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째 여성 광역단체장 ‘0명’, 여전히 높은 유리천장

입력 2018.06.15 (16:55) 수정 2018.06.1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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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불기 시작한 미투(me too) 열풍은 지난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도 이어졌습니다. 서울에서는 '페미니스트 시장' 후보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실제 여성후보들이 거둔 성적은 어떨까요?

여성 당선자 1,043명, 전체의 25.9%

이번 지방선거에는 모두 4,016명의 당선자가 나왔습니다.(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결과 제외) 이 가운데 여성은 모두 1,043명입니다. 전체의 25% 수준입니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의 여성당선자 비율이 18.7%,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여성당선자 비율이 21.6%인 것에 비하면 조금씩이나마 여성 당선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야별로 살펴보면 약간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성 광역시장·여성 도지사는 이번에도 0명

광역시장과 도지사는 풍부한 예산과 많은 공무원을 동원해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자리입니다. 그래서인지 현직 국회의원들도 도전에 나서곤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서울시장을 포함해 모두 17명의 광역단체장을 뽑았습니다. 결과는 전원 남성 후보자들의 당선, 여성은 아무도 광역단체장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이번만이 아닙니다. 여성 광역단체장은 1995년 제1회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후 23년 동안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 구청장 등 기초 단체장 지난 선거와 비슷

그러면 여성 기초 단체장은 어떨까요? 구청장 등 전국에서 226명을 뽑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모두 8명의 여성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서울에서는 김미경 당선자(은평구청장), 김수영 당선자(양천구청장), 조은희 당선자(서초구청장) 등 3명의 여성 구청장이 탄생했습니다.

역대 가장 많은 7명의 여성 후보가 도전장을 내민 부산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정명희 당선자(부산북구청장), 정미영 당선자(부산 금정구청장), 서은숙 당선자(부산진구청장)가 등장하며 역대 최다 여성 당선자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런 주목할만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보면, 여성 기초단체장 당선자는 제5회 지방선거 6명, 제6회 지방선거 9명 등으로 이번 선거에서도 지난 선거와 비슷한 성적을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대구·울산 첫 여성 교육감 당선

전국 교육감 선거에서는 2명의 여성 당선자가 나왔습니다.

대구의 강은희 당선자와 울산의 노옥희 당선자입니다. 두 지역에서 여성 교육감 당선자가 나온 것은 모두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5회 지방선거에서 여성 교육감이 0명, 제6회 지방선거에서 여성 교육감이 1명 배출됐다는 것에 비추어 보면 교육감에도 여성의 진출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에서는 여성 후보자들의 당선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세상의 절반은 여자, 당선자의 절반은??

흔히들 세상의 절반은 여자라고 합니다. 선거 버전으로 바꾸면 유권자의 절반은 여성이라는 뜻이 되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광역단체장 자리 17곳에 여성 후보자를 단 한 명도 공천하지 않았습니다. 본선에는 아예 여성을 등판시키지 않은 겁니다.

15곳에 후보를 내면서 여성 후보자(송아영 세종시장 후보)를 1명 공천한 자유한국당은 그나마 낫다고 할까요? 바른미래당도 0명, 정의당도 1명에 그쳤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전체 공천자 2,658명 중에 여성은 510명으로 19.2%, 그나마 대부분이 기초의원 비례 공천(373명), 광역의원 비례 공천(49명)입니다. 여성 공천 신청자에게는 두 차례 가산점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저런 결과입니다.

다른 당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없다 vs 기회가 없다

정치권에서도 할 말은 있습니다. 여성 인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당선할만한 역량이 있는 여성 후보군이 드문 게 현실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경쟁력 있는 여성 후보군이 적은 게 여성들만의 잘못인지는 의문입니다.

'별을 달아주려 해도 능력 있는 여군이 없다.' 비슷한 논리는 정치권 못지않은 남초집단인 군대에서도 나옵니다.

군 장성 436명 중 최근 10년간 장군으로 진급한 여성은 11명에 불과하다.군 장성 436명 중 최근 10년간 장군으로 진급한 여성은 11명에 불과하다.

육군에서 준장 이상 진급하려면 사관학교 출신으로 전투병과(포병, 기갑 등)를 거쳐야 한다는 게 중론이지만, 이 분야는 오랫동안 여성들에게 허락조차 되지 않는 영역이었습니다. 공군 진급 코스인 전투기 조종사에서 여군이 배출된 건 2007년입니다. 해군에서도 여성 고속정장이 배출되기 시작한 게 채 10년이 되지 않습니다.

50대 이상 남성들의 기득권으로 구축된 정치권. 그동안 경쟁력 있는 여성 후보들이 성장할 기회를 줬는지 의문입니다. 여성은 초대받지 못하는 벽을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그 벽 안에 왜 안 들어와 있느냐고 묻는 건 올바른 일일까요?

그래도 선거는 계속된다

‘안구복지 타임이 시작됐다’며 딸의 사진을 올린 한 후보자 SNS‘안구복지 타임이 시작됐다’며 딸의 사진을 올린 한 후보자 SNS

이번 선거에서도 일부 후보가 딸의 외모를 활용한 유세를 펼쳐 여성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여성 변호사 출신 후보와 여성 아나운서 출신 후보에게는 꼭 '미모의'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우리 사회가, 정치권이 여성을 어떻게 바라 보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물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천을 주거나 당선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이 내세운 공약, 추진하는 정책이 다 옳은 것은 아닐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통해 우리 사회는 이 교훈을 얻었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 평등한 정치를 위해 정당들의 적극적인 의지와 역할이 필수적"이라며 "여성 대표성 확대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인 여성할당제를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성 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주장합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다음번엔 세상에 얼마나 더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선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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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년째 여성 광역단체장 ‘0명’, 여전히 높은 유리천장
    • 입력 2018-06-15 16:55:50
    • 수정2018-06-15 17:03:16
    취재K
올해 초 불기 시작한 미투(me too) 열풍은 지난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도 이어졌습니다. 서울에서는 '페미니스트 시장' 후보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실제 여성후보들이 거둔 성적은 어떨까요?

