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로 인사한 새 일본대사, 격리 끝 활동 개시

입력 2021.02.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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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주한일본대사를 맡게 된 아이보시입니다."

회색 정장에 옥색 넥타이. 마스크를 쓴 그의 첫 인사는 유창한 한국어였습니다. 오늘(26일) 오전,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의 면담을 마친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신임 주한일본대사는 '지한파'라는 평가에 걸맞게 기자들과 유창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대화 도중 너무 얼굴 가까이 다가온 마이크 때문에 웃음을 짓기도 하는 등,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는데요. 최종건 차관과의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아마 나중에 적절한 자리에서 또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오늘은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이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직전까지 이스라엘 주재 대사를 지내다 지난 12일 한국에 입국한 아이보시 대사가 공식 일정을 시작한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동안은 2주간 자가격리를 지켜 왔습니다. 대사와 같은 외교사절은 입국 뒤 2주간 격리를 꼭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한국의 방역 노력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아이보시 대사는 격리를 자청했다고 합니다.

아이보시 대사의 한국 근무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1999년 3월 주한일본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한국과 첫 연을 맺었고, 2006년 8월에는 공사로 부임했습니다.

한국 근무 덕일까요? 한류 팬을 자처하기도 하는데, 2008년 직접 쓴 칼럼에서 "해외 출장 비행기 안에서 한국 영화를 보고 출장지에서도 현지의 한국요리점을 꼭 들렀다"며, 한국 문화를 통해 업무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보시 대사는 지난 15일 주한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에 올린 부임사에서 "한일 양국은 쌍방의 국민이 각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높은 관심을 두고 있는 중요한 이웃 국가"라고 적었습니다.

또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는 한일, 한미일의 협력이 필수 불가결하다"며, '전에 없이 엄중한 한일 관계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도 했는데요.

최종건 1차관(오른쪽)이 26일 아이보시 신임 주한일본대사를 면담했다.최종건 1차관(오른쪽)이 26일 아이보시 신임 주한일본대사를 면담했다.

오늘 최종건 차관 역시 한국 근무경험은 물론 우리 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아이보시 대사의 부임을 축하하고, 양국관계가 어려울수록 외교 당국 간 원활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대한해협이 이렇게 넓고 깊었나

다만 각종 현안을 연계하지 않고, 사안별로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가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와 달리 당장 한일관계에는 뾰족한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선 오늘 면담에서도 빠지지 않고 언급된, 우리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제기 소송 판결이 가장 큰 현안으로 꼽힙니다.

당장 한일 양국은 그제(24일) UN 인권이사회 무대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맞붙었는데요.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의 기조연설을 두고 일본이 2015년 위안부 합의 위반이라고 비판한 겁니다.

일본 측은 '양국 정부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통해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비난과 비판을 자제하기로 했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보편적 인권 문제'이며, 2015년 합의에서도 '위안부' 문제 자체를 언급하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다고 설명합니다.

이 같은 논박이 국제무대에서 벌어진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새 일본 대사가 외교부를 방문한 것인데요. 면담 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우리 외교부는 '양측이 각국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고만 했습니다.

 정의용 외교부장관(오른쪽)과 모테기 일본 외상. 정 장관 취임 후에도 두 사람은 아직 통화하지 않았다.  정의용 외교부장관(오른쪽)과 모테기 일본 외상. 정 장관 취임 후에도 두 사람은 아직 통화하지 않았다.

■ '여보세요'는 있어도 '모시모시'는 없다

한일 관계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는 하나 더 있습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취임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아직까지 한일 외교장관 간 통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건데요. 외교부 당국자는 오늘 기자들의 질의에 "통화(일정)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며 "소통은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짧은 전화통화 하나로 한일 관계에 진전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상견례 성격의 전화통화조차 일정이 잡히지 않는 현실은 그만큼 양국 관계가 어렵다는 뜻이겠죠. 이제 관심은 다가오는 3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경축사에 쏠려 있습니다.

2018년에는 '독도는 우리 고유의 영토'이며, '위안부' 문제도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며 날을 세웠던 문 대통령. 반면 지난해에는 '일본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며, '역사를 거울삼아 함께 손잡는 게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길'이라고 협력을 제안했는데요.

