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쩍벌남’에게 경고한다!…바지로 보내는 메시지?

입력 2021.02.27 (09:09) 수정 2021.02.2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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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지하철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타고 있는 두 여성.

베를린 지하철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타고 있는 두 여성.

■ '쩍벌남'을 발견한 '쩍벌녀들'

혼잡한 독일 베를린 지하철역에서 두 명의 여성이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다. 마스크를 쓰고 여봐란듯이 다리를 쩍 벌리고 있는 이들은 베를린 대학교에서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다. 25살 미나 보나크다르와 26살 엘레나 부스카이노.

이들의 바지에는 'STOP SPREADING(쩍 벌리지 마세요)'라고 적혀있다. 무슨 일일까? 쩍 벌리고 앉으며 쩍 벌리지 말라니….

상황은 이렇다. 앞에 앉은 남자 승객이 다리를 벌리고 앉는 바람에 두 좌석을 차지한 모습을 포착했다. 맞은 편에 앉은 미나와 엘레나는 갑자기 다리를 벌려 메시지를 던진다! 쩍 벌리지 말라고요!!!


미나와 엘레나는 같은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여성운동도 함께하고 있다. 어느 날 의기투합한 그들은 'RIOT PANT PROJECT(폭동 바지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다. 중고바지를 사들여 거기에 '쩍벌남' 경고 메시지를 담는 것이다.

글귀는 크게 3가지. 앞서 말한 "쩍 벌리지 마세요", "TOXIC MASCULINITY(유독한 남성성)" 그리고 "GIVE US SPACE(저희에게도 공간을 주세요)"

엘레나는 "상대방이 한 행동의 영향을 바로 이해시켜주는 것은 바로 그 행동을 흉내를 내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행동을 보여줬을 때 상대방은 바로 행동을 바꿨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행동을 즉석에서 바꾼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 다만, 대부분은 놀라기는 한 것 같다고 엘레나는 설명했다. 그녀는 '이 프로젝트가 쩍벌남녀들에게 생각할 양식'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대중교통 탄생과 함께 시작한 "쩍벌남"

'쩍벌남'의 등장은 대중교통의 탄생과 함께부터 시작됐다. 1836년 영국 신문 '더 타임즈 오브 런던'은 버스 에티켓과 관련한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다리를 똑바로 펴서앉고 다리를 45도 각도로 벌려서 두 좌석을 차지하지 말라"고...거의 2백년 전에 말이다.

하지만 이른바 '쩍벌남'이란 유행어가 탄생한 것은 그로부터 180년 가량 뒤의 일이다.
2013년 뉴욕 지하철 이용자들이 다리를 쩍 벌리고 타는 승객들의 사진을 찍어서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쩍벌남(manspreading)'은 보통명사화 됐다.

2016년 뉴욕시의 헌터컬리지가 한 연구결과를 보면, 뉴욕에서 지하철 이용 남성의 26%가 쩍벌남이고 여성들은 5%가 '쩍벌녀'였다고 한다.


■ '쩍벌남녀'는 전 세계적 현상?...일부 지역에선 벌금

쩍벌남녀의 민폐는 단지 필요 이상의 좌석을 차지하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미관상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로 하여금 위축감을 들게 하는 심리적 공격행위다.

이런 피해를 줄이기 위해 2014년 메트로폴리탄 교통 당국은 다음과 같은 캠페인 문구를 차량에 붙였다. "이 사람아! 제발 다리 좀 쩍 벌리지 마"

이런 캠페인은 영국과 미국 뿐만 아니라 일본, 터키, 스페인에서도 이어졌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말이다.

한국에서는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서 앉으라고 점잖게(?) 발자국을 지하철 바닥에 그려놓는 수준이었지만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쩍벌남녀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스페인에서는 이를 금지하는 조례까지 만들었다.

인천교통공사는 전동차 바닥에 스티커를 부착해 ‘바르게 타기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인천교통공사]인천교통공사는 전동차 바닥에 스티커를 부착해 ‘바르게 타기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인천교통공사]

■ 쩍벌남들의 변명 "구조적인 원인" 하지만...

억울하다는 쩍벌남들도 있다. 의학적으로 신체구조적으로 남자들은 쩍벌남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의학적으로 보면, 넓적다리뼈는 골반 바깥에 붙어 있어 벌어지기 쉬운 구조다. 그래서 앉거나 서 있을 때 허벅지를 살짝 벌리는 것이 편하다. 그런데 이건 여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쩍벌남'은 사회적으로 '성 역할(Gender Roles)'과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베티나 하노버는 "남자는 더 차지하듯이 앉고 그 앉은 자리가 우월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반면 "여성은 더 적은 공간을 차지하고 얌전하게 행동하도록 사회적으로 요구돼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쩍벌남녀가 사라질 날은 오기는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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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쩍벌남’에게 경고한다!…바지로 보내는 메시지?
    • 입력 2021-02-27 09:09:00
    • 수정2021-02-27 10:44:04
    취재K

베를린 지하철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타고 있는 두 여성.

