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에 날계란…전주 ‘상산고’에서 무슨 일이?

입력 2019.06.21 (08:14) 수정 2019.06.21 (10:4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1970~80년대 대학 입시생들에겐 필독서나 다름 없는 참고서가 있었습니다.

'수학의 정석'입니다.

한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인 팔린 책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한국 입시제도에서 살아남은 스테디셀럽니다.

이 책으로 거부가 된 저자 홍성대 씨는 사재 수백억 원을 털어 1981년 고향인 전북 전주에 고등학교를 세웁니다.

바로, 전주 '상산고'입니다.

일반고로 출발했지만 지난 2003년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해 첫 신입생 365명을 뽑습니다.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들면서 강원도 횡성의 민사고와 쌍벽을 이루는 명문 자사고로 거듭났습니다.

그런 상산고가 자사고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5년마다 한번씩 실시되는 자사고 재평가에서 기준 점수(80점)에 0.39점 미달해 도 교육청이 재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하영민/전라북도 교육청 학장 :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얻은 후에 8월 초 고입 전형 기본계획을 수정하고, 9월 중순경 2천20학년도 평준화 일반고 전형요강을 공고할 예정입니다."]

당장 상산고 학부모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전북 교육은 죽었다'라고 적힌 리본의 근조화환을 도 교육청 앞으로 배달했습니다.

모두가 검은 상복을 입고 절까지 했습니다.

미리 준비해 온 날계란 20판은, 김승환 도교육감이 모습을 드러내면 던질 요량이었습니다.

'거지같은 행정' '망나니' 같은 격한 표현의 피켓도 등장했습니다.

학부모들이 극단적으로 반발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형평성을 문제삼습니다.

상산고가 재지정을 받을 수 있는 커트라인은 80점, 70점인 다른 시도보다 유독 10점이 높습니다.

때문에 다른 시도에서는 70점을 받아도 자사고 재지정을 받는데 79.61점인 상산고는 재지정에서 탈락하게 됐습니다.

평가 기준과 내용도 수긍하기 힘들다는 반응입니다.

자사고 재지정 평가 항목은 총 31개입니다.

상산고는 대부분 항목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았는데 유독 감점을 많이 받은게 '도 교육청의 감사 결과'였습니다.

여기서 무려 5점이나 감점이 됐죠.

상산고가 커트라인에서 0.39점 모자라 재지정에 실패했으니까, 이 5점이 결정타였습니다.

그런데, 이 항목은 '2014년도' 감사 결과를 반영했습니다.

상산고는 2015년 자사고로 재지정됐기 때문에 이 결과는 제외하는 것이 마땅하단게 학부모들 주장입니다.

또 다른 감점 요인이 된 사회통합전형 지표는 학교측이 '탈법'이라고 지적해 온 항목입니다.

사회통합전형이란 신입생 정원의 10% 이상을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뽑도록 한 건데, 학교 측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근거로 상산고처럼 자립형사립고에서 출발한 학교는 법적 의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결정은 향후 법적 소송으로도 이어질 전망입니다.

설립자 홍성대 씨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설립할 때 벽돌 한 장 안 사 줘 놓고 이제 와서 물러나라 식으로 밀어붙인다며 강력 반발했습니다.

향후 행정소송을 통해 이번 취소 결정이 적법한지 다툴 계획입니다.

당장 문제될 건 두달 뒤 있을 신입생 모집입니다.

교육청은 일반고 전형 요강으로 신입생을 뽑으라고 했지만, 상산고는 가처분 신청을 내서 취소 효력을 중단시킨단 계획입니다.

상산고와 함께 경기 안산 동산고도 자사고 지정 취소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두 학교는 다음달 초 청문을 거친 뒤 교육부 장관이 동의하면, 자사고 지정 취소가 최종 결정됩니다.

다만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는 자사고가 유지됩니다.

아시는 것처럼, 자사고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현 정부의 중점국정과제 중 하나죠,

고교서열화를 부추긴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상산고의 일반고 전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현재 평가를 받고 있는 다른 자사고들도 좌불안석입니다.

무려 17개 학교가 몰려있는 서울시 학부모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하우현/자사고 학부모 : "정치세력입니까 교육기관입니까 학생들이 바로 당신의 희생양이 되어야 합니까? 학생들을 위하는게 과연 어떤 것입니까?"]

다음달까지 전국 자사고 23곳에 대한 평가 결과가 차례로 발표됩니다.

