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태국의 팔순 노모와 아들에게 일어난 기적

입력 2021.02.27 (08:00) 수정 2021.02.2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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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이 세 번째였다. 앞서 이틀 동안 두 번이나 은행을 찾았지만, 줄이 너무 길어 등록하지 못했다. 늙은 모자는 이번엔 자정쯤 집을 떠나 새벽 4시쯤 은행에 도착했다.

지난 17일, 태국 북부 캄팡펫의 크렁타이은행 지점. 정부가 지급하는 코로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은행에 등록하러 온 주민들의 줄이 이어졌다. 그중에 노이 아이마사트(81세)와 그의 아들 참니안(62세)도 있었다. 모자는 1인당 7천 밧(26만 원 정도)의 코로나 위기 극복 지원금을 신청했다. 휴대폰 앱을 내려받으면 쉽게 신청할 수 있지만, 휴대폰이 없는 시민은 은행을 직접 찾아 등록해야 한다.

이들 모자는 32km나 떨어진 집에서 걷거나, 이웃의 도움으로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은행까지 왔다. 날이 밝고 은행 문이 열릴 무렵인 8시 반쯤, 모자는 챙겨온 밥과 물을 나눠 먹었다. 폰 던 카몬팁의 눈에 우연히 이 모자의 '서러운' 아침 식사가 눈에 들어왔다.

노이 아이마사트(81세)가 그의 아들 참니안(62세)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주는 코로나 보조금을 받기 위해 자정부터 은행 앞에서 줄을 서 있었다. (사진 : 폰 던 카몬팁의 페이스북)노이 아이마사트(81세)가 그의 아들 참니안(62세)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주는 코로나 보조금을 받기 위해 자정부터 은행 앞에서 줄을 서 있었다. (사진 : 폰 던 카몬팁의 페이스북)

카몬팁은 아침 9시쯤 이들의 영상을 촬영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영상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태국은 인구의 80%인 5천7백만 명이 페이스북에 가입해 있다). 다음날 현지 언론에는 81세의 노모가 62세의 아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사진이 크게 실렸다.

카몬팁의 페이스북에는 모자를 돕겠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며칠 만에 7백3십만 밧(2억 8천만 원 정도)이 모금됐다. 노이의 딸 렉 보우텟(61)은 TV 인터뷰에서 "이 돈은 우리 가족이 꿈도 꿀 수 없는 큰돈"이라고 했다. 이들은 이제 충분하다며 지난 22일 기부금 계좌를 닫았다. 이 돈으로 집을 수리하고 남은 돈은 저축할 계획이다. 구청에서는 노이의 친척들로 이뤄진 위원회를 만들어 이 돈을 관리하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코로나 19'라는 긴 강을 건너는 태국의 오늘을 그대로 보여준다. 카몬팁의 페이스북에는 "결국 우리는 우리가 돌봐야 한다"는 정부 비판의 글이 이어졌다. "차가 없고, 휴대폰이 없고, 돈이 없는 국민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사진이 없었으면 모자는 아직도 걸어서 집에 가고 있을 것"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휴대폰이 없는 태국 시민들이 은행에 직접 코로나 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 선 줄이 끝없이 이어진다.휴대폰이 없는 태국 시민들이 은행에 직접 코로나 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 선 줄이 끝없이 이어진다.

동남아에서 인도네시아 다음 경제 대국인 태국은 여전히 국민 상당수가 절대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빈부격차는 세계 최대 수준이다. 반면 태국 CP(Charoen Pokphand)그룹의 체라와논 가문(317억 달러)은 아시아에서 3번째 부자다. (고 이건희 회장일가가 266억 달러로 5위다/자료 블룸버그 2020)

이들 모자가 신청한 코로나 지원금의 이름은 'RAO CHANA(우리가 이긴다)'이다. 태국 정부의 재정 2천1백억 밧(8조 원 정도)이 투입된다(태국의 1인당 GDP는 한국의 1/6 정도다) 지금까지 태국 국민 1천만 명 정도가 신청했다. 정작 이 모자는 이제 신청금을 받을 자격을 잃었다. 통장에 50만 밧(1,900만 원 가량) 이상을 소유한 국민은 이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지난해 태국 정부는 'RAO MAI TING KUN(모두 함께 간다/No one left)'라는 지원금도 지급했다. 석 달간 (등록된) 근로자 1인당 15,000밧(55만 원 정도)을 지원했다. 태국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50:50이라는 자영업 지원 프로그램도 시행 중이다. 앱을 내려받아 해당 식당이나 상점에서 물건을 사면 가격의 절반은 정부가 지원한다. 1인당 하루 1,500밧(6만 원정도)까지 가능한데, 주로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도움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1,300만 명이 이 앱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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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태국의 팔순 노모와 아들에게 일어난 기적
    • 입력 2021-02-27 08:00:37
    • 수정2021-02-27 13:55:06
    특파원 리포트
이날이 세 번째였다. 앞서 이틀 동안 두 번이나 은행을 찾았지만, 줄이 너무 길어 등록하지 못했다. 늙은 모자는 이번엔 자정쯤 집을 떠나 새벽 4시쯤 은행에 도착했다.

