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게스트하우스 주소 빌려 제2공항 부지 사들인 ‘가짜 농부들’

입력 2021.05.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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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최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전국적인 공분이 일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주도는 제주 제2공항 건설과 같은 대규모 SOC 사업을 추진해왔지만 농지 투기는 전혀 없었다"고 자부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KBS제주 탐사K 취재팀은 2015년, 제주 제2공항 예정지로 성산읍 일대를 발표한 시점을 앞두고 현지에서 이뤄진 토지 거래 실태를 추적해 부적정한 사례와 이를 행정당국에서 걸러내지 못한 이유를 취재했습니다.


■ 주소지는 제주, 사는 곳은 다른 지역

이달 중순 취재진이 찾은 곳은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의 한 농지. 농사를 지은 흔적보다는 가설 건축물이 눈에 띄었고, 가설 건축물 바깥엔 폐기물이 잔뜩 쌓여있었습니다.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 사람(토지주)이 땅을 산 뒤 다른 사람한테 빌려줘 놓곤 이렇게 관리하고 있다"며 "가건물 안에 중국 사람들도 살다보니 보기가 굉장히 안 좋다"고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가설물 안에 들어서자 목재 작업장이 나오고, 차양으로 가려진 곳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농지에 어떻게 이런 작업장이 들어서게 된 걸까요? 작업장 운영자에게 물었습니다. 이 운영자는 "토지주가 육지(다른 지역)에 살다 보니 관리를 부탁받은 건데, 농지를 관리해주는 대신 이곳(가건물)을 빌려 쓰고 있다"며 "땅이 여러 군데 있는데 젊은 사람이 어떻게 다 농사를 짓겠냐"고 말했습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의 한 농지 위에 가설 건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의 한 농지 위에 가설 건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농사도 짓지 않는 토지주는 어떻게 농지를 사들인 걸까요? 땅 주인을 찾기 위해 등기부등본을 들여다봤습니다.

토지주가 땅을 산 2015년 9월 주소석 달 뒤 옮긴 주소가 눈에 띄었는데, 모두 제주 서귀포시성산읍이었습니다.

토지 취득 당시 주소를 찾아가 봤더니 인근 마을의 한 게스트하우스가 나왔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에게 땅 주인이 사느냐고 묻자 "외지인일 경우 농지 취득이 어렵다 보니 지인의 부탁을 받고 주소를 빌려준 적 있다"고 말했습니다.

토지주가 땅을 사고 석 달 뒤 옮겨간 주소지로 가봤더니 성산읍 온평리의 한 농지가 나왔습니다.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2015년 9월 이 땅을 함께 산 또 다른 두 명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익숙한 주소가 눈에 띄었습니다. 앞서 주소를 빌려줬다던 게스트하우스인 겁니다. 이 토지주 역시 주소를 빌려 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취재 결과, 이들이 주소를 제주로 옮긴 뒤 산 땅은 성산읍 일대 17필지. 면적은 축구장 7개 넓이인 5만 2천여㎡로, 한 필지를 제외하고 모두 농지였습니다.

■ "나는 농업인 입니다"…알고 보니 '엔지니어링 업체 대표'


대체 누구길래 이 많은 농지를 사들인 걸까요?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사람은 경기도의 한 엔지니어링업체 대표로 확인됐습니다. 불법 가건물이 설치된 땅 주인은 이 대표의 배우자이고, 공동 매입자는 또 다른 엔지니어링업체 대표였습니다.

농지를 산 이들, 농사는 제대로 짓고 있는 걸까요?

취재진은 농지에 드나드는 지역 주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주민은 "토지주와 아는 사이라서 무상으로 농지를 빌려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토지주들은 농지 취득 시 제출해야 하는 '농업경영계획서'에 본인들 직업을 '농업인'으로, 무와 채소 등 작물을 직접 경작하겠다고 기재했습니다.

최근 땅 일부를 팔려고 내놨다며 사실상 투기를 의심하는 소리도 나왔습니다.

