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1억 줘도 안 낳겠다”…정부의 플랜B, 통할까?

입력 2021.07.10 (09:10) 수정 2021.07.1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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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만 해도 둘이 결혼하면 가족 수가 넷이 됐는데, 이젠 둘이서 낳는 아이가 한 명도 안 됩니다. 2018년부터 합계출산율이 1명 아래로 떨어졌으니 이렇게 된 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 결혼이 크게 줄었으니 올해는 출산율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주변만 봐도 그렇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자녀 계획은 아직 없는 신혼부부들, 그리고 성별을 불문하고 아예 결혼 생각이 없다는 2030은 이제 흔하죠. 한 때는 신조어로 시사상식 사전에서 외워야 했던 '딩크족'도 새롭지 않습니다.

사실 이건 저와 비슷한 또래들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왜 아이를 낳지 않고 있는 걸까? 무엇이 출산을 주저하게 하는 걸까? 생각해봤습니다. 정부의 저출산 정책 관련 유튜브 기사에 3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왜 아이 낳지 않는 지, 비슷한 고민들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 얘긴 잠시 뒤에 옮겨볼까 합니다.

[연관 기사] ‘인구 감소’ 못 막는다! 생산 인구 ‘유지’로 인구정책 변화 조짐

■ 문제는 돈이다?…"셋째 낳으면 1억"

아이를 안 낳는 이유, 나라나 자치단체에서 내놓은 대책들을 보면 문제는 돈이라고 판단한 듯 합니다. 그래서 특히나, 인구 이동까지 겹쳐 심각한 인구 감소 문제를 겪고 있는 지역들은 특단의 대책으로 출산장려금을 내걸었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파격적인 금액을 제시한 건 경남 창원시입니다. 창원시는 마산, 진해와 통합 이후 최근 10년간 인구가 줄곧 줄었습니다. 한때 110만 명에 육박하던 숫자가 이제 103만 명 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창원시가 절박함 속에 고안한 정책이 바로 출산장려금입니다.

신혼부부에게 최대 1억 원을 대출해주고, 출산한 자녀 수에 따라 이자와 원금을 지원하는 제도인데, 셋째를 낳으면 대출금 1억 원을 모두 탕감해준다는 계획입니다. 결혼비용, 집값, 육아 비용에 부담을 느껴 결혼과 자녀계획을 미루는 청년층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입니다.

소멸 위기에 들어선 충북 제천도 이번 달부터 셋째를 낳으면 최대 5천150만 원 받을 수 있는 출산장려금 제도를 시행합니다.

그야말로 출산장려금 경쟁. 2008년 전국 최초로 시행한 전남 해남을 포함해 전국 자치단체들이 지난해 지출한 출산 장려금은 3,822억 원, 1년 사이 천억 원 가까이 늘었습니다.

■ "그래도 안 낳아요"…37조 원 부어도 출산율 꼴찌

하지만, 반응은 의외입니다. "돈이 다가 아니다" 였습니다. 창원시의 경우, 이 같은 논란 때문에 내년 상반기 시행하려던 계획이 연기됐습니다. 실제로 아이를 낳으면 대상이 될 신혼부부를 만나봤더니, "도움은 되겠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 해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1억 원 때문에 아이를 낳진 않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통계에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아동 1명당 한 달에 10만 원을 주는 아동수당을 도입하는 등 저출산 예산은 해마다 늘어왔습니다. 2015년 17조 원이었던 저출산 예산은 2019년 2배인 35조 원대로 뛰어올랐고, 지난해엔 37조 원 넘게 쏟아부었습니다.

그래도 출산율은 2015년부터 급격히 떨어져, 결국 지난해 세계 꼴찌라는 꼬리표를 달았습니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많아지는 자연 감소 현상도 처음 나타났습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인데, 경제적인 지원이 체감이 안 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2019년 9월 이후, 94주째 오르고 있을 만큼 집값이 크게 치솟았습니다. 반면, 올해 들어 청년실업률은 10% 내외를 왔다 갔다 할 만큼 일자리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여기에 평생 키울 양육비, 사교육비를 생각하면 1억을 준다해도 낳을 엄두가 안 난다는 겁니다. 일회성 지원받자고 더 큰 부담을 떠안기 겁나는 거죠.

