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이 우울증약까지”…학폭 피해자가 다른 지역으로 진학한 사연

입력 2021.02.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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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양의 초등학교 졸업 사진 A 양의 초등학교 졸업 사진

올해 중학생이 되는 A 양은 지적장애 3급입니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입학 후에 받아쓰기 백 점을 받을 정도로 다른 아이들과 큰 차이가 없이 잘 성장했습니다.

특히 A 양이 관심이 많았던 분야는 음악입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를 배우기도 했고 2년 넘게 학교 등에서 합창단 활동을 하며 다른 사람과도 잘 어울리는 씩씩한 성격이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부터 현재까지 A 양은 심리·정서 불안 등으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바로 학교 폭력 때문입니다.

■"밟히고 맞고"…우울증약 복용도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A 양은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동급생들은 실수인 척 A 양을 때리거나 고의로 발을 밟았습니다. 같이 다니던 A 양을 따돌린 적도 있고 놀리거나 험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가해자들에 대해 서면 사과나 피해자 접촉·협박·보복 금지와 같은 가벼운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후 가해자 한 명은 스스로 전학을 갔지만, 다른 한 명은 학교에 계속 남았습니다.

 A 양 관련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과 통지서 A 양 관련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과 통지서

가해자와 계속 마주쳐야 했던 A 양의 정서적 불안정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괴롭힘을 당했던 급식실에 들어가지 못해 3년 동안 점심시간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교실 창틀에 올라가거나 얼굴 등 자신의 몸을 쥐어뜯는 등 돌발 행동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해 가족들과 외식도 어렵다고 합니다.

A 양의 어머니는 "이번 달부터 여러 아이들과 함께하는 체육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라며 "수업 중에 '화장실 가고 싶다'는 것을 핑계로 교실을 나와 주차된 차 뒤에 숨어 있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A 양의 심리 진단 결과 A 양의 심리 진단 결과

A 양의 심리 진단 결과 우울, 위축, 불안 등의 증상이 두드러진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A 양은 결국 우울증약과 신경안정제까지 복용해야 했습니다.

4년 동안 300차례가 넘는 심리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고개도 못 드는데”…졸업 후 같은 학교로 진학

힘든 시간을 견뎌내며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A 양은 가해자와 또다시 같은 중학교에 갈 처지가 됐습니다. 거주지를 기준으로 중학교가 배정되기 때문입니다.

학교 폭력 피해 사실은 인정됐지만, 학폭위에서 전학 조치를 받지 않은 경우가 아니라면 현행 법령상 상급학교 진학 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다른 학교로 강제 배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KBS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A 양의 어머니 KBS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A 양의 어머니

결국 A 양은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A 양의 어머니는 "현재 학교에서는 고개도 못 드는 딸을 위해 학교 측과 상담해 동작구에 있는 중학교로 배정받았다"라며 "같은 초등학교 졸업생 중 그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우리 아이밖에 없다고 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A 양의 어머니는 " 학교 폭력은 한 아이의 인생만 아니라 그 가족들의 삶도 망치는 일"이라면서 "당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제가 흘린 눈물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강조했습니다.

■최고 징계받아야만 상급학교 시 분리…"피해자 보호 위해 보완돼야"

A 양처럼 학교 폭력 가해자와 같은 상급 학교로 진학해 피해자가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9년 같은 중학교 동급생으로부터 학교 폭력을 당했던 한 학생은 학폭위 조치로 가해자와 다른 반으로 배정돼 남은 학교생활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A 양의 사례처럼, 학폭위에서 전학 조치가 내려지지 않은 탓에 올해 가해자와 같은 고등학교로 배정됐습니다. 결국 이 학생도 직접 나서서 후기 원서 접수를 한 뒤에야 다른 학교로 갈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되는 가운데, 학교 폭력 피해자의 보호를 위해서는 상급학교 진학 시 강제 분리가 보다 확대 적용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푸른나무재단 학교폭력문제연구소 김미정 수석연구원 푸른나무재단 학교폭력문제연구소 김미정 수석연구원

김미정 푸른나무재단 학교폭력문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학교 폭력 이후 피해자가 가해자를 대면하는 건 어려운 일로 피해 회복 정도에 따라 같은 학교 진학 시 충격이 굉장히 클 수 있다”라며 “회복 여부나 안전 여부 등 피해자 상황을 고려해 상급학교 진학 시 다른 학교로 배정하는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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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생이 우울증약까지”…학폭 피해자가 다른 지역으로 진학한 사연
    • 입력 2021-02-27 08:00:51
    취재K
 A 양의 초등학교 졸업 사진
올해 중학생이 되는 A 양은 지적장애 3급입니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입학 후에 받아쓰기 백 점을 받을 정도로 다른 아이들과 큰 차이가 없이 잘 성장했습니다.

