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민주당-정의당, 왜 싸우나?

입력 2019.12.16 (18:25) 수정 2019.12.1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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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정의당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민낯을 보았다"고, "욕심이 과하다"고, 서로를 나무랍니다. 당 내부의 비공개회의에서나 푸념처럼 할 만한 말이 공개 석상에 등장합니다.

선거제 개혁, 검찰 개혁을 목표로 발을 맞춰온 두 당이 서로 눈초리를 켜는 것은 선거법의 한 항에 따라, 같은 득표를 하고도 의석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쟁점 1. "배려는 이만큼만" "그게 배려야?"

제도가 복잡합니다. 연동형이니, 50% 준연동형이니, 상한선(캡)이니 생소한 용어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두 당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정의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더 갖고자 하고,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논의 중인 선거법은 이렇습니다. 정당 득표율은 높은데, 지역구 당선이 적은 당은 그만큼 더 '배려'해주자는 겁니다. 민주당은 그 배려에 상한선(캡)을 두자는 거고, 정의당은 배려하기로 했으면 배려해야지, 왜 조건이 붙이느냐고 맞서고 있습니다.


리얼미터 9~11일 성인 1,509명 대상 실시.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2.5%p. 지역구 의석은 현 의석 기준. 민주 40%, 한국 31.4%, 정의 7%, 바른미래 4.9% 가정리얼미터 9~11일 성인 1,509명 대상 실시.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2.5%p. 지역구 의석은 현 의석 기준. 민주 40%, 한국 31.4%, 정의 7%, 바른미래 4.9% 가정

그 '배려'를 비례대표 50석의 절반인 25석으로 제한했을 때와 제한하지 않았을 때의 전체의석 수 비교입니다. 정의당으로서는 제도에 따라 3석의 차이가 납니다. 민주당은 1석 차이지만, 실제 선거 당일 성적에 따라 이 규모는 훨씬 더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쟁점 2. 석패율에 숨은 정치

석패율은 석패(惜敗), 말 그대로 아깝게 떨어진 지역구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시켜주는 제도입니다.

석패율로 구제해주는 의석은 당초 12개로(6개 권역별 2개) 합의돼 있었습니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에 올릴 때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때 합의했던 비례대표 75석이 50석으로 줄게 생겼으니, 석패율 규모도 줄여야 한다는 게 민주당 주장입니다. 정의당은 펄쩍 뜁니다.

정의당 의심은 이렇습니다.

지역구에서 당선 가능성이 없어도 석패율로 우회 당선될 수 있는 길이 넓어지면, 그걸 노리고, 지역구에 출마하는 정의당 후보가 많아질 겁니다. 지역구에 정의당 후보가 많아지면 피곤해지는 건 민주당입니다. 진보 진영의 표를 3%만 나눠 가져가도, 민주당 후보는 낙선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민주당의 현실적 고민도 있습니다.

비례대표 몇 석을 지역구에도 출마했던 후보들에게 석패율 때문에 나눠줘야 하면, 그야말로 '순수' 비례대표는 얼마 남지를 않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비례대표 수가 줄었는데, 당에서 여성, 청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공간이 줄어듭니다.

민주당은 이렇게 눈초리를 켭니다.

정의당 내에서 아깝게 떨어지는 순서를 추정해보면, 지명도가 있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현역 의원들이 앞 순번일 겁니다. 한때 석패율 규모를 6명으로 하는 방안이 논의됐는데, 공교롭게도 정의당의 현역 의원이 6명입니다.

