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울린 사회적기업]① 월급도 빼앗겼다…명목은 ‘후원금’

입력 2020.09.1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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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KBS는 사회적 약자를 울리는 사회적기업을 고발하는 2편의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이 기사는 첫 번째 보도입니다.]

■ 들어가며...

불평등과 빈부격차, 환경파괴…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진 폐해로 꼽힙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대안이 '사회적 경제'입니다. 경제적 이익 극대화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상생과 나눔까지 실현하는 경제 활동을 일컫습니다.

노인이나 장애인 등 사회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주고, 이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주민 스스로 나서는 조직, 저소득층이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자립 기반을 키워주는 회사. 이 모두가 사회적 경제의 영역입니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농어촌공동체회사 등 사업 내용과 역할에 따라 붙는 이름표는 다르지만, 사회적 가치도 만족시키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상생의 길을 누가 반대할 수 있을까요?

강원도 춘천의 한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강원도 춘천의 한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

■ 예비사회적기업, "장애인 일자리 만든다더니 장애인 월급 뺏어"

그런데 2주 전, KBS 취재진이 전해 들은 이야기는 놀라웠습니다.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겠다던 사회적협동조합이자 예비사회적기업이 오히려 장애인 직원들의 임금을 착취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올해 4월, 비장애인 김 모 씨는 강원도 춘천의 한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에 입사하게 됩니다. 회사의 자립기반을 키우는 전문인력 역할이었습니다.

장애인 직원과 일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기대도 컸습니다. 2018년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사회적협동조합 형태로 시작한 회사였고, 지난해에는 사회적가치 창출에 앞장선다며 강원도로부터 예비사회적기업 지정까지 받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경제를 함께 이뤄가자는 좋은 뜻에 동참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근무 환경은 김 씨의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입사하자마자 회사 대표는 김 씨에게 후원금을 요구했습니다. 월급의 일부를 회사에 반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김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2번이나 요구에 응해야 했습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장애인 직원들도 월급의 일부를 후원금으로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발달장애 1급인 한 장애인 직원은 하루에 4시간씩 일하며, 실급여액은 91만 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손에 쥐는 돈은 고작 51만 원, 나머지 40만 원은 회사에 되돌려줘야 했습니다. 일자리를 얻은 직후인 2018년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2년 가까이 800여만 원을 냈습니다. 이 또한 후원금 명목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이곳에서 일했다던 또 다른 발달장애인도 하루 8시간 일하며 162만 원을 받았는데, 매달 꼬박꼬박 41만 원씩 후원금을 냈다고 전했습니다. 9개월 동안 400만 원 정도를 회사에 반납했습니다. 최저임금은 서류상의 얘기일 뿐, 이들이 받은 급여는 그에도 못 미쳤습니다.

■ "불만 있으면 나가" vs "고통 분담 차원의 자발적 후원"

해당 사회적협동조합의 법인통장 거래내역. 월급 91만 원이 입금된 뒤 하루 이틀 뒤에 40만 원이 후원금 명목으로 회사로 반납됐다.해당 사회적협동조합의 법인통장 거래내역. 월급 91만 원이 입금된 뒤 하루 이틀 뒤에 40만 원이 후원금 명목으로 회사로 반납됐다.

취재진이 이 회사의 법인통장 거래내역을 입수해 확인해 본 결과, 직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게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월급을 입금하면 하루 이틀 안에 다시 회사에 월급 일부를 돌려주는 식이었습니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회사 대표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돌려줘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용기를 내 회사 대표에게 항의도 해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불만 있는 사람이 나가라", 또는 "나가서 돈을 벌어와라", "지금 나가도 일자리 구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고 호소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장이자 예비사회적기업의 대표는 "회사의 경영이 어렵다 보니, 짐을 함께 나누기 위한 직원들의 자발적인 기부였다"고 반박했습니다. 심지어, "한 장애인 직원의 보호자에게는 동의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협박이나 강요는 없었다는 겁니다.

또, "조합의 특성상 대표를 포함해 모든 직원이 경영 손실을 분담하는 건 당연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출자금을 낸 조합원이 매달 후원금을 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럴 의무는 없다고 답하면서, "월급을 온전히 받고 싶으면 그렇게 주는 직장으로 가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추가 취재 결과, 해당 사회적협동조합은 경영손실에 대해, 조합원 모두에게 후원금 명목의 돈을 공평하게 분담시킨 건 아니었습니다. 또 조합원이 아닌 직원에게도 후원금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장애인 일자리, "최저임금 못 받아도, 후원금을 내더라도..."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장애인 직원이 일하고 있다.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장애인 직원이 일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취재진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장애인 직원의 가족이었습니다. 요약하면, 결론적으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일한 건 맞지만, 가족들 입장에서는 후원금을 내서라도 직장을 다녔으면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바로 회사 대표가 말한 '후원금에 대한 가족들의 동의'인 셈이었습니다. 장애인들이 일하며 주변과 어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배울 기회가 많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정작 장애인 직원 당사자는 억울하다고 외쳤지만, 장애인 가족을 둔 나머지 가족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런 애환을 가진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월급을 되돌려달라는 회사 대표의 요청을 쉽게 무시할 수 있었을까요? 장애인을 돕겠다며 만든 기업이 '일자리 유지'를 핑계로 월급 반납을 강요하는 일, 그리고 회사 대표가 주장한 '가족들의 동의'가 어떤 의미인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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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 울린 사회적기업]① 월급도 빼앗겼다…명목은 ‘후원금’
    • 입력 2020-09-19 10:08:07
    취재K
[편집자 주 : KBS는 사회적 약자를 울리는 사회적기업을 고발하는 2편의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이 기사는 첫 번째 보도입니다.]

