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순간] ‘시네마 천국’으로 떠난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

입력 2020.07.0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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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의 상징이 된 음악, '시네마 천국' OST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살바토레는 30년간 방문하지 않았던 고향 시실리로 향합니다. 어린 시절 그를 영화의 세계로 안내한 친구이자 멘토였던 영사기사 알프레도 아저씨의 부고 때문이었죠. 30년 전 알프레도는 첫사랑과 이별한 뒤 방황하던 청년 살바토레에게 "로마로 가서 세상을 거머쥐라"며 등을 떠밀었습니다. 작별의 순간에도 그는 "절대 돌아오지 말라"면서, "혹시 돌아오면 우리 집에 발도 못들이게 할 것"이라고, 매정한 당부를 반복했습니다.

알프레도의 말처럼 세상을 거머쥔 살바토레에게 그는 낡은 필름 뭉치를 선물로 남겼습니다. 로마로 돌아와서 필름을 영사기에 넣고 스크린 앞에 앉은 살바토레, 잠시 뒤 펼쳐진 화면은 수많은 영화의 키스신들입니다. 고향의 극장 영사실에서 알프레도의 조수 노릇을 하던 어린 시절, 신부님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삭제된 키스신들을 모두 붙여 놓은 겁니다.

영사실 너머로 훔쳐본 영화에 매료됐던, 그야말로 '시네마 천국'에 빠져 살았던 아름다운 추억이 흑백의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살바토레에게 절대 고향으로 돌아오지 말라 신신당부한 이유는 사실, 티 없이 행복했던 순간들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을 예술의 동력으로 삼길 바랐던 알프레도의 '큰 그림'이었던 겁니다.

살바토레가 반복되는 키스신을 행복하게 바라볼 때 흐르는 음악,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사랑의 테마'입니다.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아련한 멜로디를 플루트가 이어받더니,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음색으로 발전했다가, 다시 바이올린 독주로 사라지듯 마무리되는 이 음악은 1988년 개봉한 영화 <시네마 천국>의 엔딩을 장식하며 노스탤지어의 상징으로 시대에 각인됐습니다.


시작은 클래식 음악...'황야의 무법자'로 세계적인 명성

1928년 로마에서 태어난 엔니오 모리꼬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964년 개봉한 영화 <황야의 무법자>였습니다. 1940년대부터 인기를 끌었던 할리우드의 '서부극'을 이탈리아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가 재창조했다는 사실도 충분히 놀라웠지만, 휘파람 소리를 연상케 하는 팬플루트의 황량하면서 고독한 선율이 주연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냉소적인 표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영화보다 더 큰 화제가 됐습니다. '음악의 존재에 신경을 쓰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당시 영화음악의 불문율을 정면으로 거스른 셈입니다.

사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시작은 클래식 음악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명문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서 트럼펫과 작곡을 전공했고, 현대음악의 거장 존 케이지를 사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30대로 접어들며 '돈을 벌기 위해' 영화음악으로 장르를 바꿨습니다. 클래식을 전공했다는 자존심 때문에 초반에는 '레오 니콜스' '댄 사비오' 등의 가명으로 활동했지만, '황야의 무법자'로 명성을 떨친 60년대 중반부터 본명을 사용했습니다.


영혼을 치유하는 음악 '가브리엘의 오보에'

엔니오 모리꼬네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음악, 바로 1986년 개봉한 영화 <미션>에 삽입된 '가브리엘의 오보에'입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남미에서 식민지 경쟁을 벌이던 18세기, 원주민들을 선교하던 가브리엘 신부가 과라니족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오보에를 연주하고, 감동한 원주민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장면에 흐르는 음악입니다.

교회음악과 인디언 전통음악이 어우러진 데다 장대한 합창까지 등장하는 대작으로, 수많은 아티스트가 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편곡해 연주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은 90년대 팝스타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른 '넬라 판타지아'입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노래로 부르고 싶어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냈지만, 그는 완강히 거부했고,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자 2개월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낸 끝에 허락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외에도 엔니오 모리꼬네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언터처블>, <피아니스트의 전설>, <러브 어페어>, <헤이트풀8> 등 500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작곡했습니다. 할리우드의 텃세 때문인지 명성에 비해 상복이 없는 편이었던 그는 2007년 미국 아카데미 평생 공로상을 받았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처음 받은 상이 공로상이란 사실도 이례적이지만, 이를 계기로 없던 상복이 갑자기 생겼는지, 2008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2013년 유럽영화상 유러피안 작곡상, 2016년 골든 글로브 음악상, 2016년 아카데미 음악상 등을 잇달아 받았습니다.


마지막 인사는 아내에게..."당신에 대한 작별인사가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최근 낙상으로 인해 대퇴부 골절상을 입어 로마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현지시각 6일 새벽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탈리아 언론은 그가 자신의 부고를 직접 작성했고, 아들 지오바니가 변호사를 통해 공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공개된 부고에서 그는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며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또 자신의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면서 "내 장례식에 참가하도록 사람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직접 쓴 부고의 마지막은 아내에 대한 작별인사였습니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깊은 사랑과 신뢰가 녹아있습니다. 수많은 명화를 장식했던 그 달콤하고 애절한 선율은 어쩌면 모두 아내를 향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네 각박한 일상까지 영화의 한 장면으로 만들어준 이 시대의 거장, '시네마 천국'으로 떠난 그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부부를 하나로 묶어주었지만 이제는 포기해야만 하는 특별한 사랑을 다시 한 번 전합니다. 당신에 대한 작별인사가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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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의 순간] ‘시네마 천국’으로 떠난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
    • 입력 2020-07-07 17:5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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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의 상징이 된 음악, '시네마 천국' OST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살바토레는 30년간 방문하지 않았던 고향 시실리로 향합니다. 어린 시절 그를 영화의 세계로 안내한 친구이자 멘토였던 영사기사 알프레도 아저씨의 부고 때문이었죠. 30년 전 알프레도는 첫사랑과 이별한 뒤 방황하던 청년 살바토레에게 "로마로 가서 세상을 거머쥐라"며 등을 떠밀었습니다. 작별의 순간에도 그는 "절대 돌아오지 말라"면서, "혹시 돌아오면 우리 집에 발도 못들이게 할 것"이라고, 매정한 당부를 반복했습니다.

