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통장에 3,858원…세상 떠난 탈북민 모자의 진실은?

입력 2019.11.16 (09:00) 수정 2019.11.16 (11:2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31일, 탈북민 42살 한성옥 씨와 6살 난 아들 김동진 군이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숨진 지 적어도 두 달 이상은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9월 21일자 뉴욕 타임즈는 이 사건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녀는 굶주림을 피해 북한을 탈출했고,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죽었다."


국내 언론들은 사건 직후 경찰의 수사 상황을 전하면서 한씨 모자가 아사, 즉 '굶어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즈는 한씨 모자가 굶어서 숨졌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한국의 관계 당국이 "반박하지 않았다(have not disputed)"며 사건의 충격의 무게를 더해줬다.

부유한 아시아의 나라, 더욱이 탈북민들에게는 잘 사는 동포의 나라로 알려진 한국 땅에서 탈북민이 굶어서 숨졌다는 것은 큰 충격임에 틀림 없었다.

국내 언론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복지행정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비판은 물론, 탈북민에 대한 정부 정책의 변화가 큰 문제라는 기사들을 연이어 보도했다.

특히 한씨 모자의 사망 사건이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바로 한씨의 통장에 들어있던 마지막 예금 3,858원에 대한 것이었다.


언론들은 한씨가 지난 5월 13일 예금 통장에서 3,858원을 인출한 뒤 통장 잔액이 0원이 됐고, 얼마 후 한씨 모자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많은 국민들은 잔액 0원의 통장과 한씨 모자의 아사의 연관성에 대해 많은 안타까움을 나타냈고, 언론들은 더 많은 관련 기사들을 쏟아냈다.

3,858원을 다 쓴 뒤 관할 구청 등에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지만 한국의 복지 행정을 잘 몰라서 거절당했고 결국 먹을 것이 없어서 숨졌다는 것이었다.

<시사기획 창> 취재진은 한씨가 거주했던 관할 구청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씨가 3개의 통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재진은 한씨의 주변 사람들에게 한씨가 당시 언론에 보도된대로 한국 사정을 모르고, 대인기피증이 있는 사람인지를 물었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은 그녀가 한국의 복지 행정에 대해서 모르거나 소극적인 여성은 아니라고 취재진에게 말을 해줬다.

특히 한성옥 씨와 함께 일을 했던 직장 동료는 그녀가 탈북민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차별과 편견에 대해 다소 경계심을 갖고 있었을 뿐 삶의 의욕은 무척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은 수사담당 경찰관에게 확인을 구했다. 경찰관으로부터 얻어낸 사실은 고 한성옥 씨의 또 다른 예금 통장에 수십만 원의 돈이 들어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언론보도들이 사실상 오보였다는 것이다. 탈북민인 고 한성옥 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어쩌면 그 오보들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한성옥 씨의 죽음에 대해서는 경찰의 수사 발표 내용대로 정확한 원인이나 정황이 무엇인지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3,858원을 인출한 뒤에 굶어서 숨졌다는 것은 사실과는 다르다는 점이며, 그녀가 한국에 온지 10년이나 된 '한국 사람'이지 일부 언론들이 보도했던대로 한국을 너무 모르는 부정적 이미지의 '탈북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취재진은 한씨의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그녀가 어떤 선택을 했던 것인지에 대해 어떠한 확신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뉴욕타임즈가 한 탈북민의 말을 빌어 요약한 기사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녀는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없어서 죽었다"라고.

통일부 발표에 따르면 김정은 체제 이후인 2012년 이후에도 매년 1,000명 이상의 탈북민들이 한국으로 오고 있는데 이 가운데 70% 정도가 여성이라고 한다.

제2, 제3의 한성옥이라는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게 하려면 어쩌면 한국 사회는 탈북민 사회와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부터 타파해야 하지 않을까?

