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은 삼성 17배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317조 원입니다. 2025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애플은 3조 7,850억 달러. 우리 돈으로는 5,552조 원입니다.
(1월 1일 환율 : 달러당 1471원 환율 기준)
시가총액 기준으로 애플이 삼성의 17.5배입니다. 비교하기 좀 민망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비교 못 할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5년 전에는 약 5배였습니다. 2007년에는 오히려 삼성이 더 가치 있는 회사였습니다. 2007년은 아이폰 출시 직전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그 해 1월에 아이폰을 발표하고, 6월에 출시합니다. 5월 정도로 가면 삼성과 애플의 시장 가치가 얼추 비슷합니다. 삼성이 조금 더 큽니다.
그러니까 삼성과 애플은 18년 전에는 비슷한 회사였고, 5년 전에는 5배 차이가 났고, 올해는 격차가 17배가 넘습니다.
■ 매출이 설명하는 격차
격차를 설명하기 위해 매출 변화를 살펴봅니다. 삼성 전체가 아닌 모바일(IM) 한 부문만 떼어서 비교하겠습니다. 2007년에는 삼성의 이 한 사업 부문이 애플과 비슷했습니다. 애플이 245억 달러, 삼성이 210억 달러네요. (달러 환산 기준 비교입니다. 환율은 해당 연도 평균 환율입니다. 기업 평가 전문 기업 리더스인덱스의 자료를 기반으로 합니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비슷한 궤적을 그립니다. 매출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추세는 같습니다. 이후 두 번의 분기점이 나타나며 두 기업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첫 번째 분기점은 2013년입니다. 2013년을 기점으로 삼성 모바일은 역성장에 들어갑니다. 이후 정체 국면에 들어섭니다. 삼성에게 2013년은 돌아오지 않는 '리즈시절'이 되어버립니다.
애플은 좀 더디긴 해도 계속 우상향합니다.
두 번째 분기점은 2020년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입니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이 놀라운 호황을 맞습니다. 애플은 퀀텀 점프를 합니다. 비대면 산업 확장에 힘입어 매출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삼성 모바일은 큰 재미를 못봅니다.
매출, 또 영업이익이 이 사실을 웅변합니다. 2007년 비슷하던 매출은 2023년 거의 5배 격차입니다. 영업이익은 무려 열 배. 실적이 이러니, 시장 평가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2007년 시작점입니다. 매출도 영업이익도. 애플과 삼성은 꼭 비교할 만한 기업이었습니다.
■ 17배에 이른 근본 이유
사실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태계(Eco System)라고 말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고객 충성도라고 말할 겁니다.
풀어서 말하면, 애플은 구매력이 높고 프리미엄 제품을 구매하는 일본, 미국, 유럽 지역에서 점유율이 높습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충성고객이죠. 그들은 가격 때문에 브랜드를 바꾸지 않습니다.
아이폰을 쓰면서 애플워치를 차고, 아이패드를 사용합니다. 에어팟 이어폰을 쓰고 데스크탑과 노트북도 맥과 맥북을 씁니다.
이들이 있어 애플은 가격을 올릴 수 있고, 할인하지 않습니다. 워런 버핏이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라고 부르는 기업인 겁니다. 오랜 기간 지속되는 깊고 넓은 해자를 가진 애플입니다.
그 결정체는 서비스 Service 부문입니다.
애플의 회계 공시(10-K)를 보면 아예 별도의 서비스(Service) 계정이 있습니다.
앱스토어나 애플뮤직의 디지털 콘텐츠 판매·구독 수입, 그리고 애플 TV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 아이클라우드와 일종의 보험인 애플케어 등 라이센스 수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애플의 iOS라는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수입입니다.