땅 인근 주민은 "나무 몇 개 심어놓고 이거 다 투기 아니냐"며 "엊그제 40만 원인가? 35만 원에 사놓고 이제 200만 원 달라고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확인 결과, 주민이 지목한 땅의 ㎡당 개별공시지가는 취득 당시 1만 7천 원에서 현재 10만 7천 원으로 6배 넘게 뛴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취재 과정에서는 이들이 사들인 인근 표선면의 농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5년 9월 가족 명의로 매입했다가 2년 뒤 농사가 아닌 타운하우스 사업을 벌였습니다.

고창덕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제주지부장은 "제주도 조례에 의하면 농지를 취득하고 곧바로 개발행위가 제한되는데, 1년간 농사를 짓고 나면 건축허가 신청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해당 토지주들은 "이전부터 제주 이주를 생각해왔고, 노후에 지인들과 살기 위해 타운하우스를 지은 것"이라며 "자주 제주에 가서 농사짓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 숙박업소 주소로 농지 취득한 '영농경력 10년' 토지주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의 한 습지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 잡은 땅. 이 땅은 2015년 11월 제2공항 예정지 발표 전 다른 지역에 사는 3명이 사들였습니다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의 한 습지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 잡은 땅. 이 땅은 2015년 11월 제2공항 예정지 발표 전 다른 지역에 사는 3명이 사들였습니다

취재진은 서귀포시 산읍 오조리 습지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 잡은 땅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임야지만, 2015년 11월 토지주 3명이 이 땅을 샀을 당시에는 농지였던 곳입니다. 등기부등본에는 토지주 3명의 당시 주소가 성산읍 오조리와 신산리, 온평리로 나왔는데, 이들 모두 농업경영계획서에 영농 경력 10년으로, 직접 농사를 짓겠다고 적었습니다.

이들 중 한 토지주의 토지 매입 당시 주소를 찾아가 봤습니다. 도착한 곳은 한 타운하우스, 그런데 아무도 살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분양 사무소에 주소를 대자 "에어비앤비로 예약하셨냐"고 물었습니다. 숙박업소로 이용되는 건데, 토지주는 과거 잠시 이곳에 묵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른 토지주의 토지 매입 당시 주소지인 신산리의 한 건물을 찾아가 봤습니다. 해당 주소지 거주자는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토지를 구입할 즈음 한 달 남짓 이곳을 빌려 쓴 토지주는 이듬해 인근 주택을 매입해 주소를 옮겼는데, 실제 거주하진 않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또 다른 토지주의 주소지는 게스트하우스였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는 "그분은 지금 이곳에 살지 않는다"며 "원래 여기(제주) 잘 안 계시는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 대지는 부동산매매업 법인 명의로, 농지는 개인 명의로


실제 제주에 살지 않는 이들이 왜 함께 농지를 매입한 걸까요?

3명이 함께 매입한 또 다른 농지를 찾았습니다.

바로 옆, 공사가 한창인 주택과 근린생활시설이 눈에 띄었습니다. 울산과 대구에 주소를 두고 부동산 매매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 3곳이 공동소유 였습니다. 그런데 이 법인 대표들, 공교롭게도 농업계획서에 영농경력 10년의 농업인이라고 밝힌 농지 토지주 3명과 일치했습니다.

농지법상 일반 법인은 농지를 취득할 수 없다 보니, 대지는 법인 명의농지는 개인 명의로 사들인 겁니다.

농지의 경우 1년 동안 직접 농사를 지으면, 건축신청 등이 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대지처럼 개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일대에 사들인 땅은 대지까지 포함해 모두 17필지로, 축구장 10개 넓이인 약 7만㎡인데, 절반 이상이 농지였습니다.

토지주들은 "당시 17개 필지가 한꺼번에 매물로 나와 노후에 살 목적으로 모두 매입했다"면서 "셋 중 한 명이 부동산법인과 별개로 설립한 농업회사법인에서 직접 농사짓고 있고, 향후 관광농원 등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 "위장전입 외지인 소유 농지 더 있을 듯"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

지난 2015년 5월 강화된 농지관리 방침을 발표하면서 외지인의 농지 취득을 꼼꼼하게 심사하겠다고 밝힌 제주도.

