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관용차’가 ‘평민 관용차’가 되기까지…춘천시에선 무슨 일이?

입력 2019.12.16 (11:23) 수정 2019.12.16 (15:4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황제 관용차'의 탄생…1,480만 원짜리 안마의자 설치

"시장이 탈 차량을 구매하면서 안마기능이 포함된 1,480만 원짜리 시트가 설치됐는데, 이는 시민 혈세를 과다하게 투입해 비행기 비즈니스석 같은 개념의 황제 의전이 아닐 수 없다"

이달 9일 내년 춘천시 예산안에 대한 심의가 한창이던 춘천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에서 김보건 시의원이 한 발언입니다. 곧장 취재에 나선 결과, 김 의원의 발언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춘천시는 지난달 말 이재수 시장이 탈 관용차를 새로 샀습니다. 7인승 승합차였는데, 배기량 3,340CC였습니다. 차량 가격은 5천5백만 원에 풀옵션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그런데 춘천시는 이것도 모자라 1,480만 원을 주고 보조석 뒷자리의 의자, 즉 시장이 앉는 의자를 개조했습니다.

무엇을 바꿨길래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들었을까?

의자에 허리 안마 기능을 넣고, 다리 발판도 만들었습니다. 또, 보통 의자보다 더 많이 뒤로 눕힐 수 있게 하는 데 든 비용이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정의당 등 야당들은 "춘천시가 시민의 복지를 위해 써야 할 세금을 시장의 복지를 위해 썼다"고 비판했습니다.

시민들도 분노했습니다.

춘천시청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예산 낭비라는 내용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습니다. 춘천시청 민원실로 직접 항의 전화를 거는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평소에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 등 검소함을 강조하던 춘천시장이 소형차 한 대 값에 맞먹는 안마 의자를 설치했다는 데 대해 배신감마저 느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1,480만 원짜리 안마의자가 설치돼 ‘황제 관용차’라고 비판을 받은 춘천시의 관용차1,480만 원짜리 안마의자가 설치돼 ‘황제 관용차’라고 비판을 받은 춘천시의 관용차

안전검사 무시한 불법 개조…결국 원상복구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차를 개조하면서, 구조 변경 등록을 못 했습니다. 법적으로 불법 개조된 차량이라 운행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춘천시는 이 차량을 인수해 시청 지하주차장에 갖다 놨습니다. 이달 5일에는 정식 관용차로 등록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불법 개조 사실이 드러나자 곧바로 안마의자를 떼어 내고, 원래 있던 의자를 다시 장착했습니다.

불법 개조된 춘천시의 관용차 차량 내부불법 개조된 춘천시의 관용차 차량 내부

이재수 춘천시장 '사과'…"저는 몰랐어요!"

이재수 춘천시장도 직접 진화에 나섰습니다.

이달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춘천시정의 책임자인데도 불구하고, 시청 각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을 세밀히 챙기지 못했고, 그로 인해 물의를 일으켰다"며 사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관용차에 고급 의자를 설치한 것도 몰랐고, 불법 개조된 상태였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고 강조했습니다.

모든 일은 관용차 구입 부서의 판단이었고, 책임이었다는 겁니다.

관용차 구입과 개조를 총괄한 춘천시청 해당 부서장 역시 자신이 독단적으로 결정해서 추진한 일이었다고 거들었습니다.

이재수 춘천시장은 이달 10일 기자회견을 ‘황제 관용차’ 논란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다만, 자신은 몰랐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이재수 춘천시장은 이달 10일 기자회견을 ‘황제 관용차’ 논란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다만, 자신은 몰랐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갑질' 논란으로 비화…원상복구 비용 안 주고, 개조 비용까지 환불 요구

하지만 춘천시장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현재 논란은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춘천시는 개조했던 차를 원상 복구시키면서 해당 업체에 작업 비용을 안 줬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당초 지급했던 개조 비용 1,480만 원까지 돌려달라고 공식 요청했습니다.

