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감시K] 의원과 법, 이래서 취재했습니다…법안, 내기만 하면 끝?

입력 2020.03.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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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를 돌아보고 21대 국회의 미래를 그려보는 기획 보도, 이번엔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을 들여다봤습니다. <국회감시 프로젝트K>팀은 '의원과 법' 기획을 통해 20대 국회의 입법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 전반을 사흘에 걸쳐 연속 보도했습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각종 황당한 법안들을 시작으로 최다 법안 발의 의원의 실체, 발의 후 방치했다가 사태가 터져야 주목받는 '뒷북' 법안들, 내용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소리소문없이 통과시킨 악법, 대기업과 이익단체들의 로비 정황이 의심되는 법안들까지 취재해 전해드렸습니다.

[연관기사]
[국회감시K] ‘코로나19’ 로 본 국회의 법 만드는 법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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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감시K] 법안 제안자가 후원회장…혹시나 로비?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07979)


이처럼 국회에서 법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로비나 외부 개입 등도 문제였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의원들이 법안을 너무 많이 내고,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데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출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홈페이지출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홈페이지

법안 검토보고서 부실 우려

먼저 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살펴볼까요? 국회의원이나 정부가 법안을 냅니다. 이를 발의라고 하죠. 발의한 법안, 국회에 제출되면 해당 상임위원회에 보내집니다. 상임위에서는 입법조사관이 검토보고서를 작성하고 의원들은 토론을 통해 법안을 심사합니다. 상임위 의결을 거친 법안은 법사위에서 다른 법과 충돌은 없는지, 헌법에 어긋나지는 않은지 등을 심사한 뒤 본회의로 넘어갑니다. 본회의에서는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법안을 의결합니다. 이 과정을 거친 뒤 대통령이 공포하면 비로소 법으로써 효력이 생깁니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상임위에서 심사하기 전 입법조사관이 타당성을 따져보고 문제는 없는지 검토보고서를 작성합니다. 국회법에 따르면 상정했거나 상정한 것으로 간주한 모든 법안은 심의 48시간 전까지 해당 상임위원회의 검토보고서를 첨부해야 합니다.


결국,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 대부분에 대해 검토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는 건데,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이 워낙 많다 보니(2020년 3월 16일 기준 22,883건), 검토보고서만 해도 2만 건이 넘습니다. (2020년 3월 16일 기준 20,525건) 국회사무처에 확인한 결과 발의 법안 검토보고서 쓰는 입법조사관은 156명으로 20대 국회 들어 1인당 평균 132건의 검토보고서를 쓴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상임위 별로 보면 복지위 소속 입법조사관이 평균 199건, 환노위는 201건이었고 행안위는 250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행안위 입법조사관은 한 달에 평균 5.4건꼴로 법안 검토보고서를 낸 셈인데 과연 제대로 된 검토보고서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특히 법안이 한꺼번에 몰릴 경우에는 처리 시한에 쫓겨 졸속 검토보고서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 소위(2019년 11월 20일)국회 행안위 법안심사 소위(2019년 11월 20일)

법안소위 심사 1건당 9분꼴…'날림 심사' 지적

상임위에서는 의원들이 작성된 검토보고서를 참고해 법안에 대해 토론하고 심사를 합니다. 논의된 법안은 상임위 법안심사 소위를 거치는데, 여야 의원들이 법안의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가장 활발하게 논의하기 때문에 입법 과정에서 본회의 표결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아직 처리되지 못한 법안들은 대부분 법안소위를 통과하지 못한 데다 법안소위를 통과한 법안은 이변이 없는 한 본회의를 통과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20대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 소위의 법안 심사 시간을 확인해 봤더니 법안 1건당 평균 9분꼴에 불과했습니다. 법안소위에 상정된 법안은 12,533건인데, 소위 개최 시간은 1,847분 16초로 정확히는 1건당 8분 50초였습니다.

