단계)'를 발령했습니다.

신고 지역 관할인 서귀포경찰서 안덕파출소에서 당시 야간 근무를 하던 순찰1팀이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습니다. 그런데 신고자의 휴대전화 전원이 웬일인지 꺼져 있었습니다.

경찰은 112신고 직후 신고자의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는 것을 보고, 이 신고자가 최근 빈발하는 피싱(Phishing, 개인정보를 탈취해 돈을 빼돌리는 사기) 범죄 수법에 휘말린 것을 직감했습니다.

게티이미지게티이미지

신고자를 찾기 위해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하는 것과 동시에, 서귀포경찰서 형사팀도 통신 수사에 나섰습니다. 통신사 기지국 위치 값을 토대로 신고가 이뤄진 지역 주변을 맴돌며 '사이렌'을 왱왱 울린 끝에, 안덕파출소 경찰관들은 신고 접수 20분 만에 박 씨 부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신고자 부부를 만난 경찰은 우선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며 사기범에게 송금하려던 시도를 막았습니다.

■ "미국에 있는 딸, 비행기 탈 시간"…영사관·현지 경찰 공조로 확인

딸이 납치돼 어딘지도 모를 곳에 감금되어 있다는 청천벽력같은 전화에 큰 충격을 받은 부부는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부부는 "딸이 학교 행사 일정으로, 낮 12시 30분에 시카고에서 타이완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부부의 딸 신변을 확인하기 위해, 시카고 주재 대한민국 총영사관과 워싱턴 주재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미국 시카고 오헤어국제공항. 게티이미지미국 시카고 오헤어국제공항. 게티이미지

대한민국 서울과 미국 시카고의 시차는 14시간. 제주에서 미국 현지에 연락을 시도하기 시작한 때는 밤 9시 30분쯤으로, 시카고 현지 시각으로 오전 7시 30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서귀포경찰서의 '납치 의심' 신고를 전달받은 주시카고 총영사관도 즉시 현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시카고 경찰과 공항경찰대의 공조로, 신고자 부부는 딸이 예정대로 무사히 비행기에 올랐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납치 협박' 전화금융사기 범죄로 자칫 수천만 원대 피해를 볼 뻔했던 상황을, 경찰 신고 접수 2시간여 만에 막아낸 순간이었습니다.

박 씨 부부는 다음 날 이른 아침, 타이완에 도착한 딸과 통화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게티이미지게티이미지

정 씨의 보이스톡으로 걸려온 반가운 딸의 전화는, 사기범 일당이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만든 허위 목소리였습니다. 어디선가 유출된 개인정보를 악용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사칭한 뒤, '가짜 목소리'로 전화를 건 것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저장된 가족, 지인의 전화번호나 SNS 계정으로 '납치 협박' 등 전화가 오면,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실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등 보이스피싱을 의심해봐야 한다"며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특히, 문자메시지로 받은 의심스러운 인터넷 주소(URL)는 절대, 열지 말아야 합니다. 휴대전화에 원격 조종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한 뒤, 스마트폰에서 탈취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감쪽같이 속이며 입금을 유도하는 이 같은 보이스피싱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경찰에 대한 인식 바뀐 사건…범죄 대응하는 노력에 경의"

한편 신고자 박 씨는 다음 날 제주경찰청 홈페이지 '칭찬합니다' 게시판에 글을 올려, 이번 사건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준 경찰관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박 씨는 "경찰의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대응,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신념이 우리 가족을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로부터 지켜주었다"며 "범죄에 대응해 나가려는 경찰의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위급한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만 해도 경찰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지만, 이번 일로 그 마음이 바뀌게 됐다"고 썼습니다.

"현장에서 뛰고 계시는 모든 경찰, 경찰 관계자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건강히 국민을 잘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감사드립니다."

지난 15일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를 겪을 뻔한 박 모 씨가 사건 처리를 맡았던 경찰에 감사의 뜻을 남긴 글.지난 15일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를 겪을 뻔한 박 모 씨가 사건 처리를 맡았던 경찰에 감사의 뜻을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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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한 달 살기'를 하러 온 박 모 씨·정 모 씨 부부. 평화롭게 흘러가던 제주에서의 일상은 주말을 앞둔 어느 금요일 밤, 악몽으로 뒤바뀌는 듯 했습니다.

지난 15일 밤 9시 5분쯤, 아내 정 씨의 휴대전화로 '보이스톡'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 중인 딸의 전화였습니다.

"엄마, 나 납치당했어. 감금됐어." 딸의 목소리였습니다.

