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판결문 읽던 부장판사, 울먹인 까닭은?

입력 2021.07.18 (10:03) 수정 2021.07.1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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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는 지, 원하지 않는 지 확인할 방법이…."

지난 15일 오전, 경남 창원지법 315호 법정.

판결문을 읽던 형사 4부 장유진 부장판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조는 차분했지만 떨림은 감출 수 없었다. 판결 이유를 최대한 또박또박 읽던 장 부장판사는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수십여 초의 정적이 흘렀다.

판사는 엄정하고 냉정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이날, 판사는 울먹였고 재판정은 유달리 숙연했다. 안타까운 사연의 사건들이 법의 심판대를 종종 거치지만, 이 같은 풍경은 쉽게 볼 수 없다.

판사도 울먹인 재판, 무슨 사건이었을까. KBS 취재진이 수사 결과와 판결문 등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경남 창원지방법원 경남 창원지방법원
■ 2020년 7월 18일 '출생', 2020년 10월 13일 '사망'…'88일의 삶'

사건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피고인 30살 A씨는 경남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 입사한 지 다섯 달 만에 코로나19 여파로 직장을 잃었다.

갓난 아들에 대한 학대는 그즈음부터 시작됐다. 바닥에 앉아 아기를 안고 분유를 먹이던 A씨는 울며 보챈다는 이유로 순간 짜증과 화를 참지 못하고 아기를 침대 매트리스로 던졌다.

그때 아기의 나이는 겨우 생후 2개월, 아직 힘이 생기지 않아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갓난 아기는 작은 외부 충격에도 쉽게 다칠 수가 있어 특히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A씨의 학대는 아기가 같은 행동을 할 때마다 반복됐다.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횟수만 세 차례다.

A씨 아내는 "남편이 아이를 던지는 것을 봤다"라며 "아이가 다칠 수 있을 것 같아 화를 냈다"라고 진술했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아기가 숨을 쉬지 않았다. A씨는 아내를 급하게 불렀고 아내가 119에 신고했다. 의료진이 병원으로 옮겨진 아기의 머리 등에서 학대 정황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육아 스트레스로 아기를 몇 차례 던졌다"라며, "아이를 안고 앉아있는 상태에서 1미터 정도 앞으로 던졌다"라고 진술했다.

그 무렵, 병원에서 치료받던 아기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생후 88일이 되던 날이었다.


■ A씨,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재판부, "납득 하기 어려워"

A씨는 생후 2개월 된 제 아들을 침대 매트리스에 수차례 던져 머리를 다쳐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살인이 아닌 '아동학대치사'로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은 혐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방어권을 행사했다. 당시,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어 각종 스트레스를 겪었는데, 육아까지 겹치다 보니 짜증과 화를 순간 참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러한 사정을 오롯이 인정해주지 않았다. 판결문에 그 이유가 드러나 있는데, 부모보다 약자인 아이들을 화풀이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읽힌다.

"…육아에 따른 답답함과 우울감,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이 드는 것은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더라도 생후 두 달 무렵의 아이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 하기 어렵다…."

- 판결문 양형 이유 中


■ 판결문 읽다 울먹인 판사…A씨 '징역 6년'

재판부는 판결문을 읽던 중 울먹이기도 했다.

선고하던 부장판사는 양형 이유를 읽어 내려가다 어떤 문장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웠는지, 펜을 쥐고 있던 손은 흔들렸고 눈은 허공을 향했다.

그 문장은 '처벌 불원'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처벌 불원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의사 표시로, 범죄의 감경 요소 가운데 하나다.

판사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문장에서 이미 하늘 나라로 떠나 버린 아이의 모습을 떠올린 것으로 짐작된다.

"피고인의 아내가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는 지, 원하지 않는지는 더 이상 확인할 방법이 없다."

- 판결문 양형 이유 中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종합해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또, 4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5년의 아동 관련 기관 취업제한 명령도 함께 내렸다.

그러면서 "피고인을 가족과 사회로부터 장기간 격리할 필요가 있다"며, "양형기준보다 다소 상향해 형을 정한다"라고 설명했다.


■ '법정 속 눈물', 그 의미는?

차가운 법정에서 판사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한 동정이나 감성의 눈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또 다른 어린 생명이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이들을 가까이서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동 학대의 고리를 끊어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어른들의 미안함과 죄책감, 반성 등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판사는 해당 건에 대한 선고를 마친 뒤, 15분 동안 휴정을 가졌다.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은 장 부장판사에게 연락해 눈물의 의미를 물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피고인은 아버지로서 피해자를 잘 양육할 의무가 있지만 아직 뒤집기도, 옹알이도 해보지 못한 피해자가 생명의 싹을 틔우기도 전에 사망에 이르게 했다."

