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조삼모사? 오락가락 자동차세에 ‘호갱’된 기분 [주말엔]

입력 2023.06.10 (08:03) 수정 2023.06.10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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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차 가격 인하" 홍보하고
다음날 개소세 인하 종료
4,200만 원 그랜저 사면
오히려 36만 원 더 내야


여기 두 개의 기사 제목이 있습니다. '그랜저 내달 54만 원 싸진다', '그랜저 새달부터 36만 원 비싸진다'. 누구 말이 맞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두번째 기사 제목이 맞는 말입니다. 첫번째 기사 제목은 지난 7일 발표한 국세청 보도자료를 보고 쓴 A 조간신문의 기사 제목입니다. 두번째 기사 제목은 그 다음날(8일) 기획재정부 보도자료를 근거로 쓴 B 조간신문 기사입니다. 같은 차 가격인데 어제는 싸진다더니, 오늘은 더 비싸진다고? 이거 참 '호갱'(속이기 쉬워 보이는 고객)된 기분입니다.


■ 정부의 한 세금 두 기준

자동차 세금에 대해 국세청과 기재부의 기준과 관점이 다르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자동차에는 개별소비세가 붙어 판매 가격이 책정됩니다. 개소세율은 원래 5%인데 한시적으로 3.5%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 개소세율이 중요한 건 자동차에 매겨지는 또다른 세금, 교육세·부가세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장 출고가 4,200만 원짜리 그랜저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개소세(147만 원) 교육세(44만 원) 부가세(439만 원) 다 합치면 세금이 630만 원입니다. 최종 판매가(아래 그림에서 판매가 ①)는 세금을 합쳐 4,830만 원이 됩니다. 지금 소비자들이 내고 있는 차값이죠. 문제는 7월부터 다시 5%로 개소세율이 올라간다는 겁니다. 그러면 개소세(210만 원)·교육세(63만 원)·부가세(447만 원)가 다시 올라서 최종 판매가(아래 그림에서 판매가 ②)는 4,920만 원입니다. 다음달부터 소비자들이 90만 원 더 비싸게(판매가 ② - 판매가 ①) 사야할 상황에 놓였던 것이죠.


그런데 국세청이 국산차 세금 계산방식을 같은 시기(7월)부터 개선하기로 했습니다. 차값이 같아도 국산차의 세금 부과 기준(과세표준)이 수입차보다 높아서 출고가에서 일정 비율을 빼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기준판매비율이란 개념을 도입해, 국산차는 출고가의 18%를 빼고 세금 계산하게 됩니다. 이 계산식을 적용하면 최종 판매가(위 그림에서 판매가 ③)는 4,866만 원이 됩니다. 실제로 소비자들이 7월부터 부담해야 할 차값입니다.

■ 한 번에 정리해 발표했다면…

결론적으로 국산차에 붙는 세금을 줄여줄 계산식이 도입이 됐지만, 개별소비세율 자체가 3.5%에서 5%로 올라가면서,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낼 세금은 더 많아진 것(630만 원→636만 원)입니다. 여기서 국세청의 관점은 '원래 90만 원 비싸게 사야할 차를 36만 원 비싸게 샀으니, 이건 54만 원 싸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느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냥 '36만 원 비싸졌다' 라고 느낄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요?

정부가 '조삼모사'식으로 자동차 개소세를 결정짓는 두 정책을 따로 발표하면서 소비자 입장에선 오해가 생겼습니다. 실제로 인터넷 기사 댓글 창엔 오락가락한 정부 발표를 놓고 비난이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만약 국세청과 기재부가 같은 날 동시에 내용을 정리해 발표했다면 자동차 세 부담에 대한 국민들의 혼선은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국세청을 외청으로 두고 있는 기재부는 상위 기관으로서 좀 더 세련된 홍보 방식을 고민했어야 합니다.

■ 자동차 개소세 어찌할꼬

자동차 개별소비세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개별소비세의 입법 목적은 사치성 물품의 소비를 억제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 때문에 1977년 첫 도입 이후 에어컨과 TV 등 대중화된 물품을 개소세 과세대상에서 빼는 법 개정이 여러 번 이뤄져 왔습니다.

자동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자동차 누적등록대수는 2,550만 대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5,144만명) 2명 중 1명은 자동차를 보유한 셈입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 중 자동차에 부가세 외에 추가적 소비세를 붙이는 국가는 호주와 캐나다, 터키 정도라고 합니다. 임 위원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 10대 자동차 생산국 중에서 차에 개소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구멍 난 세금 수입이 걱정입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세금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조 9천억 원 덜 걷혔습니다. 역대 최대 감소 폭입니다. 2018년 7월 이후 5년 간 유지됐던 '개소세 인하'를 연장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동차 개소세로 벌어들이는 세수는 2021년 기준 1조 4천억 원 수준입니다. 인하 종료 시 정부가 더 거둘 수 있는 세금은 연간 6000억 원 규모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체 세수 결손 규모에 비해 크지 않은 규모지만, 정부로서는 한 푼이 아쉬운 상황입니다. 이제 운전자들은 올해 8월 말까지 정부가 한시적으로 낮춘 유류세 인하 조치를 또다시 연장할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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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판 조삼모사? 오락가락 자동차세에 ‘호갱’된 기분 [주말엔]
    • 입력 2023-06-10 08:03:55
    • 수정2023-06-10 08:08:56
    주말엔
"차 가격 인하" 홍보하고<br />다음날 개소세 인하 종료<br />4,200만 원 그랜저 사면<br />오히려 36만 원 더 내야

