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용균 추모제가 정치적? 마로니에공원 불허한 종로구

입력 2020.11.2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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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산재로 숨졌습니다. 그의 비통한 죽음으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됐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어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논의에서도 그의 이름은 여전히 호명됩니다. '이 정도의 법안으로 김용균을 보호할 수 있는가'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습니다.

그 김용균의 2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12월 둘째 주 열립니다. 김용균 2주기 추모위원회는 김용균재단을 포함해 90개 노동·예술단체로 구성됐습니다. 12월 6일 추모주간 선포에 이어, 7일 작은 사업장 노동자 안전권리를 위한 활동가 워크숍, 8일 문화예술노동자 산재실태조사 발표, 10일 태안화력발전소 현장 추모제가 열립니다.

12일 마지막 날에는 추모문화제가 준비되어 왔습니다. 장소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추모제는 무산될 위기입니다. 종로구가공원 사용을 불허했기 때문입니다. 추모제가 '정치적'이어서 공원 조성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 '정치적'이라 불허된 김용균 추모문화제, 내용 보니…

주최 측이 종로구청에 제출한 마로니에 공원 사용 계획서는 이렇습니다.


행사명은 '김용균 추모문화제'이고, 주요 행사는 예술가들의 시 낭송과 낭독 노래극 공연입니다. 송경동 시인을 비롯해 한국작가회의 소속 시인 8명이 고인을 추모하는 시를 낭송하는 2시간 남짓한 행사입니다. 그나마도 20여 명을 초청해 온라인으로 중계하는 형식을 추진 중이었다고 합니다.

추모위원회는 코로나19 상황이어서 겨울인데도 일부러 야외 공연장을 신청했습니다. 마로니에공원은 사설 공연장보다 대관료가 저렴해 예술단체들의 재정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이 신청서를 접수한 종로구청 공원운영위원회는 지난 18일 대관 신청 사용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회의를 열어, 신청을 부결 처리했습니다. 같은 날 시설을 이용하겠다고 먼저 신청한 단체도 없었습니다. 추모위원회는 종로구청으로부터 "심의위원들이 정치적인 문화제라고 판단했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 정치 행사라서 안 된다더니... 명시 규정 없어

종로구에 문의해보니, "마로니에 공원은 정치, 상업, 종교적인 행사는 원칙적으로 불허해왔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종로구 도시공원 운영에 관한 규칙에 따른 결정이라는 겁니다.

근거가 된 조항을 찾아보니 이렇습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도시공원 운영에 관한 규칙

제6조 (이용승인) ① 구청장은 제5조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를 검토하여 이용승인 여부를 결정하며 필요에 따라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공원운영위원회를 개최하여 이용승인을 결정할 수 있다.
1. 공원의 조성목적에 위배되는지 여부

추모제가 정치 행사라는 해석은 차치하더라도, 종로구가 설명한 원칙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심의에서는 "추모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내용이 정치적인 구호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행사에서 낭송할 시 내용을 제대로 검토한 것도 아닙니다. 추모위원회는 추모제에서 낭송할 시는 이미 2019년 사설 공연장에서 진행한 첫 시 낭송회에서 발표했다면서, 종로구가 추가로 요청했다면 제출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밖에도 "추모제가 순수예술 공연으로 볼 수 없다"는 얘기도 나왔다는데요, 공원운영위원회의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아 논의 과정을 파악할 수는 없었습니다.

종로구 공원운영위원회의 김용균 추모제의 신청 불가 결정은 위원 9명 가운데 6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원합의로 결정됐습니다. 이 결정은 재심 절차도 없습니다. 2주기 추모제 마지막 날의 피날레 행사를 준비하던 추모위원회 측은 이런 사유로 신청이 불허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 "추모제 불허는 문화예술 검열행위블랙리스트 결정이나 마찬가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등 추모위원회에 참여한 문화예술 단체는 성명을 내고 종로구청에 결정 취소와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작가회의는 추모제를 "일하는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지 않게, 시민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자는 소박한 염원을 담은 시낭송 행사"였다면서, "김용균이라는 이름만 보고 정치적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이어 "대여를 불허한 것은 아무런 판단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결정한 독단적 횡포였다. 이는 사회참여적인 문화예술을 블랙리스트로 규정해 불법 사찰, 검열, 배제해 왔던 전임 정부의 블랙리스트 공작과 다를 바 없는 폭거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만행에 다름 아니다."라고 규탄했습니다.

나아가 "김용균 추모가 정치적이라고 하는 것은 김용균에 대한 모욕이며, 산재로 사망한 전체 노동자들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한 문화예술계는 물론 노동사회에서도 결코 이 점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용균 열사에 앞서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모행사가 열린 게 불과 열흘 전입니다. 노동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무궁화장이 추서되기도 했습니다. 노동존중사회라는 구호가 나오고 있지만, 동시에 산재로 숨진 노동자의 추모조차 정치적으로 판단되어 금기시되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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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김용균 추모제가 정치적? 마로니에공원 불허한 종로구
    • 입력 2020-11-23 19:19:45
    취재K


2018년 12월,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산재로 숨졌습니다. 그의 비통한 죽음으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됐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어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논의에서도 그의 이름은 여전히 호명됩니다. '이 정도의 법안으로 김용균을 보호할 수 있는가'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습니다.