상임위별로 보면 법안 1건당 국토위 7분 22초, 농해수위 6분 22초, 정무위 5분 20초, 문체위는 겨우 3분 34초에 그쳤습니다. 발의 법안은 갈수록 늘고 있는데 법안 소위 개최 횟수는 제자리걸음이다 보니 '날림 심사'란 소리,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낸 법안 표결에 기권·불참도

본회에서도 황당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이 대표발의한 법안 표결에조차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경우인데요, 취재진이 본희의 의결 사항을 전수 조사해 봤더니 100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본회의 의결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가 49건, 결석이 29건, 청가(의원이 사고로 인해 국회에 출석하지 못할 경우, 사유와 기간을 기재한 뒤 의장에게 제출해 허가를 받도록 한 휴가)가 20건이었고 자신이 발의한 법안에 기권한 경우도 2건이 있었습니다.


내기만 하면 끝?…15,000여 건 폐기 앞둬

20대 국회의 부실한 입법은 결국 '묻지마식' 법안 발의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16대 국회 때 1,912건이던 의원 발의 법안은 갈수록 늘어 20대 들어서는 22,883건으로 급증했습니다. 16대 때 기준으로는 무려 12배가 늘었습니다.

발의한 법안이 꼭 필요하다면 달리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똑같은 내용 복사해 붙이는 이른바 복붙법, 글자 하나만 고치는 알법, 정부가 낸 법안이 시행되기 전 잽싸게 같은 법을 발의하는 이른바 가로채기법도 수두룩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는 아래 연관기사에를 보시기 바랍니다.

[연관기사][국회감시K]입법왕의 비밀…세상에 이런 법이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04955)

결국, 법안은 쏟아지는데 제대로 살펴볼 시간과 여력은 없다 보니 20대 국회에서 발의만 해 놓고 폐기를 앞둔 법안이 15,000건이 넘습니다(2020년 3월 16일 기준 15,025건).

법안 발의부터 폐기까지 엄청난 돈과 인력, 낭비지만 해가 갈수록 이 같은 문제가 커지고 있습니다. 발의만 하면 끝이라는 의원들의 인식부터 변해야 합니다. 법안을 많이 발의한 의원을 무작정 칭찬해 주고 상을 주는 시민단체와 언론의 책임도 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안을 제대로 발의하고 검증하는 시스템. 21대 국회에서는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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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감시K] 의원과 법, 이래서 취재했습니다…법안, 내기만 하면 끝?
    • 입력 2020-03-24 07:00:40
    국회감시K
20대 국회를 돌아보고 21대 국회의 미래를 그려보는 기획 보도, 이번엔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을 들여다봤습니다. <국회감시 프로젝트K>팀은 '의원과 법' 기획을 통해 20대 국회의 입법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 전반을 사흘에 걸쳐 연속 보도했습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각종 황당한 법안들을 시작으로 최다 법안 발의 의원의 실체, 발의 후 방치했다가 사태가 터져야 주목받는 '뒷북' 법안들, 내용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소리소문없이 통과시킨 악법, 대기업과 이익단체들의 로비 정황이 의심되는 법안들까지 취재해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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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국회에서 법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로비나 외부 개입 등도 문제였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의원들이 법안을 너무 많이 내고,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데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출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홈페이지
법안 검토보고서 부실 우려

먼저 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살펴볼까요? 국회의원이나 정부가 법안을 냅니다. 이를 발의라고 하죠. 발의한 법안, 국회에 제출되면 해당 상임위원회에 보내집니다. 상임위에서는 입법조사관이 검토보고서를 작성하고 의원들은 토론을 통해 법안을 심사합니다. 상임위 의결을 거친 법안은 법사위에서 다른 법과 충돌은 없는지, 헌법에 어긋나지는 않은지 등을 심사한 뒤 본회의로 넘어갑니다. 본회의에서는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법안을 의결합니다. 이 과정을 거친 뒤 대통령이 공포하면 비로소 법으로써 효력이 생깁니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상임위에서 심사하기 전 입법조사관이 타당성을 따져보고 문제는 없는지 검토보고서를 작성합니다. 국회법에 따르면 상정했거나 상정한 것으로 간주한 모든 법안은 심의 48시간 전까지 해당 상임위원회의 검토보고서를 첨부해야 합니다.