여기 두 개의 기사 제목이 있습니다. '그랜저 내달 54만 원 싸진다', '그랜저 새달부터 36만 원 비싸진다'. 누구 말이 맞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두번째 기사 제목이 맞는 말입니다. 첫번째 기사 제목은 지난 7일 발표한 국세청 보도자료를 보고 쓴 A 조간신문의 기사 제목입니다. 두번째 기사 제목은 그 다음날(8일) 기획재정부 보도자료를 근거로 쓴 B 조간신문 기사입니다. 같은 차 가격인데 어제는 싸진다더니, 오늘은 더 비싸진다고? 이거 참 '호갱'(속이기 쉬워 보이는 고객)된 기분입니다.


■ 정부의 한 세금 두 기준

자동차 세금에 대해 국세청과 기재부의 기준과 관점이 다르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자동차에는 개별소비세가 붙어 판매 가격이 책정됩니다. 개소세율은 원래 5%인데 한시적으로 3.5%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 개소세율이 중요한 건 자동차에 매겨지는 또다른 세금, 교육세·부가세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장 출고가 4,200만 원짜리 그랜저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개소세(147만 원) 교육세(44만 원) 부가세(439만 원) 다 합치면 세금이 630만 원입니다. 최종 판매가(아래 그림에서 판매가 ①)는 세금을 합쳐 4,830만 원이 됩니다. 지금 소비자들이 내고 있는 차값이죠. 문제는 7월부터 다시 5%로 개소세율이 올라간다는 겁니다. 그러면 개소세(210만 원)·교육세(63만 원)·부가세(447만 원)가 다시 올라서 최종 판매가(아래 그림에서 판매가 ②)는 4,920만 원입니다. 다음달부터 소비자들이 90만 원 더 비싸게(판매가 ② - 판매가 ①) 사야할 상황에 놓였던 것이죠.


그런데 국세청이 국산차 세금 계산방식을 같은 시기(7월)부터 개선하기로 했습니다. 차값이 같아도 국산차의 세금 부과 기준(과세표준)이 수입차보다 높아서 출고가에서 일정 비율을 빼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기준판매비율이란 개념을 도입해, 국산차는 출고가의 18%를 빼고 세금 계산하게 됩니다. 이 계산식을 적용하면 최종 판매가(위 그림에서 판매가 ③)는 4,866만 원이 됩니다. 실제로 소비자들이 7월부터 부담해야 할 차값입니다.

■ 한 번에 정리해 발표했다면…

결론적으로 국산차에 붙는 세금을 줄여줄 계산식이 도입이 됐지만, 개별소비세율 자체가 3.5%에서 5%로 올라가면서,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낼 세금은 더 많아진 것(630만 원→636만 원)입니다. 여기서 국세청의 관점은 '원래 90만 원 비싸게 사야할 차를 36만 원 비싸게 샀으니, 이건 54만 원 싸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느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냥 '36만 원 비싸졌다' 라고 느낄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요?

정부가 '조삼모사'식으로 자동차 개소세를 결정짓는 두 정책을 따로 발표하면서 소비자 입장에선 오해가 생겼습니다. 실제로 인터넷 기사 댓글 창엔 오락가락한 정부 발표를 놓고 비난이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만약 국세청과 기재부가 같은 날 동시에 내용을 정리해 발표했다면 자동차 세 부담에 대한 국민들의 혼선은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국세청을 외청으로 두고 있는 기재부는 상위 기관으로서 좀 더 세련된 홍보 방식을 고민했어야 합니다.

■ 자동차 개소세 어찌할꼬

자동차 개별소비세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개별소비세의 입법 목적은 사치성 물품의 소비를 억제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 때문에 1977년 첫 도입 이후 에어컨과 TV 등 대중화된 물품을 개소세 과세대상에서 빼는 법 개정이 여러 번 이뤄져 왔습니다.

자동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자동차 누적등록대수는 2,550만 대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5,144만명) 2명 중 1명은 자동차를 보유한 셈입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 중 자동차에 부가세 외에 추가적 소비세를 붙이는 국가는 호주와 캐나다, 터키 정도라고 합니다. 임 위원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 10대 자동차 생산국 중에서 차에 개소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구멍 난 세금 수입이 걱정입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세금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조 9천억 원 덜 걷혔습니다. 역대 최대 감소 폭입니다. 2018년 7월 이후 5년 간 유지됐던 '개소세 인하'를 연장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동차 개소세로 벌어들이는 세수는 2021년 기준 1조 4천억 원 수준입니다. 인하 종료 시 정부가 더 거둘 수 있는 세금은 연간 6000억 원 규모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체 세수 결손 규모에 비해 크지 않은 규모지만, 정부로서는 한 푼이 아쉬운 상황입니다. 이제 운전자들은 올해 8월 말까지 정부가 한시적으로 낮춘 유류세 인하 조치를 또다시 연장할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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