그 김용균의 2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12월 둘째 주 열립니다. 김용균 2주기 추모위원회는 김용균재단을 포함해 90개 노동·예술단체로 구성됐습니다. 12월 6일 추모주간 선포에 이어, 7일 작은 사업장 노동자 안전권리를 위한 활동가 워크숍, 8일 문화예술노동자 산재실태조사 발표, 10일 태안화력발전소 현장 추모제가 열립니다.

12일 마지막 날에는 추모문화제가 준비되어 왔습니다. 장소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추모제는 무산될 위기입니다. 종로구가공원 사용을 불허했기 때문입니다. 추모제가 '정치적'이어서 공원 조성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 '정치적'이라 불허된 김용균 추모문화제, 내용 보니…

주최 측이 종로구청에 제출한 마로니에 공원 사용 계획서는 이렇습니다.


행사명은 '김용균 추모문화제'이고, 주요 행사는 예술가들의 시 낭송과 낭독 노래극 공연입니다. 송경동 시인을 비롯해 한국작가회의 소속 시인 8명이 고인을 추모하는 시를 낭송하는 2시간 남짓한 행사입니다. 그나마도 20여 명을 초청해 온라인으로 중계하는 형식을 추진 중이었다고 합니다.

추모위원회는 코로나19 상황이어서 겨울인데도 일부러 야외 공연장을 신청했습니다. 마로니에공원은 사설 공연장보다 대관료가 저렴해 예술단체들의 재정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이 신청서를 접수한 종로구청 공원운영위원회는 지난 18일 대관 신청 사용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회의를 열어, 신청을 부결 처리했습니다. 같은 날 시설을 이용하겠다고 먼저 신청한 단체도 없었습니다. 추모위원회는 종로구청으로부터 "심의위원들이 정치적인 문화제라고 판단했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 정치 행사라서 안 된다더니... 명시 규정 없어

종로구에 문의해보니, "마로니에 공원은 정치, 상업, 종교적인 행사는 원칙적으로 불허해왔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종로구 도시공원 운영에 관한 규칙에 따른 결정이라는 겁니다.

근거가 된 조항을 찾아보니 이렇습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도시공원 운영에 관한 규칙

제6조 (이용승인) ① 구청장은 제5조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를 검토하여 이용승인 여부를 결정하며 필요에 따라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공원운영위원회를 개최하여 이용승인을 결정할 수 있다.
1. 공원의 조성목적에 위배되는지 여부

추모제가 정치 행사라는 해석은 차치하더라도, 종로구가 설명한 원칙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심의에서는 "추모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내용이 정치적인 구호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행사에서 낭송할 시 내용을 제대로 검토한 것도 아닙니다. 추모위원회는 추모제에서 낭송할 시는 이미 2019년 사설 공연장에서 진행한 첫 시 낭송회에서 발표했다면서, 종로구가 추가로 요청했다면 제출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밖에도 "추모제가 순수예술 공연으로 볼 수 없다"는 얘기도 나왔다는데요, 공원운영위원회의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아 논의 과정을 파악할 수는 없었습니다.

종로구 공원운영위원회의 김용균 추모제의 신청 불가 결정은 위원 9명 가운데 6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원합의로 결정됐습니다. 이 결정은 재심 절차도 없습니다. 2주기 추모제 마지막 날의 피날레 행사를 준비하던 추모위원회 측은 이런 사유로 신청이 불허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 "추모제 불허는 문화예술 검열행위블랙리스트 결정이나 마찬가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등 추모위원회에 참여한 문화예술 단체는 성명을 내고 종로구청에 결정 취소와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작가회의는 추모제를 "일하는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지 않게, 시민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자는 소박한 염원을 담은 시낭송 행사"였다면서, "김용균이라는 이름만 보고 정치적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이어 "대여를 불허한 것은 아무런 판단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결정한 독단적 횡포였다. 이는 사회참여적인 문화예술을 블랙리스트로 규정해 불법 사찰, 검열, 배제해 왔던 전임 정부의 블랙리스트 공작과 다를 바 없는 폭거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만행에 다름 아니다."라고 규탄했습니다.

나아가 "김용균 추모가 정치적이라고 하는 것은 김용균에 대한 모욕이며, 산재로 사망한 전체 노동자들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한 문화예술계는 물론 노동사회에서도 결코 이 점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용균 열사에 앞서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모행사가 열린 게 불과 열흘 전입니다. 노동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무궁화장이 추서되기도 했습니다. 노동존중사회라는 구호가 나오고 있지만, 동시에 산재로 숨진 노동자의 추모조차 정치적으로 판단되어 금기시되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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