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태풍에 떼어진 고속도로 방현망에 ‘쾅’…누구 책임일까

입력 2020.09.1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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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엔 '방현망'이 설치돼 있습니다. 방현망이란 반대편 차량의 전조등 불빛으로 인한 눈부심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되는 시설인데요. 만약 이 방현망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이를 들이받은 차가 망가졌다면 누구의 책임일까요. 그런데 이 방현망이 전날 거센 태풍으로 급작스럽게 떨어져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면 또 어떨까요. 태풍이 한시름 지나간 와중, 자연재해의 피해 수습과 관련된 쟁점을 다룬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새벽에 피할 틈 없이 고속도로 방현망에 '쾅'…차주 "배상하라"

A 씨는 지난 2018년 10월 새벽 5시쯤, 삼락~대동 구간 중앙고속도로 부산 방향으로 BMW 승용차를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 씨는 대저JC와 삼락IC 사이를 운행하던 도중, 강서낙동강교 부근 중앙분리대에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채 일부 떨어져 나간 방현망과 충돌했습니다.

다행히 이 사고로 인명피해는 없었고, 차량만 파손됐습니다. A 씨의 남편 B 씨는 이 사고로 차량 수리비 370여만 원, 차량 대여비로 40여만 원을 각각 지출해야 했습니다.

화가 난 B 씨는 고속도로 관리 주체인 한국도로공사에 자신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민법 제758조는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瑕疵)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공작물 점유자, 소유자가 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B 씨는 "이 사건 사고는 이 사건 도로의 설치·관리상 하자로 인해 발생한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손해배상으로 수리비 3,708,749원과 대차료 418,519원의 합계 4,127,268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도로공사 "태풍 탓…우리 설치관리 하자로 발생한 사고 아냐"

그러나 도로공사 측은 "이 사고는 B 씨 차량이 태풍 콩레이로 인하여 이 사건 도로에 낙하되어 있던 이 사건 방현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라고 맞섰습니다.

특히 도로공사는 "도로의 관리에 최선을 다하였으며,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 태풍 콩레이에 의한 피해가 빈발하고 있었으므로 이 사건 방현망에 대한 점검까지 요구하는 것은 피고의 인력과 여건 등 제반사정에 비추어 기대하기 어렵다"며 "따라서 피고의 설치·관리상의 하자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민법상 '공작물의 설치·보존상의 하자'는 공작물이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말합니다. 안전성의 구비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당해 공작물의 설치·보존자가 그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례하여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였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삼는데, 도로의 설치·관리상의 하자는 도로의 위치 등 장소적인 조건, 도로의 구조, 교통량, 사고 시에 있어서의 교통 사정 등 도로의 이용 상황과 그 본래의 이용 목적 등 여러 사정과 물적 결함의 위치, 형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한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법원 "고속도로가 안전성 갖추지 못한 상태…불가항력으로 볼 근거 없어"

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를 근거로 B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부산지방법원 제4-1민사부는 "도로공사는 이 사건 도로 및 이 사건 방현망의 설치․관리에 관하여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 도로는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먼저 "방현망은 중앙분리대에서 떨어져 나가는 경우 차량 운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적 위험성을 가지고 있고, 방현망의 소재나 크기 등에 비추어 진행 중인 차량과 충돌 시 심각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도로의 관리책임이 있는 피고로서는 이 사건 방현망의 설치 시기, 부식 정도, 날씨 등을 감안하여 이 사건 방현망의 안전성을 수시로 점검하여 그로 인한 사고 발생을 방지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더욱이 이 사건 사고 당일에는 태풍 콩레이의 예보가 있었으므로, 피고로서는 태풍의 영향으로 이 사건 방현망이 떨어져 나가는 경우를 대비하여 그 상태를 철저히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보다 요구되는 상황이었다"면서 "도로공사가 이 사건 사고 발생 이전에 이 사건 방현망의 안전성을 점검하고 보수하였다는 등의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비록 피고가 24시간 교통상황실을 운영하면서 안전순찰을 하고 이 사건 도로의 노면 청소와 잡물 제거 등을 시행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만으로 피고가 이 사건 도로에 관한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방현망이 일부 떨어져 나간 것을 두고 태풍 콩레이 등 도로공사가 책임질 수 없는 불가항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단 겁니다.

