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5개월 경비원 과로사 추적기…주목받지 못한 죽음

입력 2021.04.18 (07:02) 수정 2021.04.1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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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알게 된 경비원 과로사 ...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죽음

"경비원들이 과로로 사망해서 올라오는 사건이 상당히 많아요."

지난해 8월 노동자 과로사 취재를 위해 국회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 최승현 보좌관을 만났다. 노무사인 그는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 위원으로 활동했었다.

의아했다. 경비원들이 갑질로 인해 고통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과로로 사망한다는 건 몰랐기 때문이다. 연령대가 높으니 지병 때문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포털사이트에서 '경비원 과로사'를 검색해봤다. 관련 사건을 다루는 노무법인 광고가 웹페이지를 채웠다. 경비원 과로사 사건을 대상으로 한 광고 시장이 있을 정도였다.

반면 관련 뉴스는 없었다. 경비원 갑질 기사는 넘쳤지만, 과로사 문제를 다룬 기획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12월 경비원 과로사 취재를 시작했다.

서울 한 아파트의 좁은 경비 초소. 경비원들은 이곳에서 의자를 치우고 잠을 잔다.서울 한 아파트의 좁은 경비 초소. 경비원들은 이곳에서 의자를 치우고 잠을 잔다.

■경비원 과로사 규모 … 정부도 몰랐다.

근로복지공단에 경비원 과로사 관련 통계와 업무상질병판정서 등을 요청했다. 자료를 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경비원 과로사만 별도로 자료가 관리되고 있지 않아 다시 분류해야 했다. 그렇게 확보한 자료도 정확하지 않았다. 경비원 과로사 업무상질병판정서 가운데는 청소 노동자나 아파트 관리소장 사건도 섞여 있었다. 자료를 노무법인 필( 유상철 ·박경환 노무사)과 함께 분석했다.

분석 결과 최근 3년간 (2018-2020년) 과로사로 인정받은 경비원이 74명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같은 기간 과로성 질환을 인정받은 경비원도 173명이나 됐다. 3년간 247명의 경비원이 과로로 인해 죽거나 질병을 얻었다는 의미다. 심사 과정에서 이들의 나이와 기저 질환 여부까지 함께 살핀 결과, 업무상 요인이 큰 것으로 결론 내린 숫자다. 과로사가 발생한 모든 직업군 가운데 자동차 운전원에 이어 2번째로 많았다. 그동안 경비원들은 쉽고 편한 업무를 한다는 이유로 근로시간과 휴게·휴일 관련 근로기준법도 적용하지 않았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경비원들이 무관심 속에 과로로 숨지고 있었다.


■계속된 거절 ... "괜히 알리고 싶지 않아요."

자료를 분석한 뒤 경비원 과로사 유족들을 만나보고자 했다. 수소문해 연락처를 얻어도 대부분 취재를 거절했다. 가슴 깊이 묻어 둔 슬픔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일부는 언론 보도를 통해 고인이 경비원으로 일한 사실을 주변에서 알게 되는 걸 걱정하기도 했다.

동료 경비원들도 도움 주길 꺼렸다. 취재에 응했다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노무사들도 '동료들의 비협조'를 경비원 과로사의 특징 중 하나로 꼽았다. 빈소에서는 고인이 과로로 힘들어했다고 말하지만, 정작 과로사 승인 신청을 위해 증언을 요청하면 입을 닫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경비원이 사망한 서울의 한 아파트 지하실. 고인은 숨지기 직전, 이곳에서 잠을 잤다.경비원이 사망한 서울의 한 아파트 지하실. 고인은 숨지기 직전, 이곳에서 잠을 잤다.

현장에서 많은 경비원을 만났다. 대부분 취지에 공감했지만, 보도를 통해 괜히 경비원 업무에 변화가 생길 것을 두려워했다.

"그런 질문을 하고 싶은 거여.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게 좋다. 자꾸 들쑤시기 해서 못 하게 만드는 거나 똑같잖아. 그러니까 경비원 업무를 줄인다 어쩐다하니까 아파트마다 회의를 열어 가지고 경비를 줄이는 거야. 줄여도 아파트 뭐 떠내려가? 아파트가 부서져? 굴러가." - 동료 경비원

■과로사 경비원이 일한 초소 … 바뀐 건 없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선 최근 1년 사이 2명의 경비원이 사망했다. 한 명은 지난해 8월 과로사로 인정받았다. 특히 초소에서 쪽잠을 자는 열악한 수면 환경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지적됐다.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 새벽에 고인이 일하던 초소를 찾아가 봤다.

사망한 경비원이 일했던 초소 2곳을 가보니 여전히 경비원이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자고 있었다. 미간엔 짙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80평 아파트 거래 가격이 80억 원, 평당 1억 원짜리 아파트지만 경비원들은 제대로 된 휴식 공간을 제공받지 못했다. 2명이 죽었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늘 (일) 저녁 9시 40분 KBS1 <시사기획 창 - 그림자 과로사, 경비원 74명의 죽음>에서는 KBS 탐사보도부가 5개월간 추적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경비원 과로사 실태를 집중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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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18 07:02:51
    • 수정2021-04-18 08:17:58
    탐사K

■처음 알게 된 경비원 과로사 ...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죽음

"경비원들이 과로로 사망해서 올라오는 사건이 상당히 많아요."

