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이 이걸 푼다고?…‘선 넘은’ 선행학습 왜 계속되나

입력 2025.03.1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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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about Socrates and answer the following question.
Do we always have to do what we are told to do, even if we don't want to?
-대치동 OOO 어학원 초등학교 1학년 교재 중

서울 강남 대치동의 한 영어학원 초등학교 1학년 교재에 나오는 에세이 주제입니다. 수업 시간에 배운 서양사 내용을 바탕으로 영어 에세이를 쓰는 것입니다. 만 7세인 초등학교 1학년이 영어로 글을 쓰다니, 이 학원만의 특별한 교습법이 있는 걸까요?

비결은 딴 데 있습니다. 이 어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미 비슷한 난이도의 입학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1시간가량 주어진 주제에 맞춰 영어 에세이를 쓰고 원어민 선생님과 면접을 보는, 소위 '7세 고시'라 불리는 시험입니다.

7세 고시를 통과하기 위해 5세에 영어학원 유치부(영어유치원)에 들어가야 하고, 그 영어유치원의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3살부터 유아부 어학원을 다닙니다.

이렇게 기저귀도 떼기 전부터 영어를 배우는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영어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고학년 때부터는 수학 선행에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초등 의대반' 등이 개설된 학원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이나 4학년에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초등학교 졸업 전 미적분 과정까지 끝내는 학습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미취학 아동 절반이 사교육 참여…소득별 격차 최대 6배

사교육 시작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정부가 어제(13일) 처음으로 전국 1만 3,2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아 사교육비 시험 조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6세 미만 미취학 영유아의 사교육 참여율은 47.6%.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 2천 원입니다.

사교육 참여율을 연령별로 보면 2세 이하만 24.6%였고, 3세 50.3%, 4세 68.9%, 5세 81.2% 등에 이르렀습니다.

가장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과목은 영어(41.4만 원)였습니다.

석 달 조사 기간 중 집계된 영유아 사교육비는 8,154억 원으로 연간 환산하면 3조 원이 훌쩍 넘습니다.

특히 '영어유치원'으로 일컬어지는 영어학원 유치부의 경우 1인당 월평균 비용이 154.5만 원으로 대학 등록금보다 훨씬 비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양정호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대치동이나 특정 지역 학부모만 영어유치원을 보낸다고 하기엔 이미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어렸을 때 사교육을 접한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사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면서 "공교육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법정 의무교육 대상이 아닌 영유아 시기 사교육이 늘면서 출발선부터 소득에 따른 교육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실제 월평균 소득이 800만 원 이상인 가구의 유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2만 2,000원으로 조사됐습니다. 반면 소득 300만 원 미만 가구는 4만 8,000원으로, 6배 넘게 차이 났습니다.

■ 과도한 선행 학습, 영유아 발달에 '부정적'…"학교 교육과정과 시험 간 괴리"

과도한 선행 학습, 특히 영유아 대상 학습이 오히려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합니다.

박은혜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지난 2023년 11월 열린 육아정책연구소 포럼에서 "유아기 과도한 사교육 참여가 정신건강과 정서, 뇌 발달에 부정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임동선 이화여대 언어병리학과 교수도 "유아기는 명시적 학습이 아닌 암묵적 학습을 통해 언어 습득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학부모들도 이런 점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 관련 정보를 나누는 한 포털 커뮤니티에는 연말, 연초마다 "4살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맞을까요?" 등의 글이 매일 올라옵니다.

어린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도 그저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을 뿐입니다. '극성 학부모'라고 비판하기 전에,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지도 살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대치동에서 10년 넘게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남기정 원장은 "학교 교육 과정과 시험 간의 괴리가 사교육 시장을 키운다"고 꼬집었습니다.

남기정 원장은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의 렉사일 지수( 미국 교육연구 기관이 개발한 읽기 능력 지수)를 분석하면 미국 초등학교 3학년 수준입니다. 그런데 수능 시험은 미국 고등학교 3학년 수준으로 나와요. 고등학교 입학 이후 2년 남짓 동안 미국 현지 아이들이 6년 이상 배우는 걸 익혀야 하는 거예요. 불가능하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단기간 학습 난이도가 갑자기 높아지다 보니 선행학습 없이는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난 2023년 정부는 수능 시험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 과도한 선행으로 이어지던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제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었던 2010~2012년에는 사교육비가 줄었는데 그 이후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며 문재인 정부가 사교육비 문제를 방치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 척결을 내걸고 '킬러 문항' 배제를 발표한 지 2년.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는 29.2조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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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살이 이걸 푼다고?…‘선 넘은’ 선행학습 왜 계속되나
    • 입력 2025-03-14 09: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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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about Socrates and answer the following question.
Do we always have to do what we are told to do, even if we don't want to?
-대치동 OOO 어학원 초등학교 1학년 교재 중

서울 강남 대치동의 한 영어학원 초등학교 1학년 교재에 나오는 에세이 주제입니다. 수업 시간에 배운 서양사 내용을 바탕으로 영어 에세이를 쓰는 것입니다. 만 7세인 초등학교 1학년이 영어로 글을 쓰다니, 이 학원만의 특별한 교습법이 있는 걸까요?