아이폰의 가치는 앱스토어에서 내려받는 앱을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유료 앱 수입의 30%는 애플이 가져갑니다. 애플뮤직이나 TV, 아이클라우드 수입은 별도입니다. 이 서비스 부문의 수익성은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매출총이익(Gross Margin)률로 살펴보죠. 매출에서 원가를 뺀 값으로, 영업이익보다 좀 더 기본적인 수익성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2019년 서비스 부문의 매출총이익률은 63.7%입니다. 매출이 100원이면 원가는 36원 수준입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당연합니다. 뭘 만들어서 배송해야 원가가 있죠. 그저 기기 속에서 구현되는 그래픽 혹은 음향에 무슨 제조와 배송 원가가 있겠습니까?
성장 속도는 경이롭습니다. 2019년 당시 이미 아이폰 매출의 3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매출총이익은 300억 달러, 같은 해 삼성전자 연간 영업이익을 웃돕니다.
이후 6년간 쉬지 않고 매년 15% 이상 성장합니다. 2024년에는 아이폰 매출의 2분의 1까지 올라왔습니다. 우리 돈으로는 약 120조 원입니다.
아이패드와 애플워치, 에어팟, 아이맥을 다 합친 것보다 많고, 삼성 모바일 부문 전체 매출(112조, 2023년 기준)을 넘어섭니다.
매출총이익률은 무려 73.9%까지 올랐습니다. 이제 원가는 26원 밖에 안됩니다. 플랫폼의 힘입니다.
■ 애플의 길을 포기한 삼성
삼성은 포기했습니다. 삼성은 플랫폼이 되는 길, 혹은 소프트웨어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길을 스스로 접었습니다.
시도는 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뒤 삼성은 빠르게 움직입니다. 생태계를 가지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소프트웨어 부문을 강화하려 합니다. 실리콘밸리로 달려가 M&A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사들였습니다. 삼성 가전의 허브 플랫폼이 된 스마트싱스(2014), 삼성의 독자 결제 시스템 삼성페이가 된 루프페이(2015)가 대표적입니다. 빅스비 개발에 활용된 AI플랫폼 기업 비브랩스(2016)도 있습니다.
음악 플랫폼도 삽니다. ‘밀크’로 기억되는 삼성의 음악 플랫폼 기억하시나요? 당시 ‘넷플릭스’ 대항마로 불릴 정도로 유망하던 엠스팟이라는 프리미엄 스트리밍 서비스를 인수(2012)해 2014년 밀크를 탄생시킵니다. 처음에는 꽤 인기도 있었습니다.
2014년 1월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삼성은 매거진UX라는 새로운 사용자 환경도 공개했습니다. 태블릿 용도였는데, 구글이 아닌 삼성만의 디자인을 선보이고 좋은 반응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서비스의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달렸습니다. 감각적이고 아이디어 넘치는 기업으로 거듭나려 했죠. 아래 사진이 바로 그 시절을 상징합니다. 2014년 오스카상 시상식 셀카 PPL이었습니다.
메릴 스트립, 줄리아 로버츠, 채닝 테이텀, 브래들리 쿠퍼, 제니퍼 로렌스, 브래드 피트 등 13명의 유명인이 객석에서 라이브로 함께 셀카를 찍는 엄청난 사건이었죠. 아래 사진에 삼성 로고가 선명하죠? 그해 오스카상의 진짜 승자는 ‘삼성 갤럭시’였다고들 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은 쿨함을 삼성에게 빼앗겼나? (2013.1.28. Has Apple Lost Its Cool to Samsung?)”는 기사를 씁니다. 매출은 물론 기술과 디자인까지 삼성이 낫다. 이제는 광고 마케팅도 더 낫다. 아이폰이 아닌 갤럭시에서 더 쿨한 느낌이 난다.
당시 애플 주가는 사상 최고치인 705달러에서 380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삼성은 이렇게 소프트웨어와 생태계로 손을 뻗치고 있었습니다. 문제가 있었다면, 그 길에는 거대한 장벽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구글입니다. 무료인 줄 알았던 안드로이드의 주인이죠.
