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정상회담 2주년…꽉 막힌 남북 관계, 돌파구 있을까

입력 2020.09.1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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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평양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2018년 9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서 시작된 역대 다섯 번째 남북정상회담은 2박 3일간 진행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9월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가 채택됐고, 남북 정상은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전쟁 없는 한반도'와 '적대의 역사 종식'을 약속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사상 처음으로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을 했고, 남북 정상 부부는 함께 백두산에 올랐습니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향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고, 곧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한껏 높아졌습니다.

2018년 9월 19일 남북 정상 부부가 백두산 천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2018년 9월 19일 남북 정상 부부가 백두산 천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남북관계는 차갑게 얼어붙었습니다. 북한은 대북전단을 문제 삼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남북 간 통신연락선마저 모두 끊겼습니다.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 이행은 멈춰 있고, 교착을 거듭하고 있는 북미협상의 전망도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2주년, 당시 합의의 주요 의미와 함께 꽉 막힌 남북관계의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짚어 봅니다.

"전쟁위험 제거·적대관계 해소"... 9.19 군사합의

모두 6개 조로 구성돼 있는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의 1조는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입니다. 이를 위해 남북은 그해 4월 '판문점선언'에 담겨 있는 군사 분야의 합의 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이행 합의서, 즉 '9.19 군사합의'를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채택했습니다.


양 측의 국방장관이 서명한 '9.19 군사합의'는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의 적대행위를 중지함으로써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평화적 환경 조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내용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비무장지대(DMZ) 내 GP(감시초소) 시범철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서해상 평화수역 설정, 화살머리고지 일대 공동유해발굴 등의 세부 내용들을 촘촘하게 담았습니다.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총론적 조항을 담았던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한층 구체화해 '남북 간 불가침 합의',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2018년 9월 19일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과 북한의 노광철 당시 인민무력상이 군사합의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2018년 9월 19일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과 북한의 노광철 당시 인민무력상이 군사합의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군사합의에 따라 남과 북, 그리고 유엔군사령부는 3자 협의체를 구성해 그해 10월 27일부로 공동경비구역 내 지뢰 제거와 초소·화기 철수, 인원 조정 등 비무장화 조치를 취했습니다. 또 남북 군사 당국은 그해 12월 12일부로 서로 1km 이내 거리에서 마주 보고 있던 GP 22개를 시범 철수했습니다. 화기와 장비, 인원을 모두 철수하고 시설물은 철거·폭파한 뒤 남북 군인들이 상호 현장 공동검증을 실시했습니다.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각각 5km로 설정된 완충구역에서 포병사격,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고, 화살머리고지 일대 지뢰 제거로 공동유해발굴 여건을 조성하는 등 군사합의 이행은 2018년 말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군사합의 이행 조치는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GP는 북측 160여 개, 남측 60여 개 가운에 극히 일부만 철수하는 '시범 철수'에 그쳤고, JSA 내 남북 간 자유 왕래도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지난 5월에는 북한군이 우리 GP에 기관총을 발사하고 우리 군이 대응사격 하는 등 합의 위반에 해당하는 상황들도 발생했습니다.

그럼에도 9.19 군사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며, 의미 있는 합의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군사합의 이행이 미진하고 일부 후퇴한 부분도 있지만, 돌아보면 최근 2~3년간 서해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크게 긴장이 고조되었던 일은 없었다"며 "9.19 군사합의가 남북 간 '충돌 방지'라는 기본 목적에 맞게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남북간에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조치들이 실천에 옮겨진 것이 사실상 처음"이라며 "이 같은 초기조치를 한 점이 큰 의미가 있고, 불완전하게 유지되고 있긴 하지만 북한도 이것을 전면적으로 깰 의사는 아직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도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의 싱크탱크인 CSIS가 주최한 화상 세미나에서 9·19 남북군사합의와 관련해 남북 접경 상황은 차분하고 안정적이라면서 "일부 충돌이 있었지만, 대체로 북한은 2018년 9월부터 포괄적 군사합의를 준수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반도를 핵무기·핵 위협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평양공동선언의 또 다른 핵심은 5조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는 부분입니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며, 미국이 6.12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하면 '영변 핵시설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도 할 용의가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남과 북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긴밀히 협력한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한 판문점선언에서 한 걸음 나아간 내용이었습니다.

