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무서워요”…의심환자 검체 수집 거부한 간호사 운명은?

입력 2020.02.28 (07:00) 수정 2020.02.2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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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은 가족이 없으세요? 저는 무서워요. 가족이 있어서 찜찜해요."

2015년 6월 11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의심환자의 집으로 출장을 가던 중 성남시 보건소 간호사 A 씨가 말했습니다. '메르스 발생 병원을 들른 적이 있는데 열이 난다'는 의심환자의 신고를 받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검체(객담)를 받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운전기사 장 씨는 "공무원이 하지 않으면 누가 이런 일을 하느냐"며 A 씨를 다독였는데요. 걱정을 멈출 수 없었던 A 씨, 이번에는 장 씨에게 보호장비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신발덮개'가 자리에 없었습니다. N95 마스크나 일회용 장갑은 있었지만, 메르스 대응지침에는 분명 신발덮개까지 챙겨야 한다고 나와 있었죠. A 씨는 곧바로 이 업무를 할 수 없다고 거부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보건소 지역보건팀장 정 모 씨는 A 씨에게 버스를 타고 사무실로 복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운전기사 장 씨가 방호복 틈에서 사라졌던 신발덮개를 발견했고, A 씨에게 다시 업무를 수행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죠. 하지만 A 씨는 그대로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결국, 현장에는 다른 간호공무원 이 모 씨가 대신 출동했습니다.

■ 성남시 "메르스 비상상황에 가족 안위만 걱정"…공무직 '해고' 통보

해당 보건소장은 곧바로 A 씨가 성남시 공무직 관리규정을 위반했다며 징계를 요구했습니다. 당시 전 직원이 비상근무 체제로 힘들게 일하는 가운데 메르스 자가 격리자의 검체 채취라는 팀장의 지시사항을 거부했고 돌아온 후에도 경위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성남시 징계위원회는 같은 해 7월, A 씨에게 '해고' 통보를 했습니다.

그런데 넉 달 뒤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A 씨에 대한 징계 사유는 인정되지만, 해고는 너무 과하다는 겁니다. 성남시는 이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했지만 기각됐고, 결국 다툼은 행정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성남시는 "당시는 전국적으로 메르스가 확산해 비상상황이었는데, 의료인 자격으로 보건소에 근무하는 공무직인 A 씨가 자신의 가족 안위만을 걱정해 업무수행을 거부한 행위는 비위의 정도가 심하고 고의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A 씨에게 지시한 업무는 메르스 의심환자를 대면 접촉해 검체를 채취하는 방식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검체를 받도록 한 뒤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것"이라며 "N95 마스크와 장갑만으로도 가능해, 신발덮개가 없다는 이유로 업무 수행을 거부한 데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당시 업무에 대한 적절한 교육도 받지 못했고, 보건복지부의 메르스 대응지침에 따른 적절한 보호장비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업무 수행을 거부했다는 겁니다.

■ 법원 "보건소 업무에 중대한 차질 주진 않아…해고는 위법"

법원은 A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해고는 A 씨의 비위 행위 정도에 비해 너무 과하다는 결론입니다.

재판부는 우선 보건소에서 A 씨에게 메르스 의심환자의 검체 채취나 취급 방법, 주의사항, 개인보호장비 등에 관한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또 당시 메르스 대응지침에는 분명 신발덮개를 갖춰야 한다고 나와 있고, 복귀 지시를 받을 때까지 문제의 신발덮개는 발견되지 않은 상태였다고도 밝혔습니다.

특히 재판부는 A 씨가 업무를 거부했을 때 팀장이 곧바로 다른 직원을 보냈으므로, A 씨의 행위로 보건소 업무 수행에 중대한 차질이 생긴 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A 씨는 '부당해고'를 당했고 복직해야 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재판부는 '해고'라는 징계 수위를 문제 삼은 것이지, A 씨의 행위가 문제없다고 판단한 건 아니었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 업무를 꺼리는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 그리고 신발덮개가 없다는 걸 구실로 하기 싫은 업무를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A 씨의 행동이 '정당한 이유 없이 상위 직급자의 명령에 불복한 경우', 즉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는 건 명확히 한 셈입니다.