■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삼성 라이징, 제프리 케인, p359> 을 보면, 밀크를 출시한 삼성에 구글의 디지털 콘텐츠 담당 부사장 제이미 로젠버그가 이렇게 물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협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며 불만을 표현합니다.
앞서 언급한 독자 사용자 환경 '매거진 UX'는 공개 즉시 구글 경영진의 분노를 사기도 합니다. 외신들에 대서특필된 이 사건은 ‘삼성이 화면에서 구글을, 그리고 구글플레이라는 앱스토어를 없애려 한다’는 식의 이야기로 확산합니다.
이 불편한 관계 속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현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입니다. 당시 안드로이드 책임자였던 그는 삼성과의 협상과 조율 과정을 주도합니다. 이후 두 기업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기로 합니다.
삼성은 소프트웨어는 구글에 의지하고, 구글은 하드웨어 영역을 넘보지 않는 일종의 신사협정이죠.
구글의 압력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론 삼성의 선택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느냐, 더 꿈을 꾸느냐, 의 갈림길에서 삼성은 현실을 선택한 겁니다.
사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인수하기 전, 삼성을 먼저 접촉했다는 사실도 기억해 둘만 합니다. 삼성은 '직원 6명인 회사'라며 안드로이드 창업주 앤디 루빈을 냉대합니다. 작은 회사가 어떻게 OS를 만든단 거냐, 루빈은 이 비웃음을 기억합니다. 구글이 인수하기 2주 전입니다. 근시안이 일을 그르쳤습니다.
<삼성 라이징>의 제프리 케인은 이 상황을 ‘황태자(이재용, 하드웨어 집중)와 섭정(최지성 부회장, 소프트웨어 도전)’ 사이의 논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오른팔이었던 최 부회장이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좀 더 드라이브를 걸었으나, 후계자는 현실론자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2015년 '빠르게 부상한 삼성이 그만큼 빠르게 빛을 잃은 이유는 삼성 내부에 있다'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한 업계 비평가를 인용해 “결국 삼성은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가격 경쟁을 해야 할 것”이라고 씁니다. 이 기사의 제목은 <삼성은 어떻게 스마트폰 전쟁에서 이겼고, 그 뒤에 졌나( 2015.2.27. How Samsung won and then lost the smartphone war)>입니다.
■ 잠재력 훼손 VS 시장을 지켰다
한 편에선 잠재력 훼손을 말합니다.
원래 삼성은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성장했습니다. 일본 D램 업체들의 라이벌로 시작해서, 소니의 가전 라이벌이 되었다가, 다시 노키아의 휴대전화 라이벌이 됐습니다. 그리고 모두 꺾었죠.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달랐습니다. 애플은 이제 더 이상 삼성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만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 10가지에 삼성 스마트폰은 단 3개 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신흥국 시장에서 팔리는 중저가 모델입니다. 나머지 7자리는 모두 애플 차지입니다. 애플은 모두 프리미엄 모델이죠.
그러나 지켜낸 것도 사실입니다.
삼성은 여전히 안드로이드 진영의 No.1 제조업체입니다. 삼성 매출의 30~40%를 차지하는 거대한 비즈니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조 단위의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성숙단계라 할지라도 이렇게 충분히 돈을 벌어주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니, 실패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쪽 손을 들어주건, 애플이 삼성의 17배 회사가 된 이유는 변하지 않겠지만요.
위기의 삼성을 조망하는 연속기사입니다. 다양한 기업과 비교하고, 여러 전문가의 분석을 경청하며 삼성의 현주소를 살핍니다. 구독해두시면, 1월 한 달 동안 삼성 위기의 이유와 극복의 단초를 살필 수 있습니다. ① [D램] 젠슨, 삼성이 왜 HBM을 새로 설계해야 하죠? ② [모바일] 애플과 삼성의 격차, 이제는 17배 (추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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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과 삼성의 격차, 이제는 17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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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1-10 08:00:05
■ 애플은 삼성 17배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317조 원입니다. 2025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애플은 3조 7,850억 달러. 우리 돈으로는 5,552조 원입니다.
