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스마트 워치’ 이상했지만…경찰은 “문제 없다” 보고

입력 2021.07.18 (07:00) 수정 2021.07.1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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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아이돌 트와이스, n번방 실체를 알린 '추적단 불꽃'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때 신변에 위협을 느껴,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는 겁니다.

일상 생활에서 위협을 느끼는 누구나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심사위원회를 거쳐 신변 보호 여부가 결정되는데, 일부에겐 SOS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112에 신고가 접수되는 '스마트 워치'가 지급됩니다.

취재진이 만난 불법 촬영 피해자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 태닝숍에서 불법 촬영을 당한 피해자 A 씨 이야기입니다.

■ 불법 촬영 당한 뒤…악몽 같았던 두 달

문제의 발단은 불법 촬영 사건이 터진 직후였습니다.

A 씨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을 때, 피의자인 태닝숍 관리인은 모든 사실을 부인한 뒤 풀려났습니다. 태닝숍 관리인이 보복할까 두려움에 떨던 A 씨는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A 씨는 "일을 마치면 좌우를 살피며 뛰어다니고, 사무실 문을 잠그고 일했다"며 "아무도 없는 게 확실한데도, 거실 밖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가위에 눌린 채 다시 잠들곤 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 기기 이상 의심됐는데…3주 뒤에야 바꿔줘

신변 보호를 요청한 A 씨는 사건 발생 다음 날인 4월 22일 스마트 워치를 받았습니다.

A 씨에 따르면, 당시 스마트 워치엔 '단말기 등록이 필요하다'는 화면이 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용해도 괜찮다는 경찰 답변에, A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스마트 워치를 매일 착용했습니다.

그로부터 3주 뒤, 경찰은 기기가 작동하는지를 점검하겠다며 SOS 버튼을 눌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날도 경찰은, "'단말기 등록이 필요하다'는 화면이 뜨는데 괜찮냐?"는 피해자 질문에 문제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문제가 있다며, 기기를 바꿔줬습니다. 기기 이상이 의심되는데도, 3주 동안 확인하지 않다가 슬그머니 기계를 바꾼 것입니다.


■ 매주 점검해야 하지만, '문제없다' 허위 보고

알고 보니, 경찰은 스마트 워치를 매주 점검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신변 보호 점검 매뉴얼에 따라, A 씨 담당 경찰관은 스마트 워치 작동 여부를 매주 점검해 보고해야 했습니다. 피해자를 방문하거나, 피해자에게 연락해 ▲정상 작동 여부 ▲항시 착용 여부를 확인해 '예·아니요'로 표시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경찰관은 피해자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임의로 '문제가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피해자 A 씨는 "내 이름과 연락처, 집 주소를 알고 있던 태닝숍 관리인이 구속되기 전이었다"며 "기기가 안 됐다는 사실을 알고선, 큰일을 당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스마트 워치를 바꿔주고 한 달이 지나서야, 태닝숍 관리인은 구속됐습니다.

이와 관련해 서귀포경찰서는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서귀포경찰서는 "담당 경찰관이 신변 보호 전반에 관해 물었지만, 스마트 워치에 대해선 점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제주경찰청은 "매주 1회 점검해야 하는 건 맞지만, 내부 권고사항일 뿐"이라며 "담당 경찰관의 업무 미숙에 불과하고, 이런 지적에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경찰관들은 되려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 스마트 워치 작동했을까? '누구도 모른다'

그렇다면 A씨가 받은 스마트 워치는 정상 작동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한 수사기관의 답은 제각각입니다.

서귀포경찰서는 당초 "담당 경찰관이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지 않아 문제가 생겨, 기기를 바꿔줬다"고 말했지만, 이내 "스마트 워치 SOS 버튼이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 기기를 교체한 것"이라며 다른 입장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제주경찰청의 답변은 다릅니다.

제주경찰청은 "시스템상으론 스마트 워치가 정상 작동된 것으로 보인다"며 "스마트 워치를 바꿔준 뒤, A 씨의 기기를 테스트해본 결과 112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돼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A씨가 착용했을 때처럼 '단말기 등록이 필요하다'는 화면이 뜬 상태였는지, 문제가 없다면 서귀포경찰서는 왜 기기를 바꿔줬는지 등 의문점은 여전히 남습니다.

이에 대해 경찰청 본청 관계자는 "스마트 워치의 유심칩이 빠졌거나, 112상황실에 기기가 등록되지 않았을 때 그런 화면이 뜰 수 있다"며 "다만 원인은 여러 가지고, 해당 기기 상태를 직접 확인한 건 아니라 정확한 답변은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문제가 된 스마트 워치는 반납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정확한 답변을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 결국, 전수 점검…세밀한 피해자 보호 필요

보도가 나간 뒤, 제주경찰청은 스마트 워치를 전수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SOS 버튼을 눌렀을 때 112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되는지 등 정상 작동 여부를 점검하기로 한 겁니다. 늦게나마 다행인 조치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취재진이 사흘간 취재를 하며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는, "피해자가 말했으면 문제없었을 텐데"였습니다. 피해자가 먼저 "기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줬다면, 문제가 없었을 거란 뜻입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놓쳐선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고홍자 제주여성상담소장은 "스마트 워치가 잘 작동되는지 등을 사전에 확인하고 전달해야 하는 주체는 경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고홍자 소장은 "피해자에겐 기기가 잘 작동될 거란 믿음이 있었을 거고, 그로 인해 안정을 얻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기기가 작동되지 않았다는 걸 인지한 순간, 피해자의 불안감은 더 심해졌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기준, 신변 보호 요청은 1만 건을 넘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좀 더 세밀한 피해자 보호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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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스마트 워치’ 이상했지만…경찰은 “문제 없다” 보고
    • 입력 2021-07-18 07:00:58
    • 수정2021-07-18 07:01:07
    취재후·사건후

인기 아이돌 트와이스, n번방 실체를 알린 '추적단 불꽃'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때 신변에 위협을 느껴,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는 겁니다.