학교를 선택할 권리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 이번 상산고 사례는 그 예고편에 불과해 보입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상복에 날계란…전주 ‘상산고’에서 무슨 일이?
    • 입력 2019-06-21 08:16:49
    • 수정2019-06-21 10:47:41
    아침뉴스타임
1970~80년대 대학 입시생들에겐 필독서나 다름 없는 참고서가 있었습니다.

'수학의 정석'입니다.

한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인 팔린 책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한국 입시제도에서 살아남은 스테디셀럽니다.

이 책으로 거부가 된 저자 홍성대 씨는 사재 수백억 원을 털어 1981년 고향인 전북 전주에 고등학교를 세웁니다.

바로, 전주 '상산고'입니다.

일반고로 출발했지만 지난 2003년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해 첫 신입생 365명을 뽑습니다.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들면서 강원도 횡성의 민사고와 쌍벽을 이루는 명문 자사고로 거듭났습니다.

그런 상산고가 자사고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5년마다 한번씩 실시되는 자사고 재평가에서 기준 점수(80점)에 0.39점 미달해 도 교육청이 재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하영민/전라북도 교육청 학장 :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얻은 후에 8월 초 고입 전형 기본계획을 수정하고, 9월 중순경 2천20학년도 평준화 일반고 전형요강을 공고할 예정입니다."]

당장 상산고 학부모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전북 교육은 죽었다'라고 적힌 리본의 근조화환을 도 교육청 앞으로 배달했습니다.

모두가 검은 상복을 입고 절까지 했습니다.

미리 준비해 온 날계란 20판은, 김승환 도교육감이 모습을 드러내면 던질 요량이었습니다.

'거지같은 행정' '망나니' 같은 격한 표현의 피켓도 등장했습니다.

학부모들이 극단적으로 반발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형평성을 문제삼습니다.

상산고가 재지정을 받을 수 있는 커트라인은 80점, 70점인 다른 시도보다 유독 10점이 높습니다.

때문에 다른 시도에서는 70점을 받아도 자사고 재지정을 받는데 79.61점인 상산고는 재지정에서 탈락하게 됐습니다.

평가 기준과 내용도 수긍하기 힘들다는 반응입니다.

자사고 재지정 평가 항목은 총 31개입니다.

상산고는 대부분 항목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았는데 유독 감점을 많이 받은게 '도 교육청의 감사 결과'였습니다.

여기서 무려 5점이나 감점이 됐죠.

상산고가 커트라인에서 0.39점 모자라 재지정에 실패했으니까, 이 5점이 결정타였습니다.

그런데, 이 항목은 '2014년도' 감사 결과를 반영했습니다.

상산고는 2015년 자사고로 재지정됐기 때문에 이 결과는 제외하는 것이 마땅하단게 학부모들 주장입니다.

또 다른 감점 요인이 된 사회통합전형 지표는 학교측이 '탈법'이라고 지적해 온 항목입니다.

사회통합전형이란 신입생 정원의 10% 이상을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뽑도록 한 건데, 학교 측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근거로 상산고처럼 자립형사립고에서 출발한 학교는 법적 의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결정은 향후 법적 소송으로도 이어질 전망입니다.

설립자 홍성대 씨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설립할 때 벽돌 한 장 안 사 줘 놓고 이제 와서 물러나라 식으로 밀어붙인다며 강력 반발했습니다.

향후 행정소송을 통해 이번 취소 결정이 적법한지 다툴 계획입니다.

당장 문제될 건 두달 뒤 있을 신입생 모집입니다.

교육청은 일반고 전형 요강으로 신입생을 뽑으라고 했지만, 상산고는 가처분 신청을 내서 취소 효력을 중단시킨단 계획입니다.

상산고와 함께 경기 안산 동산고도 자사고 지정 취소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두 학교는 다음달 초 청문을 거친 뒤 교육부 장관이 동의하면, 자사고 지정 취소가 최종 결정됩니다.

다만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는 자사고가 유지됩니다.

아시는 것처럼, 자사고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현 정부의 중점국정과제 중 하나죠,

고교서열화를 부추긴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상산고의 일반고 전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현재 평가를 받고 있는 다른 자사고들도 좌불안석입니다.

무려 17개 학교가 몰려있는 서울시 학부모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하우현/자사고 학부모 : "정치세력입니까 교육기관입니까 학생들이 바로 당신의 희생양이 되어야 합니까? 학생들을 위하는게 과연 어떤 것입니까?"]

다음달까지 전국 자사고 23곳에 대한 평가 결과가 차례로 발표됩니다.

학교를 선택할 권리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 이번 상산고 사례는 그 예고편에 불과해 보입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