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사태로 들썩이고 있습니다. 공무원과 의료진을 포함해 많은 인력이 감염병 대응에 투입돼 애쓰고 있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일,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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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8 07:00:47
    • 수정2020-02-28 07:01:28
    취재K
"기사님은 가족이 없으세요? 저는 무서워요. 가족이 있어서 찜찜해요."

2015년 6월 11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의심환자의 집으로 출장을 가던 중 성남시 보건소 간호사 A 씨가 말했습니다. '메르스 발생 병원을 들른 적이 있는데 열이 난다'는 의심환자의 신고를 받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검체(객담)를 받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운전기사 장 씨는 "공무원이 하지 않으면 누가 이런 일을 하느냐"며 A 씨를 다독였는데요. 걱정을 멈출 수 없었던 A 씨, 이번에는 장 씨에게 보호장비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신발덮개'가 자리에 없었습니다. N95 마스크나 일회용 장갑은 있었지만, 메르스 대응지침에는 분명 신발덮개까지 챙겨야 한다고 나와 있었죠. A 씨는 곧바로 이 업무를 할 수 없다고 거부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보건소 지역보건팀장 정 모 씨는 A 씨에게 버스를 타고 사무실로 복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운전기사 장 씨가 방호복 틈에서 사라졌던 신발덮개를 발견했고, A 씨에게 다시 업무를 수행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죠. 하지만 A 씨는 그대로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결국, 현장에는 다른 간호공무원 이 모 씨가 대신 출동했습니다.

■ 성남시 "메르스 비상상황에 가족 안위만 걱정"…공무직 '해고' 통보

해당 보건소장은 곧바로 A 씨가 성남시 공무직 관리규정을 위반했다며 징계를 요구했습니다. 당시 전 직원이 비상근무 체제로 힘들게 일하는 가운데 메르스 자가 격리자의 검체 채취라는 팀장의 지시사항을 거부했고 돌아온 후에도 경위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성남시 징계위원회는 같은 해 7월, A 씨에게 '해고' 통보를 했습니다.

그런데 넉 달 뒤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A 씨에 대한 징계 사유는 인정되지만, 해고는 너무 과하다는 겁니다. 성남시는 이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했지만 기각됐고, 결국 다툼은 행정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성남시는 "당시는 전국적으로 메르스가 확산해 비상상황이었는데, 의료인 자격으로 보건소에 근무하는 공무직인 A 씨가 자신의 가족 안위만을 걱정해 업무수행을 거부한 행위는 비위의 정도가 심하고 고의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A 씨에게 지시한 업무는 메르스 의심환자를 대면 접촉해 검체를 채취하는 방식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검체를 받도록 한 뒤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것"이라며 "N95 마스크와 장갑만으로도 가능해, 신발덮개가 없다는 이유로 업무 수행을 거부한 데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당시 업무에 대한 적절한 교육도 받지 못했고, 보건복지부의 메르스 대응지침에 따른 적절한 보호장비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업무 수행을 거부했다는 겁니다.

■ 법원 "보건소 업무에 중대한 차질 주진 않아…해고는 위법"

법원은 A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해고는 A 씨의 비위 행위 정도에 비해 너무 과하다는 결론입니다.

재판부는 우선 보건소에서 A 씨에게 메르스 의심환자의 검체 채취나 취급 방법, 주의사항, 개인보호장비 등에 관한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또 당시 메르스 대응지침에는 분명 신발덮개를 갖춰야 한다고 나와 있고, 복귀 지시를 받을 때까지 문제의 신발덮개는 발견되지 않은 상태였다고도 밝혔습니다.

특히 재판부는 A 씨가 업무를 거부했을 때 팀장이 곧바로 다른 직원을 보냈으므로, A 씨의 행위로 보건소 업무 수행에 중대한 차질이 생긴 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A 씨는 '부당해고'를 당했고 복직해야 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재판부는 '해고'라는 징계 수위를 문제 삼은 것이지, A 씨의 행위가 문제없다고 판단한 건 아니었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 업무를 꺼리는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 그리고 신발덮개가 없다는 걸 구실로 하기 싫은 업무를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A 씨의 행동이 '정당한 이유 없이 상위 직급자의 명령에 불복한 경우', 즉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는 건 명확히 한 셈입니다.

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사태로 들썩이고 있습니다. 공무원과 의료진을 포함해 많은 인력이 감염병 대응에 투입돼 애쓰고 있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일,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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