이 같은 요구를 한 근거는 개조된 차량을 구조변경 등록시키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춘천시는 계약서에는 안 나와 있지만, 당초 차량 개조 업체와 계약을 할 때, 업체가 차량 등록까지 마쳐주기로 구두로 약속했기 때문에 변경 등록을 못 한 이상 환불은 당연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안마의자' 자체, 즉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데도 환불을 요구한 행위에 대해 즉각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잘못은 춘천시가 해 놓고, 책임은 힘없는 민간업체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직원 10여 명이 근무하는 작은 업체인 차량 개조 업체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황제 관용차' 논란이 이제는 '갑질 관용차' 논란으로 비화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강원도당은 이달 12일 이재수 춘천시장을 '자동차관리법 위반과 직권남용' 혐의로 춘천지방검찰청에 고발했습니다. 이 시장은 시정의 최고 책임자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타고 다닐 관용차를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승인을 받지 않고 개조하도록 해 관련 법을 위반하고 직권도 남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의당 강원도당도 이재수 춘천시장의 '황제 관용차' 문제도 심각하지만, 논란 이후 그 책임을 영세 업체에 떠넘기는 갑질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는 춘천시는 스스로 관련 책임자를 처벌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춘천시가 업체와 맺은 계약서춘천시가 업체와 맺은 계약서

시장의 막강한 권력과 공무원의 충성 경쟁이 빚은 '참극'

이번 '황제 관용차' 논란을 취재하면서 생긴 의문점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됐습니다.

왜 사전에 막지 못했던 걸까?

시장 관용차 안마의자 설치 과정에는 춘천시 실무 담당자부터 계장, 과장, 그리고 국장까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4단계의 행정 절차를 거친 뒤 이뤄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일을 사전에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지방자치시대. 시장이 가진 권력의 그림자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사와 예산권을 무기로 지방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단체장. 시민이 아니라 단체장만 바라보는 공무원들. 그리고 이들이 벌이는 충성 경쟁.

'황제 관용차'와 '갑질 관용차'는 이들이 합작해 빚어낸 참극이라는 것입니다.

춘천시청 전경춘천시청 전경

'황제 관용차', 이제 '평민 관용차' 되나?

논란이 절정으로 치닫던 이달 12일. 원상 복구된 이재수 춘천시장의 이른바 '황제 관용차'는 현재 시청 별관 주차장 한구석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현재 춘천시는 이 차를 일반 직원들이 타는 업무용 차량으로 쓸 방침입니다.

