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이장이 90대 노인 성폭행…“농촌이 더 취약”
입력 2025.02.23 (10:01)
수정 2025.02.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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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구미시의 한 농촌 마을.
이곳에서 홀로 살던 90대 여성이 지난 14일 오후 2시 반쯤, 70대 남성인 마을 이장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범행은 치매를 앓던 피해자를 위해 딸이 설치해 둔 집 안 CCTV에 고스란히 담겼고, 그 모습을 본 딸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제가 (전화해서) '당신 입 다물어. 내가 지금 카메라 제대로 봤으니까, 내가 지금 보고 있으니까 당신 지금 무슨 짓 했어! 내 엄마한테. 내가 지금 두 눈으로 다 봤으니 꼼짝말고 있어라…." - 피해자 딸 |
이장은 유유히 범행 현장을 떠났고, 5만 원권 6장을 피해자의 옷 주머니에 넣고 떠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장이 집을 떠나면서) 너무 여유롭게 있는 거예요. 안경을 고쳐 쓰고, 주머니에다가도 이렇게 손을 넣고, 정말 할 짓 다 하면서 유유히 나가더니 다시 와서 엄마한테 휴대폰을 가지고 오게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엄마 전화기로 전화가 와서 (이장이) '딸내미 내가 어찌하다 보니 그래 됐네. 좋은 게 좋은 거니 서로 동네 창피하게 하지 말자…." - 피해자 딸 |
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2시간여 만에 이장을 붙잡아 구속하고, 마을 노인들을 상대로 추가 범행 여부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범인은 잡혔지만, 사건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부 마을 주민들은 범행을 발견해 신고한 딸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등 2차 가해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마을 주민분이) '동네 인심도 흉흉해지고 외부에 동네 이미지가 뭐가 되느냐. 그러니 서로가 좋게 좋게 해서 합의를 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 - 피해자 딸 |
■5년간 노인 대상 성범죄만 4천여 건

"제 얘기가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보는 건 살아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노인 대상 성폭행을 다룬 영화 <69세> 중에서. |
흔히 성폭행 사건에서 '노인'은 쉽게 지워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실에서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60세 초과 노인 대상 성범죄는 2019년에 815건에서 2023년 949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사건이 있던 경북에서도 해마다 50건이 넘는 노인 대상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 아는 사람들인데…." 농촌 노인들은 성범죄에 더 취약
사건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요?
이전부터도 마을에서 이장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동네 흉흉하게 떠도는…. '나도 당했어, 나도 당했어', '저 사람이 그랬어'라는…. 이거를 마을에서 다 알고 있으면서…." - 피해자 딸 |
하지만, 동네가 좁고 인구가 적은 농촌은 특성상 신고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21년에 펴낸 연구보고서를 보면, 농촌의 성범죄 검거율은 75%로 도시의 84%보다 낮습니다.
주민들끼리 잘 알고, 폐쇄적인 '작은 사회'이다 보니 범죄가 일어나도 쉽게 은폐되기 마련입니다.
■농촌 노인 대상 성범죄 예방 교육도 필요
노인 대상 성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여성단체에서는 먼저 노인도 성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과, 노인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 확대를 말합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특히 농촌 같은 사회에서는 교육 시스템이 당연히 없고요. 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낮습니다. 교육이 모든 해결책은 아니지만,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은 특히나 노인 대상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 김예민 대구여성회 대표 |
여기에 더해 도시에 집중된 치안 인프라 강화도 필요합니다.
이번 사건도 딸이 설치한 CCTV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범행이 은폐될 수도 있었습니다.
도시에 사는 가족들이 확인할 수 있는 CCTV, 신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상벨 등 생활에서 쓸 수 있는 치안 인프라가 더 유용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신고해도)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면 신고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으니까, 지금과 같은 홈캠 설치에 대해서 정부가 예산을 지원한다든가…." - 김예민 대구여성회 대표 |
■"제가 이러는 이유는…."
70대 마을 이장이 90대 노인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은 다른 여러 언론에서도 보도됐습니다.
"엽기 사건이다", "마을 이장이 완전히 이상한 사람이다"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지만, 피해자 딸은 이것보다 한발 더 나아가는 걸 원합니다.
누구든 당할 수 있는 그런 범죄라는 겁니다.
그러니, 피해를 예방하고 각 기관에서 대책을 세우고 어르신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게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제가 왜 일상생활이 무너지면서 이러겠습니까. 저는 마을 이장이 징역 1년, 5년, 10년 이거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거는 법에서 받을 수 있는 형량을 받으면 되는 거고. 저는 다른 자녀 분들이 우리 어른들이 혼자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한 번쯤은 더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피해자 딸 |
이번에 드러난 사건 외에도 노인 대상 성범죄는 더 많을 겁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성범죄에 노출된 어르신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대책을 마련해 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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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대 이장이 90대 노인 성폭행…“농촌이 더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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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2-23 10:01:17
- 수정2025-02-23 11:44:33

경북 구미시의 한 농촌 마을.