결국,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 대부분에 대해 검토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는 건데,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이 워낙 많다 보니(2020년 3월 16일 기준 22,883건), 검토보고서만 해도 2만 건이 넘습니다. (2020년 3월 16일 기준 20,525건) 국회사무처에 확인한 결과 발의 법안 검토보고서 쓰는 입법조사관은 156명으로 20대 국회 들어 1인당 평균 132건의 검토보고서를 쓴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상임위 별로 보면 복지위 소속 입법조사관이 평균 199건, 환노위는 201건이었고 행안위는 250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행안위 입법조사관은 한 달에 평균 5.4건꼴로 법안 검토보고서를 낸 셈인데 과연 제대로 된 검토보고서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특히 법안이 한꺼번에 몰릴 경우에는 처리 시한에 쫓겨 졸속 검토보고서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 소위(2019년 11월 20일)
법안소위 심사 1건당 9분꼴…'날림 심사' 지적

상임위에서는 의원들이 작성된 검토보고서를 참고해 법안에 대해 토론하고 심사를 합니다. 논의된 법안은 상임위 법안심사 소위를 거치는데, 여야 의원들이 법안의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가장 활발하게 논의하기 때문에 입법 과정에서 본회의 표결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아직 처리되지 못한 법안들은 대부분 법안소위를 통과하지 못한 데다 법안소위를 통과한 법안은 이변이 없는 한 본회의를 통과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20대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 소위의 법안 심사 시간을 확인해 봤더니 법안 1건당 평균 9분꼴에 불과했습니다. 법안소위에 상정된 법안은 12,533건인데, 소위 개최 시간은 1,847분 16초로 정확히는 1건당 8분 50초였습니다.

상임위별로 보면 법안 1건당 국토위 7분 22초, 농해수위 6분 22초, 정무위 5분 20초, 문체위는 겨우 3분 34초에 그쳤습니다. 발의 법안은 갈수록 늘고 있는데 법안 소위 개최 횟수는 제자리걸음이다 보니 '날림 심사'란 소리,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낸 법안 표결에 기권·불참도

본회에서도 황당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이 대표발의한 법안 표결에조차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경우인데요, 취재진이 본희의 의결 사항을 전수 조사해 봤더니 100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본회의 의결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가 49건, 결석이 29건, 청가(의원이 사고로 인해 국회에 출석하지 못할 경우, 사유와 기간을 기재한 뒤 의장에게 제출해 허가를 받도록 한 휴가)가 20건이었고 자신이 발의한 법안에 기권한 경우도 2건이 있었습니다.


내기만 하면 끝?…15,000여 건 폐기 앞둬

20대 국회의 부실한 입법은 결국 '묻지마식' 법안 발의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16대 국회 때 1,912건이던 의원 발의 법안은 갈수록 늘어 20대 들어서는 22,883건으로 급증했습니다. 16대 때 기준으로는 무려 12배가 늘었습니다.

발의한 법안이 꼭 필요하다면 달리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똑같은 내용 복사해 붙이는 이른바 복붙법, 글자 하나만 고치는 알법, 정부가 낸 법안이 시행되기 전 잽싸게 같은 법을 발의하는 이른바 가로채기법도 수두룩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는 아래 연관기사에를 보시기 바랍니다.

[연관기사][국회감시K]입법왕의 비밀…세상에 이런 법이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04955)

결국, 법안은 쏟아지는데 제대로 살펴볼 시간과 여력은 없다 보니 20대 국회에서 발의만 해 놓고 폐기를 앞둔 법안이 15,000건이 넘습니다(2020년 3월 16일 기준 15,025건).

법안 발의부터 폐기까지 엄청난 돈과 인력, 낭비지만 해가 갈수록 이 같은 문제가 커지고 있습니다. 발의만 하면 끝이라는 의원들의 인식부터 변해야 합니다. 법안을 많이 발의한 의원을 무작정 칭찬해 주고 상을 주는 시민단체와 언론의 책임도 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안을 제대로 발의하고 검증하는 시스템. 21대 국회에서는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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