지난해 8월 노동자 과로사 취재를 위해 국회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 최승현 보좌관을 만났다. 노무사인 그는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 위원으로 활동했었다.

의아했다. 경비원들이 갑질로 인해 고통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과로로 사망한다는 건 몰랐기 때문이다. 연령대가 높으니 지병 때문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포털사이트에서 '경비원 과로사'를 검색해봤다. 관련 사건을 다루는 노무법인 광고가 웹페이지를 채웠다. 경비원 과로사 사건을 대상으로 한 광고 시장이 있을 정도였다.

반면 관련 뉴스는 없었다. 경비원 갑질 기사는 넘쳤지만, 과로사 문제를 다룬 기획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12월 경비원 과로사 취재를 시작했다.

서울 한 아파트의 좁은 경비 초소. 경비원들은 이곳에서 의자를 치우고 잠을 잔다.
■경비원 과로사 규모 … 정부도 몰랐다.

근로복지공단에 경비원 과로사 관련 통계와 업무상질병판정서 등을 요청했다. 자료를 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경비원 과로사만 별도로 자료가 관리되고 있지 않아 다시 분류해야 했다. 그렇게 확보한 자료도 정확하지 않았다. 경비원 과로사 업무상질병판정서 가운데는 청소 노동자나 아파트 관리소장 사건도 섞여 있었다. 자료를 노무법인 필( 유상철 ·박경환 노무사)과 함께 분석했다.

분석 결과 최근 3년간 (2018-2020년) 과로사로 인정받은 경비원이 74명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같은 기간 과로성 질환을 인정받은 경비원도 173명이나 됐다. 3년간 247명의 경비원이 과로로 인해 죽거나 질병을 얻었다는 의미다. 심사 과정에서 이들의 나이와 기저 질환 여부까지 함께 살핀 결과, 업무상 요인이 큰 것으로 결론 내린 숫자다. 과로사가 발생한 모든 직업군 가운데 자동차 운전원에 이어 2번째로 많았다. 그동안 경비원들은 쉽고 편한 업무를 한다는 이유로 근로시간과 휴게·휴일 관련 근로기준법도 적용하지 않았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경비원들이 무관심 속에 과로로 숨지고 있었다.


■계속된 거절 ... "괜히 알리고 싶지 않아요."

자료를 분석한 뒤 경비원 과로사 유족들을 만나보고자 했다. 수소문해 연락처를 얻어도 대부분 취재를 거절했다. 가슴 깊이 묻어 둔 슬픔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일부는 언론 보도를 통해 고인이 경비원으로 일한 사실을 주변에서 알게 되는 걸 걱정하기도 했다.

동료 경비원들도 도움 주길 꺼렸다. 취재에 응했다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노무사들도 '동료들의 비협조'를 경비원 과로사의 특징 중 하나로 꼽았다. 빈소에서는 고인이 과로로 힘들어했다고 말하지만, 정작 과로사 승인 신청을 위해 증언을 요청하면 입을 닫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경비원이 사망한 서울의 한 아파트 지하실. 고인은 숨지기 직전, 이곳에서 잠을 잤다.
현장에서 많은 경비원을 만났다. 대부분 취지에 공감했지만, 보도를 통해 괜히 경비원 업무에 변화가 생길 것을 두려워했다.

"그런 질문을 하고 싶은 거여.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게 좋다. 자꾸 들쑤시기 해서 못 하게 만드는 거나 똑같잖아. 그러니까 경비원 업무를 줄인다 어쩐다하니까 아파트마다 회의를 열어 가지고 경비를 줄이는 거야. 줄여도 아파트 뭐 떠내려가? 아파트가 부서져? 굴러가." - 동료 경비원

■과로사 경비원이 일한 초소 … 바뀐 건 없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선 최근 1년 사이 2명의 경비원이 사망했다. 한 명은 지난해 8월 과로사로 인정받았다. 특히 초소에서 쪽잠을 자는 열악한 수면 환경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지적됐다.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 새벽에 고인이 일하던 초소를 찾아가 봤다.

사망한 경비원이 일했던 초소 2곳을 가보니 여전히 경비원이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자고 있었다. 미간엔 짙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80평 아파트 거래 가격이 80억 원, 평당 1억 원짜리 아파트지만 경비원들은 제대로 된 휴식 공간을 제공받지 못했다. 2명이 죽었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늘 (일) 저녁 9시 40분 KBS1 <시사기획 창 - 그림자 과로사, 경비원 74명의 죽음>에서는 KBS 탐사보도부가 5개월간 추적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경비원 과로사 실태를 집중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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