제2공항 후보지가 발표된 2015년 성산읍에서 이뤄진 토지 거래 가운데 외지인의 비율을 64%로 파악했는데, 위장전입까지 고려하면 파악하지 못한 외지인 소유 농지는 더 있을 거 란 목소리가 나옵니다.

현길호 제주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장은 "위장 전입하는 분들이 주소지를 작성하면 제주도 주소지에 살고 있구나지, 이 주소지가 과연 펜션인지 게스트하우스인지 누구 남의 집인지 친척 집인지 모르는 게 사실"이라며 관리 방침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상 주소를 옮기는 방법만으로 가짜 농부들에게 넘어간 제주의 농지들. 다음 편에서는 농부의 탈을 쓴 일부 농업회사법인의 실태와 가짜 농부를 걸러내지 못하는 제도의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취재기자 김가람 안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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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사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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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 사람(토지주)이 땅을 산 뒤 다른 사람한테 빌려줘 놓곤 이렇게 관리하고 있다"며 "가건물 안에 중국 사람들도 살다보니 보기가 굉장히 안 좋다"고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가설물 안에 들어서자 목재 작업장이 나오고, 차양으로 가려진 곳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농지에 어떻게 이런 작업장이 들어서게 된 걸까요? 작업장 운영자에게 물었습니다. 이 운영자는 "토지주가 육지(다른 지역)에 살다 보니 관리를 부탁받은 건데, 농지를 관리해주는 대신 이곳(가건물)을 빌려 쓰고 있다"며 "땅이 여러 군데 있는데 젊은 사람이 어떻게 다 농사를 짓겠냐"고 말했습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의 한 농지 위에 가설 건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농사도 짓지 않는 토지주는 어떻게 농지를 사들인 걸까요? 땅 주인을 찾기 위해 등기부등본을 들여다봤습니다.

토지주가 땅을 산 2015년 9월 주소석 달 뒤 옮긴 주소가 눈에 띄었는데, 모두 제주 서귀포시성산읍이었습니다.

토지 취득 당시 주소를 찾아가 봤더니 인근 마을의 한 게스트하우스가 나왔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에게 땅 주인이 사느냐고 묻자 "외지인일 경우 농지 취득이 어렵다 보니 지인의 부탁을 받고 주소를 빌려준 적 있다"고 말했습니다.

토지주가 땅을 사고 석 달 뒤 옮겨간 주소지로 가봤더니 성산읍 온평리의 한 농지가 나왔습니다.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2015년 9월 이 땅을 함께 산 또 다른 두 명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익숙한 주소가 눈에 띄었습니다. 앞서 주소를 빌려줬다던 게스트하우스인 겁니다. 이 토지주 역시 주소를 빌려 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취재 결과, 이들이 주소를 제주로 옮긴 뒤 산 땅은 성산읍 일대 17필지. 면적은 축구장 7개 넓이인 5만 2천여㎡로, 한 필지를 제외하고 모두 농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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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를 산 이들, 농사는 제대로 짓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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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땅 일부를 팔려고 내놨다며 사실상 투기를 의심하는 소리도 나왔습니다.

땅 인근 주민은 "나무 몇 개 심어놓고 이거 다 투기 아니냐"며 "엊그제 40만 원인가? 35만 원에 사놓고 이제 200만 원 달라고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확인 결과, 주민이 지목한 땅의 ㎡당 개별공시지가는 취득 당시 1만 7천 원에서 현재 10만 7천 원으로 6배 넘게 뛴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취재 과정에서는 이들이 사들인 인근 표선면의 농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5년 9월 가족 명의로 매입했다가 2년 뒤 농사가 아닌 타운하우스 사업을 벌였습니다.