"우리 사회는 피고인의 범행을 쉽게 용서할 수 없고, 피고인에 그 책임에 상응하는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 판결문 양형 이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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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판결문 읽던 부장판사, 울먹인 까닭은?
    • 입력 2021-07-18 10:03:42
    • 수정2021-07-18 10:03:55
    취재후·사건후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는 지, 원하지 않는 지 확인할 방법이…."

지난 15일 오전, 경남 창원지법 315호 법정.

판결문을 읽던 형사 4부 장유진 부장판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조는 차분했지만 떨림은 감출 수 없었다. 판결 이유를 최대한 또박또박 읽던 장 부장판사는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수십여 초의 정적이 흘렀다.

판사는 엄정하고 냉정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이날, 판사는 울먹였고 재판정은 유달리 숙연했다. 안타까운 사연의 사건들이 법의 심판대를 종종 거치지만, 이 같은 풍경은 쉽게 볼 수 없다.

판사도 울먹인 재판, 무슨 사건이었을까. KBS 취재진이 수사 결과와 판결문 등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경남 창원지방법원 ■ 2020년 7월 18일 '출생', 2020년 10월 13일 '사망'…'88일의 삶'

사건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피고인 30살 A씨는 경남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 입사한 지 다섯 달 만에 코로나19 여파로 직장을 잃었다.

갓난 아들에 대한 학대는 그즈음부터 시작됐다. 바닥에 앉아 아기를 안고 분유를 먹이던 A씨는 울며 보챈다는 이유로 순간 짜증과 화를 참지 못하고 아기를 침대 매트리스로 던졌다.

그때 아기의 나이는 겨우 생후 2개월, 아직 힘이 생기지 않아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갓난 아기는 작은 외부 충격에도 쉽게 다칠 수가 있어 특히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A씨의 학대는 아기가 같은 행동을 할 때마다 반복됐다.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횟수만 세 차례다.

A씨 아내는 "남편이 아이를 던지는 것을 봤다"라며 "아이가 다칠 수 있을 것 같아 화를 냈다"라고 진술했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아기가 숨을 쉬지 않았다. A씨는 아내를 급하게 불렀고 아내가 119에 신고했다. 의료진이 병원으로 옮겨진 아기의 머리 등에서 학대 정황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육아 스트레스로 아기를 몇 차례 던졌다"라며, "아이를 안고 앉아있는 상태에서 1미터 정도 앞으로 던졌다"라고 진술했다.

그 무렵, 병원에서 치료받던 아기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생후 88일이 되던 날이었다.


■ A씨,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재판부, "납득 하기 어려워"

A씨는 생후 2개월 된 제 아들을 침대 매트리스에 수차례 던져 머리를 다쳐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살인이 아닌 '아동학대치사'로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은 혐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방어권을 행사했다. 당시,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어 각종 스트레스를 겪었는데, 육아까지 겹치다 보니 짜증과 화를 순간 참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러한 사정을 오롯이 인정해주지 않았다. 판결문에 그 이유가 드러나 있는데, 부모보다 약자인 아이들을 화풀이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읽힌다.

"…육아에 따른 답답함과 우울감,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이 드는 것은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더라도 생후 두 달 무렵의 아이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 하기 어렵다…."

- 판결문 양형 이유 中


■ 판결문 읽다 울먹인 판사…A씨 '징역 6년'

재판부는 판결문을 읽던 중 울먹이기도 했다.

선고하던 부장판사는 양형 이유를 읽어 내려가다 어떤 문장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웠는지, 펜을 쥐고 있던 손은 흔들렸고 눈은 허공을 향했다.

그 문장은 '처벌 불원'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처벌 불원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의사 표시로, 범죄의 감경 요소 가운데 하나다.

판사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문장에서 이미 하늘 나라로 떠나 버린 아이의 모습을 떠올린 것으로 짐작된다.

"피고인의 아내가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는 지, 원하지 않는지는 더 이상 확인할 방법이 없다."

- 판결문 양형 이유 中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종합해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또, 4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5년의 아동 관련 기관 취업제한 명령도 함께 내렸다.

그러면서 "피고인을 가족과 사회로부터 장기간 격리할 필요가 있다"며, "양형기준보다 다소 상향해 형을 정한다"라고 설명했다.


■ '법정 속 눈물', 그 의미는?

차가운 법정에서 판사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한 동정이나 감성의 눈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또 다른 어린 생명이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이들을 가까이서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동 학대의 고리를 끊어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어른들의 미안함과 죄책감, 반성 등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판사는 해당 건에 대한 선고를 마친 뒤, 15분 동안 휴정을 가졌다.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은 장 부장판사에게 연락해 눈물의 의미를 물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피고인은 아버지로서 피해자를 잘 양육할 의무가 있지만 아직 뒤집기도, 옹알이도 해보지 못한 피해자가 생명의 싹을 틔우기도 전에 사망에 이르게 했다."

"우리 사회는 피고인의 범행을 쉽게 용서할 수 없고, 피고인에 그 책임에 상응하는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 판결문 양형 이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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