※자세한 내용은 11월 16일(토) KBS 1TV 오후 8시 5분에 방송되는 <시사기획 창 - 탈북 엄마의 마지막 눈물> 편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시사기획 창] 통장에 3,858원…세상 떠난 탈북민 모자의 진실은?
    • 입력 2019-11-16 09:00:58
    • 수정2019-11-16 11:26:48
    취재K
지난 7월 31일, 탈북민 42살 한성옥 씨와 6살 난 아들 김동진 군이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숨진 지 적어도 두 달 이상은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9월 21일자 뉴욕 타임즈는 이 사건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녀는 굶주림을 피해 북한을 탈출했고,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죽었다."


국내 언론들은 사건 직후 경찰의 수사 상황을 전하면서 한씨 모자가 아사, 즉 '굶어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즈는 한씨 모자가 굶어서 숨졌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한국의 관계 당국이 "반박하지 않았다(have not disputed)"며 사건의 충격의 무게를 더해줬다.

부유한 아시아의 나라, 더욱이 탈북민들에게는 잘 사는 동포의 나라로 알려진 한국 땅에서 탈북민이 굶어서 숨졌다는 것은 큰 충격임에 틀림 없었다.

국내 언론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복지행정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비판은 물론, 탈북민에 대한 정부 정책의 변화가 큰 문제라는 기사들을 연이어 보도했다.

특히 한씨 모자의 사망 사건이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바로 한씨의 통장에 들어있던 마지막 예금 3,858원에 대한 것이었다.


언론들은 한씨가 지난 5월 13일 예금 통장에서 3,858원을 인출한 뒤 통장 잔액이 0원이 됐고, 얼마 후 한씨 모자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많은 국민들은 잔액 0원의 통장과 한씨 모자의 아사의 연관성에 대해 많은 안타까움을 나타냈고, 언론들은 더 많은 관련 기사들을 쏟아냈다.

3,858원을 다 쓴 뒤 관할 구청 등에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지만 한국의 복지 행정을 잘 몰라서 거절당했고 결국 먹을 것이 없어서 숨졌다는 것이었다.

<시사기획 창> 취재진은 한씨가 거주했던 관할 구청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씨가 3개의 통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재진은 한씨의 주변 사람들에게 한씨가 당시 언론에 보도된대로 한국 사정을 모르고, 대인기피증이 있는 사람인지를 물었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은 그녀가 한국의 복지 행정에 대해서 모르거나 소극적인 여성은 아니라고 취재진에게 말을 해줬다.

특히 한성옥 씨와 함께 일을 했던 직장 동료는 그녀가 탈북민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차별과 편견에 대해 다소 경계심을 갖고 있었을 뿐 삶의 의욕은 무척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은 수사담당 경찰관에게 확인을 구했다. 경찰관으로부터 얻어낸 사실은 고 한성옥 씨의 또 다른 예금 통장에 수십만 원의 돈이 들어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언론보도들이 사실상 오보였다는 것이다. 탈북민인 고 한성옥 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어쩌면 그 오보들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한성옥 씨의 죽음에 대해서는 경찰의 수사 발표 내용대로 정확한 원인이나 정황이 무엇인지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3,858원을 인출한 뒤에 굶어서 숨졌다는 것은 사실과는 다르다는 점이며, 그녀가 한국에 온지 10년이나 된 '한국 사람'이지 일부 언론들이 보도했던대로 한국을 너무 모르는 부정적 이미지의 '탈북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취재진은 한씨의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그녀가 어떤 선택을 했던 것인지에 대해 어떠한 확신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뉴욕타임즈가 한 탈북민의 말을 빌어 요약한 기사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녀는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없어서 죽었다"라고.

통일부 발표에 따르면 김정은 체제 이후인 2012년 이후에도 매년 1,000명 이상의 탈북민들이 한국으로 오고 있는데 이 가운데 70% 정도가 여성이라고 한다.

제2, 제3의 한성옥이라는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게 하려면 어쩌면 한국 사회는 탈북민 사회와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부터 타파해야 하지 않을까?

※자세한 내용은 11월 16일(토) KBS 1TV 오후 8시 5분에 방송되는 <시사기획 창 - 탈북 엄마의 마지막 눈물> 편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