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국가비밀 보호’ 구실로 법 제정…주민통제 강화 박차

입력 2023.02.0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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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총무사업 규정과 기요(중요한 기밀) 관리 체계를 개선할 데 대한 문제, 보위·안전·사법·검찰 부문 사업에 대한 정책적 지도를 강화할 데 대한 문제가 토의됐다." (2022년 6월 28일, 조선중앙통신)

지난해 6월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열린 노동당 비서국 확대회의 소식을 전하며 밝힌 회의 내용입니다. 코로나 19 대유행 당시 북한이 내부 사정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얼마나 경계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로부터 7개월여가 지난 어제(2일), 북한 입법부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국가비밀보호법'을 채택한 사실을 오늘 북한 관영매체가 공개했습니다. 비서국 확대회의의 후속 조치로 보입니다.

■ '내부 실상 유출' 통제법…처벌 조항 신설?

조선중앙통신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제24차 전원회의가 전날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렸다"고 밝혔습니다. 회의에서는 ▲국가비밀보호법 ▲철길관리법 ▲수재교육법 ▲대부법 ▲국가상징법이 채택됐는데요.

통신은 국가비밀 관리 체계를 대폭 보강했다며, '국가비밀보호법'에 대해 "비밀보호 사업에서 제도와 질서를 세워 국가의 안전과 이익, 사회주의 건설의 성과적 전진을 보장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비밀'이 법 적용 대상인지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내부의 실상이 외부에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주민 통제를 강화하려는 조치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국가 비밀'이라고 하지만, 기밀 정보라기보다는 주민들이 보고 듣는 현실을 밖으로 발설하지 말라는 게 법의 취지란 겁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민들을 향해 내부 정보를 유출하면 처벌을 가혹하게 하겠다는 얘기"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이 어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전원회의를 열어 국가기밀보호법 등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출처 : 조선중앙통신, 오늘)북한이 어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전원회의를 열어 국가기밀보호법 등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출처 : 조선중앙통신, 오늘)

■ '상징표식·역정보'까지…제보자 색출도 강화

북한 내부의 보다 적나라한 모습은 북한 주민들의 말이나 주민들이 촬영한 영상·사진을 통해 외부 세계로 흘러나옵니다. 엘리트 지배 계층은 정권 충성도가 매우 높아서 정보 유출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탈북민들의 전언입니다.

이렇게 나온 정보들이 한국이나 외국 언론을 통해 공개될 때마다 북한은 보안과 검열 조치를 강화하고 제보자 색출에 나서는 거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자료가 외부로 유출되는 사례가 잇따르자 몇 년 전부터는 교육이 끝나는 즉시 자료를 회수하고 있습니다. 회수 전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자료가 유출되는 경우까지 생기자 당국자만 알아볼 수 있는 번호나 상징을 적어놓거나, 무단 복제가 어렵도록 이미지 표식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제보자 색출의 경우 "북한 당국이 역정보를 흘리거나 특정한 정보를 특정 인물들에게만 제공해 그것이 유출됐을 경우 제보자들을 잡아내 일망타진하는 식"이라며 "일가족이 몰살되는 경우도 있고, 과거 김정일의 건강 관련 첩보가 정보기관을 통해 보도된 적이 있는데 발설 가능한 사람이 곧바로 특정돼 모두 처형된 거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해 코로나 19 비상 시국 당시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하달한 대응 문건. 회수 전 휴대전화로 촬영된 문건을 KBS가 입수해 보도했다 (2022년 6월 14일 ‘KBS 9시 뉴스’ 캡처)지난해 코로나 19 비상 시국 당시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하달한 대응 문건. 회수 전 휴대전화로 촬영된 문건을 KBS가 입수해 보도했다 (2022년 6월 14일 ‘KBS 9시 뉴스’ 캡처)

■ "정보 판매도 돈벌이"…통제 목적은 '체제 안정'

북한이 주민들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이유는 뭘까요? 조한범 연구위원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북한은 잘 견디고 있다고 선전하지만, 북한 주민이 전하는 뉴스에는 노동신문 기사들의 이면까지 다 나온다"고 지적했습니다. 조 연구위원은 "김정은 체제는 고립된 상태로 철저히 외부 정보를 막으면서 결속을 도모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외부로의 정보 유출을 체제 안정 위협 요소로 여긴다는 겁니다.

한 탈북민은 "북한 내부 정보를 파는 것도 주민들의 먹고사는 수단이 됐다"고 전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 당국이 법까지 만들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북한에도 이른바 '손전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생겨난 현상으로 보이는데요. 탈북민과 북한 내 가족들 간 송금 등을 위한 직·간접적인 전화 통화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북한 내부와 외부의 소통 창구가 됐을 거란 분석이 나옵니다.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는 함경북도에서 중국 휴대전화로 외부와 연락하면서 송금 브로커로 활동하던 두 여성이 최근 내부 정보를 유출하다 발각돼 간첩 혐의로 쫓기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연관 기사] “법치! 사상무장!” 통제 몰두하는 북한…오로지 정권 보위?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581260

북한은 외부 문화가 내부로 들어오는 것도 결사적으로 막고 있습니니다. 지난달 남한 말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채택한 '평양 문화어 보호법'과 남한 영상물 유포자 사형 조항을 담아 2020년 제정한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이 대표적입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남북교류를 엄하게 차단하는 건 내부 체제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는 김일성·김정일 동상 같은 상징물에 대한 교육과 보호를 강화하겠다며 '국가상징법'도 채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경제난이 날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법을 도구화해 공포 정치를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보통 민생 등 경제사회 분야 법 제·개정을 진행해왔는데 이번에는 체제 유지와 관련된 법을 주로 다룬 점이 특징"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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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 ‘국가비밀 보호’ 구실로 법 제정…주민통제 강화 박차
    • 입력 2023-02-03 15:50:50
    취재K

