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하루 새 ‘판사 탄핵’ 靑 청원 20만 돌파…“반역사”냐 “소신 판결”이냐

입력 2021.06.09 (14:09) 수정 2021.06.0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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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지난 7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소송을 각하한 여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당 판결을 한 판사를 탄핵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는데, 하루 만에 동의한 사람이 20만 명을 넘겼습니다.

■ 하루만에 20만 명 돌파…정치권도 판결 비판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어제(8일) '반국가·반민족적 판결을 내린 판사의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오늘(9일) 오전 11시 기준 20만 3천여 명이 동의했습니다.

청원인은 글에서 "해당 판사가 각하 판결을 내린 까닭을 살펴보면 과연 이 자가 대한민국 국민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반국가적·반역사적 내용으로 점철돼 있다"며 "해당 판사를 즉각 탄핵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청와대는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서는 담당 비서관이나 부처 장·차관 등을 통해 공식 답변을 내고 있어, 청와대가 어떤 입장을 밝힐 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정치권도 판결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오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강제징용 불법행위에 대한 피해자 청구권은 한일협정 대상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고, 하급심 법원은 대법원 판례를 존중하게 돼 있다"며 "조선 총독부 경성 법원 소속 판사의 판결인지 의심이 간다. 판결에 쓸데없이 정치적 언어가 많이 들어갔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의견 해석을 무리하게 집어넣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85명의 청구는 어떻게 '각하'됐나

이번 재판에서 가장 큰 쟁점은 원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1965년 한국과 일본이 맺은 이른바 '청구권 협정'의 범위에 포함되었는지 여부였습니다.

한일 청구권협정 제2조는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 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 범위에 포함된다고 볼 경우, 원고들은 우리 나라 법원에의 소송을 통해서는 손해을 배상받을 수 없단 결론이 나옵니다.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문구에는 소송으로 다투지 않겠다는 뜻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우리 법원에 소송을 낼 수가 있게 됩니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 범위에 포함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청구권 협정 문구에 일방 국민의 상대국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도 협정의 대상으로 되어 있고, 청구권의 대상에 피징용 청구권도 포함된다는 점 △협상 당시 한국이 제출한 '대일청구요강'에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가 들어 있던 점 △비엔나협약 제31조가 조약의 해석은 원칙적으로 그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하여야 함을 명시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청구권 협정상 청구권의 대상에 포함된 피징용 청구권에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까지도 포함돼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가 '위안부 문제와는 달리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3억 달러 속에 포괄적으로 감안되었다’는 취지의 공식의견을 표명한 점 △2009년 외교통상부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하여는 무상 3억 달러에 포함되어 있다는 공식 견해를 재확인한 점도 근거로 들었습니다.

"청구권협정의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문구는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송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제한된다는 뜻"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특히 "어느 당사국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의 방법으로 그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 비엔나협약 제27조를 들어, "극단적으로 한일 청구권 협정이라는 조약이 국내적으로 위헌·무효가 선언되는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조약의 국제법적 효력은 손상될 가능성이 없고, 여전히 대한민국이 조약의 준수의무를 부담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 논란 자초한 재판부…"판결문에 추정과 가설 섞여"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 일각에선 소신 있는 판결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 동안 꺼내지 못했던 국제법상 현실을 감안한 판결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취재진이 만난 법관 중에는 이번 판결의 논리를 수긍하는 이도 적지 않았습니다.

다만, 판결문에 대해선 대부분이 "재판부가 논란을 자초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이에 터잡은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법적인 법해석이며 대법원 판결은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이에 터잡은 징용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바, 이러한 국내법적 사정만으로 식민지배의 적법 또는 불법에 관하여 상호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일괄하여 이 사건 피해자들의 청구권 등에 관하여 보상 또는 배상하기로 합의에 이른 ‘조약’에 해당하는 청구권 협정의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마치 일제의 식민지배를 한국만 문제삼고 있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판단은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직격한 데 대해서도 법원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 적시한 문장 가운데 일부 문장은 추정과 가설이라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만약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본안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고 강제집행까지 마쳐져 피고들의 손해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청구권협정 제3조와 의무적 중재판정부 회부취지의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간의 투자의 자유화·증진 및 보호를 위한 협정 제14조, 국제사법재판소, 미국 등 국제사회의 여론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일본의 중재절차 또는 국제사법재판소로의 회부 공세와 압박이 이어질 것임이 명백하다.

대한민국도 국제사회의 일원인 이상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압박은 매우 뿌리치기 힘든 사정이 될 수 있다. 조약 등 국제법위반의 경우 적절한 형태로 배상할 의무가 있음이 국제법의 원칙이고 국제사법재판소에서는 조약위반국에 대하여 공식적인 ‘사과’뿐만 아니라 ‘손해배상책임’까지 부담시키는 경우도 있는바, 비록 국제재판의 고도의 불가예측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앞서 본 사정에 비추어 보면 대한민국이 패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또, 일반적인 판결문에서 보기 어려운 '외교적 고려'까지도 포함돼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논란도 일고 있습니다. 판결이 야기할 정치·사회적 효과는 사법부가 판단 근거로 삼을 영역이 아니라는 겁니다.