이곳에서 홀로 살던 90대 여성이 지난 14일 오후 2시 반쯤, 70대 남성인 마을 이장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범행은 치매를 앓던 피해자를 위해 딸이 설치해 둔 집 안 CCTV에 고스란히 담겼고, 그 모습을 본 딸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제가 (전화해서) '당신 입 다물어. 내가 지금 카메라 제대로 봤으니까, 내가 지금 보고 있으니까 당신 지금 무슨 짓 했어! 내 엄마한테. 내가 지금 두 눈으로 다 봤으니 꼼짝말고 있어라…." - 피해자 딸 |
이장은 유유히 범행 현장을 떠났고, 5만 원권 6장을 피해자의 옷 주머니에 넣고 떠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장이 집을 떠나면서) 너무 여유롭게 있는 거예요. 안경을 고쳐 쓰고, 주머니에다가도 이렇게 손을 넣고, 정말 할 짓 다 하면서 유유히 나가더니 다시 와서 엄마한테 휴대폰을 가지고 오게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엄마 전화기로 전화가 와서 (이장이) '딸내미 내가 어찌하다 보니 그래 됐네. 좋은 게 좋은 거니 서로 동네 창피하게 하지 말자…." - 피해자 딸 |
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2시간여 만에 이장을 붙잡아 구속하고, 마을 노인들을 상대로 추가 범행 여부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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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잡혔지만, 사건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부 마을 주민들은 범행을 발견해 신고한 딸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등 2차 가해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마을 주민분이) '동네 인심도 흉흉해지고 외부에 동네 이미지가 뭐가 되느냐. 그러니 서로가 좋게 좋게 해서 합의를 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 - 피해자 딸 |
■5년간 노인 대상 성범죄만 4천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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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얘기가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보는 건 살아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노인 대상 성폭행을 다룬 영화 <69세> 중에서. |
흔히 성폭행 사건에서 '노인'은 쉽게 지워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실에서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60세 초과 노인 대상 성범죄는 2019년에 815건에서 2023년 949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사건이 있던 경북에서도 해마다 50건이 넘는 노인 대상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 아는 사람들인데…." 농촌 노인들은 성범죄에 더 취약
사건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요?
이전부터도 마을에서 이장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동네 흉흉하게 떠도는…. '나도 당했어, 나도 당했어', '저 사람이 그랬어'라는…. 이거를 마을에서 다 알고 있으면서…." - 피해자 딸 |
하지만, 동네가 좁고 인구가 적은 농촌은 특성상 신고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21년에 펴낸 연구보고서를 보면, 농촌의 성범죄 검거율은 75%로 도시의 84%보다 낮습니다.
주민들끼리 잘 알고, 폐쇄적인 '작은 사회'이다 보니 범죄가 일어나도 쉽게 은폐되기 마련입니다.
■농촌 노인 대상 성범죄 예방 교육도 필요
노인 대상 성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여성단체에서는 먼저 노인도 성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과, 노인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 확대를 말합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특히 농촌 같은 사회에서는 교육 시스템이 당연히 없고요. 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낮습니다. 교육이 모든 해결책은 아니지만,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은 특히나 노인 대상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 김예민 대구여성회 대표 |
여기에 더해 도시에 집중된 치안 인프라 강화도 필요합니다.
이번 사건도 딸이 설치한 CCTV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범행이 은폐될 수도 있었습니다.
도시에 사는 가족들이 확인할 수 있는 CCTV, 신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상벨 등 생활에서 쓸 수 있는 치안 인프라가 더 유용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신고해도)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면 신고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으니까, 지금과 같은 홈캠 설치에 대해서 정부가 예산을 지원한다든가…." - 김예민 대구여성회 대표 |
■"제가 이러는 이유는…."
70대 마을 이장이 90대 노인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은 다른 여러 언론에서도 보도됐습니다.
"엽기 사건이다", "마을 이장이 완전히 이상한 사람이다"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지만, 피해자 딸은 이것보다 한발 더 나아가는 걸 원합니다.
누구든 당할 수 있는 그런 범죄라는 겁니다.
그러니, 피해를 예방하고 각 기관에서 대책을 세우고 어르신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게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제가 왜 일상생활이 무너지면서 이러겠습니까. 저는 마을 이장이 징역 1년, 5년, 10년 이거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거는 법에서 받을 수 있는 형량을 받으면 되는 거고. 저는 다른 자녀 분들이 우리 어른들이 혼자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한 번쯤은 더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피해자 딸 |
이번에 드러난 사건 외에도 노인 대상 성범죄는 더 많을 겁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성범죄에 노출된 어르신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대책을 마련해 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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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 기자 joonw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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