■ '쩍벌남'을 발견한 '쩍벌녀들'

혼잡한 독일 베를린 지하철역에서 두 명의 여성이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다. 마스크를 쓰고 여봐란듯이 다리를 쩍 벌리고 있는 이들은 베를린 대학교에서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다. 25살 미나 보나크다르와 26살 엘레나 부스카이노.

이들의 바지에는 'STOP SPREADING(쩍 벌리지 마세요)'라고 적혀있다. 무슨 일일까? 쩍 벌리고 앉으며 쩍 벌리지 말라니….

상황은 이렇다. 앞에 앉은 남자 승객이 다리를 벌리고 앉는 바람에 두 좌석을 차지한 모습을 포착했다. 맞은 편에 앉은 미나와 엘레나는 갑자기 다리를 벌려 메시지를 던진다! 쩍 벌리지 말라고요!!!


미나와 엘레나는 같은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여성운동도 함께하고 있다. 어느 날 의기투합한 그들은 'RIOT PANT PROJECT(폭동 바지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다. 중고바지를 사들여 거기에 '쩍벌남' 경고 메시지를 담는 것이다.

글귀는 크게 3가지. 앞서 말한 "쩍 벌리지 마세요", "TOXIC MASCULINITY(유독한 남성성)" 그리고 "GIVE US SPACE(저희에게도 공간을 주세요)"

엘레나는 "상대방이 한 행동의 영향을 바로 이해시켜주는 것은 바로 그 행동을 흉내를 내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행동을 보여줬을 때 상대방은 바로 행동을 바꿨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행동을 즉석에서 바꾼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 다만, 대부분은 놀라기는 한 것 같다고 엘레나는 설명했다. 그녀는 '이 프로젝트가 쩍벌남녀들에게 생각할 양식'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대중교통 탄생과 함께 시작한 "쩍벌남"

'쩍벌남'의 등장은 대중교통의 탄생과 함께부터 시작됐다. 1836년 영국 신문 '더 타임즈 오브 런던'은 버스 에티켓과 관련한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다리를 똑바로 펴서앉고 다리를 45도 각도로 벌려서 두 좌석을 차지하지 말라"고...거의 2백년 전에 말이다.

하지만 이른바 '쩍벌남'이란 유행어가 탄생한 것은 그로부터 180년 가량 뒤의 일이다.
2013년 뉴욕 지하철 이용자들이 다리를 쩍 벌리고 타는 승객들의 사진을 찍어서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쩍벌남(manspreading)'은 보통명사화 됐다.

2016년 뉴욕시의 헌터컬리지가 한 연구결과를 보면, 뉴욕에서 지하철 이용 남성의 26%가 쩍벌남이고 여성들은 5%가 '쩍벌녀'였다고 한다.


■ '쩍벌남녀'는 전 세계적 현상?...일부 지역에선 벌금

쩍벌남녀의 민폐는 단지 필요 이상의 좌석을 차지하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미관상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로 하여금 위축감을 들게 하는 심리적 공격행위다.

이런 피해를 줄이기 위해 2014년 메트로폴리탄 교통 당국은 다음과 같은 캠페인 문구를 차량에 붙였다. "이 사람아! 제발 다리 좀 쩍 벌리지 마"

이런 캠페인은 영국과 미국 뿐만 아니라 일본, 터키, 스페인에서도 이어졌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말이다.

한국에서는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서 앉으라고 점잖게(?) 발자국을 지하철 바닥에 그려놓는 수준이었지만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쩍벌남녀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스페인에서는 이를 금지하는 조례까지 만들었다.

인천교통공사는 전동차 바닥에 스티커를 부착해 ‘바르게 타기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인천교통공사]
■ 쩍벌남들의 변명 "구조적인 원인" 하지만...

억울하다는 쩍벌남들도 있다. 의학적으로 신체구조적으로 남자들은 쩍벌남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의학적으로 보면, 넓적다리뼈는 골반 바깥에 붙어 있어 벌어지기 쉬운 구조다. 그래서 앉거나 서 있을 때 허벅지를 살짝 벌리는 것이 편하다. 그런데 이건 여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쩍벌남'은 사회적으로 '성 역할(Gender Roles)'과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베티나 하노버는 "남자는 더 차지하듯이 앉고 그 앉은 자리가 우월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반면 "여성은 더 적은 공간을 차지하고 얌전하게 행동하도록 사회적으로 요구돼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쩍벌남녀가 사라질 날은 오기는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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