국제재판에서 패소하는 경우 즉 중재위원회나 국제사법재판소가 대한민국(사법부)이 조약인 청구권협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할 경우,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고, 이제 막 세계 10강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문명국으로서의 위신은 바닥으로 추락하며, 여전히 분단국의 현실과 세계 4강의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상황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세력의 대표국가들 중 하나인 일본국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결국 한미동맹으로 우리의 안보와 직결되어 있는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으로까지 이어져 헌법상의 ‘안전보장’을 훼손하고 사법신뢰의 추락으로 헌법상의 ‘질서유지’를 침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급심이 대법원 해석과 다른 판단할 수 있을까

하급심이 대법원 판단을 거스른 점도 논란거리입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8년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들의 청구권이 한일 청구권 협정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의 판단을 정면으로 부정한 겁니다.

이런 판단이 위법하지는 않습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정해져 있고(헌법 제103조), 민사소송에서 상고법원이 파기의 이유로 삼은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은 하급심을 기속하지만, 어디까지나 상급법원 재판에서의 판단이 '해당 사건'에 관해서만 하급심을 기속(민사소송법 제436조 제2항, 법원조직법 제8조)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 2018년 대법 전원합의체 사건과는 원고도 피고도 소송가액도 모두 다른 별개의 사건입니다. 따라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와 다른 해석을 내놔도 법 위반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원합의체 판결 때와 사건은 다르더라도 그 내용상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논리는 그동안 일본 정부가 줄곧 내세워온 입장인 점에서 국민들의 법 감정으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 강제동원 피해자들 "즉각 항소"…앞으로 전망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습니다.

항소심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미지수입니다. 법원 일각에서는 서울고등법원이 대법원 결론에 따라 1심 판단을 뒤집어 원고들의 항소를 인용하고, 일본 기업들에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한일 청구권 협정 문구에 충실한 판단'이라는 내부 평가도 분명 존재해, 결론을 예단하긴 쉽지 않습니다.

이번 소송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소송을 낸 건 벌써 6년 전입니다. 만약 피해자들의 호소가 받아들여진다 해도, 피해자들은 대법원에서 확정된 결론이 나올 때까지 또 한참동안 속을 태울 수 밖에 없을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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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하루 새 ‘판사 탄핵’ 靑 청원 20만 돌파…“반역사”냐 “소신 판결”이냐
    • 입력 2021-06-09 14:09:01
    • 수정2021-06-09 14:44:30
    취재후·사건후

법원이 지난 7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소송을 각하한 여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당 판결을 한 판사를 탄핵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는데, 하루 만에 동의한 사람이 20만 명을 넘겼습니다.

■ 하루만에 20만 명 돌파…정치권도 판결 비판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어제(8일) '반국가·반민족적 판결을 내린 판사의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오늘(9일) 오전 11시 기준 20만 3천여 명이 동의했습니다.

청원인은 글에서 "해당 판사가 각하 판결을 내린 까닭을 살펴보면 과연 이 자가 대한민국 국민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반국가적·반역사적 내용으로 점철돼 있다"며 "해당 판사를 즉각 탄핵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청와대는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서는 담당 비서관이나 부처 장·차관 등을 통해 공식 답변을 내고 있어, 청와대가 어떤 입장을 밝힐 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정치권도 판결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오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강제징용 불법행위에 대한 피해자 청구권은 한일협정 대상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고, 하급심 법원은 대법원 판례를 존중하게 돼 있다"며 "조선 총독부 경성 법원 소속 판사의 판결인지 의심이 간다. 판결에 쓸데없이 정치적 언어가 많이 들어갔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의견 해석을 무리하게 집어넣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85명의 청구는 어떻게 '각하'됐나

이번 재판에서 가장 큰 쟁점은 원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1965년 한국과 일본이 맺은 이른바 '청구권 협정'의 범위에 포함되었는지 여부였습니다.

한일 청구권협정 제2조는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 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 범위에 포함된다고 볼 경우, 원고들은 우리 나라 법원에의 소송을 통해서는 손해을 배상받을 수 없단 결론이 나옵니다.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문구에는 소송으로 다투지 않겠다는 뜻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우리 법원에 소송을 낼 수가 있게 됩니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 범위에 포함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청구권 협정 문구에 일방 국민의 상대국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도 협정의 대상으로 되어 있고, 청구권의 대상에 피징용 청구권도 포함된다는 점 △협상 당시 한국이 제출한 '대일청구요강'에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가 들어 있던 점 △비엔나협약 제31조가 조약의 해석은 원칙적으로 그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하여야 함을 명시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청구권 협정상 청구권의 대상에 포함된 피징용 청구권에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까지도 포함돼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가 '위안부 문제와는 달리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3억 달러 속에 포괄적으로 감안되었다’는 취지의 공식의견을 표명한 점 △2009년 외교통상부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하여는 무상 3억 달러에 포함되어 있다는 공식 견해를 재확인한 점도 근거로 들었습니다.