■ "출산율 반등 어렵다"…플랜B 택한 정부

인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2년 전, 인구정책 TF를 꾸렸습니다. 2019년 1기를 시작으로 지난해 2기, 이번 주 3기가 출범했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전망은 어둡습니다. 현재의 저출산 상태가 지속한다면 40여 년 뒤 일할 인구, 즉 생산인구는 지금의 절반 이상으로 줄고,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인구가 더 많아질 거란 게 정부 예측입니다. 그러니까 올해 30세이신 분들, 이대로라면 70대가 됐을 땐 젊은 사람보다 노인이 더 많아진다는 얘깁니다.

결국, 3기 TF는 저출산 추세를 뒤집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인정하고, 대안을 택했습니다. 당장 인구를 늘리는 것보단 여성과 외국인, 고령층 등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활용하는 방안에 좀 더 무게를 두기로 했습니다.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여성을 위해 초등학교 수업 시간을 늘리고, 외국인들이 오랫동안 국내에서 일할 수 있도록 비자 발급을 확대하고, 고령층 인력 활용을 논의하겠다는 게 정부가 고안한 대안입니다.

■ "내가 아이를 포기하는 이유는…"

이번 정책 방향을 두고, 그동안 출산율에만 집착해왔던 정부가 이제라도 저출산 사회에 적응하는 대책들을 내놓은 건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이제 검토를 시작하겠다는 구상일 뿐, 구체성이 떨어지는 대책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고령자 고용 문제인데 연구회를 통해 논의하겠다고 했을 뿐, 예민한 정년 연장 이슈는 아예 얘기도 못 꺼냈습니다. 또 정작 아이를 낳을 세대에게 와 닿는 정책은 부족해 보입니다.

댓글 반응도 비슷합니다. 국민 전체 여론을 반영할 순 없지만, 그래도 정부 정책에 대한 반응을 보면 이렇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출산율을 높이려고 일회성 지원을 하기보단, 장기적인 관점에서 팍팍한 삶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은 맞벌이 부부가 일하면서도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 환경,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돼야 한다는 겁니다.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부가 했던 정책에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하는 데 인구정책은 기본적으로 내년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최소한 삼십 년을 놓고 가야 합니다. 왜냐면 사람들의 가치관과 문화, 경제적인 상황 등 여러 가지가 다 복합해 나오는 게 인구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대비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지만, 그만큼 고민도 깊어져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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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1억 줘도 안 낳겠다”…정부의 플랜B, 통할까?
    • 입력 2021-07-10 09:10:22
    • 수정2021-07-10 10:10:20
    취재후·사건후

80년대 초만 해도 둘이 결혼하면 가족 수가 넷이 됐는데, 이젠 둘이서 낳는 아이가 한 명도 안 됩니다. 2018년부터 합계출산율이 1명 아래로 떨어졌으니 이렇게 된 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 결혼이 크게 줄었으니 올해는 출산율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주변만 봐도 그렇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자녀 계획은 아직 없는 신혼부부들, 그리고 성별을 불문하고 아예 결혼 생각이 없다는 2030은 이제 흔하죠. 한 때는 신조어로 시사상식 사전에서 외워야 했던 '딩크족'도 새롭지 않습니다.

사실 이건 저와 비슷한 또래들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왜 아이를 낳지 않고 있는 걸까? 무엇이 출산을 주저하게 하는 걸까? 생각해봤습니다. 정부의 저출산 정책 관련 유튜브 기사에 3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왜 아이 낳지 않는 지, 비슷한 고민들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 얘긴 잠시 뒤에 옮겨볼까 합니다.

[연관 기사] ‘인구 감소’ 못 막는다! 생산 인구 ‘유지’로 인구정책 변화 조짐

■ 문제는 돈이다?…"셋째 낳으면 1억"

아이를 안 낳는 이유, 나라나 자치단체에서 내놓은 대책들을 보면 문제는 돈이라고 판단한 듯 합니다. 그래서 특히나, 인구 이동까지 겹쳐 심각한 인구 감소 문제를 겪고 있는 지역들은 특단의 대책으로 출산장려금을 내걸었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파격적인 금액을 제시한 건 경남 창원시입니다. 창원시는 마산, 진해와 통합 이후 최근 10년간 인구가 줄곧 줄었습니다. 한때 110만 명에 육박하던 숫자가 이제 103만 명 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창원시가 절박함 속에 고안한 정책이 바로 출산장려금입니다.

신혼부부에게 최대 1억 원을 대출해주고, 출산한 자녀 수에 따라 이자와 원금을 지원하는 제도인데, 셋째를 낳으면 대출금 1억 원을 모두 탕감해준다는 계획입니다. 결혼비용, 집값, 육아 비용에 부담을 느껴 결혼과 자녀계획을 미루는 청년층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입니다.