지난 17일, 태국 북부 캄팡펫의 크렁타이은행 지점. 정부가 지급하는 코로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은행에 등록하러 온 주민들의 줄이 이어졌다. 그중에 노이 아이마사트(81세)와 그의 아들 참니안(62세)도 있었다. 모자는 1인당 7천 밧(26만 원 정도)의 코로나 위기 극복 지원금을 신청했다. 휴대폰 앱을 내려받으면 쉽게 신청할 수 있지만, 휴대폰이 없는 시민은 은행을 직접 찾아 등록해야 한다.

이들 모자는 32km나 떨어진 집에서 걷거나, 이웃의 도움으로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은행까지 왔다. 날이 밝고 은행 문이 열릴 무렵인 8시 반쯤, 모자는 챙겨온 밥과 물을 나눠 먹었다. 폰 던 카몬팁의 눈에 우연히 이 모자의 '서러운' 아침 식사가 눈에 들어왔다.

노이 아이마사트(81세)가 그의 아들 참니안(62세)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주는 코로나 보조금을 받기 위해 자정부터 은행 앞에서 줄을 서 있었다. (사진 : 폰 던 카몬팁의 페이스북)
카몬팁은 아침 9시쯤 이들의 영상을 촬영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영상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태국은 인구의 80%인 5천7백만 명이 페이스북에 가입해 있다). 다음날 현지 언론에는 81세의 노모가 62세의 아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사진이 크게 실렸다.

카몬팁의 페이스북에는 모자를 돕겠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며칠 만에 7백3십만 밧(2억 8천만 원 정도)이 모금됐다. 노이의 딸 렉 보우텟(61)은 TV 인터뷰에서 "이 돈은 우리 가족이 꿈도 꿀 수 없는 큰돈"이라고 했다. 이들은 이제 충분하다며 지난 22일 기부금 계좌를 닫았다. 이 돈으로 집을 수리하고 남은 돈은 저축할 계획이다. 구청에서는 노이의 친척들로 이뤄진 위원회를 만들어 이 돈을 관리하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코로나 19'라는 긴 강을 건너는 태국의 오늘을 그대로 보여준다. 카몬팁의 페이스북에는 "결국 우리는 우리가 돌봐야 한다"는 정부 비판의 글이 이어졌다. "차가 없고, 휴대폰이 없고, 돈이 없는 국민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사진이 없었으면 모자는 아직도 걸어서 집에 가고 있을 것"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휴대폰이 없는 태국 시민들이 은행에 직접 코로나 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 선 줄이 끝없이 이어진다.
동남아에서 인도네시아 다음 경제 대국인 태국은 여전히 국민 상당수가 절대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빈부격차는 세계 최대 수준이다. 반면 태국 CP(Charoen Pokphand)그룹의 체라와논 가문(317억 달러)은 아시아에서 3번째 부자다. (고 이건희 회장일가가 266억 달러로 5위다/자료 블룸버그 2020)

이들 모자가 신청한 코로나 지원금의 이름은 'RAO CHANA(우리가 이긴다)'이다. 태국 정부의 재정 2천1백억 밧(8조 원 정도)이 투입된다(태국의 1인당 GDP는 한국의 1/6 정도다) 지금까지 태국 국민 1천만 명 정도가 신청했다. 정작 이 모자는 이제 신청금을 받을 자격을 잃었다. 통장에 50만 밧(1,900만 원 가량) 이상을 소유한 국민은 이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지난해 태국 정부는 'RAO MAI TING KUN(모두 함께 간다/No one left)'라는 지원금도 지급했다. 석 달간 (등록된) 근로자 1인당 15,000밧(55만 원 정도)을 지원했다. 태국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50:50이라는 자영업 지원 프로그램도 시행 중이다. 앱을 내려받아 해당 식당이나 상점에서 물건을 사면 가격의 절반은 정부가 지원한다. 1인당 하루 1,500밧(6만 원정도)까지 가능한데, 주로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도움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1,300만 명이 이 앱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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