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 물이 ‘펄펄’, 열수송관 또 파열…‘땅속 지뢰’ 언제까지?

입력 2019.12.16 (14:13) 수정 2019.12.1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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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사상자 50여 명 발생한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사고’
겨울이면 끊임없이 발생하는 파열 사고
터지면 100도 넘는 뜨거운 물 폭탄…‘땅밑 지뢰’ 언제까지?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2018년 12월 4일 밤, 경기 고양시 백석역 인근 도로가 아비규환으로 변했습니다. 땅속에서 갑자기 섭씨 100도가 넘는 뜨거운 물이 솟구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근 반경 200m 넘는 지역이 펄펄 끓는 물로 뒤덮였고 인근 상가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위층으로 대피했습니다. 사고 현장에서는 승용차 안에서 1명이 고립돼 숨지는 등 사상자 50여 명이 발생했습니다.

[연관기사]
백석역 인근서 온수관 파열…피해 속출
[뉴스 따라잡기] 도심 덮친 ‘끓는 물’…당시 상황은?


노후 배관 파열총체적 인재

펄펄 끓는 물이 나온 곳은 지하에 매설된 열수송관이었습니다. 27년 전 매설 당시 부실하게 시공됐던 용접 불량 부분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버렸던 것입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고양지사에서는 사고 직후 열수송관 파열 징후를 감지했지만, 온수 사용량이 늘어난 것으로 판단하고 오히려 압력을 높이는 등 부실한 초동대응도 피해를 키웠습니다. 이후 감사원 감사 결과 지역난방공사가 감시시스템을 부실 운영하고 열수송관의 잔여 수명을 조작하는 등 총체적 인재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지난 15일 아침 성남시 정자동에서 발생한 열수송관 파열 사고지난 15일 아침 성남시 정자동에서 발생한 열수송관 파열 사고

사고 1년 만에 또 성남서 또 열수송관 터져

그런데 이 백석역 사고 1년 만에 또 열수송관이 터졌습니다. 이번엔 성남입니다. 지난 15일 아침 8시쯤, 성남시 정자동의 한 고등학교 앞에서 열수송관이 터졌습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배관에서 뜨거운 온수가 흘러나와 지하보도 30m 구간이 침수됐습니다.


겨울이면 반복되는 열수송관 사고

사실 백석역 사고 이후 터진 열수송관 사고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백석역 사고 직후인 2018년 12월 11일엔 목동에서, 2018년 12월 12일에는 경기 안산 고잔동에서, 1년 정도 후인 2019년 11월 28일에는 성남시 야탑동에서 열수송관이 파열되는 사고가 났습니다. 매년 겨울만 되면 여기저기서 열수송관이 터지고 있는 겁니다.

이철규 자유한국당 의원(국회 산자위)이 공개한 열수송관 사고현황 자료를 보면 최근 10년간 열수송관 관련 사고는 23건으로 지역별로는 성남 10건, 서울 강남 8건, 고양 3건, 수원 2건입니다. 대부분이 서울, 경기지역에 집중돼 있습니다. 사고 원인의 대부분(87%)은 열수송관의 장기사용에 따른 노후배관, 밸브의 부식이었습니다.


관계기관서 쏟아진 노후 열수송관 대책

열수송관이 겨울에 많이 터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뜩이나 노후한 열수송관이 겨울철 난방수요 때문에 높아진 내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파열된다는 게 대체적 분석입니다. 결국 낡은 열수송관이 문제입니다.

백석역 사고 직후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전국의 열수송관 중 20년 이상 된 열수송관 686km 구간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무려 203곳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한국지역난방공사는 관련 대책을 발표하며 해당 지점에 대해 지난 10월까지 교체공사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었습니다. 또 드론을 활용해 열수송관을 감시하겠단 아이디어도 내놓았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현재, 요란하게 내놓은 대책이 실제 잘 집행되고 있는진 의문입니다. 일례로 지난 10년 동안 가장 많은 열수송관 사고가 터진 성남지역의 경우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약속과는 달리 현재까지 노후 배관의 보수가 완료되지 않았고 심지어 열수송관 보수 실적자료를 요구하는 성남시나 성남시의회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남시의회 서은경 시의원은 "올해 초까지 노후 열수송관 교체 계획을 발표하겠다던 산업자원부와 한국지역난방공사가 현재까지 어떠한 계획도 내놓고 있지 않다"며 "백석역 사고를 계기로 교체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여전히 임시 보수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대책 무색하게 또 열수송관 터져 …'땅속 지뢰' 언제까지?

그사이 사고는 계속 터지고 있습니다. 벌써 올 겨울 들어 두 번째 열수송관 파열사고입니다. 열수송관 사고가 터지면 섭씨 100도가 넘는 고온의 물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다행히 올해 발생한 두 건의 사고 모두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대로라면 또다시 제2의 백석역 사고가 터지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땅속의 노후 열수송관이라는 '땅속 지뢰'를 밟고 우리는 생활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지난 4일 개최한 ‘국민안전 다짐대회’한국지역난방공사가 지난 4일 개최한 ‘국민안전 다짐대회’

'안전 다짐' 11일 만에 또 터져…다짐 만으론 국민 안전 못 지켜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지난 4일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 사고 1주년을 맞아 '국민안전 다짐대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본사와 전국 19개 사업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이 행사에서는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안전약속 실천을 다짐했다고 합니다.