곧이어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전화를 건네받은 이 남성은 "현금 천만 원 이상을 보내지 않으면 딸을 해치겠다"며 정 씨를 협박했습니다.

협박범은 이 같은 통화 내용을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 박 씨의 휴대전화 전원도 끄라고 지시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박 씨는 휴대전화 전원을 끄기 전, 다급히 경찰에 신고한 뒤였습니다.

■ "딸아이 납치" 112신고 후 꺼진 전화기…경찰, '피싱 범죄' 직감

'미국에서 유학 중인 딸이 납치됐다'는 협박을 받았다는 중년 부부의 신고가 112상황실에 들어오자 경찰은 곧바로 '코드0(매뉴얼 중 위급사항 최고 단계)'를 발령했습니다.

신고 지역 관할인 서귀포경찰서 안덕파출소에서 당시 야간 근무를 하던 순찰1팀이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습니다. 그런데 신고자의 휴대전화 전원이 웬일인지 꺼져 있었습니다.

경찰은 112신고 직후 신고자의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는 것을 보고, 이 신고자가 최근 빈발하는 피싱(Phishing, 개인정보를 탈취해 돈을 빼돌리는 사기) 범죄 수법에 휘말린 것을 직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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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자를 찾기 위해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하는 것과 동시에, 서귀포경찰서 형사팀도 통신 수사에 나섰습니다. 통신사 기지국 위치 값을 토대로 신고가 이뤄진 지역 주변을 맴돌며 '사이렌'을 왱왱 울린 끝에, 안덕파출소 경찰관들은 신고 접수 20분 만에 박 씨 부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신고자 부부를 만난 경찰은 우선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며 사기범에게 송금하려던 시도를 막았습니다.

■ "미국에 있는 딸, 비행기 탈 시간"…영사관·현지 경찰 공조로 확인

딸이 납치돼 어딘지도 모를 곳에 감금되어 있다는 청천벽력같은 전화에 큰 충격을 받은 부부는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부부는 "딸이 학교 행사 일정으로, 낮 12시 30분에 시카고에서 타이완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부부의 딸 신변을 확인하기 위해, 시카고 주재 대한민국 총영사관과 워싱턴 주재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미국 시카고 오헤어국제공항. 게티이미지
대한민국 서울과 미국 시카고의 시차는 14시간. 제주에서 미국 현지에 연락을 시도하기 시작한 때는 밤 9시 30분쯤으로, 시카고 현지 시각으로 오전 7시 30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서귀포경찰서의 '납치 의심' 신고를 전달받은 주시카고 총영사관도 즉시 현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시카고 경찰과 공항경찰대의 공조로, 신고자 부부는 딸이 예정대로 무사히 비행기에 올랐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납치 협박' 전화금융사기 범죄로 자칫 수천만 원대 피해를 볼 뻔했던 상황을, 경찰 신고 접수 2시간여 만에 막아낸 순간이었습니다.

박 씨 부부는 다음 날 이른 아침, 타이완에 도착한 딸과 통화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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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씨의 보이스톡으로 걸려온 반가운 딸의 전화는, 사기범 일당이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만든 허위 목소리였습니다. 어디선가 유출된 개인정보를 악용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사칭한 뒤, '가짜 목소리'로 전화를 건 것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저장된 가족, 지인의 전화번호나 SNS 계정으로 '납치 협박' 등 전화가 오면,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실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등 보이스피싱을 의심해봐야 한다"며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특히, 문자메시지로 받은 의심스러운 인터넷 주소(URL)는 절대, 열지 말아야 합니다. 휴대전화에 원격 조종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한 뒤, 스마트폰에서 탈취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감쪽같이 속이며 입금을 유도하는 이 같은 보이스피싱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경찰에 대한 인식 바뀐 사건…범죄 대응하는 노력에 경의"

한편 신고자 박 씨는 다음 날 제주경찰청 홈페이지 '칭찬합니다' 게시판에 글을 올려, 이번 사건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준 경찰관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박 씨는 "경찰의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대응,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신념이 우리 가족을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로부터 지켜주었다"며 "범죄에 대응해 나가려는 경찰의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위급한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만 해도 경찰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지만, 이번 일로 그 마음이 바뀌게 됐다"고 썼습니다.

"현장에서 뛰고 계시는 모든 경찰, 경찰 관계자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건강히 국민을 잘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감사드립니다."

지난 15일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를 겪을 뻔한 박 모 씨가 사건 처리를 맡았던 경찰에 감사의 뜻을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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