정의당 지도부는 그런 의심 때문에라도 석패율 6명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출마를 준비 중인 원외의 후보들이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중진 재선용" "모욕감을 줬어"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오늘 아침 당 회의에서 작심하고, 석패율 제도는 '중진'들의 재선 보장용이라고 못박았습니다. 그간 논의되던 6석이 아니라, 아예 석패율을 도입하지 않겠다고 협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정의당의 유일한 '중진'은 심상정 대표입니다. 심 대표는 발끈했습니다. 자신과 정의당에 모욕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석패율제를 통해 구제될 생각은 없고, 아예 선거법에 중진은 석패율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문화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왜 끌려다니나?" 강경한 민주당

이해찬 대표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도 강경합니다. 지난 금요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왜 정의당에 끌려다니냐?"는 비판도 있었다고 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의 상한선(캡)을 아예 20석으로 확 줄이자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4+1 협의체 (민주, 바른미래, 정의, 평화, 대안신당) 말고, 차라리 자유한국당과 협상해야 한다는 민주당 내부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4월에 마련한 원안 (225+75) 대로 선거법을 상정해, 결과적으로 부결되게 하자는 얘기도 나옵니다.

최선의 결렬보다 최악의 합의

민주당은 한껏 정의당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정의당으로서는 민주당이 한국당과 합의하거나, 선거법이 부결돼 지금 제도로 내년 선거를 치르는 건 가장 바라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정의당이 '명분'을 얻을 수 있다면,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그걸 알기에 민주당이 더 수위를 높여 압박하는 것이고요.

일단 정의당이 제시한 '명분'은 연동형의 상한선(캡)을 내년 총선에만 적용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못마땅한 제도니 추후에 없앤다는 '명분'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 와중에 민주당이 공언했던 예비후보 등록 개시일(12월 17일) 이전 선거법 처리는 물 건너갔습니다. 대체복무제, DNA법같이 올해 말까지는 통과돼야 하는 법들도 줄줄이 처리가 밀리고 있습니다.

주 52시간 제 보완책인 탄력근로제 법안에 대해선 정치권은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내년 예산을 어떻게 쓰겠다는 건 가까스로 통과됐는데, 그 예산을 충당할 세금을 어떻게 거둬들이겠다는 예산 부수법안은 아직 본회의 문턱을 못 넘었습니다.

선거법, 중요합니다. 어느 정당이 의석을 더 얻어 의회 권력을 차지하는지도 긴요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수시로 국회 본회의를 취소해가며 이렇게 오랜 기간 국회를 마비시킬 정도의 사안인지, 정치권은 자문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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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심야심] 민주당-정의당, 왜 싸우나?
    • 입력 2019-12-16 18:25:51
    • 수정2019-12-17 15:53:54
    여심야심
민주당과 정의당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민낯을 보았다"고, "욕심이 과하다"고, 서로를 나무랍니다. 당 내부의 비공개회의에서나 푸념처럼 할 만한 말이 공개 석상에 등장합니다.

선거제 개혁, 검찰 개혁을 목표로 발을 맞춰온 두 당이 서로 눈초리를 켜는 것은 선거법의 한 항에 따라, 같은 득표를 하고도 의석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쟁점 1. "배려는 이만큼만" "그게 배려야?"

제도가 복잡합니다. 연동형이니, 50% 준연동형이니, 상한선(캡)이니 생소한 용어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두 당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정의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더 갖고자 하고,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논의 중인 선거법은 이렇습니다. 정당 득표율은 높은데, 지역구 당선이 적은 당은 그만큼 더 '배려'해주자는 겁니다. 민주당은 그 배려에 상한선(캡)을 두자는 거고, 정의당은 배려하기로 했으면 배려해야지, 왜 조건이 붙이느냐고 맞서고 있습니다.


리얼미터 9~11일 성인 1,509명 대상 실시.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2.5%p. 지역구 의석은 현 의석 기준. 민주 40%, 한국 31.4%, 정의 7%, 바른미래 4.9% 가정
그 '배려'를 비례대표 50석의 절반인 25석으로 제한했을 때와 제한하지 않았을 때의 전체의석 수 비교입니다. 정의당으로서는 제도에 따라 3석의 차이가 납니다. 민주당은 1석 차이지만, 실제 선거 당일 성적에 따라 이 규모는 훨씬 더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쟁점 2. 석패율에 숨은 정치

석패율은 석패(惜敗), 말 그대로 아깝게 떨어진 지역구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시켜주는 제도입니다.