비결은 딴 데 있습니다. 이 어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미 비슷한 난이도의 입학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1시간가량 주어진 주제에 맞춰 영어 에세이를 쓰고 원어민 선생님과 면접을 보는, 소위 '7세 고시'라 불리는 시험입니다.

7세 고시를 통과하기 위해 5세에 영어학원 유치부(영어유치원)에 들어가야 하고, 그 영어유치원의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3살부터 유아부 어학원을 다닙니다.

이렇게 기저귀도 떼기 전부터 영어를 배우는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영어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고학년 때부터는 수학 선행에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초등 의대반' 등이 개설된 학원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이나 4학년에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초등학교 졸업 전 미적분 과정까지 끝내는 학습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미취학 아동 절반이 사교육 참여…소득별 격차 최대 6배

사교육 시작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정부가 어제(13일) 처음으로 전국 1만 3,2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아 사교육비 시험 조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6세 미만 미취학 영유아의 사교육 참여율은 47.6%.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 2천 원입니다.

사교육 참여율을 연령별로 보면 2세 이하만 24.6%였고, 3세 50.3%, 4세 68.9%, 5세 81.2% 등에 이르렀습니다.

가장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과목은 영어(41.4만 원)였습니다.

석 달 조사 기간 중 집계된 영유아 사교육비는 8,154억 원으로 연간 환산하면 3조 원이 훌쩍 넘습니다.

특히 '영어유치원'으로 일컬어지는 영어학원 유치부의 경우 1인당 월평균 비용이 154.5만 원으로 대학 등록금보다 훨씬 비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양정호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대치동이나 특정 지역 학부모만 영어유치원을 보낸다고 하기엔 이미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어렸을 때 사교육을 접한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사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면서 "공교육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법정 의무교육 대상이 아닌 영유아 시기 사교육이 늘면서 출발선부터 소득에 따른 교육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실제 월평균 소득이 800만 원 이상인 가구의 유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2만 2,000원으로 조사됐습니다. 반면 소득 300만 원 미만 가구는 4만 8,000원으로, 6배 넘게 차이 났습니다.

■ 과도한 선행 학습, 영유아 발달에 '부정적'…"학교 교육과정과 시험 간 괴리"

과도한 선행 학습, 특히 영유아 대상 학습이 오히려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합니다.

박은혜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지난 2023년 11월 열린 육아정책연구소 포럼에서 "유아기 과도한 사교육 참여가 정신건강과 정서, 뇌 발달에 부정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임동선 이화여대 언어병리학과 교수도 "유아기는 명시적 학습이 아닌 암묵적 학습을 통해 언어 습득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학부모들도 이런 점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 관련 정보를 나누는 한 포털 커뮤니티에는 연말, 연초마다 "4살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맞을까요?" 등의 글이 매일 올라옵니다.

어린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도 그저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을 뿐입니다. '극성 학부모'라고 비판하기 전에,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지도 살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대치동에서 10년 넘게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남기정 원장은 "학교 교육 과정과 시험 간의 괴리가 사교육 시장을 키운다"고 꼬집었습니다.

남기정 원장은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의 렉사일 지수( 미국 교육연구 기관이 개발한 읽기 능력 지수)를 분석하면 미국 초등학교 3학년 수준입니다. 그런데 수능 시험은 미국 고등학교 3학년 수준으로 나와요. 고등학교 입학 이후 2년 남짓 동안 미국 현지 아이들이 6년 이상 배우는 걸 익혀야 하는 거예요. 불가능하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단기간 학습 난이도가 갑자기 높아지다 보니 선행학습 없이는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난 2023년 정부는 수능 시험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 과도한 선행으로 이어지던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제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었던 2010~2012년에는 사교육비가 줄었는데 그 이후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며 문재인 정부가 사교육비 문제를 방치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 척결을 내걸고 '킬러 문항' 배제를 발표한 지 2년.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는 29.2조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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