이번 사고는 그 '다짐'을 한지 불과 11일 만에 발생했습니다. 사실 이 '다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년 전 백석역 사고 직후에도 지역난방공사는 같은 '다짐'을 했었습니다. 언제까지 '다짐'만 하고 있을 것인지, 불안한 국민들이 이제 원하는 건 말뿐인 '다짐'이 아니라 근본적 해결방안과 실천이 아닌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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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16 14:13:38
    • 수정2019-12-16 14:14:19
    취재K
사상자 50여 명 발생한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사고’<br />겨울이면 끊임없이 발생하는 파열 사고<br />터지면 100도 넘는 뜨거운 물 폭탄…‘땅밑 지뢰’ 언제까지?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2018년 12월 4일 밤, 경기 고양시 백석역 인근 도로가 아비규환으로 변했습니다. 땅속에서 갑자기 섭씨 100도가 넘는 뜨거운 물이 솟구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근 반경 200m 넘는 지역이 펄펄 끓는 물로 뒤덮였고 인근 상가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위층으로 대피했습니다. 사고 현장에서는 승용차 안에서 1명이 고립돼 숨지는 등 사상자 50여 명이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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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배관 파열총체적 인재

펄펄 끓는 물이 나온 곳은 지하에 매설된 열수송관이었습니다. 27년 전 매설 당시 부실하게 시공됐던 용접 불량 부분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버렸던 것입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고양지사에서는 사고 직후 열수송관 파열 징후를 감지했지만, 온수 사용량이 늘어난 것으로 판단하고 오히려 압력을 높이는 등 부실한 초동대응도 피해를 키웠습니다. 이후 감사원 감사 결과 지역난방공사가 감시시스템을 부실 운영하고 열수송관의 잔여 수명을 조작하는 등 총체적 인재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지난 15일 아침 성남시 정자동에서 발생한 열수송관 파열 사고
사고 1년 만에 또 성남서 또 열수송관 터져

그런데 이 백석역 사고 1년 만에 또 열수송관이 터졌습니다. 이번엔 성남입니다. 지난 15일 아침 8시쯤, 성남시 정자동의 한 고등학교 앞에서 열수송관이 터졌습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배관에서 뜨거운 온수가 흘러나와 지하보도 30m 구간이 침수됐습니다.


겨울이면 반복되는 열수송관 사고

사실 백석역 사고 이후 터진 열수송관 사고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백석역 사고 직후인 2018년 12월 11일엔 목동에서, 2018년 12월 12일에는 경기 안산 고잔동에서, 1년 정도 후인 2019년 11월 28일에는 성남시 야탑동에서 열수송관이 파열되는 사고가 났습니다. 매년 겨울만 되면 여기저기서 열수송관이 터지고 있는 겁니다.

이철규 자유한국당 의원(국회 산자위)이 공개한 열수송관 사고현황 자료를 보면 최근 10년간 열수송관 관련 사고는 23건으로 지역별로는 성남 10건, 서울 강남 8건, 고양 3건, 수원 2건입니다. 대부분이 서울, 경기지역에 집중돼 있습니다. 사고 원인의 대부분(87%)은 열수송관의 장기사용에 따른 노후배관, 밸브의 부식이었습니다.


관계기관서 쏟아진 노후 열수송관 대책

열수송관이 겨울에 많이 터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뜩이나 노후한 열수송관이 겨울철 난방수요 때문에 높아진 내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파열된다는 게 대체적 분석입니다. 결국 낡은 열수송관이 문제입니다.

백석역 사고 직후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전국의 열수송관 중 20년 이상 된 열수송관 686km 구간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무려 203곳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한국지역난방공사는 관련 대책을 발표하며 해당 지점에 대해 지난 10월까지 교체공사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었습니다. 또 드론을 활용해 열수송관을 감시하겠단 아이디어도 내놓았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현재, 요란하게 내놓은 대책이 실제 잘 집행되고 있는진 의문입니다. 일례로 지난 10년 동안 가장 많은 열수송관 사고가 터진 성남지역의 경우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약속과는 달리 현재까지 노후 배관의 보수가 완료되지 않았고 심지어 열수송관 보수 실적자료를 요구하는 성남시나 성남시의회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남시의회 서은경 시의원은 "올해 초까지 노후 열수송관 교체 계획을 발표하겠다던 산업자원부와 한국지역난방공사가 현재까지 어떠한 계획도 내놓고 있지 않다"며 "백석역 사고를 계기로 교체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여전히 임시 보수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대책 무색하게 또 열수송관 터져 …'땅속 지뢰' 언제까지?

그사이 사고는 계속 터지고 있습니다. 벌써 올 겨울 들어 두 번째 열수송관 파열사고입니다. 열수송관 사고가 터지면 섭씨 100도가 넘는 고온의 물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다행히 올해 발생한 두 건의 사고 모두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대로라면 또다시 제2의 백석역 사고가 터지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땅속의 노후 열수송관이라는 '땅속 지뢰'를 밟고 우리는 생활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지난 4일 개최한 ‘국민안전 다짐대회’
'안전 다짐' 11일 만에 또 터져…다짐 만으론 국민 안전 못 지켜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지난 4일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 사고 1주년을 맞아 '국민안전 다짐대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본사와 전국 19개 사업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이 행사에서는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안전약속 실천을 다짐했다고 합니다.

이번 사고는 그 '다짐'을 한지 불과 11일 만에 발생했습니다. 사실 이 '다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년 전 백석역 사고 직후에도 지역난방공사는 같은 '다짐'을 했었습니다. 언제까지 '다짐'만 하고 있을 것인지, 불안한 국민들이 이제 원하는 건 말뿐인 '다짐'이 아니라 근본적 해결방안과 실천이 아닌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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