(1월 1일 환율 : 달러당 1471원 환율 기준)
시가총액 기준으로 애플이 삼성의 17.5배입니다. 비교하기 좀 민망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비교 못 할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5년 전에는 약 5배였습니다. 2007년에는 오히려 삼성이 더 가치 있는 회사였습니다. 2007년은 아이폰 출시 직전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그 해 1월에 아이폰을 발표하고, 6월에 출시합니다. 5월 정도로 가면 삼성과 애플의 시장 가치가 얼추 비슷합니다. 삼성이 조금 더 큽니다.
그러니까 삼성과 애플은 18년 전에는 비슷한 회사였고, 5년 전에는 5배 차이가 났고, 올해는 격차가 17배가 넘습니다.
■ 매출이 설명하는 격차
격차를 설명하기 위해 매출 변화를 살펴봅니다. 삼성 전체가 아닌 모바일(IM) 한 부문만 떼어서 비교하겠습니다. 2007년에는 삼성의 이 한 사업 부문이 애플과 비슷했습니다. 애플이 245억 달러, 삼성이 210억 달러네요. (달러 환산 기준 비교입니다. 환율은 해당 연도 평균 환율입니다. 기업 평가 전문 기업 리더스인덱스의 자료를 기반으로 합니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비슷한 궤적을 그립니다. 매출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추세는 같습니다. 이후 두 번의 분기점이 나타나며 두 기업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첫 번째 분기점은 2013년입니다. 2013년을 기점으로 삼성 모바일은 역성장에 들어갑니다. 이후 정체 국면에 들어섭니다. 삼성에게 2013년은 돌아오지 않는 '리즈시절'이 되어버립니다.
애플은 좀 더디긴 해도 계속 우상향합니다.
두 번째 분기점은 2020년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입니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이 놀라운 호황을 맞습니다. 애플은 퀀텀 점프를 합니다. 비대면 산업 확장에 힘입어 매출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삼성 모바일은 큰 재미를 못봅니다.
매출, 또 영업이익이 이 사실을 웅변합니다. 2007년 비슷하던 매출은 2023년 거의 5배 격차입니다. 영업이익은 무려 열 배. 실적이 이러니, 시장 평가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2007년 시작점입니다. 매출도 영업이익도. 애플과 삼성은 꼭 비교할 만한 기업이었습니다.
■ 17배에 이른 근본 이유
사실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태계(Eco System)라고 말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고객 충성도라고 말할 겁니다.
풀어서 말하면, 애플은 구매력이 높고 프리미엄 제품을 구매하는 일본, 미국, 유럽 지역에서 점유율이 높습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충성고객이죠. 그들은 가격 때문에 브랜드를 바꾸지 않습니다.
아이폰을 쓰면서 애플워치를 차고, 아이패드를 사용합니다. 에어팟 이어폰을 쓰고 데스크탑과 노트북도 맥과 맥북을 씁니다.
이들이 있어 애플은 가격을 올릴 수 있고, 할인하지 않습니다. 워런 버핏이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라고 부르는 기업인 겁니다. 오랜 기간 지속되는 깊고 넓은 해자를 가진 애플입니다.
그 결정체는 서비스 Service 부문입니다.
애플의 회계 공시(10-K)를 보면 아예 별도의 서비스(Service) 계정이 있습니다.
앱스토어나 애플뮤직의 디지털 콘텐츠 판매·구독 수입, 그리고 애플 TV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 아이클라우드와 일종의 보험인 애플케어 등 라이센스 수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애플의 iOS라는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수입입니다.
