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라 교통사고 사망 위자료 절반만?…“죽음 앞에 고통은 같다”

입력 2020.08.06 (13:20) 수정 2020.08.0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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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 김 모 씨는 2017년 휠체어를 타고 길을 건너다 화물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이에 김 씨의 자녀 정 모 씨는 이듬해 사고차량 보험사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2019년 10월 1심 법원은 숨진 김 씨에게는 위자료 5천만 원을, 원고인 정 씨에게는 위자료 1천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문제가 된 건 위자료 산정 근거로서 '기왕장해'(기존에 이미 갖고 있었던 장해)라는 표현이 판결문에 담겼다는 점이었습니다. 김 씨가 사고 이전부터 1급 지체(하지 기능) 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 위자료 산정에 반영됐다는 거죠.

유족 측은 망인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서울중앙지법의 교통사고 사망 위자료 산정 기준 금액인 1억 원의 절반만 인정하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곧바로 항소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5월, 2심 재판부도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 "장애인이라 위자료 50%만 인정?"…'기왕장해'가 뭐길래

서울중앙지법은 2015년부터 교통사고로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이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위자료 산정 기준 금액을 1억 원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 소송의 위자료는 담당 재판부가 재량으로 정하게 돼 있어 기준 금액이 일률적으로 적용되거나 강제적인 효력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법관들이 위자료 산정에 참고하는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정확한 위자료는 당사자의 과실 비율이나 사고 경위, 나이, 직업, 사회적 지위, 재산 등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해 산정됩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변론종결 당시까지 발생한 일체의 사정이 위자료 참작 대상입니다.

실제로 김 씨에 대한 판결에서도 '기왕장해'뿐 아니라 사고 경위와 김 씨의 나이, 과실 정도, 정 씨와의 인적 관계, 형사사건에서 지급된 합의금 액수 등 제반 사정이 모두 참작됐습니다.

하지만 유족 측은 김 씨의 위자료를 산정하는 데 장애인이라는 점이 반영됐다면 그 자체로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고통의 크기는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장애인 단체 "장애인이라고 덜 고통스럽나"…법원 판결 비판

사단법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차연)는 오늘(6일) 오전 유족과 함께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에게도 동등한 교통사고 위자료를 인정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1심 재판부가 '기왕장해'를 위자료 산정의 근거로 든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기왕증', '기왕장해'라는 표현은 평소 장애인이 보상을 요구할 때 보험 회사들이 보상 회피 목적으로 활용하는 표현이라며, 이제 법원까지 기왕장해를 들먹이며 장애인의 목숨값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장애는 현재 손상의 정도 또는 상황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거죠.

장차연은 법원이 스스로 정한 위자료 기준을 장애인에게만 다르게 적용하는 건 명백한 장애인 차별금지법 위반 행위라고도 꼬집었습니다. 앞으로 보험회사들이 이런 판결을 악용할 수 있는 만큼, 반드시 대법원에서 판결이 바로잡혀야 한다고도 촉구했습니다.

장차연은 "위자료는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이라며 "갑작스러운 사고 앞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던 사람과 그 가족이 어떤 부분에서 비장애인보다 덜 고통스러울 것으로 판단하는지 재판부에 묻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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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이라 교통사고 사망 위자료 절반만?…“죽음 앞에 고통은 같다”
    • 입력 2020-08-06 13:20:56
    • 수정2020-08-06 13:21:59
    취재K
1급 지체장애인 김 모 씨는 2017년 휠체어를 타고 길을 건너다 화물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이에 김 씨의 자녀 정 모 씨는 이듬해 사고차량 보험사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2019년 10월 1심 법원은 숨진 김 씨에게는 위자료 5천만 원을, 원고인 정 씨에게는 위자료 1천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문제가 된 건 위자료 산정 근거로서 '기왕장해'(기존에 이미 갖고 있었던 장해)라는 표현이 판결문에 담겼다는 점이었습니다. 김 씨가 사고 이전부터 1급 지체(하지 기능) 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 위자료 산정에 반영됐다는 거죠.

유족 측은 망인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서울중앙지법의 교통사고 사망 위자료 산정 기준 금액인 1억 원의 절반만 인정하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곧바로 항소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5월, 2심 재판부도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 "장애인이라 위자료 50%만 인정?"…'기왕장해'가 뭐길래

서울중앙지법은 2015년부터 교통사고로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이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위자료 산정 기준 금액을 1억 원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 소송의 위자료는 담당 재판부가 재량으로 정하게 돼 있어 기준 금액이 일률적으로 적용되거나 강제적인 효력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법관들이 위자료 산정에 참고하는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정확한 위자료는 당사자의 과실 비율이나 사고 경위, 나이, 직업, 사회적 지위, 재산 등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해 산정됩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변론종결 당시까지 발생한 일체의 사정이 위자료 참작 대상입니다.

실제로 김 씨에 대한 판결에서도 '기왕장해'뿐 아니라 사고 경위와 김 씨의 나이, 과실 정도, 정 씨와의 인적 관계, 형사사건에서 지급된 합의금 액수 등 제반 사정이 모두 참작됐습니다.

하지만 유족 측은 김 씨의 위자료를 산정하는 데 장애인이라는 점이 반영됐다면 그 자체로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고통의 크기는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장애인 단체 "장애인이라고 덜 고통스럽나"…법원 판결 비판

사단법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차연)는 오늘(6일) 오전 유족과 함께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에게도 동등한 교통사고 위자료를 인정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1심 재판부가 '기왕장해'를 위자료 산정의 근거로 든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기왕증', '기왕장해'라는 표현은 평소 장애인이 보상을 요구할 때 보험 회사들이 보상 회피 목적으로 활용하는 표현이라며, 이제 법원까지 기왕장해를 들먹이며 장애인의 목숨값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장애는 현재 손상의 정도 또는 상황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거죠.

장차연은 법원이 스스로 정한 위자료 기준을 장애인에게만 다르게 적용하는 건 명백한 장애인 차별금지법 위반 행위라고도 꼬집었습니다. 앞으로 보험회사들이 이런 판결을 악용할 수 있는 만큼, 반드시 대법원에서 판결이 바로잡혀야 한다고도 촉구했습니다.

장차연은 "위자료는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이라며 "갑작스러운 사고 앞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던 사람과 그 가족이 어떤 부분에서 비장애인보다 덜 고통스러울 것으로 판단하는지 재판부에 묻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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