■ 들어가며...

불평등과 빈부격차, 환경파괴…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진 폐해로 꼽힙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대안이 '사회적 경제'입니다. 경제적 이익 극대화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상생과 나눔까지 실현하는 경제 활동을 일컫습니다.

노인이나 장애인 등 사회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주고, 이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주민 스스로 나서는 조직, 저소득층이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자립 기반을 키워주는 회사. 이 모두가 사회적 경제의 영역입니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농어촌공동체회사 등 사업 내용과 역할에 따라 붙는 이름표는 다르지만, 사회적 가치도 만족시키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상생의 길을 누가 반대할 수 있을까요?

강원도 춘천의 한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
■ 예비사회적기업, "장애인 일자리 만든다더니 장애인 월급 뺏어"

그런데 2주 전, KBS 취재진이 전해 들은 이야기는 놀라웠습니다.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겠다던 사회적협동조합이자 예비사회적기업이 오히려 장애인 직원들의 임금을 착취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올해 4월, 비장애인 김 모 씨는 강원도 춘천의 한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에 입사하게 됩니다. 회사의 자립기반을 키우는 전문인력 역할이었습니다.

장애인 직원과 일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기대도 컸습니다. 2018년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사회적협동조합 형태로 시작한 회사였고, 지난해에는 사회적가치 창출에 앞장선다며 강원도로부터 예비사회적기업 지정까지 받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경제를 함께 이뤄가자는 좋은 뜻에 동참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근무 환경은 김 씨의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입사하자마자 회사 대표는 김 씨에게 후원금을 요구했습니다. 월급의 일부를 회사에 반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김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2번이나 요구에 응해야 했습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장애인 직원들도 월급의 일부를 후원금으로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발달장애 1급인 한 장애인 직원은 하루에 4시간씩 일하며, 실급여액은 91만 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손에 쥐는 돈은 고작 51만 원, 나머지 40만 원은 회사에 되돌려줘야 했습니다. 일자리를 얻은 직후인 2018년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2년 가까이 800여만 원을 냈습니다. 이 또한 후원금 명목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이곳에서 일했다던 또 다른 발달장애인도 하루 8시간 일하며 162만 원을 받았는데, 매달 꼬박꼬박 41만 원씩 후원금을 냈다고 전했습니다. 9개월 동안 400만 원 정도를 회사에 반납했습니다. 최저임금은 서류상의 얘기일 뿐, 이들이 받은 급여는 그에도 못 미쳤습니다.

■ "불만 있으면 나가" vs "고통 분담 차원의 자발적 후원"

해당 사회적협동조합의 법인통장 거래내역. 월급 91만 원이 입금된 뒤 하루 이틀 뒤에 40만 원이 후원금 명목으로 회사로 반납됐다.
취재진이 이 회사의 법인통장 거래내역을 입수해 확인해 본 결과, 직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게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월급을 입금하면 하루 이틀 안에 다시 회사에 월급 일부를 돌려주는 식이었습니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회사 대표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돌려줘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용기를 내 회사 대표에게 항의도 해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불만 있는 사람이 나가라", 또는 "나가서 돈을 벌어와라", "지금 나가도 일자리 구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고 호소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장이자 예비사회적기업의 대표는 "회사의 경영이 어렵다 보니, 짐을 함께 나누기 위한 직원들의 자발적인 기부였다"고 반박했습니다. 심지어, "한 장애인 직원의 보호자에게는 동의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협박이나 강요는 없었다는 겁니다.

또, "조합의 특성상 대표를 포함해 모든 직원이 경영 손실을 분담하는 건 당연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출자금을 낸 조합원이 매달 후원금을 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럴 의무는 없다고 답하면서, "월급을 온전히 받고 싶으면 그렇게 주는 직장으로 가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추가 취재 결과, 해당 사회적협동조합은 경영손실에 대해, 조합원 모두에게 후원금 명목의 돈을 공평하게 분담시킨 건 아니었습니다. 또 조합원이 아닌 직원에게도 후원금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장애인 일자리, "최저임금 못 받아도, 후원금을 내더라도..."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장애인 직원이 일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취재진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장애인 직원의 가족이었습니다. 요약하면, 결론적으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일한 건 맞지만, 가족들 입장에서는 후원금을 내서라도 직장을 다녔으면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바로 회사 대표가 말한 '후원금에 대한 가족들의 동의'인 셈이었습니다. 장애인들이 일하며 주변과 어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배울 기회가 많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정작 장애인 직원 당사자는 억울하다고 외쳤지만, 장애인 가족을 둔 나머지 가족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런 애환을 가진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월급을 되돌려달라는 회사 대표의 요청을 쉽게 무시할 수 있었을까요? 장애인을 돕겠다며 만든 기업이 '일자리 유지'를 핑계로 월급 반납을 강요하는 일, 그리고 회사 대표가 주장한 '가족들의 동의'가 어떤 의미인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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