아이폰의 가치는 앱스토어에서 내려받는 앱을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유료 앱 수입의 30%는 애플이 가져갑니다. 애플뮤직이나 TV, 아이클라우드 수입은 별도입니다. 이 서비스 부문의 수익성은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매출총이익(Gross Margin)률로 살펴보죠. 매출에서 원가를 뺀 값으로, 영업이익보다 좀 더 기본적인 수익성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2019년 서비스 부문의 매출총이익률은 63.7%입니다. 매출이 100원이면 원가는 36원 수준입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당연합니다. 뭘 만들어서 배송해야 원가가 있죠. 그저 기기 속에서 구현되는 그래픽 혹은 음향에 무슨 제조와 배송 원가가 있겠습니까?
성장 속도는 경이롭습니다. 2019년 당시 이미 아이폰 매출의 3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매출총이익은 300억 달러, 같은 해 삼성전자 연간 영업이익을 웃돕니다.
이후 6년간 쉬지 않고 매년 15% 이상 성장합니다. 2024년에는 아이폰 매출의 2분의 1까지 올라왔습니다. 우리 돈으로는 약 120조 원입니다.
아이패드와 애플워치, 에어팟, 아이맥을 다 합친 것보다 많고, 삼성 모바일 부문 전체 매출(112조, 2023년 기준)을 넘어섭니다.
매출총이익률은 무려 73.9%까지 올랐습니다. 이제 원가는 26원 밖에 안됩니다. 플랫폼의 힘입니다.
■ 애플의 길을 포기한 삼성
삼성은 포기했습니다. 삼성은 플랫폼이 되는 길, 혹은 소프트웨어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길을 스스로 접었습니다.
시도는 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뒤 삼성은 빠르게 움직입니다. 생태계를 가지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소프트웨어 부문을 강화하려 합니다. 실리콘밸리로 달려가 M&A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사들였습니다. 삼성 가전의 허브 플랫폼이 된 스마트싱스(2014), 삼성의 독자 결제 시스템 삼성페이가 된 루프페이(2015)가 대표적입니다. 빅스비 개발에 활용된 AI플랫폼 기업 비브랩스(2016)도 있습니다.
음악 플랫폼도 삽니다. ‘밀크’로 기억되는 삼성의 음악 플랫폼 기억하시나요? 당시 ‘넷플릭스’ 대항마로 불릴 정도로 유망하던 엠스팟이라는 프리미엄 스트리밍 서비스를 인수(2012)해 2014년 밀크를 탄생시킵니다. 처음에는 꽤 인기도 있었습니다.
2014년 1월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삼성은 매거진UX라는 새로운 사용자 환경도 공개했습니다. 태블릿 용도였는데, 구글이 아닌 삼성만의 디자인을 선보이고 좋은 반응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서비스의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달렸습니다. 감각적이고 아이디어 넘치는 기업으로 거듭나려 했죠. 아래 사진이 바로 그 시절을 상징합니다. 2014년 오스카상 시상식 셀카 PPL이었습니다.
메릴 스트립, 줄리아 로버츠, 채닝 테이텀, 브래들리 쿠퍼, 제니퍼 로렌스, 브래드 피트 등 13명의 유명인이 객석에서 라이브로 함께 셀카를 찍는 엄청난 사건이었죠. 아래 사진에 삼성 로고가 선명하죠? 그해 오스카상의 진짜 승자는 ‘삼성 갤럭시’였다고들 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은 쿨함을 삼성에게 빼앗겼나? (2013.1.28. Has Apple Lost Its Cool to Samsung?)”는 기사를 씁니다. 매출은 물론 기술과 디자인까지 삼성이 낫다. 이제는 광고 마케팅도 더 낫다. 아이폰이 아닌 갤럭시에서 더 쿨한 느낌이 난다.
당시 애플 주가는 사상 최고치인 705달러에서 380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삼성은 이렇게 소프트웨어와 생태계로 손을 뻗치고 있었습니다. 문제가 있었다면, 그 길에는 거대한 장벽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구글입니다. 무료인 줄 알았던 안드로이드의 주인이죠.
