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IN] 일본 ‘꽃을 든 시위’…전국으로 확산

입력 2019.06.20 (10:47) 수정 2019.06.2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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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에서 꽃을 든 시위, 이른바 '플라워 데모'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도쿄역 앞에만 꽃무늬 옷을 입거나 꽃을 든 남녀 3백여 명이 모였는데요.

꽃을 들고 거리로 나온 이유, 지구촌 인에서 살펴보시죠.

[리포트]

각자 다른 꽃 한 송이씩을 손에 꼭 쥔 여성들이 도쿄도심에 모였습니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일본의 꽃을 든 시위, 이른바 '플라워 데모'입니다.

매달 11일, 도쿄, 오사카 등 전국 아홉 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데요.

세 번째 시위인 이번 달 11일 도쿄역 앞엔 약 300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이들이 저마다 꽃을 들고 거리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이코 타부세/'꽃을 든 시위' 주최자 : "저는 이번 판결에 매우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재판관들이 일본 여성들의 마주한 현실을 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저 기차역을 걷기만 해도 성추행을 당하는 현실을 판사는 알고 있을까요?"]

시작은 법원의 판결에서 비롯됐습니다.

지난 3월, 후쿠오카와 시즈오카, 나고야 법원에서는 각종 성범죄 재판에 무죄 판결이 이어졌습니다.

'저항 불능 상태인지 몰랐다'는 등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이었다는데요.

[에이코 타부세/'꽃을 든 시위' 주최자 : "법원 판사들은 성범죄 사건에서 남성들에게 무죄 판결을 냈어요. 아마도 희생자가 되보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사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일본은 2017년 엄격한 처벌 규정을 포함해 성폭행 방지법을 개정했습니다.

그러나 폭력이나 강압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을 입증해야 성행위 관련 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데요.

피해자들과 지원 단체는 해당 형법이 피해자 쪽에 불리하며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도 울먹이며 자신의 피해 경험을 전했는데요.

[에미 토이시/집회 참가자 : "저도 여기 있는 사람들처럼 성폭력 피해자입니다. 그 경험 때문에 현재 일을 그만뒀고요. 일본이 희생자들을 치유해주고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시위는 이제 법률문제를 넘어 일본 내 근본적인 성 평등 문제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성 평등 수준에서 149개 나라 중 110위인데요.

[미쿠 요코야마/디자이너 : "(판결은) 잘못됐어요. 판결이 잘못됐다고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사건은 계속되고 있어요. 우리는 오늘 일본 사회 변화 움직임을 지지하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거세게 불었지만, 그동안 유독 일본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여성들은 좀처럼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것인데요.

일본 미투 운동 시발점인 이토 시오리 씨는 자신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한 이후 일부 우익세력의 온라인 협박 공세가 이어지자 지난해 7월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습니다.

피해자이지만 쫓겨나야 했던 그녀의 사연은 '일본의 숨겨진 부끄러움'이라는 제목으로 BBC에서 다큐멘터리로까지 만들어졌는데요.

최근 잇단 무죄 판결이 불씨가 돼 그동안 뜨뜻미지근했던 일본의 미투 운동이 뒤늦게 불붙기 시작한 겁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보호, 가해자에 대한 갱생 프로그램 신설 등을 외치며 불합리한 법 조항을 바꾸는 등 실질적인 행동에 나선 일본 여성들.

꽃을 들고 일본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작은 불씨가 앞으로 일본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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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IN] 일본 ‘꽃을 든 시위’…전국으로 확산
    • 입력 2019-06-20 11:04:41
    • 수정2019-06-20 11:28:10
    지구촌뉴스
[앵커]

일본에서 꽃을 든 시위, 이른바 '플라워 데모'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도쿄역 앞에만 꽃무늬 옷을 입거나 꽃을 든 남녀 3백여 명이 모였는데요.

꽃을 들고 거리로 나온 이유, 지구촌 인에서 살펴보시죠.

[리포트]

각자 다른 꽃 한 송이씩을 손에 꼭 쥔 여성들이 도쿄도심에 모였습니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일본의 꽃을 든 시위, 이른바 '플라워 데모'입니다.

매달 11일, 도쿄, 오사카 등 전국 아홉 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데요.

세 번째 시위인 이번 달 11일 도쿄역 앞엔 약 300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이들이 저마다 꽃을 들고 거리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이코 타부세/'꽃을 든 시위' 주최자 : "저는 이번 판결에 매우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재판관들이 일본 여성들의 마주한 현실을 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저 기차역을 걷기만 해도 성추행을 당하는 현실을 판사는 알고 있을까요?"]

시작은 법원의 판결에서 비롯됐습니다.

지난 3월, 후쿠오카와 시즈오카, 나고야 법원에서는 각종 성범죄 재판에 무죄 판결이 이어졌습니다.

'저항 불능 상태인지 몰랐다'는 등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이었다는데요.

[에이코 타부세/'꽃을 든 시위' 주최자 : "법원 판사들은 성범죄 사건에서 남성들에게 무죄 판결을 냈어요. 아마도 희생자가 되보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사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일본은 2017년 엄격한 처벌 규정을 포함해 성폭행 방지법을 개정했습니다.

그러나 폭력이나 강압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을 입증해야 성행위 관련 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데요.

피해자들과 지원 단체는 해당 형법이 피해자 쪽에 불리하며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도 울먹이며 자신의 피해 경험을 전했는데요.

[에미 토이시/집회 참가자 : "저도 여기 있는 사람들처럼 성폭력 피해자입니다. 그 경험 때문에 현재 일을 그만뒀고요. 일본이 희생자들을 치유해주고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시위는 이제 법률문제를 넘어 일본 내 근본적인 성 평등 문제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성 평등 수준에서 149개 나라 중 110위인데요.

[미쿠 요코야마/디자이너 : "(판결은) 잘못됐어요. 판결이 잘못됐다고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사건은 계속되고 있어요. 우리는 오늘 일본 사회 변화 움직임을 지지하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거세게 불었지만, 그동안 유독 일본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여성들은 좀처럼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것인데요.

일본 미투 운동 시발점인 이토 시오리 씨는 자신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한 이후 일부 우익세력의 온라인 협박 공세가 이어지자 지난해 7월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습니다.

피해자이지만 쫓겨나야 했던 그녀의 사연은 '일본의 숨겨진 부끄러움'이라는 제목으로 BBC에서 다큐멘터리로까지 만들어졌는데요.

최근 잇단 무죄 판결이 불씨가 돼 그동안 뜨뜻미지근했던 일본의 미투 운동이 뒤늦게 불붙기 시작한 겁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보호, 가해자에 대한 갱생 프로그램 신설 등을 외치며 불합리한 법 조항을 바꾸는 등 실질적인 행동에 나선 일본 여성들.

꽃을 들고 일본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작은 불씨가 앞으로 일본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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