모두가 한목소리로 한일 양국이 역대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평가하는 지금, 돌아오는 3.1절 102주년에 멀고도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을 향해 문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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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말로 인사한 새 일본대사, 격리 끝 활동 개시
    • 입력 2021-02-26 16:29:15
    취재K

"이번에 주한일본대사를 맡게 된 아이보시입니다."

회색 정장에 옥색 넥타이. 마스크를 쓴 그의 첫 인사는 유창한 한국어였습니다. 오늘(26일) 오전,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의 면담을 마친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신임 주한일본대사는 '지한파'라는 평가에 걸맞게 기자들과 유창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대화 도중 너무 얼굴 가까이 다가온 마이크 때문에 웃음을 짓기도 하는 등,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는데요. 최종건 차관과의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아마 나중에 적절한 자리에서 또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오늘은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이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직전까지 이스라엘 주재 대사를 지내다 지난 12일 한국에 입국한 아이보시 대사가 공식 일정을 시작한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동안은 2주간 자가격리를 지켜 왔습니다. 대사와 같은 외교사절은 입국 뒤 2주간 격리를 꼭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한국의 방역 노력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아이보시 대사는 격리를 자청했다고 합니다.

아이보시 대사의 한국 근무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1999년 3월 주한일본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한국과 첫 연을 맺었고, 2006년 8월에는 공사로 부임했습니다.

한국 근무 덕일까요? 한류 팬을 자처하기도 하는데, 2008년 직접 쓴 칼럼에서 "해외 출장 비행기 안에서 한국 영화를 보고 출장지에서도 현지의 한국요리점을 꼭 들렀다"며, 한국 문화를 통해 업무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보시 대사는 지난 15일 주한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에 올린 부임사에서 "한일 양국은 쌍방의 국민이 각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높은 관심을 두고 있는 중요한 이웃 국가"라고 적었습니다.

또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는 한일, 한미일의 협력이 필수 불가결하다"며, '전에 없이 엄중한 한일 관계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도 했는데요.

최종건 1차관(오른쪽)이 26일 아이보시 신임 주한일본대사를 면담했다.
오늘 최종건 차관 역시 한국 근무경험은 물론 우리 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아이보시 대사의 부임을 축하하고, 양국관계가 어려울수록 외교 당국 간 원활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대한해협이 이렇게 넓고 깊었나

다만 각종 현안을 연계하지 않고, 사안별로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가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와 달리 당장 한일관계에는 뾰족한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선 오늘 면담에서도 빠지지 않고 언급된, 우리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제기 소송 판결이 가장 큰 현안으로 꼽힙니다.

당장 한일 양국은 그제(24일) UN 인권이사회 무대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맞붙었는데요.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의 기조연설을 두고 일본이 2015년 위안부 합의 위반이라고 비판한 겁니다.

일본 측은 '양국 정부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통해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비난과 비판을 자제하기로 했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보편적 인권 문제'이며, 2015년 합의에서도 '위안부' 문제 자체를 언급하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다고 설명합니다.

이 같은 논박이 국제무대에서 벌어진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새 일본 대사가 외교부를 방문한 것인데요. 면담 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우리 외교부는 '양측이 각국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고만 했습니다.

 정의용 외교부장관(오른쪽)과 모테기 일본 외상. 정 장관 취임 후에도 두 사람은 아직 통화하지 않았다.
■ '여보세요'는 있어도 '모시모시'는 없다

한일 관계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는 하나 더 있습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취임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아직까지 한일 외교장관 간 통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건데요. 외교부 당국자는 오늘 기자들의 질의에 "통화(일정)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며 "소통은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짧은 전화통화 하나로 한일 관계에 진전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상견례 성격의 전화통화조차 일정이 잡히지 않는 현실은 그만큼 양국 관계가 어렵다는 뜻이겠죠. 이제 관심은 다가오는 3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경축사에 쏠려 있습니다.

2018년에는 '독도는 우리 고유의 영토'이며, '위안부' 문제도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며 날을 세웠던 문 대통령. 반면 지난해에는 '일본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며, '역사를 거울삼아 함께 손잡는 게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길'이라고 협력을 제안했는데요.

모두가 한목소리로 한일 양국이 역대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평가하는 지금, 돌아오는 3.1절 102주년에 멀고도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을 향해 문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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