게다가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에 의하면 흰색 물체가 빠르게 원고 차량 앞으로 와서 부딪히고 뒤로 지나간 것으로 보이는 이상 도로공사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도로에 이미 떨어져 있던 방현망과 원고 차량이 충돌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고 봤습니다.

아울러 법원은 "사고 당시 비가 내리고 있었고 일출 전이어서 시야 확보가 어려웠던 상황까지 고려하면, 이 사건 도로를 정상적으로 주행하고 있던 원고 차량에게 이 사건 방현망이 중앙분리대에 제대로 고정되지 아니한 채 일부 떨어져 나가 도로 쪽으로 튀어나올 가능성까지 예상하고 이를 대비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따라서 이 사건 사고는 이 사건 도로의 설치 보존상의 하자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가 이 사건 사고로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만 법원은 B 씨가 청구한 손해액을 전부 인정하진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입은 손해가 자연력과 가해자의 과실행위가 경합되어 발생된 경우 가해자의 배상범위는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견지에서 손해발생에 대하여 자연력이 기여하였다고 인정되는 부분을 공제한 나머지 부분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법원은 "사고 당일 태풍 콩레이는 제주도를 거쳐 통영시에 상륙하였고 창원시와 밀양시 일대를 거쳐 동해로 빠져나간 사실, 태풍 콩레이는 중심기압 970hPa, 중심 최대 풍속 35m/s로 강한 태풍이었고, 이 사건 사고 당일 부산과 경남의 주요 교량들이 통제됐다"며 "방현망이 떨어져 나간 데에 위와 같은 태풍의 영향도 있었다고 보이는바, 이러한 자연력의 기여를 고려하여 피고의 책임 비율을 85%로 제한한다"고 판단하고, 도로공사에 35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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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남] 태풍에 떼어진 고속도로 방현망에 ‘쾅’…누구 책임일까
    • 입력 2020-09-19 09:02:01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엔 '방현망'이 설치돼 있습니다. 방현망이란 반대편 차량의 전조등 불빛으로 인한 눈부심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되는 시설인데요. 만약 이 방현망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이를 들이받은 차가 망가졌다면 누구의 책임일까요. 그런데 이 방현망이 전날 거센 태풍으로 급작스럽게 떨어져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면 또 어떨까요. 태풍이 한시름 지나간 와중, 자연재해의 피해 수습과 관련된 쟁점을 다룬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새벽에 피할 틈 없이 고속도로 방현망에 '쾅'…차주 "배상하라"

A 씨는 지난 2018년 10월 새벽 5시쯤, 삼락~대동 구간 중앙고속도로 부산 방향으로 BMW 승용차를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 씨는 대저JC와 삼락IC 사이를 운행하던 도중, 강서낙동강교 부근 중앙분리대에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채 일부 떨어져 나간 방현망과 충돌했습니다.

다행히 이 사고로 인명피해는 없었고, 차량만 파손됐습니다. A 씨의 남편 B 씨는 이 사고로 차량 수리비 370여만 원, 차량 대여비로 40여만 원을 각각 지출해야 했습니다.

화가 난 B 씨는 고속도로 관리 주체인 한국도로공사에 자신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민법 제758조는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瑕疵)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공작물 점유자, 소유자가 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B 씨는 "이 사건 사고는 이 사건 도로의 설치·관리상 하자로 인해 발생한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손해배상으로 수리비 3,708,749원과 대차료 418,519원의 합계 4,127,268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도로공사 "태풍 탓…우리 설치관리 하자로 발생한 사고 아냐"

그러나 도로공사 측은 "이 사고는 B 씨 차량이 태풍 콩레이로 인하여 이 사건 도로에 낙하되어 있던 이 사건 방현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라고 맞섰습니다.