고창덕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제주지부장은 "제주도 조례에 의하면 농지를 취득하고 곧바로 개발행위가 제한되는데, 1년간 농사를 짓고 나면 건축허가 신청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해당 토지주들은 "이전부터 제주 이주를 생각해왔고, 노후에 지인들과 살기 위해 타운하우스를 지은 것"이라며 "자주 제주에 가서 농사짓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 숙박업소 주소로 농지 취득한 '영농경력 10년' 토지주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의 한 습지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 잡은 땅. 이 땅은 2015년 11월 제2공항 예정지 발표 전 다른 지역에 사는 3명이 사들였습니다
취재진은 서귀포시 산읍 오조리 습지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 잡은 땅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임야지만, 2015년 11월 토지주 3명이 이 땅을 샀을 당시에는 농지였던 곳입니다. 등기부등본에는 토지주 3명의 당시 주소가 성산읍 오조리와 신산리, 온평리로 나왔는데, 이들 모두 농업경영계획서에 영농 경력 10년으로, 직접 농사를 짓겠다고 적었습니다.

이들 중 한 토지주의 토지 매입 당시 주소를 찾아가 봤습니다. 도착한 곳은 한 타운하우스, 그런데 아무도 살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분양 사무소에 주소를 대자 "에어비앤비로 예약하셨냐"고 물었습니다. 숙박업소로 이용되는 건데, 토지주는 과거 잠시 이곳에 묵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른 토지주의 토지 매입 당시 주소지인 신산리의 한 건물을 찾아가 봤습니다. 해당 주소지 거주자는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토지를 구입할 즈음 한 달 남짓 이곳을 빌려 쓴 토지주는 이듬해 인근 주택을 매입해 주소를 옮겼는데, 실제 거주하진 않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또 다른 토지주의 주소지는 게스트하우스였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는 "그분은 지금 이곳에 살지 않는다"며 "원래 여기(제주) 잘 안 계시는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 대지는 부동산매매업 법인 명의로, 농지는 개인 명의로


실제 제주에 살지 않는 이들이 왜 함께 농지를 매입한 걸까요?

3명이 함께 매입한 또 다른 농지를 찾았습니다.

바로 옆, 공사가 한창인 주택과 근린생활시설이 눈에 띄었습니다. 울산과 대구에 주소를 두고 부동산 매매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 3곳이 공동소유 였습니다. 그런데 이 법인 대표들, 공교롭게도 농업계획서에 영농경력 10년의 농업인이라고 밝힌 농지 토지주 3명과 일치했습니다.

농지법상 일반 법인은 농지를 취득할 수 없다 보니, 대지는 법인 명의농지는 개인 명의로 사들인 겁니다.

농지의 경우 1년 동안 직접 농사를 지으면, 건축신청 등이 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대지처럼 개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일대에 사들인 땅은 대지까지 포함해 모두 17필지로, 축구장 10개 넓이인 약 7만㎡인데, 절반 이상이 농지였습니다.

토지주들은 "당시 17개 필지가 한꺼번에 매물로 나와 노후에 살 목적으로 모두 매입했다"면서 "셋 중 한 명이 부동산법인과 별개로 설립한 농업회사법인에서 직접 농사짓고 있고, 향후 관광농원 등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 "위장전입 외지인 소유 농지 더 있을 듯"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
지난 2015년 5월 강화된 농지관리 방침을 발표하면서 외지인의 농지 취득을 꼼꼼하게 심사하겠다고 밝힌 제주도.

제2공항 후보지가 발표된 2015년 성산읍에서 이뤄진 토지 거래 가운데 외지인의 비율을 64%로 파악했는데, 위장전입까지 고려하면 파악하지 못한 외지인 소유 농지는 더 있을 거 란 목소리가 나옵니다.

현길호 제주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장은 "위장 전입하는 분들이 주소지를 작성하면 제주도 주소지에 살고 있구나지, 이 주소지가 과연 펜션인지 게스트하우스인지 누구 남의 집인지 친척 집인지 모르는 게 사실"이라며 관리 방침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상 주소를 옮기는 방법만으로 가짜 농부들에게 넘어간 제주의 농지들. 다음 편에서는 농부의 탈을 쓴 일부 농업회사법인의 실태와 가짜 농부를 걸러내지 못하는 제도의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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