석패율로 구제해주는 의석은 당초 12개로(6개 권역별 2개) 합의돼 있었습니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에 올릴 때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때 합의했던 비례대표 75석이 50석으로 줄게 생겼으니, 석패율 규모도 줄여야 한다는 게 민주당 주장입니다. 정의당은 펄쩍 뜁니다.

정의당 의심은 이렇습니다.

지역구에서 당선 가능성이 없어도 석패율로 우회 당선될 수 있는 길이 넓어지면, 그걸 노리고, 지역구에 출마하는 정의당 후보가 많아질 겁니다. 지역구에 정의당 후보가 많아지면 피곤해지는 건 민주당입니다. 진보 진영의 표를 3%만 나눠 가져가도, 민주당 후보는 낙선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민주당의 현실적 고민도 있습니다.

비례대표 몇 석을 지역구에도 출마했던 후보들에게 석패율 때문에 나눠줘야 하면, 그야말로 '순수' 비례대표는 얼마 남지를 않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비례대표 수가 줄었는데, 당에서 여성, 청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공간이 줄어듭니다.

민주당은 이렇게 눈초리를 켭니다.

정의당 내에서 아깝게 떨어지는 순서를 추정해보면, 지명도가 있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현역 의원들이 앞 순번일 겁니다. 한때 석패율 규모를 6명으로 하는 방안이 논의됐는데, 공교롭게도 정의당의 현역 의원이 6명입니다.

정의당 지도부는 그런 의심 때문에라도 석패율 6명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출마를 준비 중인 원외의 후보들이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중진 재선용" "모욕감을 줬어"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오늘 아침 당 회의에서 작심하고, 석패율 제도는 '중진'들의 재선 보장용이라고 못박았습니다. 그간 논의되던 6석이 아니라, 아예 석패율을 도입하지 않겠다고 협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정의당의 유일한 '중진'은 심상정 대표입니다. 심 대표는 발끈했습니다. 자신과 정의당에 모욕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석패율제를 통해 구제될 생각은 없고, 아예 선거법에 중진은 석패율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문화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왜 끌려다니나?" 강경한 민주당

이해찬 대표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도 강경합니다. 지난 금요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왜 정의당에 끌려다니냐?"는 비판도 있었다고 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의 상한선(캡)을 아예 20석으로 확 줄이자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4+1 협의체 (민주, 바른미래, 정의, 평화, 대안신당) 말고, 차라리 자유한국당과 협상해야 한다는 민주당 내부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4월에 마련한 원안 (225+75) 대로 선거법을 상정해, 결과적으로 부결되게 하자는 얘기도 나옵니다.

최선의 결렬보다 최악의 합의

민주당은 한껏 정의당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정의당으로서는 민주당이 한국당과 합의하거나, 선거법이 부결돼 지금 제도로 내년 선거를 치르는 건 가장 바라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정의당이 '명분'을 얻을 수 있다면,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그걸 알기에 민주당이 더 수위를 높여 압박하는 것이고요.

일단 정의당이 제시한 '명분'은 연동형의 상한선(캡)을 내년 총선에만 적용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못마땅한 제도니 추후에 없앤다는 '명분'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 와중에 민주당이 공언했던 예비후보 등록 개시일(12월 17일) 이전 선거법 처리는 물 건너갔습니다. 대체복무제, DNA법같이 올해 말까지는 통과돼야 하는 법들도 줄줄이 처리가 밀리고 있습니다.

주 52시간 제 보완책인 탄력근로제 법안에 대해선 정치권은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내년 예산을 어떻게 쓰겠다는 건 가까스로 통과됐는데, 그 예산을 충당할 세금을 어떻게 거둬들이겠다는 예산 부수법안은 아직 본회의 문턱을 못 넘었습니다.

선거법, 중요합니다. 어느 정당이 의석을 더 얻어 의회 권력을 차지하는지도 긴요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수시로 국회 본회의를 취소해가며 이렇게 오랜 기간 국회를 마비시킬 정도의 사안인지, 정치권은 자문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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