특히 A 양이 관심이 많았던 분야는 음악입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를 배우기도 했고 2년 넘게 학교 등에서 합창단 활동을 하며 다른 사람과도 잘 어울리는 씩씩한 성격이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부터 현재까지 A 양은 심리·정서 불안 등으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바로 학교 폭력 때문입니다.

■"밟히고 맞고"…우울증약 복용도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A 양은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동급생들은 실수인 척 A 양을 때리거나 고의로 발을 밟았습니다. 같이 다니던 A 양을 따돌린 적도 있고 놀리거나 험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가해자들에 대해 서면 사과나 피해자 접촉·협박·보복 금지와 같은 가벼운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후 가해자 한 명은 스스로 전학을 갔지만, 다른 한 명은 학교에 계속 남았습니다.

 A 양 관련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과 통지서
가해자와 계속 마주쳐야 했던 A 양의 정서적 불안정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괴롭힘을 당했던 급식실에 들어가지 못해 3년 동안 점심시간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교실 창틀에 올라가거나 얼굴 등 자신의 몸을 쥐어뜯는 등 돌발 행동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해 가족들과 외식도 어렵다고 합니다.

A 양의 어머니는 "이번 달부터 여러 아이들과 함께하는 체육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라며 "수업 중에 '화장실 가고 싶다'는 것을 핑계로 교실을 나와 주차된 차 뒤에 숨어 있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A 양의 심리 진단 결과
A 양의 심리 진단 결과 우울, 위축, 불안 등의 증상이 두드러진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A 양은 결국 우울증약과 신경안정제까지 복용해야 했습니다.

4년 동안 300차례가 넘는 심리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고개도 못 드는데”…졸업 후 같은 학교로 진학

힘든 시간을 견뎌내며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A 양은 가해자와 또다시 같은 중학교에 갈 처지가 됐습니다. 거주지를 기준으로 중학교가 배정되기 때문입니다.

학교 폭력 피해 사실은 인정됐지만, 학폭위에서 전학 조치를 받지 않은 경우가 아니라면 현행 법령상 상급학교 진학 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다른 학교로 강제 배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KBS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A 양의 어머니
결국 A 양은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A 양의 어머니는 "현재 학교에서는 고개도 못 드는 딸을 위해 학교 측과 상담해 동작구에 있는 중학교로 배정받았다"라며 "같은 초등학교 졸업생 중 그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우리 아이밖에 없다고 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A 양의 어머니는 " 학교 폭력은 한 아이의 인생만 아니라 그 가족들의 삶도 망치는 일"이라면서 "당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제가 흘린 눈물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강조했습니다.

■최고 징계받아야만 상급학교 시 분리…"피해자 보호 위해 보완돼야"

A 양처럼 학교 폭력 가해자와 같은 상급 학교로 진학해 피해자가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9년 같은 중학교 동급생으로부터 학교 폭력을 당했던 한 학생은 학폭위 조치로 가해자와 다른 반으로 배정돼 남은 학교생활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A 양의 사례처럼, 학폭위에서 전학 조치가 내려지지 않은 탓에 올해 가해자와 같은 고등학교로 배정됐습니다. 결국 이 학생도 직접 나서서 후기 원서 접수를 한 뒤에야 다른 학교로 갈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되는 가운데, 학교 폭력 피해자의 보호를 위해서는 상급학교 진학 시 강제 분리가 보다 확대 적용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푸른나무재단 학교폭력문제연구소 김미정 수석연구원
김미정 푸른나무재단 학교폭력문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학교 폭력 이후 피해자가 가해자를 대면하는 건 어려운 일로 피해 회복 정도에 따라 같은 학교 진학 시 충격이 굉장히 클 수 있다”라며 “회복 여부나 안전 여부 등 피해자 상황을 고려해 상급학교 진학 시 다른 학교로 배정하는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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