■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삼성 라이징, 제프리 케인, p359> 을 보면, 밀크를 출시한 삼성에 구글의 디지털 콘텐츠 담당 부사장 제이미 로젠버그가 이렇게 물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협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며 불만을 표현합니다.
앞서 언급한 독자 사용자 환경 '매거진 UX'는 공개 즉시 구글 경영진의 분노를 사기도 합니다. 외신들에 대서특필된 이 사건은 ‘삼성이 화면에서 구글을, 그리고 구글플레이라는 앱스토어를 없애려 한다’는 식의 이야기로 확산합니다.
이 불편한 관계 속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현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입니다. 당시 안드로이드 책임자였던 그는 삼성과의 협상과 조율 과정을 주도합니다. 이후 두 기업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기로 합니다.
삼성은 소프트웨어는 구글에 의지하고, 구글은 하드웨어 영역을 넘보지 않는 일종의 신사협정이죠.
구글의 압력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론 삼성의 선택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느냐, 더 꿈을 꾸느냐, 의 갈림길에서 삼성은 현실을 선택한 겁니다.
사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인수하기 전, 삼성을 먼저 접촉했다는 사실도 기억해 둘만 합니다. 삼성은 '직원 6명인 회사'라며 안드로이드 창업주 앤디 루빈을 냉대합니다. 작은 회사가 어떻게 OS를 만든단 거냐, 루빈은 이 비웃음을 기억합니다. 구글이 인수하기 2주 전입니다. 근시안이 일을 그르쳤습니다.
<삼성 라이징>의 제프리 케인은 이 상황을 ‘황태자(이재용, 하드웨어 집중)와 섭정(최지성 부회장, 소프트웨어 도전)’ 사이의 논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오른팔이었던 최 부회장이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좀 더 드라이브를 걸었으나, 후계자는 현실론자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2015년 '빠르게 부상한 삼성이 그만큼 빠르게 빛을 잃은 이유는 삼성 내부에 있다'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한 업계 비평가를 인용해 “결국 삼성은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가격 경쟁을 해야 할 것”이라고 씁니다. 이 기사의 제목은 <삼성은 어떻게 스마트폰 전쟁에서 이겼고, 그 뒤에 졌나( 2015.2.27. How Samsung won and then lost the smartphone war)>입니다.
■ 잠재력 훼손 VS 시장을 지켰다
한 편에선 잠재력 훼손을 말합니다.
원래 삼성은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성장했습니다. 일본 D램 업체들의 라이벌로 시작해서, 소니의 가전 라이벌이 되었다가, 다시 노키아의 휴대전화 라이벌이 됐습니다. 그리고 모두 꺾었죠.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달랐습니다. 애플은 이제 더 이상 삼성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만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 10가지에 삼성 스마트폰은 단 3개 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신흥국 시장에서 팔리는 중저가 모델입니다. 나머지 7자리는 모두 애플 차지입니다. 애플은 모두 프리미엄 모델이죠.
그러나 지켜낸 것도 사실입니다.
삼성은 여전히 안드로이드 진영의 No.1 제조업체입니다. 삼성 매출의 30~40%를 차지하는 거대한 비즈니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조 단위의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성숙단계라 할지라도 이렇게 충분히 돈을 벌어주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니, 실패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쪽 손을 들어주건, 애플이 삼성의 17배 회사가 된 이유는 변하지 않겠지만요.
위기의 삼성을 조망하는 연속기사입니다. 다양한 기업과 비교하고, 여러 전문가의 분석을 경청하며 삼성의 현주소를 살핍니다. 구독해두시면, 1월 한 달 동안 삼성 위기의 이유와 극복의 단초를 살필 수 있습니다. ① [D램] 젠슨, 삼성이 왜 HBM을 새로 설계해야 하죠? ② [모바일] 애플과 삼성의 격차, 이제는 17배 (추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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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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