알프레도의 말처럼 세상을 거머쥔 살바토레에게 그는 낡은 필름 뭉치를 선물로 남겼습니다. 로마로 돌아와서 필름을 영사기에 넣고 스크린 앞에 앉은 살바토레, 잠시 뒤 펼쳐진 화면은 수많은 영화의 키스신들입니다. 고향의 극장 영사실에서 알프레도의 조수 노릇을 하던 어린 시절, 신부님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삭제된 키스신들을 모두 붙여 놓은 겁니다.

영사실 너머로 훔쳐본 영화에 매료됐던, 그야말로 '시네마 천국'에 빠져 살았던 아름다운 추억이 흑백의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살바토레에게 절대 고향으로 돌아오지 말라 신신당부한 이유는 사실, 티 없이 행복했던 순간들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을 예술의 동력으로 삼길 바랐던 알프레도의 '큰 그림'이었던 겁니다.

살바토레가 반복되는 키스신을 행복하게 바라볼 때 흐르는 음악,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사랑의 테마'입니다.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아련한 멜로디를 플루트가 이어받더니,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음색으로 발전했다가, 다시 바이올린 독주로 사라지듯 마무리되는 이 음악은 1988년 개봉한 영화 <시네마 천국>의 엔딩을 장식하며 노스탤지어의 상징으로 시대에 각인됐습니다.


시작은 클래식 음악...'황야의 무법자'로 세계적인 명성

1928년 로마에서 태어난 엔니오 모리꼬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964년 개봉한 영화 <황야의 무법자>였습니다. 1940년대부터 인기를 끌었던 할리우드의 '서부극'을 이탈리아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가 재창조했다는 사실도 충분히 놀라웠지만, 휘파람 소리를 연상케 하는 팬플루트의 황량하면서 고독한 선율이 주연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냉소적인 표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영화보다 더 큰 화제가 됐습니다. '음악의 존재에 신경을 쓰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당시 영화음악의 불문율을 정면으로 거스른 셈입니다.

사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시작은 클래식 음악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명문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서 트럼펫과 작곡을 전공했고, 현대음악의 거장 존 케이지를 사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30대로 접어들며 '돈을 벌기 위해' 영화음악으로 장르를 바꿨습니다. 클래식을 전공했다는 자존심 때문에 초반에는 '레오 니콜스' '댄 사비오' 등의 가명으로 활동했지만, '황야의 무법자'로 명성을 떨친 60년대 중반부터 본명을 사용했습니다.


영혼을 치유하는 음악 '가브리엘의 오보에'

엔니오 모리꼬네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음악, 바로 1986년 개봉한 영화 <미션>에 삽입된 '가브리엘의 오보에'입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남미에서 식민지 경쟁을 벌이던 18세기, 원주민들을 선교하던 가브리엘 신부가 과라니족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오보에를 연주하고, 감동한 원주민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장면에 흐르는 음악입니다.

교회음악과 인디언 전통음악이 어우러진 데다 장대한 합창까지 등장하는 대작으로, 수많은 아티스트가 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편곡해 연주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은 90년대 팝스타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른 '넬라 판타지아'입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노래로 부르고 싶어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냈지만, 그는 완강히 거부했고,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자 2개월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낸 끝에 허락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외에도 엔니오 모리꼬네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언터처블>, <피아니스트의 전설>, <러브 어페어>, <헤이트풀8> 등 500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작곡했습니다. 할리우드의 텃세 때문인지 명성에 비해 상복이 없는 편이었던 그는 2007년 미국 아카데미 평생 공로상을 받았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처음 받은 상이 공로상이란 사실도 이례적이지만, 이를 계기로 없던 상복이 갑자기 생겼는지, 2008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2013년 유럽영화상 유러피안 작곡상, 2016년 골든 글로브 음악상, 2016년 아카데미 음악상 등을 잇달아 받았습니다.


마지막 인사는 아내에게..."당신에 대한 작별인사가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최근 낙상으로 인해 대퇴부 골절상을 입어 로마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현지시각 6일 새벽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탈리아 언론은 그가 자신의 부고를 직접 작성했고, 아들 지오바니가 변호사를 통해 공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공개된 부고에서 그는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며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또 자신의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면서 "내 장례식에 참가하도록 사람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직접 쓴 부고의 마지막은 아내에 대한 작별인사였습니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깊은 사랑과 신뢰가 녹아있습니다. 수많은 명화를 장식했던 그 달콤하고 애절한 선율은 어쩌면 모두 아내를 향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네 각박한 일상까지 영화의 한 장면으로 만들어준 이 시대의 거장, '시네마 천국'으로 떠난 그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부부를 하나로 묶어주었지만 이제는 포기해야만 하는 특별한 사랑을 다시 한 번 전합니다. 당신에 대한 작별인사가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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