이 조항이 특히 의미 있는 것은 이전까지 북한이 '비핵화 문제는 북미 간의 의제이지 남북 간 합의할 의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었기 때문입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관계 역사에서 비핵화가 구체적인 의제로 올라온 적은 사실상 없었다"며 "그런데 9.19 평양공동선언에는 북한 핵 개발의 상징인 영변 핵 단지의 폐기까지 거론하는 등 남북 정상이 아주 구체적으로 비핵화 방안을 논의하고 그 내용을 담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역사적인 합의라 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하노이 노딜' 이후 꽉 막힌 남북관계... 돌파구 있을까

그러나 평양공동선언의 이른바 '영변 딜'을 핵심으로 했던 이듬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남북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노거래협상딜딜' 직후인 지난해 4월 "(남측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공개 비난했고, 10월엔 남북 경협의 상징인 금강산관광지구를 시찰하며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당국 간 대화는 물론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도 극도로 제한됐고, 북한은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코로나19 방역 제안 등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지난 6월에는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더니 남북 정상 간 합의로 개소했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어 예고했던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면서 긴장은 낮아진 상태지만, 이후에도 북한은 우리의 관계복원 노력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북미 협상도 장기 교착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코로나19 대유행과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의 영향으로 북미 간 대화는 현재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은 수해와 태풍 피해까지 겹치면서 경제성장 목표를 재차 수정하는 등 내부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최근 태풍 피해 복구 등에 주력하면서 내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제시할 새로운 국가발전의 전략과 노선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만큼 북한이 올해 말까지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당분간은 내치에 집중하면서, 미 대선 결과를 지켜보며 전략을 가다듬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동안 우리 역시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이관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은 "미 대선 결과가 나오고 내년 8차 당대회에서 북한의 전략노선이 수립된다면 이후 다시 본격적으로 대화가 가동될 수 있다"며 "앞으로 전개될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 시나리오별로 구체적인 대처 방안을 지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지난 2년여 동안 비핵화 문제나 남북관계에 있어 무엇이 장애가 되는지 우리가 경험하고 파악했던 것을 토대로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고 중재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지금이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시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홍민 실장도 "비록 남북관계, 북미 관계가 정체돼 있지만 그간의 합의, 그리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했던 대화의 노력들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라며 "향후 미국과 북한이 대화 기조를 유지하고 기존에 합의했던 것들을 이어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코로나19의 대유행과 미중 전략경쟁의 가속화 등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환경적 변수들을 고려하면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협력방식들을 계속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평양공동선언 2주년, 우리 정부는 공식 기념행사는 열지 않았습니다. 2년 전 이루었던 의미 있는 합의들은 동력을 잃은 채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힘들게 이루었던 합의들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다시 이행의 단계에 들어설 수 있는 동력을 만드는 준비와 노력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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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2년 전 평양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2018년 9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서 시작된 역대 다섯 번째 남북정상회담은 2박 3일간 진행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9월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가 채택됐고, 남북 정상은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전쟁 없는 한반도'와 '적대의 역사 종식'을 약속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사상 처음으로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을 했고, 남북 정상 부부는 함께 백두산에 올랐습니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향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고, 곧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한껏 높아졌습니다.

2018년 9월 19일 남북 정상 부부가 백두산 천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남북관계는 차갑게 얼어붙었습니다. 북한은 대북전단을 문제 삼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남북 간 통신연락선마저 모두 끊겼습니다.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 이행은 멈춰 있고, 교착을 거듭하고 있는 북미협상의 전망도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2주년, 당시 합의의 주요 의미와 함께 꽉 막힌 남북관계의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짚어 봅니다.

"전쟁위험 제거·적대관계 해소"... 9.19 군사합의

모두 6개 조로 구성돼 있는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의 1조는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입니다. 이를 위해 남북은 그해 4월 '판문점선언'에 담겨 있는 군사 분야의 합의 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이행 합의서, 즉 '9.19 군사합의'를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채택했습니다.


양 측의 국방장관이 서명한 '9.19 군사합의'는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의 적대행위를 중지함으로써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평화적 환경 조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내용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비무장지대(DMZ) 내 GP(감시초소) 시범철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서해상 평화수역 설정, 화살머리고지 일대 공동유해발굴 등의 세부 내용들을 촘촘하게 담았습니다.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총론적 조항을 담았던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한층 구체화해 '남북 간 불가침 합의',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2018년 9월 19일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과 북한의 노광철 당시 인민무력상이 군사합의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군사합의에 따라 남과 북, 그리고 유엔군사령부는 3자 협의체를 구성해 그해 10월 27일부로 공동경비구역 내 지뢰 제거와 초소·화기 철수, 인원 조정 등 비무장화 조치를 취했습니다. 또 남북 군사 당국은 그해 12월 12일부로 서로 1km 이내 거리에서 마주 보고 있던 GP 22개를 시범 철수했습니다. 화기와 장비, 인원을 모두 철수하고 시설물은 철거·폭파한 뒤 남북 군인들이 상호 현장 공동검증을 실시했습니다.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각각 5km로 설정된 완충구역에서 포병사격,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고, 화살머리고지 일대 지뢰 제거로 공동유해발굴 여건을 조성하는 등 군사합의 이행은 2018년 말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군사합의 이행 조치는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GP는 북측 160여 개, 남측 60여 개 가운에 극히 일부만 철수하는 '시범 철수'에 그쳤고, JSA 내 남북 간 자유 왕래도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지난 5월에는 북한군이 우리 GP에 기관총을 발사하고 우리 군이 대응사격 하는 등 합의 위반에 해당하는 상황들도 발생했습니다.