"청구권협정의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문구는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송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제한된다는 뜻"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특히 "어느 당사국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의 방법으로 그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 비엔나협약 제27조를 들어, "극단적으로 한일 청구권 협정이라는 조약이 국내적으로 위헌·무효가 선언되는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조약의 국제법적 효력은 손상될 가능성이 없고, 여전히 대한민국이 조약의 준수의무를 부담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 논란 자초한 재판부…"판결문에 추정과 가설 섞여"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 일각에선 소신 있는 판결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 동안 꺼내지 못했던 국제법상 현실을 감안한 판결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취재진이 만난 법관 중에는 이번 판결의 논리를 수긍하는 이도 적지 않았습니다.

다만, 판결문에 대해선 대부분이 "재판부가 논란을 자초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이에 터잡은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법적인 법해석이며 대법원 판결은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이에 터잡은 징용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바, 이러한 국내법적 사정만으로 식민지배의 적법 또는 불법에 관하여 상호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일괄하여 이 사건 피해자들의 청구권 등에 관하여 보상 또는 배상하기로 합의에 이른 ‘조약’에 해당하는 청구권 협정의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마치 일제의 식민지배를 한국만 문제삼고 있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판단은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직격한 데 대해서도 법원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 적시한 문장 가운데 일부 문장은 추정과 가설이라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만약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본안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고 강제집행까지 마쳐져 피고들의 손해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청구권협정 제3조와 의무적 중재판정부 회부취지의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간의 투자의 자유화·증진 및 보호를 위한 협정 제14조, 국제사법재판소, 미국 등 국제사회의 여론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일본의 중재절차 또는 국제사법재판소로의 회부 공세와 압박이 이어질 것임이 명백하다.

대한민국도 국제사회의 일원인 이상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압박은 매우 뿌리치기 힘든 사정이 될 수 있다. 조약 등 국제법위반의 경우 적절한 형태로 배상할 의무가 있음이 국제법의 원칙이고 국제사법재판소에서는 조약위반국에 대하여 공식적인 ‘사과’뿐만 아니라 ‘손해배상책임’까지 부담시키는 경우도 있는바, 비록 국제재판의 고도의 불가예측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앞서 본 사정에 비추어 보면 대한민국이 패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또, 일반적인 판결문에서 보기 어려운 '외교적 고려'까지도 포함돼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논란도 일고 있습니다. 판결이 야기할 정치·사회적 효과는 사법부가 판단 근거로 삼을 영역이 아니라는 겁니다.

국제재판에서 패소하는 경우 즉 중재위원회나 국제사법재판소가 대한민국(사법부)이 조약인 청구권협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할 경우,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고, 이제 막 세계 10강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문명국으로서의 위신은 바닥으로 추락하며, 여전히 분단국의 현실과 세계 4강의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상황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세력의 대표국가들 중 하나인 일본국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결국 한미동맹으로 우리의 안보와 직결되어 있는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으로까지 이어져 헌법상의 ‘안전보장’을 훼손하고 사법신뢰의 추락으로 헌법상의 ‘질서유지’를 침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급심이 대법원 해석과 다른 판단할 수 있을까

하급심이 대법원 판단을 거스른 점도 논란거리입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8년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들의 청구권이 한일 청구권 협정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의 판단을 정면으로 부정한 겁니다.

이런 판단이 위법하지는 않습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정해져 있고(헌법 제103조), 민사소송에서 상고법원이 파기의 이유로 삼은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은 하급심을 기속하지만, 어디까지나 상급법원 재판에서의 판단이 '해당 사건'에 관해서만 하급심을 기속(민사소송법 제436조 제2항, 법원조직법 제8조)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 2018년 대법 전원합의체 사건과는 원고도 피고도 소송가액도 모두 다른 별개의 사건입니다. 따라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와 다른 해석을 내놔도 법 위반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원합의체 판결 때와 사건은 다르더라도 그 내용상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논리는 그동안 일본 정부가 줄곧 내세워온 입장인 점에서 국민들의 법 감정으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 강제동원 피해자들 "즉각 항소"…앞으로 전망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습니다.

항소심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미지수입니다. 법원 일각에서는 서울고등법원이 대법원 결론에 따라 1심 판단을 뒤집어 원고들의 항소를 인용하고, 일본 기업들에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한일 청구권 협정 문구에 충실한 판단'이라는 내부 평가도 분명 존재해, 결론을 예단하긴 쉽지 않습니다.

이번 소송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소송을 낸 건 벌써 6년 전입니다. 만약 피해자들의 호소가 받아들여진다 해도, 피해자들은 대법원에서 확정된 결론이 나올 때까지 또 한참동안 속을 태울 수 밖에 없을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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