소멸 위기에 들어선 충북 제천도 이번 달부터 셋째를 낳으면 최대 5천150만 원 받을 수 있는 출산장려금 제도를 시행합니다.

그야말로 출산장려금 경쟁. 2008년 전국 최초로 시행한 전남 해남을 포함해 전국 자치단체들이 지난해 지출한 출산 장려금은 3,822억 원, 1년 사이 천억 원 가까이 늘었습니다.

■ "그래도 안 낳아요"…37조 원 부어도 출산율 꼴찌

하지만, 반응은 의외입니다. "돈이 다가 아니다" 였습니다. 창원시의 경우, 이 같은 논란 때문에 내년 상반기 시행하려던 계획이 연기됐습니다. 실제로 아이를 낳으면 대상이 될 신혼부부를 만나봤더니, "도움은 되겠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 해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1억 원 때문에 아이를 낳진 않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통계에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아동 1명당 한 달에 10만 원을 주는 아동수당을 도입하는 등 저출산 예산은 해마다 늘어왔습니다. 2015년 17조 원이었던 저출산 예산은 2019년 2배인 35조 원대로 뛰어올랐고, 지난해엔 37조 원 넘게 쏟아부었습니다.

그래도 출산율은 2015년부터 급격히 떨어져, 결국 지난해 세계 꼴찌라는 꼬리표를 달았습니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많아지는 자연 감소 현상도 처음 나타났습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인데, 경제적인 지원이 체감이 안 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2019년 9월 이후, 94주째 오르고 있을 만큼 집값이 크게 치솟았습니다. 반면, 올해 들어 청년실업률은 10% 내외를 왔다 갔다 할 만큼 일자리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여기에 평생 키울 양육비, 사교육비를 생각하면 1억을 준다해도 낳을 엄두가 안 난다는 겁니다. 일회성 지원받자고 더 큰 부담을 떠안기 겁나는 거죠.

■ "출산율 반등 어렵다"…플랜B 택한 정부

인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2년 전, 인구정책 TF를 꾸렸습니다. 2019년 1기를 시작으로 지난해 2기, 이번 주 3기가 출범했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전망은 어둡습니다. 현재의 저출산 상태가 지속한다면 40여 년 뒤 일할 인구, 즉 생산인구는 지금의 절반 이상으로 줄고,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인구가 더 많아질 거란 게 정부 예측입니다. 그러니까 올해 30세이신 분들, 이대로라면 70대가 됐을 땐 젊은 사람보다 노인이 더 많아진다는 얘깁니다.

결국, 3기 TF는 저출산 추세를 뒤집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인정하고, 대안을 택했습니다. 당장 인구를 늘리는 것보단 여성과 외국인, 고령층 등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활용하는 방안에 좀 더 무게를 두기로 했습니다.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여성을 위해 초등학교 수업 시간을 늘리고, 외국인들이 오랫동안 국내에서 일할 수 있도록 비자 발급을 확대하고, 고령층 인력 활용을 논의하겠다는 게 정부가 고안한 대안입니다.

■ "내가 아이를 포기하는 이유는…"

이번 정책 방향을 두고, 그동안 출산율에만 집착해왔던 정부가 이제라도 저출산 사회에 적응하는 대책들을 내놓은 건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이제 검토를 시작하겠다는 구상일 뿐, 구체성이 떨어지는 대책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고령자 고용 문제인데 연구회를 통해 논의하겠다고 했을 뿐, 예민한 정년 연장 이슈는 아예 얘기도 못 꺼냈습니다. 또 정작 아이를 낳을 세대에게 와 닿는 정책은 부족해 보입니다.

댓글 반응도 비슷합니다. 국민 전체 여론을 반영할 순 없지만, 그래도 정부 정책에 대한 반응을 보면 이렇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출산율을 높이려고 일회성 지원을 하기보단, 장기적인 관점에서 팍팍한 삶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은 맞벌이 부부가 일하면서도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 환경,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돼야 한다는 겁니다.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부가 했던 정책에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하는 데 인구정책은 기본적으로 내년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최소한 삼십 년을 놓고 가야 합니다. 왜냐면 사람들의 가치관과 문화, 경제적인 상황 등 여러 가지가 다 복합해 나오는 게 인구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대비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지만, 그만큼 고민도 깊어져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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