여성 당선자 1,043명, 전체의 25.9%

이번 지방선거에는 모두 4,016명의 당선자가 나왔습니다.(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결과 제외) 이 가운데 여성은 모두 1,043명입니다. 전체의 25% 수준입니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의 여성당선자 비율이 18.7%,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여성당선자 비율이 21.6%인 것에 비하면 조금씩이나마 여성 당선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야별로 살펴보면 약간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성 광역시장·여성 도지사는 이번에도 0명

광역시장과 도지사는 풍부한 예산과 많은 공무원을 동원해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자리입니다. 그래서인지 현직 국회의원들도 도전에 나서곤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서울시장을 포함해 모두 17명의 광역단체장을 뽑았습니다. 결과는 전원 남성 후보자들의 당선, 여성은 아무도 광역단체장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이번만이 아닙니다. 여성 광역단체장은 1995년 제1회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후 23년 동안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 구청장 등 기초 단체장 지난 선거와 비슷

그러면 여성 기초 단체장은 어떨까요? 구청장 등 전국에서 226명을 뽑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모두 8명의 여성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서울에서는 김미경 당선자(은평구청장), 김수영 당선자(양천구청장), 조은희 당선자(서초구청장) 등 3명의 여성 구청장이 탄생했습니다.

역대 가장 많은 7명의 여성 후보가 도전장을 내민 부산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정명희 당선자(부산북구청장), 정미영 당선자(부산 금정구청장), 서은숙 당선자(부산진구청장)가 등장하며 역대 최다 여성 당선자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런 주목할만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보면, 여성 기초단체장 당선자는 제5회 지방선거 6명, 제6회 지방선거 9명 등으로 이번 선거에서도 지난 선거와 비슷한 성적을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대구·울산 첫 여성 교육감 당선

전국 교육감 선거에서는 2명의 여성 당선자가 나왔습니다.

대구의 강은희 당선자와 울산의 노옥희 당선자입니다. 두 지역에서 여성 교육감 당선자가 나온 것은 모두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5회 지방선거에서 여성 교육감이 0명, 제6회 지방선거에서 여성 교육감이 1명 배출됐다는 것에 비추어 보면 교육감에도 여성의 진출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에서는 여성 후보자들의 당선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세상의 절반은 여자, 당선자의 절반은??

흔히들 세상의 절반은 여자라고 합니다. 선거 버전으로 바꾸면 유권자의 절반은 여성이라는 뜻이 되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광역단체장 자리 17곳에 여성 후보자를 단 한 명도 공천하지 않았습니다. 본선에는 아예 여성을 등판시키지 않은 겁니다.

15곳에 후보를 내면서 여성 후보자(송아영 세종시장 후보)를 1명 공천한 자유한국당은 그나마 낫다고 할까요? 바른미래당도 0명, 정의당도 1명에 그쳤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전체 공천자 2,658명 중에 여성은 510명으로 19.2%, 그나마 대부분이 기초의원 비례 공천(373명), 광역의원 비례 공천(49명)입니다. 여성 공천 신청자에게는 두 차례 가산점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저런 결과입니다.

다른 당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없다 vs 기회가 없다

정치권에서도 할 말은 있습니다. 여성 인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당선할만한 역량이 있는 여성 후보군이 드문 게 현실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경쟁력 있는 여성 후보군이 적은 게 여성들만의 잘못인지는 의문입니다.

'별을 달아주려 해도 능력 있는 여군이 없다.' 비슷한 논리는 정치권 못지않은 남초집단인 군대에서도 나옵니다.

군 장성 436명 중 최근 10년간 장군으로 진급한 여성은 11명에 불과하다.
육군에서 준장 이상 진급하려면 사관학교 출신으로 전투병과(포병, 기갑 등)를 거쳐야 한다는 게 중론이지만, 이 분야는 오랫동안 여성들에게 허락조차 되지 않는 영역이었습니다. 공군 진급 코스인 전투기 조종사에서 여군이 배출된 건 2007년입니다. 해군에서도 여성 고속정장이 배출되기 시작한 게 채 10년이 되지 않습니다.

50대 이상 남성들의 기득권으로 구축된 정치권. 그동안 경쟁력 있는 여성 후보들이 성장할 기회를 줬는지 의문입니다. 여성은 초대받지 못하는 벽을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그 벽 안에 왜 안 들어와 있느냐고 묻는 건 올바른 일일까요?

그래도 선거는 계속된다

‘안구복지 타임이 시작됐다’며 딸의 사진을 올린 한 후보자 SNS
이번 선거에서도 일부 후보가 딸의 외모를 활용한 유세를 펼쳐 여성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여성 변호사 출신 후보와 여성 아나운서 출신 후보에게는 꼭 '미모의'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우리 사회가, 정치권이 여성을 어떻게 바라 보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물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천을 주거나 당선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이 내세운 공약, 추진하는 정책이 다 옳은 것은 아닐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통해 우리 사회는 이 교훈을 얻었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 평등한 정치를 위해 정당들의 적극적인 의지와 역할이 필수적"이라며 "여성 대표성 확대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인 여성할당제를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성 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주장합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다음번엔 세상에 얼마나 더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선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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