"당 총무사업 규정과 기요(중요한 기밀) 관리 체계를 개선할 데 대한 문제, 보위·안전·사법·검찰 부문 사업에 대한 정책적 지도를 강화할 데 대한 문제가 토의됐다." (2022년 6월 28일, 조선중앙통신)

지난해 6월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열린 노동당 비서국 확대회의 소식을 전하며 밝힌 회의 내용입니다. 코로나 19 대유행 당시 북한이 내부 사정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얼마나 경계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로부터 7개월여가 지난 어제(2일), 북한 입법부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국가비밀보호법'을 채택한 사실을 오늘 북한 관영매체가 공개했습니다. 비서국 확대회의의 후속 조치로 보입니다.

■ '내부 실상 유출' 통제법…처벌 조항 신설?

조선중앙통신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제24차 전원회의가 전날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렸다"고 밝혔습니다. 회의에서는 ▲국가비밀보호법 ▲철길관리법 ▲수재교육법 ▲대부법 ▲국가상징법이 채택됐는데요.

통신은 국가비밀 관리 체계를 대폭 보강했다며, '국가비밀보호법'에 대해 "비밀보호 사업에서 제도와 질서를 세워 국가의 안전과 이익, 사회주의 건설의 성과적 전진을 보장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비밀'이 법 적용 대상인지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내부의 실상이 외부에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주민 통제를 강화하려는 조치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국가 비밀'이라고 하지만, 기밀 정보라기보다는 주민들이 보고 듣는 현실을 밖으로 발설하지 말라는 게 법의 취지란 겁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민들을 향해 내부 정보를 유출하면 처벌을 가혹하게 하겠다는 얘기"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이 어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전원회의를 열어 국가기밀보호법 등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출처 : 조선중앙통신, 오늘)
■ '상징표식·역정보'까지…제보자 색출도 강화

북한 내부의 보다 적나라한 모습은 북한 주민들의 말이나 주민들이 촬영한 영상·사진을 통해 외부 세계로 흘러나옵니다. 엘리트 지배 계층은 정권 충성도가 매우 높아서 정보 유출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탈북민들의 전언입니다.

이렇게 나온 정보들이 한국이나 외국 언론을 통해 공개될 때마다 북한은 보안과 검열 조치를 강화하고 제보자 색출에 나서는 거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자료가 외부로 유출되는 사례가 잇따르자 몇 년 전부터는 교육이 끝나는 즉시 자료를 회수하고 있습니다. 회수 전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자료가 유출되는 경우까지 생기자 당국자만 알아볼 수 있는 번호나 상징을 적어놓거나, 무단 복제가 어렵도록 이미지 표식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제보자 색출의 경우 "북한 당국이 역정보를 흘리거나 특정한 정보를 특정 인물들에게만 제공해 그것이 유출됐을 경우 제보자들을 잡아내 일망타진하는 식"이라며 "일가족이 몰살되는 경우도 있고, 과거 김정일의 건강 관련 첩보가 정보기관을 통해 보도된 적이 있는데 발설 가능한 사람이 곧바로 특정돼 모두 처형된 거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해 코로나 19 비상 시국 당시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하달한 대응 문건. 회수 전 휴대전화로 촬영된 문건을 KBS가 입수해 보도했다 (2022년 6월 14일 ‘KBS 9시 뉴스’ 캡처)
■ "정보 판매도 돈벌이"…통제 목적은 '체제 안정'

북한이 주민들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이유는 뭘까요? 조한범 연구위원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북한은 잘 견디고 있다고 선전하지만, 북한 주민이 전하는 뉴스에는 노동신문 기사들의 이면까지 다 나온다"고 지적했습니다. 조 연구위원은 "김정은 체제는 고립된 상태로 철저히 외부 정보를 막으면서 결속을 도모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외부로의 정보 유출을 체제 안정 위협 요소로 여긴다는 겁니다.

한 탈북민은 "북한 내부 정보를 파는 것도 주민들의 먹고사는 수단이 됐다"고 전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 당국이 법까지 만들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북한에도 이른바 '손전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생겨난 현상으로 보이는데요. 탈북민과 북한 내 가족들 간 송금 등을 위한 직·간접적인 전화 통화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북한 내부와 외부의 소통 창구가 됐을 거란 분석이 나옵니다.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는 함경북도에서 중국 휴대전화로 외부와 연락하면서 송금 브로커로 활동하던 두 여성이 최근 내부 정보를 유출하다 발각돼 간첩 혐의로 쫓기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연관 기사] “법치! 사상무장!” 통제 몰두하는 북한…오로지 정권 보위?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581260

북한은 외부 문화가 내부로 들어오는 것도 결사적으로 막고 있습니니다. 지난달 남한 말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채택한 '평양 문화어 보호법'과 남한 영상물 유포자 사형 조항을 담아 2020년 제정한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이 대표적입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남북교류를 엄하게 차단하는 건 내부 체제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는 김일성·김정일 동상 같은 상징물에 대한 교육과 보호를 강화하겠다며 '국가상징법'도 채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경제난이 날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법을 도구화해 공포 정치를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보통 민생 등 경제사회 분야 법 제·개정을 진행해왔는데 이번에는 체제 유지와 관련된 법을 주로 다룬 점이 특징"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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