앞으로 춘천시 공무원들은 풀옵션을 갖춘 5,500만 원짜리 업무용 차를 타고 다닐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커졌지만, 이들을 바라보며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집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황제 관용차’가 ‘평민 관용차’가 되기까지…춘천시에선 무슨 일이?
    • 입력 2019-12-16 11:23:40
    • 수정2019-12-16 15:41:06
    취재K
'황제 관용차'의 탄생…1,480만 원짜리 안마의자 설치 "시장이 탈 차량을 구매하면서 안마기능이 포함된 1,480만 원짜리 시트가 설치됐는데, 이는 시민 혈세를 과다하게 투입해 비행기 비즈니스석 같은 개념의 황제 의전이 아닐 수 없다" 이달 9일 내년 춘천시 예산안에 대한 심의가 한창이던 춘천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에서 김보건 시의원이 한 발언입니다. 곧장 취재에 나선 결과, 김 의원의 발언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춘천시는 지난달 말 이재수 시장이 탈 관용차를 새로 샀습니다. 7인승 승합차였는데, 배기량 3,340CC였습니다. 차량 가격은 5천5백만 원에 풀옵션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그런데 춘천시는 이것도 모자라 1,480만 원을 주고 보조석 뒷자리의 의자, 즉 시장이 앉는 의자를 개조했습니다. 무엇을 바꿨길래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들었을까? 의자에 허리 안마 기능을 넣고, 다리 발판도 만들었습니다. 또, 보통 의자보다 더 많이 뒤로 눕힐 수 있게 하는 데 든 비용이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정의당 등 야당들은 "춘천시가 시민의 복지를 위해 써야 할 세금을 시장의 복지를 위해 썼다"고 비판했습니다. 시민들도 분노했습니다. 춘천시청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예산 낭비라는 내용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습니다. 춘천시청 민원실로 직접 항의 전화를 거는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평소에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 등 검소함을 강조하던 춘천시장이 소형차 한 대 값에 맞먹는 안마 의자를 설치했다는 데 대해 배신감마저 느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1,480만 원짜리 안마의자가 설치돼 ‘황제 관용차’라고 비판을 받은 춘천시의 관용차 안전검사 무시한 불법 개조…결국 원상복구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차를 개조하면서, 구조 변경 등록을 못 했습니다. 법적으로 불법 개조된 차량이라 운행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춘천시는 이 차량을 인수해 시청 지하주차장에 갖다 놨습니다. 이달 5일에는 정식 관용차로 등록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불법 개조 사실이 드러나자 곧바로 안마의자를 떼어 내고, 원래 있던 의자를 다시 장착했습니다. 불법 개조된 춘천시의 관용차 차량 내부 이재수 춘천시장 '사과'…"저는 몰랐어요!" 이재수 춘천시장도 직접 진화에 나섰습니다. 이달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춘천시정의 책임자인데도 불구하고, 시청 각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을 세밀히 챙기지 못했고, 그로 인해 물의를 일으켰다"며 사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관용차에 고급 의자를 설치한 것도 몰랐고, 불법 개조된 상태였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고 강조했습니다. 모든 일은 관용차 구입 부서의 판단이었고, 책임이었다는 겁니다. 관용차 구입과 개조를 총괄한 춘천시청 해당 부서장 역시 자신이 독단적으로 결정해서 추진한 일이었다고 거들었습니다. 이재수 춘천시장은 이달 10일 기자회견을 ‘황제 관용차’ 논란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다만, 자신은 몰랐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갑질' 논란으로 비화…원상복구 비용 안 주고, 개조 비용까지 환불 요구 하지만 춘천시장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현재 논란은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춘천시는 개조했던 차를 원상 복구시키면서 해당 업체에 작업 비용을 안 줬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당초 지급했던 개조 비용 1,480만 원까지 돌려달라고 공식 요청했습니다. 이 같은 요구를 한 근거는 개조된 차량을 구조변경 등록시키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춘천시는 계약서에는 안 나와 있지만, 당초 차량 개조 업체와 계약을 할 때, 업체가 차량 등록까지 마쳐주기로 구두로 약속했기 때문에 변경 등록을 못 한 이상 환불은 당연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안마의자' 자체, 즉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데도 환불을 요구한 행위에 대해 즉각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잘못은 춘천시가 해 놓고, 책임은 힘없는 민간업체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직원 10여 명이 근무하는 작은 업체인 차량 개조 업체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황제 관용차' 논란이 이제는 '갑질 관용차' 논란으로 비화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강원도당은 이달 12일 이재수 춘천시장을 '자동차관리법 위반과 직권남용' 혐의로 춘천지방검찰청에 고발했습니다. 이 시장은 시정의 최고 책임자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타고 다닐 관용차를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승인을 받지 않고 개조하도록 해 관련 법을 위반하고 직권도 남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의당 강원도당도 이재수 춘천시장의 '황제 관용차' 문제도 심각하지만, 논란 이후 그 책임을 영세 업체에 떠넘기는 갑질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는 춘천시는 스스로 관련 책임자를 처벌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춘천시가 업체와 맺은 계약서 시장의 막강한 권력과 공무원의 충성 경쟁이 빚은 '참극' 이번 '황제 관용차' 논란을 취재하면서 생긴 의문점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됐습니다. 왜 사전에 막지 못했던 걸까? 시장 관용차 안마의자 설치 과정에는 춘천시 실무 담당자부터 계장, 과장, 그리고 국장까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4단계의 행정 절차를 거친 뒤 이뤄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일을 사전에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지방자치시대. 시장이 가진 권력의 그림자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사와 예산권을 무기로 지방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단체장. 시민이 아니라 단체장만 바라보는 공무원들. 그리고 이들이 벌이는 충성 경쟁. '황제 관용차'와 '갑질 관용차'는 이들이 합작해 빚어낸 참극이라는 것입니다. 춘천시청 전경 '황제 관용차', 이제 '평민 관용차' 되나? 논란이 절정으로 치닫던 이달 12일. 원상 복구된 이재수 춘천시장의 이른바 '황제 관용차'는 현재 시청 별관 주차장 한구석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현재 춘천시는 이 차를 일반 직원들이 타는 업무용 차량으로 쓸 방침입니다. 앞으로 춘천시 공무원들은 풀옵션을 갖춘 5,500만 원짜리 업무용 차를 타고 다닐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커졌지만, 이들을 바라보며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집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