일상 생활에서 위협을 느끼는 누구나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심사위원회를 거쳐 신변 보호 여부가 결정되는데, 일부에겐 SOS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112에 신고가 접수되는 '스마트 워치'가 지급됩니다.

취재진이 만난 불법 촬영 피해자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 태닝숍에서 불법 촬영을 당한 피해자 A 씨 이야기입니다.

■ 불법 촬영 당한 뒤…악몽 같았던 두 달

문제의 발단은 불법 촬영 사건이 터진 직후였습니다.

A 씨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을 때, 피의자인 태닝숍 관리인은 모든 사실을 부인한 뒤 풀려났습니다. 태닝숍 관리인이 보복할까 두려움에 떨던 A 씨는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A 씨는 "일을 마치면 좌우를 살피며 뛰어다니고, 사무실 문을 잠그고 일했다"며 "아무도 없는 게 확실한데도, 거실 밖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가위에 눌린 채 다시 잠들곤 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 기기 이상 의심됐는데…3주 뒤에야 바꿔줘

신변 보호를 요청한 A 씨는 사건 발생 다음 날인 4월 22일 스마트 워치를 받았습니다.

A 씨에 따르면, 당시 스마트 워치엔 '단말기 등록이 필요하다'는 화면이 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용해도 괜찮다는 경찰 답변에, A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스마트 워치를 매일 착용했습니다.

그로부터 3주 뒤, 경찰은 기기가 작동하는지를 점검하겠다며 SOS 버튼을 눌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날도 경찰은, "'단말기 등록이 필요하다'는 화면이 뜨는데 괜찮냐?"는 피해자 질문에 문제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문제가 있다며, 기기를 바꿔줬습니다. 기기 이상이 의심되는데도, 3주 동안 확인하지 않다가 슬그머니 기계를 바꾼 것입니다.


■ 매주 점검해야 하지만, '문제없다' 허위 보고

알고 보니, 경찰은 스마트 워치를 매주 점검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신변 보호 점검 매뉴얼에 따라, A 씨 담당 경찰관은 스마트 워치 작동 여부를 매주 점검해 보고해야 했습니다. 피해자를 방문하거나, 피해자에게 연락해 ▲정상 작동 여부 ▲항시 착용 여부를 확인해 '예·아니요'로 표시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경찰관은 피해자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임의로 '문제가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피해자 A 씨는 "내 이름과 연락처, 집 주소를 알고 있던 태닝숍 관리인이 구속되기 전이었다"며 "기기가 안 됐다는 사실을 알고선, 큰일을 당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스마트 워치를 바꿔주고 한 달이 지나서야, 태닝숍 관리인은 구속됐습니다.

이와 관련해 서귀포경찰서는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서귀포경찰서는 "담당 경찰관이 신변 보호 전반에 관해 물었지만, 스마트 워치에 대해선 점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제주경찰청은 "매주 1회 점검해야 하는 건 맞지만, 내부 권고사항일 뿐"이라며 "담당 경찰관의 업무 미숙에 불과하고, 이런 지적에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경찰관들은 되려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 스마트 워치 작동했을까? '누구도 모른다'

그렇다면 A씨가 받은 스마트 워치는 정상 작동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한 수사기관의 답은 제각각입니다.

서귀포경찰서는 당초 "담당 경찰관이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지 않아 문제가 생겨, 기기를 바꿔줬다"고 말했지만, 이내 "스마트 워치 SOS 버튼이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 기기를 교체한 것"이라며 다른 입장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제주경찰청의 답변은 다릅니다.

제주경찰청은 "시스템상으론 스마트 워치가 정상 작동된 것으로 보인다"며 "스마트 워치를 바꿔준 뒤, A 씨의 기기를 테스트해본 결과 112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돼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A씨가 착용했을 때처럼 '단말기 등록이 필요하다'는 화면이 뜬 상태였는지, 문제가 없다면 서귀포경찰서는 왜 기기를 바꿔줬는지 등 의문점은 여전히 남습니다.

이에 대해 경찰청 본청 관계자는 "스마트 워치의 유심칩이 빠졌거나, 112상황실에 기기가 등록되지 않았을 때 그런 화면이 뜰 수 있다"며 "다만 원인은 여러 가지고, 해당 기기 상태를 직접 확인한 건 아니라 정확한 답변은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문제가 된 스마트 워치는 반납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정확한 답변을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 결국, 전수 점검…세밀한 피해자 보호 필요

보도가 나간 뒤, 제주경찰청은 스마트 워치를 전수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SOS 버튼을 눌렀을 때 112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되는지 등 정상 작동 여부를 점검하기로 한 겁니다. 늦게나마 다행인 조치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취재진이 사흘간 취재를 하며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는, "피해자가 말했으면 문제없었을 텐데"였습니다. 피해자가 먼저 "기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줬다면, 문제가 없었을 거란 뜻입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놓쳐선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고홍자 제주여성상담소장은 "스마트 워치가 잘 작동되는지 등을 사전에 확인하고 전달해야 하는 주체는 경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고홍자 소장은 "피해자에겐 기기가 잘 작동될 거란 믿음이 있었을 거고, 그로 인해 안정을 얻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기기가 작동되지 않았다는 걸 인지한 순간, 피해자의 불안감은 더 심해졌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기준, 신변 보호 요청은 1만 건을 넘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좀 더 세밀한 피해자 보호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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