특히 도로공사는 "도로의 관리에 최선을 다하였으며,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 태풍 콩레이에 의한 피해가 빈발하고 있었으므로 이 사건 방현망에 대한 점검까지 요구하는 것은 피고의 인력과 여건 등 제반사정에 비추어 기대하기 어렵다"며 "따라서 피고의 설치·관리상의 하자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민법상 '공작물의 설치·보존상의 하자'는 공작물이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말합니다. 안전성의 구비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당해 공작물의 설치·보존자가 그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례하여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였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삼는데, 도로의 설치·관리상의 하자는 도로의 위치 등 장소적인 조건, 도로의 구조, 교통량, 사고 시에 있어서의 교통 사정 등 도로의 이용 상황과 그 본래의 이용 목적 등 여러 사정과 물적 결함의 위치, 형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한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법원 "고속도로가 안전성 갖추지 못한 상태…불가항력으로 볼 근거 없어"

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를 근거로 B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부산지방법원 제4-1민사부는 "도로공사는 이 사건 도로 및 이 사건 방현망의 설치․관리에 관하여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 도로는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먼저 "방현망은 중앙분리대에서 떨어져 나가는 경우 차량 운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적 위험성을 가지고 있고, 방현망의 소재나 크기 등에 비추어 진행 중인 차량과 충돌 시 심각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도로의 관리책임이 있는 피고로서는 이 사건 방현망의 설치 시기, 부식 정도, 날씨 등을 감안하여 이 사건 방현망의 안전성을 수시로 점검하여 그로 인한 사고 발생을 방지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더욱이 이 사건 사고 당일에는 태풍 콩레이의 예보가 있었으므로, 피고로서는 태풍의 영향으로 이 사건 방현망이 떨어져 나가는 경우를 대비하여 그 상태를 철저히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보다 요구되는 상황이었다"면서 "도로공사가 이 사건 사고 발생 이전에 이 사건 방현망의 안전성을 점검하고 보수하였다는 등의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비록 피고가 24시간 교통상황실을 운영하면서 안전순찰을 하고 이 사건 도로의 노면 청소와 잡물 제거 등을 시행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만으로 피고가 이 사건 도로에 관한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방현망이 일부 떨어져 나간 것을 두고 태풍 콩레이 등 도로공사가 책임질 수 없는 불가항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단 겁니다.

게다가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에 의하면 흰색 물체가 빠르게 원고 차량 앞으로 와서 부딪히고 뒤로 지나간 것으로 보이는 이상 도로공사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도로에 이미 떨어져 있던 방현망과 원고 차량이 충돌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고 봤습니다.

아울러 법원은 "사고 당시 비가 내리고 있었고 일출 전이어서 시야 확보가 어려웠던 상황까지 고려하면, 이 사건 도로를 정상적으로 주행하고 있던 원고 차량에게 이 사건 방현망이 중앙분리대에 제대로 고정되지 아니한 채 일부 떨어져 나가 도로 쪽으로 튀어나올 가능성까지 예상하고 이를 대비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따라서 이 사건 사고는 이 사건 도로의 설치 보존상의 하자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가 이 사건 사고로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만 법원은 B 씨가 청구한 손해액을 전부 인정하진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입은 손해가 자연력과 가해자의 과실행위가 경합되어 발생된 경우 가해자의 배상범위는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견지에서 손해발생에 대하여 자연력이 기여하였다고 인정되는 부분을 공제한 나머지 부분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법원은 "사고 당일 태풍 콩레이는 제주도를 거쳐 통영시에 상륙하였고 창원시와 밀양시 일대를 거쳐 동해로 빠져나간 사실, 태풍 콩레이는 중심기압 970hPa, 중심 최대 풍속 35m/s로 강한 태풍이었고, 이 사건 사고 당일 부산과 경남의 주요 교량들이 통제됐다"며 "방현망이 떨어져 나간 데에 위와 같은 태풍의 영향도 있었다고 보이는바, 이러한 자연력의 기여를 고려하여 피고의 책임 비율을 85%로 제한한다"고 판단하고, 도로공사에 35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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