그럼에도 9.19 군사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며, 의미 있는 합의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군사합의 이행이 미진하고 일부 후퇴한 부분도 있지만, 돌아보면 최근 2~3년간 서해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크게 긴장이 고조되었던 일은 없었다"며 "9.19 군사합의가 남북 간 '충돌 방지'라는 기본 목적에 맞게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남북간에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조치들이 실천에 옮겨진 것이 사실상 처음"이라며 "이 같은 초기조치를 한 점이 큰 의미가 있고, 불완전하게 유지되고 있긴 하지만 북한도 이것을 전면적으로 깰 의사는 아직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도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의 싱크탱크인 CSIS가 주최한 화상 세미나에서 9·19 남북군사합의와 관련해 남북 접경 상황은 차분하고 안정적이라면서 "일부 충돌이 있었지만, 대체로 북한은 2018년 9월부터 포괄적 군사합의를 준수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반도를 핵무기·핵 위협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평양공동선언의 또 다른 핵심은 5조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는 부분입니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며, 미국이 6.12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하면 '영변 핵시설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도 할 용의가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남과 북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긴밀히 협력한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한 판문점선언에서 한 걸음 나아간 내용이었습니다.

이 조항이 특히 의미 있는 것은 이전까지 북한이 '비핵화 문제는 북미 간의 의제이지 남북 간 합의할 의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었기 때문입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관계 역사에서 비핵화가 구체적인 의제로 올라온 적은 사실상 없었다"며 "그런데 9.19 평양공동선언에는 북한 핵 개발의 상징인 영변 핵 단지의 폐기까지 거론하는 등 남북 정상이 아주 구체적으로 비핵화 방안을 논의하고 그 내용을 담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역사적인 합의라 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하노이 노딜' 이후 꽉 막힌 남북관계... 돌파구 있을까

그러나 평양공동선언의 이른바 '영변 딜'을 핵심으로 했던 이듬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남북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노거래협상딜딜' 직후인 지난해 4월 "(남측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공개 비난했고, 10월엔 남북 경협의 상징인 금강산관광지구를 시찰하며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당국 간 대화는 물론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도 극도로 제한됐고, 북한은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코로나19 방역 제안 등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지난 6월에는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더니 남북 정상 간 합의로 개소했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어 예고했던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면서 긴장은 낮아진 상태지만, 이후에도 북한은 우리의 관계복원 노력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북미 협상도 장기 교착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코로나19 대유행과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의 영향으로 북미 간 대화는 현재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은 수해와 태풍 피해까지 겹치면서 경제성장 목표를 재차 수정하는 등 내부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최근 태풍 피해 복구 등에 주력하면서 내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제시할 새로운 국가발전의 전략과 노선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만큼 북한이 올해 말까지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당분간은 내치에 집중하면서, 미 대선 결과를 지켜보며 전략을 가다듬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동안 우리 역시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이관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은 "미 대선 결과가 나오고 내년 8차 당대회에서 북한의 전략노선이 수립된다면 이후 다시 본격적으로 대화가 가동될 수 있다"며 "앞으로 전개될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 시나리오별로 구체적인 대처 방안을 지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지난 2년여 동안 비핵화 문제나 남북관계에 있어 무엇이 장애가 되는지 우리가 경험하고 파악했던 것을 토대로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고 중재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지금이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시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홍민 실장도 "비록 남북관계, 북미 관계가 정체돼 있지만 그간의 합의, 그리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했던 대화의 노력들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라며 "향후 미국과 북한이 대화 기조를 유지하고 기존에 합의했던 것들을 이어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코로나19의 대유행과 미중 전략경쟁의 가속화 등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환경적 변수들을 고려하면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협력방식들을 계속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평양공동선언 2주년, 우리 정부는 공식 기념행사는 열지 않았습니다. 2년 전 이루었던 의미 있는 합의들은 동력을 잃은 채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힘들게 이루었던 합의들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다시 이행의 단계에 들어설 수 있는 동력을 만드는 준비와 노력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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